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죽은 자들의 노래(2)
가게로 들어서는 사내들을 바라보며 주인의 표정이 굳었다.
“후맘, 이거 오랜만이야.”
“어제 봤는데 뭣이 오랜 만이라고 그래.”
주인 후맘의 표정이 쌀쌀해졌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1달러짜리 한 장을 꺼내 사내들에게 던지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흡혈귀 같은 놈들.”
“이게 뭔가? 오늘부터 2달러씩 올려 받는다고 말했을 텐데.”
사내는 1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말했다.
“하루에 1달러씩도 모자라 2달러를 가져가겠다고? 너희들은 강도야.”
“그래서 못주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시청에 자네가 술을 판다고 신고할 수밖에.”
술을 팔다 붙잡히면 중형을 받는다.
이슬람에서 돼지고기와 술은 철저히 금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일부 국가에서 경제적 이유를 들어 완화 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지만 아프카니스탄은 가장 엄격하게 통제를 하고 있었다. 재수 없으면 교수형까지 당할 수 있는 큰 범죄이기 때문에 후맘은 시청에 신고한다는 말에 금방 자라목을 했다.
팔랑!
1달러짜리 한 장을 던지며 소리쳤다.
“꺼져.”
세 사내는 빙긋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1달러를 집어 들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뭐하는 사람들이오?”
“우리 약점을 잡아 등쳐먹는 놈들이지요.”
굶주림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
더욱이 자신보다 자식이 굶주릴 때 부모는 무엇이든 할 각오를 다진다.
후맘 역시도 더 이상 굶어가는 자식들을 볼 수가 없어 과감히 이 장사를 택했다.
위험하지만 다른 장사보다 훨씬 수입은 좋다.
후맘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술의 보급선까지 꿰뚫고 있어 어떤 가게 주인보다 저렴한 가격에 술을 가져온다.
당연히 이익도 더 많이 남길 수밖에 없다.
어쨌든 범죄가 생기면 또 다른 범죄가 싹을 틔우는데 지금 사내들이 그러했다.
“잠깐 담배 한 개비 피우고 오겠소.”
“여기서 피워도 됩니다.”
“아니죠,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연기를 맡는다는 건 고역입니다.”
권총수는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그때 세 사내가 바로 옆 가게에서 나오고 있었다.
권총수는 걸음 속도를 높여 일행을 바짝 따라갔다.
스윽!
오른 주먹을 뻗어 맨 뒤에 걸어가는 사내의 뒤통수를 갈겼다.
퍽!
사내의 머리는 10층 빌딩에서 떨어지는 수박처럼 산산이 깨졌다.
기척에 두 번째 사내가 돌아보자 다시 오른 주먹을 뻗었고 그 역시 머리가 완전히 부서지며 나동그라졌다.
“헉!”
선두에서 가던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가 기겁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과 같이 행동하던 부하 두 명이 죽어있다.
그것도 머리가 유리처럼 산산이 깨져 죽은 것이다.
총에 맞아도 죽고, 칼에 목이 잘린 사람도 봤고, 두들겨 맞은 사람도 봤지만 사람의 주먹에 맞아 죽는 건 처음이다.
그것도 아주 세게 때린 것 같지도 않는데 두부처럼 으스러져 버린 것이다.
세게 때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동작을 갖춰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시끌벅적한 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여깄소.”
사내는 재빨리 주머니에 있는 돈을 던져 주었다.
돈이 허공에 날리고 사내는 재빨리 돌아섰으나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뻑!
권총수는 사내의 뒤통수도 때렸다.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바닥에 쓰러졌고 그 역시 머리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가벼운 주먹질이지만 내공이 실렸기 때문에 사람의 머리가 온전할 수 없다.
쇳덩이도 깨질 힘이 들어 있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 돌아서려던 권총수가 멈칫 하며 마지막으로 죽은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사내의 오른손이 나동그라지듯 뻗어 있는데 손가락 사이에서 뭔가 반짝 거렸다.
