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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18화 (218/651)

제218화: 시날로아 카르텔(1)

30여미터 멀리 마른 개천이 있었는데 AK를 든 탈레반 십여 명이 죽은 시신들을 살피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일목요연해졌다.

폭발이 있었고 자신은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 분명했다.

“생존자다!”

개천을 수색하고 있던 탈레반들이 소리쳤다.

케인은 조심스럽게 등에 지고 있는 무전기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누굴까. 누가 살아 있을까’

동료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뻤지만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끌고 가자!”

혹시라도 누군지 알 수 있을까 싶어 케인은 힘들게 상체를 세웠다.

‘죽일놈들’

탈레반들이 한 사내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가고 있었는데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옷차림새라도 자세히 살필까 했으나 앞에 나무들이 가려 정확하게 볼 수가 없었다.

탈레반들은 무척 기분이 좋은 듯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사라졌다.

부러졌다.

오른쪽 발목뼈가 툭 튀어 나올 정도로 골절이 심했다.

케인은 무전기를 살폈는데 다행히 작동이 되고 있었다.

우선 A팀에게 이쪽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 했으므로 곧장 호출에 들어갔다.

“레드 투, 여긴 레드 원!”

반응이 없다.

“레드 원이다. 레드 투는 현재 위치를 말하라.”

치이익!

잡음 소리가 짧게 나더니 멈춘다.

송신을 하는 순간 수화기 옆에 붙은 버튼을 눌러야 한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이쪽 말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데 문제는 조금 전 그쪽에서 버튼을 눌렀다가 뗐다는 것이다.

“레드 투, 여긴 레드 원, 긴급 상황발생, 레드 투 어디인가?”

케인은 계속 호출을 했으나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 사라졌던 탈레반들이 다시 나타났다.

케인은 재빨리 무전기를 꺼버렸다.

스무 명 정도로 더 많이 늘어난 탈레반들이 근처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아차!’

케빈은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일체 응대하지 않았던 건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한 지연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A팀도 함정에 걸렸단 말인가’

케인은 자신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간파했다.

적들은 조금 전 자신의 무전송신을 듣고 생존자가 있다는 걸 알고 지금 수색중이다.

‘걸어라. 멀리 가는 것이 최고의 안전이다’

해병대 훈련소에서 가장 많이 듣던 말이었다.

위장하거나 숨어 있을만한 곳이 마땅치 않는 지형에서는 멀리 떠나는 것만이 생존의 길이다.

하지만 오른쪽 발목이 부러진 몸으로 가만 서있기 조차 힘든데, 가파른 산을 오를 수는 없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케인은 무전기를 끄고 그 자리에 누웠다.

다행히 소나무와 가시나무 덤불이 우거져 그럭저럭 잘만 하면 탈레반의 시선을 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돌멩이 하나만 굴러도 발각 될 것이기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레드 원, 여긴 레드 투.”

이쪽으로 하여금 대꾸를 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였는데 탈레반 한 명이 무전기를 지고 계속 떠들고 있었다.

‘폴’

A팀 무전병이다.

폴과는 이곳 다인코프에 들어와 알게 되었다.

많은 얘기를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말이 없고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사격 훈련 때도 보면 혼자 뚝 떨어져 앉아 뜨거운 아프카니스탄의 여름 하늘을 바라본다.

몇 번 말을 붙여보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조용히 사색하는 것도 그 사람의 취미이고, 근심하는 일도 그의 사생활이다.

자칫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리하게 다가서면 상대는 더욱 마음을 닫아 버린다.

어쨌든 자신의 마음이 통했는지 가끔 눈이 마주치면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런 폴의 등에 있어야 할 무전기가 얼굴도 모르는 탈레반이 갖고 있다.

“레드 원, 여긴 레드 투, 대답하라.”

무전기를 갖고 있는 탈레반은 짜증스러운 듯 크게 소릴 질렀다.

주르륵!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많은 팀원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설마 모두가 죽었단 말인가.

혼자 살아남은 것이 미안하면서 더럭 겁이 난다.

살아 있는 사람 있으면 소릴 질러보라고 외치고 싶었다.

‘실턴, 픽퍼드, 라이스’

자신들은 델타포스를 나왔다며 해병대 출신인 자신을 은연중 무시하고 따돌렸다.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용병 시장에서 1등급으로 통한다.

씰이나 델타포스 출신들의 몸값이 해병들보다 월등이 비싸다는 건 그 만큼 능력이 있다는 의미였다.

현실을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잘난 체 하는 세 사람을 보는 시선은 항상 분노에 젖어 있었다.

작전회의라도 하면 자신들의 생각이 해답이라도 되는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그러다 자신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면 피식 웃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다.

미웠다.

너무 잘난 체 한다고 생각하며 씩씩 거리기도 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보고 싶다.

자신을 더 비웃고, 따돌림 시켜도 좋으니 제발 걸어서 나타났으면 좋겠다.

절대 미워하지 않을 자신 있었다.

살아서 온다면 무조건 박수를 치며 앞으로 날 계속 따돌려도 난 괜찮아 하며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탈레반은 쉽게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무전이 왔다는 것에 기어이 자신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카림, 사만.”

나뭇가지 사이로 탈레반들을 지켜보던 케인의 눈이 커졌다.

백인이 있었다.

머리에 원통형의 이슬람모자인 샤쉬야를 쓰고 통 넓은 바지 시르왈에 헐렁한 외투를 걸쳤다.

조금 전 호출당한 사내들로 보이는 두 명의 탈레반이 백인 앞으로 나섰다.

“당신 둘은 오늘 밤을 새우며 여길 지키시오. 필시 생존자는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오.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죠. 내 말을 알아듣겠소?”

