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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26화 (226/651)

제226화: 추격자(2)

권총수는 지도를 펼쳐 놓고 한 지역을 찾고 있었다.

GPS를 통해 조금전 아민이 통화를 했던 수신자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GPS를 이용해 살펴본 수신자는 대략 마르자에서 남쪽으로 50킬로 가량 떨어진 ‘카티할’이라는 소도시였다.

지도상에 나타난 카티할을 보면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20킬로 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인구 이만오천 여명 정도되는 우리나라 읍내 규모보다 약간 큰 지역이었다.

가끔 앞을 살피며 손바닥 크기로 접은 지도를 바라보는 권총수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툭!

보던 지도를 조수석으로 던져 놓은 권총수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카티할은 말 그대로 탈레반 밭이다.

더욱이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워 미군의 추격을 받거나 하면 국경을 넘어 버린다.

미군은 아무리 쫓던 적이라 할지라도 파키스탄 국경을 넘으려면 해당 지역 부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파키스탄도 아프카니스탄 만큼은 아니지만 탈레반이 무장 테러와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국경 인근에는 발루치족이 독립을 외치며 거세게 저항하고 있는 형국으로 카티할은 양국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었다.

“으음!”

권총수는 한 가지 사실을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고 있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수확된 아편이 배편을 이용해 일단 소말리아와 케냐로 들어가 화물 세탁을 한 번 걸친 다음 멕시코로 간다.

문제는 경유지인 아프리카까지 운반 수단과 방법이었다.

왼손으로 핸들을 쥐고 오른손으로 핸드폰 번호 한 개를 꾸욱 눌렀다.

“여보세요!”

역시 자신의 전화는 빠르다.

신호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맥보란의 음성이 들려나왔다.

“그럼 그렇지. 역시, 당신은 확실히 다른 사람이오.”

다인코프 양귀비 단속팀 몰살 소식이 방송과 언론을 통해 퍼져나가고 가장 먼저 걸려온 전화가 맥보란이었다.

그러나 권총수는 받지 않았다.

당시는 어떤 이의 전화도 반갑지 않았다.

그야 말로 온몸의 힘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그래서 일어날 수도 말할 틈도 없을 만큼 충격이 큰 상태였다.

대력금강심법을 필사적으로 운용하며 정신을 차려보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무너졌다.

큰 일을 당하면 사람이 무기력해진다는 심리학자들의 말이 실감나던 며칠이었다.

“이곳 아편이 어떤 경로로 내륙을 빠져나가죠?”

CIA에서는 알고 있을 것이다.

“육로입니다.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1차로 녹쿤디에 집결하죠.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한 뒤 그와다르 항으로 향합니다.”

파라락!

권총수는 조수석 지도를 재빨리 펼쳤다.

파키스탄의 녹쿤디라는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 한참 도로를 따라 이동하던 손가락이 그와다르라는 글씨에 멈췄다.

“거리는 대략 300킬로 보면 될 것입니다.”

“1차로 파키스탄의 녹쿤디에 집결한다고 했는데 허면 피다이 마하즈쪽에서만 생산된 아편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파키스탄에서 생산되는 아편도 상당합니다. 아프카니스탄 만큼 엄청난 양이지는 않아도 3톤 전후로 봅니다. 배달 차량을 확보한 모양이군요.”

역시 정보원은 다르다.

권총수의 말투에서 뭔가 결정적인 것을 얻었다는 걸 알아차린다.

“또 전화하죠.”

“건투를 비오. 난 언제까지 당신 편에 있을 거요.”

“고맙소.”

권총수는 핸드폰을 끊고 흘긋 룸미러로 뒤 차량을 보았다.

열심히 먼지를 헤치며 따라오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무척 답답하겠지’

권총수는 하다리와 아민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아편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배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사달이 났으니 빨리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을 연락해야 하는데, 통신수단이 없다.

