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3화: 죽은 자들의 노래(1)
바로 그 점이었다.
그 부분이 권총수를 불편하게 한 것이다.
회사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서른여덟 명이라는 목숨이 사라졌는데 오로지 주가 폭락에만 매달린 것이다.
“캡틴!”
권총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서류 봉투를 가지고 나오더니 버홀터에게 내밀었다.
“나의 실수로 계약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될 땐 언제든지 해지 할 수 있다. 단 그럴 경우에는 지급받은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
권총수는 계약 내용을 말했다.
“내일쯤에 회사 계좌로 계약금과 이미 받은 오 개월 치 연봉을 보내죠.”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대표님에 대해 어떤 불편함이나 섭섭한 감정 따위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었지만 돈은 살아 있으니 그것이라도 회수하여 피해를 줄이는 것이 장사꾼의 당연한 행동 아니겠습니까?”
“뭔가 오해를.”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아닙니다. 전혀 오해 하지 않습니다. 한때는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나름대로 제법 인간적인 상식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돈은 인생의 전부입니다. 돈이 없다는 건 곧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는 뜻이죠. 굶주려 보지 않은 사람은 돈이 지닌 위력을 모릅니다.”
권총수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전혀 불쾌하다거나 다인코프 측에서 어떤 요구를 해도 거절 않겠다는 뜻이었다.
“모든 걸 계약 이전으로 돌려놓겠습니다. 단 회사에서 요구하는 언론 인터뷰는 안 됩니다.”
회사에서는 주가 폭락을 막기 위해 권총수에게 언론을 상대로 인터뷰를 해줄 것을 종용했다.
사막의 흑새는 죽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주가를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안 될 일이다.
당분간 자신은 죽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잠시만!”
버홀터는 밖으로 나갔다.
필시 다인코프 대표인 메몰라와 통화를 하려는 것이다.
딸칵!
담배에 불을 붙인 권총수는 등을 소파 뒤에 붙이며 비스듬히 뒤로 누웠다.
후우우!
긴 연기가 천장을 향해 솟아오르며 한 사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어린노무자식이 어른 앞에서 맞담배를’
외인부대에서 만나 어느 정도 낯이 익고 가까워진 어느 날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려면 조금은 감추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날 똑바로 쳐다보고 연기까지 어른 얼굴에 뱉다니’
주위 훈련병들이 깔깔 대며 웃었다.
‘너 내가 몇 살 때부터 담배를 핀지 아냐?’
오민철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고2 겨울 방학이었어. 체육관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길 바닥에 멀쩡한 담배 한 개비가 떨어져 있는 거야. 재빨리 주변을 정찰했는데 적들이 보이지 않더라고, 그래서 재빨리 주웠지’
‘적이 누군데?’
‘누군 누구야. 당연히 어른들이지. 난 하늘이 준 기회라고 여기고 읍내 가게에서 라이터를 샀지’
‘청소년에게 라이터를 팔아?’
‘담배를 안 팔지 라이터는 팔아 임마’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골목구석으로 들어가 피운 첫 담배는 오민철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멋모르고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숨이 막혀 죽을 뻔했고, 반듯하게 서 있던 전봇대가 자신을 향해 쓰러질 땐 인생 끝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권총수 얼굴에 잠깐의 미소가 떠올랐다.
권총수는 담배를 문채 일어나 충전중인 핸드폰을 뽑았다.
아직 백 프로 충전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켜지고 여러 내용물을 살필 정도는 되었다.
패턴을 그려 화면을 풀자 한 명의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오민철의 어머니로 오십대 초반 시절의 사진이었다.
사진은 챙 넓은 모자를 쓴 채 경운기를 운전해 가고 있는 완전한 농군의 모습이다.
카톡에 문자가 와 있었다.
