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시날로아 카르텔(3)
머리에 흰색의 히잡을 쓰고 붉은색 투피스를 입은 승무원이 음료수를 권했다.
아프카니스탄 국내선이지만 에미레이트 항공에서 운영하는데 권총수는 망고주스 한 잔을 시켰다.
쭈욱!
단숨에 주스를 비운 권총수는 멈칫했다.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꺼내려고 한 것이다.
피식!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는 뜻이었다.
처음으로 비행기가 몹시 느린 교통수단이라는 걸 느꼈다.
권총수가 라슈카르가 보스트 공항에 도착할 때는 오후 1시 30분이 막 지나고 있었다.
“알아베드 7가 18번지 갑시다.”
시동이 걸려 있던 택시는 곧장 출발했다.
권총수는 자꾸 주변을 휘둘러보았는데 마음이 불안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대력금강심법은 운용하여 마음을 안정하려고 해도 이상하게 뛰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별일이다.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아무리 몸과 마음이 아픈 일이 있어도 잠시 심법을 운용하면 금세 물에 씻겨 내려가듯 홀가분했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심법이 통하지 않는다.
주화입마 초기 단계처럼 몸과 마음, 심법이 완전히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택시는 아스팔트를 벗어나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택시가 만들어낸 누런 먼지가 소용돌이 쳤다.
차는 공항을 출발한지 30여분이 채 안되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저택 앞에 멈췄다.
권총수는 미화 10달러를 주고 돌아가라는 사인을 하자 기사는 감격한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앗 쌀라 말라이 쿰(평화가 그대에게)”
“앗 쌀라 말라이 쿰!”
권총수는 굳게 닫힌 철제 문을 핸드폰을 이용한 리모컨 기능으로 열었다.
그그긍!
문이 열리자 재빨리 안으로 들어간 권총수는 현관문을 열었는데 잠겼다.
문이 잠겼다는 건 모두가 외출했다는 뜻이다.
현관문도 새롭게 철문으로 갈아 끼워 열쇠가 없이는 들어가지 못한다.
권총수는 급했으므로 손잡이 근처에 손바닥을 대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으으!
잠시 후 현관문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툭 하는 소리를 내며 손잡이가 떨어졌다.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간 권총수는 거실로 뛰어들었다.
치지직!
무전기 소리였다.
벽에 걸어 놓은 무전기에서 호출이 오고 있었다.
“둥지, 여긴 레드원 누구 있으면 응답하라. 둥지, 둥지.”
탁!
재빨리 송수신기를 쥐었다.
“둥지, 레드원 말하라.”
“캡틴!”
“케인?”
“오마이 갓. 여긴 페르샤워 분지, 지원 바람, 여긴 페르샤워 분지 구조를 요청한다.”
“알았다 케인 기다려.”
권총수는 안쪽 벽장문을 열어젖혔다.
M4를 비롯하여 미군 기관총 M240과 독일 헤클러 운트 코흐에서 나온 G11 돌격 소총도 보였다.
탁!
M4 한 자루를 들고 HK45 권총을 허리에 꽂았다.
파우치 네 개를 붙인 방탄조끼를 재빨리 입고 30발들이 탄창과 10발들이 권총 탄창을 쑤셔 넣었다.
다다닥!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권총수는 마당에 있는 포드 익스플로러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포드 익스플로러가 마당을 빠져나가고 대문이 자동으로 잠겼다.
거친 산길을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비좁고 험준한 산길이지만 차의 속도는 굉장했다.
산이 깊은 탓에 GPS도 먹통이다.
퍼퍼펑!
바퀴에 갈린 돌들이 튕겨나가면서 포드 익스플로러는 가파르게 솟구친 후 고개를 넘었다.
눈 앞으로 바다처럼 넓은 분지가 나타났다.
분지는 형형색색의 양귀비 꽃들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데 꽃의 호수를 보는 듯 했다.
권총수는 차를 분지 입구 나무아래 숨겨 놓고 내렸다.
