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시날로아 카르텔(2)
건물은 카불 외곽에 있는 바로크시대 양식의 작은 교회였다.
옛날 프랑스 선교사들이 들어와 지었던 건물인데 세월이 흘러 무너지고 고치면서 지금은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방안에는 영국산 최고급 홍차 향기가 퍼졌다.
“핫핫핫!”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마셨다.
“우리 전사들도 풍족한 살인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보스께서 보내준 스카페이스란 분 역시 훌륭했습니다.”
“그 역시 군 출신입니다.”
“씰을 제대했다더군요.”
“맞습니다. 씰 4팀으로 대서양 작전에 자주 투입되었죠. 우연히 브라질 리우에서 만나 제대 이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는 결코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나지불라의 복면 사이로 두 눈이 빛난다.
뭔가 메시지가 담긴 듯 한 말에 살라자르가 멈칫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친구는 등을 돌리지 않는 사이입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사막의 흑새가 제거되었으니 앓던 이가 빠졌군요.”
앓던 이가 빠졌다는 말에 나지불라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듣기에 따라서는 자신이 사막의 흑새를 골치 아파 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깊이 오해를 하자면 자신의 무능력으로 비칠 수도 있다.
“많은 탈레반 전사들과 내 친구가 합심하여 적을 궤멸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살라자르는 재빨리 한걸음 뺀다.
탈레반 전사들이란 말에 힘을 주며 스카페이스의 역할을 줄인 것이다.
그제서야 나지불라의 눈이 조금 밝아진 듯 했다.
“좋습니다. 보스의 부탁인데 거절해서는 안되겠지요. 끊어진 기존 노선에서 잃은 것 만큼 우리가 지원해 드리죠.”
끊어진 기존 노선이란 그동안 거래해 왔던 하나파파를 의미했다.
아타야가 권총수의 손에 제거되면서 하루아침에 시날로아의 서남아시아 아편 밀수가 중단되었다.
“이봐.”
살라자르는 재빨리 조금 떨어져 서 있는 오초아를 불렀다.
오초아가 다가왔는데 손에 붉은 포장지로 된 상자꾸러미를 살라자르 앞에 올려놓았다.
상자를 받은 살라자르가 미소를 지었다.
“작의 성의를 준비했습니다.”
뭐냐는 듯 바라보는데 그건 궁금증 보다는 의심이었고 경계였다.
살라자르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CIA암살 명단에 오른 인물에게 포장상태로 선물을 건넨다는 건 굉장한 결례이며 위험한 행동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사사삭!
재빨리 자신의 손으로 상자를 풀었다.
포장지가 뜯기고 뚜껑을 열자 반짝이는 목걸이 한 개가 있었다.
스르륵!
목걸이를 들어 올린 살라자르가 미소를 가득 지었다.
“울프 네클래스(wolf necklace: 늑대 이빨로 만든 목걸이)입니다. 고대 잉카인들은 모든 재앙에서 벗어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늑대이빨.”
나지불라의 눈이 빛났다.
늑대 이빨로 된 목걸이를 하면 모든 재앙에서 자유스러워 진다는 말이 굉장한 흥분으로 들린 것이다.
벤츠 한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안에는 살라자르 일행이 타고 있었는데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스카페이스가 곁에 앉았다.
“나지불라라고 했던가?”
“무자비한 친구더군요. 내가 보는 앞에서 민간인 두 명의 목을 칼로 베는데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았습니다.”
순간 차안의 모든 시선이 스카페이스에게 모였다.
“주민이 나지불라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한 모양입니다. 경찰 쪽에서 신고자를 귀띔해주었고 곧장 잡아다 목을 잘라 버린 거죠.”
스카페이스는 킬러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방법도 여러 가지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의 목을 칼로 베는 건 보지 못했다면서 나지불라의 잔혹한 심성을 말했다.
“괜찮아.”
살라자르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가끔은 사람을 죽인다.
조직의 배신자나 또는 밀고자를 상대 하는데 언젠가부터 총 대신 칼을 사용하고 있었다.