지금쯤 죽음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생아편 500킬로를 누군가에게 탈취 당했다는 건 어떤 이유로도 죽는 것 말고는 살아날 방법이 없다.

팟!

권총수가 눈을 빛내더니 미소를 지었다.

둘 모두 활달하고 입이 쉴 틈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차안은 조용했고 잔뜩 굳어 있었다.

“어!”

운전을 하던 하다리가 눈을 빛냈다.

갑자기 앞서가던 권총수의 차가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또 뭐하려는 거지.”

그때 권총수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리더니 재빨리 숲속으로 뛰듯이 사라졌다.

“볼일 보러 가는 모양인데.”

말을 하던 아민의 눈이 빛났다.

두 번 다시없는 기회다.

지금 도망쳐야 한다.

‘빌어먹을’

하지만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차를 돌릴 공간도 없고 후진으로 달아난다고 해도 2킬로 정도를 가야한다.

길까지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이니 빨리 갈수도 없고 금방 발각되고 말 것이다.

“시동 걸렸나?”

아민이 뚫어져라 포드 익스플로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밴의 엔진소음이 너무 크다보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안 되겠어.”

아민이 문을 열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어.”

“어디 가려고?”

“빈손으로 간 것 분명하지.”

앞서 취조 당할 때 포드 익스플로러에 실린 M4를 봤다.

시동이 걸렸다면 문이 열려 있을 것이고 그 틈을 노려 총을 탈취할 생각인 것이다.

여기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모든 건 끝난다.

꿀꺽!

포드 익스플로러를 향해 다가가는 아민을 보며 하다리는 침을 삼켰다.

차로 다가간 아민의 눈이 커졌다.

시동이 꺼졌다.

고개를 내밀어 조수석을 드려다 보던 아민의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

뒷좌석까지 고개를 내밀고 살폈지만 총은 숨긴 듯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아민의 눈이 빛난다.

조수석에 놓인 핸드폰에 시선이 고정된 것이다.

딸칵!

차문이 잠기지 않고 쉽게 열렸다.

아민은 운전석 창 너머 권총수가 사라졌던 잡초더미를 살핀 뒤 재빨리 번호를 눌렀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 나올 듯 뛴다.

거칠게 뿜어 나오는 호흡을 추스르며 귀에 댄 아민의 눈이 커졌다.

통화가 된 것이다.

아민은 재빨리 이곳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이 통화했던 번호를 삭제 한 뒤 신속히 차로 돌아왔다.

학학학!

200미터를 전력 질주하고 난 선수들 마냥 조수석으로 돌아온 아민은 헐떡거렸다.

“했어?”

대답 대신 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라후 아크 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하다리는 연신 신은 위대하다고 중얼거렸다.

이제 살았다.

권총수는 아민이 돌아오고 난 한참 뒤에 어슬렁거리며 숲에서 나왔다.

권총수가 밴으로 걸어온다.

“눈치 챈건 아니겠지?”

“죽어도 몰라.”

권총수가 운전석에 앉은 하다리를 향해 말했다.

“국도로 들어서면 당신들이 앞장 서라고.”

“아, 예!”

히죽!

권총수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차로 돌아가 출발했다.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는데 표정이 밝았다.

오 분 여 더 달리자 마침내 시골길이 끝나고 국도가 나타났다.

권총수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손에 M4가 들려 있었다.

“없었다고 했잖아?”

하다리가 타박하듯 말했다.

“없더라고.”

총을 들고 다가온 권총수가 말했다.

“뒷문 좀 열어 주시오.”

조수석 쪽으로 다가와 말했는데 핸들을 잡고 있는 하다리가 스위치 하나를 눌렀다.

탁!

하는 소리가 들리며 밴의 옆문이 열렸고 권총수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쾅!

문을 닫은 권총수는 돌아보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뭐하십니까. 어서 가시죠.”

“예...예!”

