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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25화 (225/651)

제225화: 추격자(1)

의아했다.

어선이라면 배에 그물이 실려 있어야 한다.

아무리 살펴도 어구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배는 천천히 속도를 떨어뜨리며 강가에 닿았다.

뱃머리에 서 있던 사내가 훌쩍 땅으로 뛰어 내렸고 배에 있는 남자는 밧줄을 던져 주었다.

사내는 재빨리 밧줄을 근처 아카시아나무에 묶어 배가 흘러내려가지 못하도록 했다.

조타실 문이 열리고 또 한명의 사내가 나타났는데 마흔 초반 정도 되어 보였다.

권총수와 지금 막 도착한 배와의 거리는 5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세 사내는 배 안에서 10리터 정도 되어 보이는 말통을 옮기기 시작했다.

검정색 통은 제법 무거워 보였는데 안의 내용물이 어떤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세 사내는 부지런히 배에 실린 검정 말통을 운반했는데 정확히 서른두 개였다.

‘뭘까’

권총수는 눈을 빛냈다.

먹는 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헬만드강 상류에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훑어보았지만 마땅히 배로 실어 나를 만한 특정 식품이나 무언가를 만드는 공장 따위는 없었다.

강 상류로 가면 갈수록 험준한 산맥만 이어진다.

마개가 잠가진 말통에 담아 옮기는 걸 보면 액체가 분명했다.

사실 권총수가 이곳에 나온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다.

얼마전 아타야 부하들을 소탕하며 어떤 사내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린 것이다.

생포한 아타야 부하들을 상대로 양귀비 재배지역을 파악하기 위해 취조를 하는데 누군가의 입에서 길이 없는 곳에서 생산한 아편은 강을 통해 운반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혹시나 하고 강가에 나와 있었는데 우연히 10리터짜리 검정색 말통을 하역하는 사내들을 발견한 것이다.

권총수의 코가 벌름 거렸다.

불어오는 미세한 바람결에 실려 비린내가 났다.

그건 강가에서 흔하게 맡을 수 있는 물이나 생선 비린내와는 달랐다.

더 역겹고 얼핏 썩은 하수구 냄새도 실려 있었다.

단단하게 닫힌 뚜껑을 보며 권총수는 더욱 의심의 무게를 실었다.

부르릉!

그때 멀리서 먼지를 날리며 밴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밴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차량 하부였다.

마치 오프로드를 다니는 SUV처럼 높인 것이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프카니스탄의 산악도로는 과거 중국과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다듬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차량은 다닐 수 없을 만큼 험준한 곳이 지천이다.

그런 곳은 오로지 인간의 도보로 모든 것을 운반하고 이동시켜야 한다.

밴은 그런 길을 다니기 위해 하부를 올린 것이 분명했다.

밴에서 두 명의 사내가 내렸는데 AK-47 자동소총을 잡고 주위를 경계했다.

그 사이 밴의 뒷문이 열리고 세 명의 사내들이 부지런히 배에서 내린 검정색 말통을 실었다.

32개를 모두 싣고 난 사내들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차에서 내린 한 사내가 볼펜을 꺼내 물건을 받았다는 영수증에 사인을 하는 모양이었다.

종이를 받아든 세 사내는 다시 배로 돌아가 닻줄을 풀고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부우웅!

32개의 검정색 말 통을 실은 벤이 부두를 떠나기 시작했다.

핸들을 잡은 사내는 껌을 씹고 있었다.

조수석 사내는 핸드폰을 들고 누구와 통화를 했는데 자꾸 끓었다 다시 하는 것이 신호가 걸렸다 안걸렸다 반복되는 모양이었다.

“물건 인수 받아 지금 싣고 갑니다.”

사내는 상대와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전화를 끊었는데 오른쪽 발을 전면 유리 아래에 올리더니 담배를 피워 물었다.

스르르르!

사내는 담배연기가 빠져나가도록 창문을 열었다.

길 좌우로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탁!

담배를 피우던 사내가 상체를 구부리며 라디오를 켰다.