‘예비 사돈어른이 널 한번 보고 싶다는데 휴가는 언제 오니? 네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직접 얼굴보고 앉아 몇 마디 얘기정도는 나눠보고 싶은 모양이더라’
‘카이로에 테러가 일어났다는데 괜찮은 거지? 이제 그만 하면 안 되는 거니? 누나 가슴이 벌렁거려 더 이상 못 보겠다’
용병생활을 그만 접으라는 큰 누나 오미자의 문자였다.
계속 화면을 올렸는데 거의가 가족들로부터 온 문자들이었다.
이번에는 사진들이 보관된 갤러리로 들어갔다.
움찔!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한 번도 못 본 여자의 사진이 있었다.
큰 누나 오미자가 소개했다는 초등학교 여자 선생님인 모양이었다.
그동안 사진 한 번 보여 달라고 사정을 했으나 감췄다.
오히려 군대시절에는 여자 친구 얼굴을 자랑삼아 오픈하는 것이 유행인데 오민철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감췄는지 한참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애인이 기다리면 집에 가지 못 한다’
는 속설이 떠돌고 있었다.
진원지가 미군이라는 설도 있고, 탈레반들이 고국에 여자 친구나 아내를 두고 온 미군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목적으로 퍼뜨렸다는 설도 있다.
전장처럼 미신과 속설이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곳도 없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다보니 예민하게 반응하고 날카롭게 흥분할 수밖에 없다.
제임스라는 미해병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목에 걸린 군번줄이 떨어졌다.
잡아당기지도 않은 멀쩡한 군번줄이 떨어지자 중대장을 찾아가 오늘 작전에 자신을 제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 해병이 그따위 미신에 휘둘려서야 되겠느냐며 누구도 열외가 없음을 강조했다.
당시 제임스 상병이 속한 알파중대는 이라크 북서부 니네와주에서 대대적인 반군 토벌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화는 빨리 닥쳤다.
부대를 출발하여 칼리크란 마을로 진입하다 지뢰를 밟아 사망하고 말았다.
문제는 1소대 40명중 유일하게 제임스만 지뢰를 밟았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여 또 다른 지뢰가 있는지 샅샅이 살폈지만 더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느 이라크 반군이 한 개 남은 지뢰를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휴대하고 다니기도 불편하자 누구든 밟고 죽어라 하는 심정으로 대충 묻어 놓은 것에 제임스가 걸려든 것으로 판단했다.
중대장은 열외해주지 못한 것에 땅을 치며 후회를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목숨이 거래가 되는 전쟁터는 예민한 것이다.
아무리 종교적 신앙이 깊은 사람도 날카로워진다.
결혼을 하기로 서로 약속했으므로 애인이고 기다리는 여자다.
그래서 오민철은 살아 돌아가기 위해 더욱 숨겼는지 모른다.
‘최지윤’
여자 이름만 가르쳐 줬다.
여자 사진은 모두 다섯 장이었는데 선생님답게 제자들과 찍은 사진이 많았다.
이어 가족들 사진과 조카들, 특히 휠체어에 앉은 늙은 노모의 사진을 보며 권총수는 끝내 한숨을 쉬고 말았다.
덜컹!
밖으로 나갔던 버홀터가 들어오더니 핸드폰을 건넸다.
“대표님일세.”
권총수는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다인코프의 대표 메몰라는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더듬거리며 말을 뱉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주로 듣기만 했는데 버홀터가 초조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권총수는 예라는 대답만 하고 있기 때문에 통화 내용을 추측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통화는 10여 분간 지속되었고 권총수가 한 말은 ‘예’ 와 ‘그러죠’ ‘알겠습니다’가 전부였다.
권총수가 전화를 건네주었다.
“대표님?”
이미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버홀터는 무슨 내용인지 묻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하던 일 하라는 거요”
“그건.”
“사막의 흑새가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주가 떨어지는 것에는 개의치 말라는 얘기였소.”
권총수는 아카데미의 프린스나 KAS의 스톤스보다는 다인코프의 메올라의 그릇이 좀 더 크다고 보았다.