권총수는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가운데 중지에 두툼한 금반지 한 개가 끼어 있는데 가운데 박힌 파랑색 구슬이 이채롭다.
슥!
죽은 사내의 손목을 쥐고 반지를 살피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단순히 파란 구슬이 아니다.
그 안에는 뭐라고 표현 할 수 없는 한 여인의 눈이 있었다.
여인의 눈은 반지를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는데 놀랍도록 매력적이다.
‘키르케의 눈!’
툭!
권총수는 사내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자세히 살폈다.
여인의 눈은 푸르게 빛났고 때로는 너무 아름다워 등골이 서늘하기도 했다.
키르케(Kirke)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로 알려진다.
눈이 부실 만큼의 화려한 외모를 지녔을 뿐 아니라 인간을 동물로 바꾸는 마법을 부린다.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마녀.
하지만 키르케의 눈이 유명해진 건 한 사내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위치한 최고 수준 보안의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사내에 의해 처음 세상에 등장한다.
‘엘 차포’(El Chapo:땅딸보)로 불리기도 하는 사내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이었다.
자기 어머니가 구스만을 가졌을 때 꿈을 꾸었다.
꿈속에 파란 거울 속에서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인이 나타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의 아들은 장차 세상을 구할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구스만의 어머니는 거울 속 여인을 향해 물었다.
‘누구 십니까’
여인은 영혼이 빠져 나갈 것 같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키르케다. 아들을 낳으면 반지를 만들어 날 기억하도록 하거라’
그렇게 키르케의 반지는 만들어졌다.
물론 제 3자가 꿈을 꾸는 모습을 지켜본 것도 아니고 증거가 없으니 진위를 파악할 길은 없다.
그러나 구스만은 틈만 나면 그렇게 떠들고 다녔고 마침내 마약왕의 제위에 오르는 날 꿈속의 키르케가 시킨 대로 반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한 개만 만들어 자신만 끼었는데 그 역시 어느 날 꿈속에 키르케를 만났다.
‘크게 번성하여라. 나를 끝없이 알리거라’
잠에서 깨어난 구스만은 자신의 패밀리로 인정하는 부하들에게 키르케의 반지를 하나씩 만들어 선물했다.
‘배신자는 키르케의 분노를 받을 것이다’
권총수가 키르케의 반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건 브라질에서 근무할 때였다.
브라질 최고의 범죄 집단 레드 커맨드와 충돌하면서였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멕시코에서 수천 킬로 떨어진 머나먼 아프카니스탄에 키르케 반지가 있지 말란 법은 없다.
일본의 파친코 가게 사장들은 일부러 문신을 새겨 자신이 야쿠자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처럼 과시하여 동네 불량배들로부터 벗어나기도 하는 걸 보면 죽은 사내 역시 키르케의 반지를 만들어 그런 용도를 사용할 수도 있다.
권총수는 일단 반지를 주머니에 넣고 가게로 돌아왔다.
조용했다.
아침이면 운동을 하느라 마당에 있는 헬스기구 부딪히는 소리로 시끌벅적 했는데 마치 절간에 온 듯 집안은 개미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자리에서 일어난 권총수는 담배를 물었다.
일층 소파에 멍하니 앉아 담배만 피우던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층으로 올라갔다.
낯익은 물건들이 보인다.
팀원들의 살림살이다.
전쟁하는 용병들의 살림살이라고 해 봤자 옷가지가 전부이다.
군 생활 반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침대를 놓고 각자의 관물함이 설치되어 있다.
몇 벌 되지 않는 옷이지만 거기에서는 사람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었다.
권총수는 뉴욕 양키스의 야구점퍼를 만지작거렸다.
‘라이스’
초등학교시절부터 광팬이라면서 이곳에 와서도 양키스 경기에 무척 관심을 쏟았다.