잡음이 들리더니 파슈토어로 된 뉴스가 흘러나왔다.

“뭐야!”

운전을 하던 사내가 인상을 썼다.

조수석 사내가 재빨리 전방을 보았는데 한 대의 SUV가 길을 막고 있었다.

펑크가 난 듯 운전자는 손등으로 땀을 닦아 가며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있었다.

좁은 시골길에 두 대의 차량이 비켜갈 수는 없다.

더구나 SUV는 길 한 가운데를 막고 있었다.

철컥!

조수석 사내가 AK 소총을 거머쥐었다.

밴은 천천히 멈췄고 날아온 흙먼지가 몰리면서 순식간에 앞을 가려 버렸다.

“에이 먼지!”

조수석 사내는 내리려다 재빨리 다시 문을 닫고 유리를 올렸다.

두 사람은 흙먼지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타이어 교체를 하고 있던 SUV차량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는데 쭈그리고 앉아 작업을 하던 운전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간거야.”

조수석 사내가 문을 열고 내렸다.

움찔!

차에서 내린 조수석 사내가 얼어붙었다.

시커먼 구멍이 뚫린 총구 하나가 오른쪽 귓불 아래에 닿는다.

쉿!

사내는 조용히 하라는 듯 왼손 검지를 입술에 대고 들고 있는 AK를 자연스럽게 뺏더니 멀리 던져 버렸다.

빠악!

이어 사내는 권총으로 뒤통수를 쳤는데 정확하게 수혈(睡穴)이다.

사내는 등을 차에 기댄 채 잠들었고 벌컹 열리는 문소리에 고개를 돌린 운전자가 소스라쳤다.

권총수는 총을 겨누며 말했다.

“그대로 내리시죠.”

권총수는 흘끔 운적석과 조수석 틈을 봤는데 AK 개머리판이 보였다.

사내는 AK개머리판을 흘긋 봤지만 잡지는 못했는데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총알의 속도를 이길 수는 없었다.

권총수는 팔을 뻗어 AK를 끄집어 냈고 조정간을 자동에 놓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륵!

30발들이 탄창 하나가 완전히 비어졌고 휙 총을 역시 숲속으로 던져 버렸다.

털썩!

권총수는 차에 기대어 잠든 사내를 앞으로 밀었다.

동료가 땅바닥으로 엎어지는 것에 운전을 했던 사내의 눈이 커졌다.

“아민!”

동료를 부르는 사내의 목소리가 떨린다.

죽은 줄 안 모양이었다.

“걱정할 것 없소. 잠시 골아 떨어졌을 뿐이니까.”

권총수는 담배를 꺼내려다 갑이 빈 걸 발견하고 집어 던졌다.

“담배 있소?”

사내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는데 놀랍게도 말보로 레드였다.

미군 PX에서 많은 술과 담배가 흘러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민간인이 피우는 건 처음 봤다.

딸칵!

라이터로 불을 붙인 권총수는 자신의 차량 트렁크를 열더니 짐칸에 걸터앉았다.

두 차량의 거리는 10미터가 조금 더 되어 보였다.

“뒤에 실린 것 뭐요?”

사내는 권총수를 보면서 누군지 얼굴을 떠올려 보려 했으나 기억에 없는 것이 초면이다.

적은 분명한데 목소리도 부드럽고 인상도 험하지 않다.

머릿속으로 다인코프 용병일까 생각해 봤지만 그들은 몰살됐다.

경호팀이나 경찰팀은 몰라도 양귀비 단속을 하는 이 지역 팀은 모조리 죽었다.

미군일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인코프 용병들의 몰살이 워낙 큰 뉴스로 보도가 되었기 때문에 아편 단속에서 발을 뺀 미군이 다시 개입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고 보니 서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군요. 권총수라고 합니다.”

“난 하다리, 저쪽은 아민.”

엎어져 잠에 빠진 사내를 가리켰다.

“미군이오?”

권총수는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길게 한 번 빨아들였다.

“사람들은 날 사막의 흑새라고 부르더군요.”

“으헉!”