M4 안전장치를 풀고서 내공을 끌어 올렸다.
무전기에 들려왔던 케인의 목소리는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는데 그건 몹시 위험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는 뜻이었다.
‘케인! 케인 내 말이 들리면 소릴 지르지 말고 돌을 부딪치도록’
이른바 천리전음이다.
그렇다고 천리를 가는 건 아니지만 내공의 수위에 따라 거리가 달라지는데 이곳 페르샤워 분지에 있다면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케인, 케인!’
딱!
파앗!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용수철처럼 튕겨 솟구친 권총수의 몸이 바람처럼 좌측 산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흐르는 조그만 개천이 있었지만 완전히 말라 바닥을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탁!
또다시 돌 부딪히는 소리에 전음을 보냈다.
‘됐다. 알았으니 움직이지 마라’
혹시 적의 감시에 걸릴지도 모른다.
슈유육!
몇 번의 도약이 있고 권총수는 움푹 패인 개천가 바위 밑을 바라보았다.
발목지뢰처럼 무전기를 모래 속에 파묻어 놓았다.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조치로 보였는데 안테나도 일부를 꺾어 개인용 무전기처럼 짧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풀잎을 뜯어 그 위를 덮었는데 케인은 구덩이 속에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캡틴!”
권총수를 발견하고 더듬 거린다.
“말하지 마라. 음성에도 기(氣)가 실렸으니 해롭다”
권총수는 케인을 끌어내어 바닥에 눕혔다.
두둑!
거칠게 윗도리를 잡아 당겨 가슴을 완전히 풀어 헤친 후 추궁과혈을 시전했다.
다다다다!
추궁과혈을 시전하는 소리가 퍼질까봐 주위로 호신강기를 펼쳤다.
20여분 정도 지났을 즈음 우욱 하며 케인이 피를 토했다.
“일어날 수 있나?”
케인은 손을 집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는데 깜짝 놀란다.
조금전까지 힘이라고는 없었고 살아 날 수 있다는 희망은 버렸다.
단지 어떻게 해서라도 권총수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고 죽는다면 그래도 무전병으로서 할 일은 하고 죽는다고 생각했다.
상체를 일으킨 케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케인!”
“모두 죽었습니다.”
“뭐...뭐?”
케인이 급기야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잔뜩 두려움에 떨다 부모님을 만난 어린아이가 대성통곡 하듯 나이 서른에 이른 청년이 우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들 수 없도록 만들었다.
권총수는 길게 심호흡했다.
마음의 안정을 차리려는 것인데 왜 그토록 심법운용이 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드러났다.
가장 우려했던,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고야 만 것이다.
‘분노와 불안은 혈맥을 흐르는 내기를 흔드는 행위이니 결코 차분해야 함을 잊지 마라’
여전히 안정되지 않는 마음은 그만큼 상황이 위험하다는 징후였다.
분노를 자제하지 못해 주화입마에 빠지는 일이 잦다고 공공선사는 자주 강조했다.
권총수는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며 머릿속의 생각을 지우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조각 없다.
한국의 하늘이나 아프카니스탄의 하늘은 똑같이 푸르다.
푸르다.
푸르구나.
모든걸 자제하고 절제하기 위해 푸르다는 말을 일부러 반복했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말하기 푸른색은 사람의 시선을 쉬게 하고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권총수는 할 일 없는 사람처럼 하늘을 반듯하게 올려다 볼 수 있도록 뒤로 누워 버렸다.
꿀꺽!
마른침을 자꾸 삼켰는데 그건 분노를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얘기해 봐.”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화입마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화(禍)는 함부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피할 일이면 결코 불행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지극한 상식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주르륵!
나이 서른이면 적지 않다.
그러나 전쟁경험이 없는 서른 살의 남자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케인은 또 다시 아이처럼 울더니 여기서 일어났던 일들을 빼놓지 않고 보고했다.
권총수는 묵묵히 듣기만 했는데 케인의 설명이 끝났는데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걸을 수 있겠나?”
