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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22화 (222/651)

제222화: 마약의 술잔(2)

노인 나씨르의 표정이 굳어진다.

권총수는 총을 흘긋 내려다 보며 말했다.

“이곳 페르샤워 분지에 재배되고 있는 양귀비 소유자는 누구입니까?”

“무슨 말이오? 소유자가 누구라니 여긴 우리의 땅이오. 조상때부터 물려받고 앞으로도 이어질 기름진 옥토.”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촌장님, 내가 잠이 많은 사람입니다. 학교 다닐 때 잠이 너무 많아 지각을 자주했습니다. 잠이라면 환장을 합니다. 그런데 어제 밤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누우면 곧 바로 코를 고는데 어제 밤은 그 많던 잠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아침까지 줄담배만 피웠죠.”

노인은 우두커니 듣고 있었다.

마치 자신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식으로 들린다.

살아오면서 잠이 오지 않을 만큼 누군가를 괴롭혀 본 적이 없기에 권총수의 말이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든 노인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한 번 만 더 묻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정확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때는 그냥 있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촌장 나씨르 노인의 안색이 변했다.

탈레반이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들어서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다행히 재빨리 시류에 영합한 덕에 목숨을 부지하고 마을 촌장까지 지내면서 살고 있다.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는데 지금 목에 가시가 걸린다.

이른 아침부터 낯선 젊은이가 찾아 온 것도 괜찮다

한손에 미군이나 용병들이 사용하는 M4가 들려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있다.

나씨르의 목에 가시가 걸릴 만큼 뜨끔한 것은 분명 시비를 걸기 위해 온 것 같은데 너무 환한 얼굴이라는 것이었다.

이른 아침에 막 솟아오르는 눈부신 태양과 같이 구김 없는 부드러운 얼굴이 걸린다.

저런 얼굴은 완전 알라에게 귀속된 신앙 깊은 이맘들에게서 가끔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찾아 볼 수 없다.

신이 항상 나와 같이 있고, 날 위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준비한다는 확신을 갖고 산다고 해도 인간의 얼굴이 저토록 맑고 밝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오래전 근처에 있는 불교 벽화를 본적이 있는데 거기에 그려진 부처의 얼굴과 비슷했다.

“많은 농민들이 탈레반과 손을 잡고 양귀비 재배를 하고 있다더군요. 난 농민들을 이해합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밀이나 옥수수, 목화 따위로는 도저히 굶주림을 피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그 중에는 탈레반으로부터 미리 선금을 받고 양귀비를 제작한다는데 이 마을도 그렇습니까?”

아프카니스탄 정부의 단속과 미군들이 파상적으로 갈아엎자 농민들도 조금씩 마음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양귀비를 갈아엎어 버리면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그야말로 일 년 농사를 공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밀이나 옥수수라도 심는다면 적은 이익이지만 굶지는 않는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짓고 있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탈레반들로부터 제의가 왔다.

양귀비를 재배하다 갈아 엎어져도 자신들이 밀 재배 때보다 더 많은 소득을 안겨주겠다는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

갑자기 나씨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틀 전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70평생 그토록 가공할 폭발은 처음 보았다.

수백 미터 떨어진 동네 집들이 무너지기도 했고 나무가 뽑히기까지 했다.

단속을 위해 올라오던 용병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살아난 사람은 한 명이었는데 그 역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았으며 어디론가 끌려갔다.

혹시 그들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면 밤새 잠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분노하고, 복수심에 불타다 보면 잠이 올 리가 없다.

“용병이오?”

“묻는 말에만 답하시오.”

“......”

역시나 나씨르가 답이 없자, 권총수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마을 주민이 촌장님까지 포함하여 서른아홉 명이더군요.”

흠칫!

나씨르는 깜짝 놀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말은 어떤 협박이나 경고보다도 무서운 얘기였다.

자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서른아홉 명 모두를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나씨르는 긴장했다.

동료의 복수를 위해 찾아온 권총수 얼굴이 왜 그렇게 부드럽고 다정스러운지 이유를 알았다.

분노가 너무 극에 이르면 웃음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지금 권총수가 그런 상태라는 걸 직감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생각했다.

타아앙!

총성이 울렸다.

나씨르가 부르르 몸을 떨었는데 가슴이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그토록 달래고 사정 했으면 성의를 보여야지 살기 싫은 모양이군요.”

나씨르는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꿈틀거렸으나 한 마디도 흘러나오지 못했다.

퍼억!

나씨르는 앞으로 고꾸라졌는데 금세 피가 지면을 적시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들리자 대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두 명의 사내가 뛰어들어 왔는데 한 명이 AK를 들고 있었다.

드륵!

M4가 불을 뿜었고 AK를 든 사내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같이 뛰어든 사내는 죽은 사내가 떨어뜨린 AK를 줍기 위해 돌아섰다.

두두두!

사내의 발치에 십여 발의 총알이 박히면서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났다.

사내는 얼어 붙었고 두 손까지 들고 천천히 돌아섰다.

권총수는 천천히 다가가 죽은 사내를 발로 툭 건드려 하늘을 보고 눕도록 만들었다.

서른 초반은 되어 보인다.

총구로 심장을 누르듯 찔러 보고 죽음을 확인한 듯 벌벌 떨고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탈레반 어느 분파요?”

“피다이 마하즈.”

“물라 나지불라?”

“한 번도 본적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람들이 불렀습니다.”

“이틀전 사고에서 한 명이 생존했다고 하던데 맞소?”