지나치게 달라붙는 스키니(skinny)진(Jean)을 입었다고 하여 게이 취급을 받았던 픽퍼드의 청바지가 걸려 있고, 가끔 저녁이면 마당의 벤치 프레스 의자에 앉아 영화 미션의 주제곡 ‘가브리엘 오보에Gabriel’s Oboe)‘를 하모니카로 연주하면 모두가 이유 없이 숙연해 지기도 했다.
권총수는 하모니카를 몇 번 불어보았지만 제대로 소리가 나질 않는다.
픽 웃으며 하모니카를 입에서 뗐다.
모예스, 에르난데스, 유일한 흑인인 배나윤이 읽던 이스라엘 문학의 백미라는 구약성경이 보인다.
덜컹!
유일하게 잠긴 관물함이 한 개 있었다.
다시 한 번 당기지만 열리지 않았다.
모든 팀원들의 관물함이 열린데 반해 왜 오민철은 자신의 것을 잠갔는지 권총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KAS와 계약 충돌이 있었다.
원인은 자신 때문이었지만 오민철은 용병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KAS에서 계약 위반이라면서 이미 지급된 연봉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오민철은 그런 내용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며 리야드 숙소에 두고 온 계약서를 찾았지만 없었다.
주위에서는 분실했다고 말하지만 본인은 역정을 냈다.
‘내가 계약서를 분실하고 다니는 허접한 놈인 줄 알아’
오민철은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만 둔다는 말에 붙잡기 위해 계약서를 훔쳐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 보관 중이던 계약서 일부 내용을 수정하여 제시했다는 것이다.
털썩!
오민철의 침대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형!’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이 꿈을 꾸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제발 현실이 아니길 소원했다.
지이잉!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린다.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보았는데 병원에 있는 케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케인이 골절된 발목뼈는 아직 걸을 수 있을 만큼 붙지 않았다.
좀 더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미국 병원과 너무 다른 시설과 특히 자신을 바라보는 의사 간호사를 포함한 현지인들의 적대적인 시선을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케인을 숙소로 데리고 왔다.
케인 역시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침대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고 담배를 권해도 싫다며 거절했다.
전쟁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케인에게 어마어마한 폭발로 인한 팀원들의 몰살은 결코 죽는 그날까지 잊혀 지지 않을 악몽일 것이다.
“케인!”
점심을 먹고 난 권총수는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비행기 편을 준비 해 줄테니 미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싫습니다.”
케인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건 복수심이었다.
“기어이 물라 나지불라의 목을 내 손으로 자를 것입니다.”
권총수는 길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어!”
밖으로 나온 권총수는 포드 익스플로러의 시동을 걸었다.
강물은 푸르다.
미국의 원조와 도움을 받아 댐이 건설되었고 그로인해 인근에는 목화를 비롯한 옥수수 밀, 석류와 망고가 활발하게 재배되고 있었다.
강에는 많은 배들이 떠다녔는데 물고기를 잡으려는 어업선이 대부분이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가장 큰 헬만드강이다.
강은 카불 근처에서 발원하여 이곳 라슈카르가를 지나 이란으로 빠져 들어간다.
포드익스플로러 한 대가 강가에 있는 커다란 올리브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 있었다.
차에서 조금 떨어진 풀밭 그늘에 권총수가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강에서 그물을 걷는 어부들 모습을 먼 눈으로 바라본다.
바라보는 눈에 힘이 없다.
팟!
한참동안 고기를 잡는 어부들을 바라보던 권총수의 눈에 힘이 들어섰다.
상류로부터 배 한척이 내려오고 있었다.
근처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들 보다는 좀 더 큰 배였다.
터번을 쓴 사내 둘이 뱃머리에 서 있었는데 권총수는 안력을 돋우어 내려오는 배를 한참 살폈지만 평범하다.
시선을 거두고 다시 강물을 바라보던 권총수의 눈이 다시 강렬해졌고 다시 내려오는 배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