총은 간단하게 죽이지만 칼은 다르다.
고통스러워 하는 상대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있는데 아픔에 몸부림치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불러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헤로인이나 코카인을 흡입하며 흥분과 쾌감을 느끼지만 자신은 사람을 죽일 때 온 몸에 전율이 스친다.
나지불라 또한 틀림없이 자신과 비슷한 즐거움을 얻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힘들고 피곤하게 칼로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같이 한 번 사람을 죽여 볼 수 있기를 소원했다.
“어떻게 유인할 수 있었나. 전설이나 신화를 갖고 있는 자들은 웬만한 덫에는 걸려들지 않는데?”
“씰 근무시절 매복과 탈출 훈련에 관한 교범을 본 적이 있죠. 거기에 보면 재밌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전장에서 군인들은 굉장히 흥분해 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긴장과 두려움과 분노가 흥분으로 변해버린다는 거죠. 흥분을 하면 이성보다는 본능, 현실보다는 예측을 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주변 상황에 대한 반응이 공격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일세. 사람이 흥분하면 판단력이 떨어져.”
“그래서 피를 뿌려놨습니다. 실종된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달려온 놈의 눈에 땅바닥에 떨어진 피는 어떤 의미로 보였을까요?”
“흐흐흐! 백프로 부하의 것으로 보일 테고 당연히 뒤 쫓겠지?”
“맞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전장을 경험한 군인은 절대 먼 거리를 유인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멀리가면 증거가 아닌 함정이라는 걸 알아차린다는 거죠.”
“자네는 어느 정도 흔적을 남겼나.”
“백 미터 정도 될 겁니다.”
“백미터면 너무 짧은 거리 아닌가?”
“우리가 생각하는 백미터는 매우 짧습니다. 하지만 언제 적의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그것도 핏자국을 추적하며 이동한다는 건 상당한 긴장이죠. 그렇기 때문에 2,30미터만 이동해도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며, 결국 백 미터지만 1킬로 가까운 거리를 움직인 것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백미터를 유인의 한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 교범의 내용입니다.”
“한계점 백미터에 함정을 깔았군.”
스카페이스는 싱긋 웃었다.
자기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미소였다.
“그런데 봤나? 사막의 흑새라는 자 말이야. 궁금해서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용병시장에서는 그야말로 전설이자 신화더군. 어떻게 생겼던가?”
“대전차 지뢰까지 묻었죠.”
“대전차 지뢰?”
또다시 모두가 소스라쳤다.
“탈레반들이 사막의 흑새가 하늘을 날아가고 웬만한 철판은 주먹으로 부순다는 둥 되지도 않을 개소리들을 지껄이길래 에라이, 그럼 대전차 지뢰까지 깔아버리자 하고 다섯 개를 연결했죠.”
“온전한 시신이기에는 틀렸군.”
“그 정도 많은 양의 지뢰와 폭약이면 살점도 찾기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대전차 지뢰까지 가미 됐으니 흔적도 없죠. 그런데 놀라운 건 그런 폭발 속에서도 두 눈뜨고 살아 있는 놈이 있었다는 겁니다. 놈들이 데려갔는데 지금쯤 아마 목을 베어 도시근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떡하니 걸어놨겠죠. 자신들을 방해하면 이렇게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딸칵!
스카페이스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 * *
카불공항에 아침이 밝아왔다.
아침 아홉시 정각에 카이로 항공 여객기 한 대가 카불공항에 내려앉았다.
어제 늦은 비행기로 출발 하려고 했지만 맥보란이 위스키 한 잔을 하도 요청해 못이긴 체 머물렀다.
사실 핑계는 맥보란의 위스키였지만 운 좋게도 정오쯤 라슈카르가행 국내선이 한 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시간에 맞춘 것이다.
아프카니스탄에서 홀로 자동차를 몰고 어딜 간다는 건 거의 죽음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다.
비행기에서 내린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정오가 되려면 3시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국내선 환승이 가능하다고 했으므로 달리 해야 할 절차는 없었다.