너무 놀란 듯 하다리란 사내가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가까스로 몸의 중심을 잡은 하다리는 입을 떠억 벌린 채 중얼거리듯 물었다.

“정말?”

하다리는 눈을 빛냈다.

권총수를 이모저모 뜯어보더니 중얼 거렸다.

“사막의 흑새는 죽었는데.”

“내 시신을 봤소?”

워낙 폭발이 강력해 온전한 시신은 없었다.

운 좋게도 생존자 한 명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완전 토막이 나듯 찢어졌다.

하다리는 다시 살폈다.

지금은 버렸지만 권총수 얼굴이 그려진 종이 카드 한 장씩을 갖고 다녔다.

아직 기억에 남은 생김새와 비슷한지를 살피려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아니다.

“배에서 옮겨 싫은 건 뭐요?”

하다리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편이오.”

“10리터짜리 말통으로 서른두 개던데 무게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요?”

“500킬로 정도.”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생아편 500킬로면 엄청난 양일 뿐 아니라 가격 또한 천문학적이다.

“피다이 마하즈?”

하다리는 움찔 놀라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편 500킬로면 1년 동안 피아디 마하즈에서 생산하는 양의 몇 퍼센트 쯤 되는 것이오?”

“20퍼센트는 조금 넘을 것이오.”

20퍼센트란 말에 권총수 표정이 굳었다.

마약을 팔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느낌은 없으나 군 출신답게 전투기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전투기 10대에서 2 대가 사라진다면 단순 수치는 공군력의 20퍼센트가 감소한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다르다.

절반가까이 떨어진다고 군 전력 분석가들은 말한다.

전투기는 2대에서 4대가 편대를 이루는데 2대씩 편대를 짠다면 다섯 개 편대가 된다.

즉 한 개 편대가 사라진다는 건 수백 수천 킬로의 넓은 전선에서 어느 특정 지역에 공중지원이 중단된다는 의미다.

공중지원이 없는 전선은 무너진다.

20퍼센트가 조금 넘지만 피다이 마하즈가 받는 타격은 그 이상일 것이다.

권총수는 쓰러져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민의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아냈다.

하다리 역시 권총수가 바라보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건네준다.

퍽!

권총수는 쓰러진 아민의 뒤통수 수혈을 발길질 했다.

끄응!

의식을 잃고 잠에 빠진 아민이 깨어났는데 주위를 둘러보더니 벌떡 일어났다.

권총수를 발견하고 눈을 깜빡 거렸는데 기억을 되살리는 모양이었다.

흠칫!

한 걸음 물러서면서 주위를 살피는데 총을 찾는 모양이었다.

“갑시다!”

어딜 가자는 것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하다리를 향해 말했다.

“아편을 싣고 가는 목적지가 있을 것 아니오?”

권총수는 자신의 차로 오르더니 시동을 걸었다.

“빨리 갑시다!”

권총수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두 사람은 후다닥 놀라며 밴으로 올라갔다.

“총 없나?”

“빼앗겼네.”

“어떡하지?”

아민이 급히 물었다.

권총수의 포드 익스플로러는 이미 출발을 하고 있었다.

차를 버리고 도망 칠 수도 없다.

차에는 엄청난 아편이 실려 있으므로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

아편과 떨어진다는 건 죽여달라는 말과 같다.

유일한 연락수단인 핸드폰도 압수당했다.

따라가는 척 하다 도망칠 수도 없는 것이 벤츠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20년이 넘은 스프린터 1세대 밴이다.

사흘 걸러 한 번씩 가다 서버리는 일이 잦은 밴으로 포드 익스플로러의 추격을 따돌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드륵!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는다.

가다보면 어떤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알라께서 자신들을 생존의 길로 안내해줄 지도 모른다.

핸들을 잡은 하다리의 양손에 힘이 들어갔고 앞서가는 포드 익스를로러를 맹렬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전쟁을 하면서 죽이기도 했고 죽을 뻔 했던 일도 많았다.

어쩌면 오늘이 지금까지 헤쳐 나왔던 수많은 위험 중 가장 아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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