버홀터는 싱긋 웃었는데 메몰라의 계산이 그려졌다.
권총수만 있으면 된다.
비록 많은 인명피해가 났지만 권총수만 있으면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난 그럼 가보겠네.”
권총수는 하루 정도 쉬어 가라느니, 잘 가라느니 하는 말도 없이 내버려 두었다.
버홀터는 타고 온 차를 끌고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쾅!
대문이 큰 소리를 내고 닫혔다.
라우프 공예품 시장 골목을 따라 쭈욱 내려오면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가 나타난다.
대로라고 해봤자. 왕복 4차선인데 노면 상태가 좋지 못해 비포장 길을 달리듯 차량들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시장 입구에서 대로를 따라 일백여미터 내려오다 보면 사람 둘이 지나면 어깨가 스칠 만큼 비좁은 골목 하나가 있었다.
골목 좌우로 처마를 붙이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들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술을 팔고 있었다.
몰래 하는 불법 영업이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정식으로 술을 판매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소련과의 전쟁에서 술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고 이어 탈레반과의 내전,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은 소리 없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도록 만들었다.
늦은 시간에 관광객들이나 아니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은밀하게 이 골목을 찾는다.
목이 뜨겁다.
차라리 불길에 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러시아 보드카였다.
다른 술은 없고 러시아에서 들여온 싸구려 보드카가 판매하는 술의 전부였다.
언뜻 보면 물로 착각할 만큼 투명했다.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색은 더 없다.
이른바 보드카의 특징인 3무(三無), 무색, 무미, 무취를 제대로 갖춘 것이다.
주인 말로는 45도라고 했다.
보드카 중에는 병원의 소독용 알코올(80도) 보다 높은 90도짜리도 있다.
그런 술은 잔에 적당히 부은 뒤 물을 섞어 마시는데 대부분 호기심에서 마신다고 주인이 설명한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가게에 손님이라고는 권총수 혼자였다.
권총수는 무료하게 술 마시는 자신을 구경하듯 바라보는 주인이 측은해 보여 십 달러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는데 그야말로 황제 대우다.
땅콩이나 말린 석류가 전부지만 주인은 최선을 다해 대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만 가져오시오.”
마른 석류는 묘한 맛이다.
신맛에 뒷맛은 설탕을 방불케 할 만큼 달았다.
보드카 안주에는 마른 석류가 좋다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꾸 꺼내왔다.
사실 권총수는 안주로 먹는 것이 아니었고 마른석류의 씹는 맛이 좋아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가고 있었다.
“한 병 더 주시오.”
45도짜리 보드카 세병을 마신 사람은 아직 없었다면서 주인은 무척 놀란다.
“내가 한 잔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마개를 따고 병을 들었다.
권총수는 두 손으로 잔을 받았는데 한 손으로 따르던 주인이 멈칫 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듯 재빨리 나머지 왼손을 병에 붙였다.
권총수는 잔을 내리며 빙긋 웃었다.
“두 손과 한 손의 차이가 있습니까?”
“술은 서로가 존중할 때 맛과 향이 더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두 손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입니까?”
“그렇죠.”
이슬람에서는 알라 앞에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면 항상 한 손이라고 했다.
“일본, 중국?”
“한국입니다.”
한국이라는 말에 놀라는 얼굴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권총수가 일본이나 중국 두 나라중 한 곳일 것이라고 짐작했단다.
쭈욱!
잔을 비우자 주인은 염려스런 시선을 던졌다.
“괜찮으십니까? 오늘 밤 적게 마신 술이 아닙니다.”
옛날의 권총수라면 취해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강호무사로서 반박귀진에 이른 강한 내공의 소유자이다.
내공이 일 갑자 이상 오르면 몸속의 주기(酒氣)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취기가 있다 싶으면 손가락 끝으로 술기운을 모야 삼매진화의 수법으로 태워 버린다.
그러므로 적당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매우 안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다.
드르륵!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세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