밴은 우회전하여 달리기 시작했는데 하다리는 흘긋 조수석의 아민을 바라보았다.

짜여진 계획에 의하면 권총수가 절대 동승해서는 안 된다.

권총수는 조금 전과 같이 단독으로 차량을 끌고 움직여야 한다.

아민 역시 예상 밖의 권총수 행동에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5킬로 정도 더 가다보면 조그만 모스크 하나가 나온다.

영국과 아프카니스탄의 1차 전쟁당시인 1840년대 쯤에 지어진 작은 사원이었다.

지금도 수요일과 일요일이면 인근에 사는 농민들이 찾아들어 늙은 이맘의 지도 아래 기도회가 열린다.

악바르 모스크로 불리는데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돌을 깎고 다듬어 지은 이 지역에서는 성지와 다름없는 곳이다.

그 악바르 모스크를 지나 500미터 정도 가면 작은 우물물이 하나 나온다.

‘사 슈자’의 샘물이다.

한때 아프카니스탄을 통치했던 사슈자가 어린시절 이곳을 지나는데 무척 목이 말랐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는데 그때 음성이 들린다.

‘나는 너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알라이다. 너의 기도를 어여삐 여겨 원하는 대로 샘물을 주겠노라’

기도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움푹 패인 웅덩이에서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 지역을 지나가는 목동이나 상인들에게 우물은 새로운 축복이었다.

그때부터 붙여진 이름이 바로 사 슈자의 샘이다.

자신들 차량이 앞서고 뒤를 따르는 권총수의 포드 익스플로러가 사 슈자의 샘을 지나는 순간 근처에 매복해 있는 동료들이 일제히 포드 익스플로러를 공격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동승해 버리면 작전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물론 숨어 있는 동료들이 밴을 향해 AK를 난사할리는 없다.

그러나 밴에 권총수가 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 또한 없다는 것이었다.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어차피 자신들은 사 슈자의 샘을 지나서 멈춰서야 한다.

그 시간 뒤를 따라오던 권총수의 밴은 동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RPG까지 동원 할지도 모른다.

흘긋!

하다리는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의 권총수를 살폈는데 자신들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우 느긋했다.

반쯤 눕듯 등을 의자에 기대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참다 못 한 조수석의 아민이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잠시 차를 좀 세우면 안 될까요. 볼일이 급해서.”

“그러시오.”

권총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깜빡이를 켜고서 길가에 멈췄다.

조수석의 문이 열리고 아민이 급한 듯 길 한쪽으로 10여 미터 내려가더니 바지를 내렸다.

획기적인 계획이 있어서 볼일을 핑계로 차를 세운건 아니다.

그냥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일단 세우고 본 것인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긴장으로 인해 많은 양의 소변이 쏟아진 것이 그나마 작은 위로였다.

슬그머니 다가온 하다리 역시 바지를 내린다.

“대책 있나?”

“없어.”

하다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어떡하지?”

하다리는 흘긋 고개를 돌려 차 안에 있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선팅을 했기 때문에 안에서는 몰라도 밖에서는 안에 있는 사람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선팅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줄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음!”

자꾸 살피듯 보면 오히려 의심의 시선만 더 강해 질 것이다.

소변만 쏟아내고 두 사람은 다시 차로 돌아왔다.

권총수는 비스듬하게 눕듯 앉아 게임을 하는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인간의 쾌락중 최고의 것이 뭣인 줄 아시오?

갑작스런 질문에 두 사람은 머뭇거렸다.

“배설이오. 참았다가 봇물 터지듯 토해내는 배설이야 말로 어떤 것보다 분명한 쾌락이자 쾌감이지요.”

하다리와 아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 전환을 하고자 던진 농담 같았으나 전혀 웃기지 않는다.

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사 슈자의 샘 4킬로라는 이정표가 휙 하니 지나갔다.

‘알라후 아크바르!’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신은 위대하다고 기도를 하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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