일단 위험은 넘겼지만 케인의 부상은 가볍지 않았다.
권총수는 케인을 안고 몸을 날렸다.
화악!
케인의 눈이 커졌다.
조금전 자신의 귀에만 들리던 전음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특별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날아가고 있었다.
슈유유!
사십여 미터를 날았다가 다시 땅을 박차고 날아간다.
‘진짜 날아가다니’
이곳에 온지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소문으로 들었던 초능력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역시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치부했는데 오늘 모든 것이 쏟아진다.
‘아아아!’
귓가에 바람이 스치고 옷자락이 펄럭였다.
이건 꿈이다.
척!
땅에 내려선 권총수는 케인을 뒷좌석에 태우고 곧장 시동을 걸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라슈카르가에서 가장 큰 니할랄 병원 주차장에 포드익스플로러 한 대가 주차해 있었다.
권총수가 나타났다.
케인을 특실에 입원시키고 병실을 지키는 보안직원까지 한 명 배치했다.
부우웅!
시동을 걸고 다시 병원을 빠져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3시간 만에 다시 페르샤워 분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8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라이트는 켜지 않았다.
이런 깊은 산속에서 라이트를 켠 채 달린다는 건 자살 행위다.
대신 안력을 끌어 올려 차를 몰았는데 대낮처럼 시야 확보가 분명치 않아 속도는 빠르지 못했다.
끼익!
케인을 찾기 위해 왔을 때는 혹시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분지 입구에 숨겼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탈레반이라고 하여 야시경이 있지 말란 법은 없지만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해도 싸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총수는 개천 앞까지 차를 끌고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형형한 눈빛으로 개천을 살피며 오르기 시작했다.
오른손에는 M4가 쥐어져 있었다.
어두운 밤이지만 반박귀진에 오른 내공은 충분히 주위를 살필 수 있는 시력을 주었다.
멈칫!
개천을 거슬러 올라가던 권총수 걸음이 세워졌다.
핏방울이 보였다.
케인의 말에 의하면 핏자국을 따라 올라가다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스윽!
권총수는 혹시 지뢰나 또 다른 급조폭발물이 매설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허공으로 30센티가량 몸을 띄웠다.
쓰으으으!
한참을 올라가던 권총수가 멈췄는데 여기저기 파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폭발의 잔해들이 사방으로 퍼진 것이다.
‘으음!’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간 권총수는 표정이 굳어졌다.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가 만들어졌는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누군가 매복과 도피 교범에 충실했군’
처음 핏자국이 발견된 지점에서부터 이곳 구덩이까지는 대략 백여 미터 가까이 되었다.
권총수는 한눈에 폭발물을 매설한 이가 전쟁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탈레반은 아니다.
실전경험은 풍부하지만 전장에서의 병사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이런 전술은 불가능하다.
핏방울까지 발견되었으니 팀원들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긴장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아직 전쟁경험이 없는 팀원들로서는 더욱 심각했을테니 핏자국이 함정이라는 것까지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프로폐셔널이군’
오민철이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고 걸음을 멈췄을 것이다.
그 자리가 죽음의 함정이 깔린 곳이다.
오민철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끼고 철수를 하려고 들었을 것이며 숨어 지켜보고 있던 적이 놔둘리 없다.
원거리 기폭장치인 리모컨을 이용해 폭발물을 터뜨렸다.
권총수는 구덩이가에 서서 움직일 줄 몰랐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얼마나 무자비한 살상이 벌어졌으면 아직까지 구덩이에서 피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찢어진 살점이 보이고, 한참 부패가 시작되고 있는 팔 다리, 끊어진 시계 줄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권총수는 주위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혹시 뭔가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이 없는지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구덩이에서 위로 20여 미터 올라갔을 때 권총수의 몸이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잠시 땅을 내려다보던 권총수는 구더기가 끓고 있는 손목 하나를 발견했는데 검지에 반짝거리는 반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