“예! 하지만 거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발목을 잡고 끌려 왔는데 온통 피투성이였습니다.”

스윽!

갑작스럽게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내밀자 사내는 주춤했다.

매우 놀란 모양이다.

“괜찮소. 피우시오.”

사내는 조심스럽게 받아 쥐었고 권총수는 라이터 불을 붙여 주었다.

권총수도 담배를 피워 물고는 커다란 손수레에 걸터앉았다.

권총수는 말이 없었다.

산속의 마을은 숨 막힐 듯 조용했고 권총수가 뿜어낸 담배연기가 농가의 지붕 위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름이?”

“타리크.”

“타리크, 매우 좋은 이름이오. 나이는 몇이오?”

“서른 셋!”

“결혼은 했습니까?”

“미혼입니다.”

“좋아하는 여자는 있습니까?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

“아직.”

타리크는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

“타리크,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저기 보이죠. 저 사람?”

“촌장님!”

“그렇소. 이곳 마을 제일 어른이오. 그가 왜 죽었는지 아시오.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난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절대 죽이지 않습니다.”

타리크는 무척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어느 집단이든 본부가 있소. 여럿이 모여 회의도 하고 중요한 의제도 논의하고 서로가 얼굴을 보면서 안부를 묻기도 하는 곳이죠. 피다이 마하즈의 본거지를 알고 있습니까?”

권총수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그들은 귀신입니다. 결코 우리에게 자신들이 어디 사는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타리크는 불안한 듯 뭔가 더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소리는 내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 거렸다.

‘모른다’

권총수는 결론을 내렸다.

정말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마을과 피다이 마하즈와 관계는 어느 정도입니까?”

“그들은 우리에게 선금을 주고 양귀비 재배를 독려 했습니다. 만약 시청 단속반이나 미군이나 용병들에게 들켜 갈아 엎거나 불타 없어져도 돈을 회수하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권총수는 골목 쪽으로 시선을 한 번 보냈다가 거두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무서워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손수레에서 일어나 대문 앞으로 걸어갔다.

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타리크 앞으로 다가왔다.

“살려주십시오.”

타리크는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주저앉아 두 손으로 빌었다.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타리크에게 내밀었다.

뜻밖에 담배를 건네자 타리크는 움찔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앗 쌀라 말라이 쿰(평화가 그대와 함께).”

“앗 쌀라 말라이 쿰!”

타리크는 재빨리 일어나 합장하여 허리를 숙였다.

권총수는 골목으로 내려섰는데 마을 주민 이십여 명이 몰려 있었다.

총을 들고 있거나 낫이나 칼 따위의 흉기를 집어들지는 않았고 대신 두려움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본다.

권총수가 천천히 걸어가자 마을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줬다.

“촌장님이 죽었다.”

누군가 외쳐 말했다.

그러나 권총수를 향해 달려든다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권총수는 조금씩 골목에서 멀어져 갔다.

굳게 닫힌 철대문이 열리고 포드 익스플로러가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멈칫하며 안쪽을 바라보았는데 집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짐작되는 바가 있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예상대로 카이로 지사장 버홀터가 와 있었는데 방안에 담배연기가 가득했다.

초조한 모양이다.

“캡틴!”

“전화로 얘기한 그대로요.”

권총수는 전화 코드에 꽂혀있는 충전기에 오민철의 핸드폰을 연결시키고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어딜 다녀오는가?”

“현장엘 갔는데 피다이 마하즈 조직이 벌인 짓이라는 것 말고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으음!”

버홀터는 믿어지지 않는 듯 계속 실내를 서성거렸다.

“그런다고 어떻게 한 번에 40여명 가까운 인원이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미국의 아카데미는 블랙워터라는 이름으로 맨 처음 용병시장을 개척했다.

이후 수많은 크고 작은 민간 보안업체가 등장했으며 시장은 그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다.

시장은 경쟁이고 살아 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용병들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잔혹한 공격력을 보였다.

이라크전이 끝나고 미군을 대신해 투입된 아카데미 용병 11명이 팔루자 ‘미를라꾸’ 사원 앞에서 반군의 기습을 받고 숨진 것이 역대 최고의 피해다.

그런데 이번에 다인 코프에서 서른여덟 명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엄청난 충격이 시장을 몰아쳤다.

텔레비전을 켜면 아프니스탄에 아편 단속을 목적으로 파견된 다인코프 용병들의 몰살 소식이 나왔다.

더욱 자극적인 건 몰살한 다인코프의 아편 단속팀의 우두머리가 사막의 흑새라는 것이다.

머리에 터번과 모랫바람을 막기 위해 두른 마스크를 쓴 모습이 신문과 방송에 쫙 깔렸다.

다인코프 주식까지 폭락하기 시작했다.

민간 보안업체의 주가는 특정 작전의 성패에 일희일비하지만 사막의 흑새는 확실한 상승요인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목숨까지 잃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에 다인코프의 회사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 것이다.

‘사막의 흑새는 살아 있다’

회사에서는 재빨리 권총수가 살아 있다는 언론 브리핑을 했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 증거로 권총수의 최근 사진을 실었지만 주가 폭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건 오히려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주는 계기로 작용해 버렸다.

-살아있다면 직접 그의 목소리나 얼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내 보내면 간단한 일 아니냐.

기자들과 다인코프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사실 오늘 버홀터가 온 것 또한 그 문제를 상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폭락하는 주식시장부터 일단 안정시키고 보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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