“걱정 마시오”

두 명의 사내가 힘차게 대답했고 10여 분간을 더 뒤진 탈레반들이 떠났다.

카림과 사만이란 사내들은 30여분 근처를 수색하는 듯 하더니 다시 돌아와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살아 있을까?”

검정색 타키야(머리에 쓰는 모자)를 쓴 사내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타키야를 쓰지 않고 터번을 감은 사만이란 사내가 주위를 스윽 보며 말했다.

“살아 있으니 무전교신을 시도한 것이겠지. 하지만.”

“왜 말을 하다 마는가?”

“살지는 못 할 걸세. 그런 폭발 속에서 몸 상태가 온전하리라고 보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 했네. 운이 좋아 숨을 쉰다고 해도 상태가 무척 나쁠 거야.”

매우 냉철한 추측이었다.

오랫동안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들을 상대로 치열한 전쟁을 벌이며 얻은 경험이었다.

폭발이 클수록 사망자에 비례한 부상자 역시 많아진다.

미군이 쏜 마사일에 무려 50여명의 탈레반 동료들이 즉사한 적이 있었다.

온전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부상악화로 추후 사망자가 7명이 더 발생했는데 당시 자신들도 온 몸에 파편이 박혀 6개월 가까이 고생을 했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방원 50미터에 대전차 지뢰와 M16 도약지뢰를 촘촘하게 묻었다.

미군 에이브럼스 전차일 지라도 산산이 부서지고 남을 만큼 차고 넘치도록 심은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으로 역시 미군으로부터 획득한 Mk7폭약까지 두 박스를 깔았다.

춥다.

한낮의 무더위는 자취를 감추었고 온몸을 찍어 누르는 한기에 케인은 이를 깨물었다.

더욱이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움푹 패인 바위에 누운 것이 치명적이었다.

바위를 통해 엄청난 한기가 올라온다.

개천에 앉아 있는 두 명의 탈레반은 오랫동안 낮은 덥고 밤은 추운 이런 날씨에 적응되고 진화한 동물처럼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사방이 조용하기에 움직인다는 건 더욱 불가능했고 미세한 소리도 전달될 것 같았다.

핸드폰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핸드폰만 있다면 산세가 깊긴 해도 워낙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통화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폭발 순간 분실한 듯 온 몸을 뒤지고 근처를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음!”

골절된 오른쪽 발목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어올랐고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았다.

가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위기에서는 과감할수록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자연은 날 살려주지 않는다.

내 목숨은 내 스스로가 살리고 지킬 뿐이라는 해병의 정신을 되살리며 허리를 세웠다.

‘우욱!’

너무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던 탓에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바위를 끌어안듯 하며 겨우 상체를 일으키는데 성공했고 어둠속 개천을 노려보았다.

불가사의한 사내들이다.

대화 한마디는 나눌 법도 하건만 입도 벙긋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상하다’

레드윙 작전에서 유일한 생존자였던 ‘러트렐’이 한 말이었다.

그들은 정말 이상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이야기를 나눌 법도 한데 아무소리도 내지 않는다.

케인이 모르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들이 추위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는 건 복장 때문이었다.

이슬람의 의복은 종교적 가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지형적 특수성에 맞춰 내려온 것이다.

특히 머리에 쓰는 터번은 여러 용도로 사용한다.

사막을 지날 때는 모래바람을 막는 도구로, 야영을 할 때는 가벼운 이불이 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이 입고 있는 의복 역시 지형과 지역적 기후에 특화되어 내려왔기 때문에 케인 같은 평범한 사람이 밤의 추위를 견딘다는 건 쉽지 않는 일이지만 그들은 그럭저럭 잘 지낸다.

또 한 가지 그들은 대화로 소모되는 체력이 적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

걸어가야 하는데 오른발이 꼼짝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팔에 의지해 질질 끌고 가면 바위 굴러가는 소리에 금세 발각 될 것이다.

케인은 처음으로 절망이라는 걸 느꼈다.

죽음이 올 것이다.

이제 죽음이 남의 것이 아니다.

IS나, 탈레반의 것만이 아닌 이제 자신의 것이 되어 조금씩 몸을 점령하고 있었다.

벤츠 한 대가 조용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내린 오초아가 재빨리 뒷문을 열어 주었다.

머리에 흰색의 터번을 둘렀으나 복장은 정장을 한 살라자르가 내렸다.

“스카페이스.”

살라자르는 검정색 샤쉬야를 쓰고 있는 백인 사내를 끌어안았다.

“수고했네. 자넨 역시 남미 최고의 프로페셔널이야.”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 살라자르 고개가 들려졌다.

AK를 휴대한 십여 명의 탈레반들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로 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는 머리에 커다란 흰색의 터번을 쓰고 눈 아래로는 또 하나의 흰 으로 얼굴을 가렸다.

복장이라기보다는 복면이다.

‘물라 나지불라’

가 분명했다.

2007년 자신의 직속상관인 ‘다둘라 아쿤드’가 미국의 네이비 씰과 영국의 SAS에의해 사살되자 그는 분노하며 외쳤다.

‘모조리 죽인다’

그의 투쟁은 흉포했고 급기야 여러 탈레반 집단중 가장 극단주의로 평가받는 ‘피다이 마하즈’가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보기관이 그를 잡지 못하고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직까지 그는 누구 앞에서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탈레반 고위층의 협상을 가장 강력하게 거부하며 맹렬한 테러활동을 지휘하고 있다.

협상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하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미소를 지었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나지불라가 미소를 지었지만 눈만 내놓고 있기 때문에 그 아래 흰색의 천이 출렁이는 것에서 웃는다는 것 짐작 할 뿐이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라자르는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탈레반들이 바람 한 점 스며들지 못하도록 두 사람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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