권총수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청사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절반쯤 피웠을 때 갑자기 멈칫 하더니 눈을 빛냈다.
툭!
권총수는 절반 밖에 피우지 않은 담배를 과감히 버리고 청사 안으로 걸어갔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지’
나직하게 중얼 거리며 사라졌다.
'새로 온 ’서디 콘치나 메디‘가 아름다운 인사를 했다네’
권총수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행동하는 벗’
카불 공항에 하나파파의 프락치가 있다.
그가 건네준 정보로 인해 33살짜리 젊은 다인코프 용병이 죽었다.
그것도 목이 잘린 몸으로 신호등에 매달려 죽었다.
비록 하나파파와 우두머리 아타야를 제거했으나 죽여야 할 표적은 아직 남아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지금 이 공항에 있는 것이다.
군인이 죽으면 국가로부터 예우를 받지만 용병이 죽으면 반드시 복수를 해줘야 한다.
‘도사리’
알자삼으로부터 자칭 행동하는 벗의 이름을 알아내었다.
권총수는 ‘항공보안’이라고 문패가 붙은 사무실로 다가가 노크를 했다.
사르르!
천천히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넓은 사무실에 단 두 명만이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콧수염을 기른 안쪽 창문을 등지고 앉은 사내가 물어왔다.
“도사리 씨를 뵈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도사리씨와는 어떤?”
“삼촌입니다.”
“아 그래요. 지금 수화물 통관 검사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2번 게이트 바로 옆입니다.”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미소를 짓고 문을 닫았다.
화물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가고 있었다.
화물들이 엑스레이 기기를 지날 때마다 화면에 내용물이 찍혔는데 사내의 눈은 매우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브라운 계통의 근무복을 입었으며 왼쪽 가슴에 ‘도사리’라는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있었다.
딩딩!
더 이상 실려 오는 화물이 없다는 붉은 신호등이 깜빡 거리자 도사리는 컨베이어 벨트를 끄고 엑스레이 스위치도 내렸다.
손에 장갑을 낀 채로 검사소를 나온 도사리는 앞쪽에 있는 직원들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공항 청사 같이 개방된 건물에서 화장실 보다 더 은밀한 장소는 없다.
화장실로 들어선 도사리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더니 아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소변기 앞에 서서 지퍼를 내리고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오른쪽 소변기 앞으로 섰는데 도사리가 흘긋 돌아보았다.
씨익!
권총수가 웃자 도사리는 공항직원이라는 걸 깨달은 듯 재빨리 따라 웃었다.
“빌어먹을! 이 놈의 대갈통”
권총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뭔가 쥐어짜내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했었는데?”
권총수는 생각이 날 듯 하면서 나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더니 눈을 빛냈다.
“기억 났다. 서디 콘치나 메디?”
움찔!
놀라며 바라보는 도사리를 향해 말했다.
“행동하는 벗?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은 자주 들어 봤지만.”
확!
도사리는 재빨리 휴대하고 있던 권총을 뽑으려 했지만 권총수의 왼손이 앞섰다.
손바닥이 도사리의 머리를 때렸다.
소림의 단금인(斷金印)이다.
퍼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도사리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권총수는 등을 돌려나오며 중얼 거렸다.
‘쉴튼의 이름으로’
쿵!
머리를 잃은 몸이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진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늘한 기운이 앞가슴을 지나간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스산한 느낌에 권총수는 침을 삼켰다.
오민철 한 사람이라면 전화를 미처 못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흔 명 가까운 팀원 중 단 한명도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급기야 저장된 팀원들 번호를 닥치는 대로 눌렀다.
‘왜?’
여전히 받는 사람이 없다.
권총수는 청사 안을 서성거렸다.
도저히 자리에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는데 마침 라슈카르가 행 비행기 탑승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게이트를 나갔다.
권총수는 빠르게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비행기에서는 가급전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그러나 급한 권총수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오민철의 전화는 계속 응답하지 않는다.
“음!”
뜨거운 열기가 목을 덮는데 불길한 기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