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17화 (217/651)

제217화: 감도는 전운(2)

다인코프가 문제다.

갈수록 뒤집는 판이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전체 판이 갈아엎어질 지경이었는데, 얼마 전 하나파파의 우두머리 아타야가 죽으면서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 들였다.

그리고 사흘 전 모든 총구를 다인코프를 향해 돌리라는 나지불라의 지시가 떨어졌다.

“다인코프의 수법을 보면 일단 동네를 찾아가 촌장을 만나더군요.”

“그러니까 쇼베이르께서도 일단 만나 대화로 설득해 보겠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 길을 통해서 동네로 들어가겠군.”

“길이 저기 밖에 없잖소. 도둑놈도 아닌 단속반이 담 넘어 들어갈 필요는 없죠.”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농민들이 너무 흥분해 있어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정면으로 들어가기가 난처하다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몇 번 만났는데도 대화가 통하지 않았고, 그래서 서로 감정의 골만 깊어졌을 때는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큰 건 분명하오. 하지만 그럴수록 이쪽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마을 앞길로 들어가는 것이 예의 아니겠소. 괜히 위험하다고 뒤 담을 넘어 들어갔다간 자칫 농민들로 하여금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우리와 대화할 마음이 없다고 오해하여 방아쇠를 당겨 버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부라보!”

매우 냉철하고 분명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는 듯 사내는 웃었다.

딸칵!

사내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피웠는데 말보로 레드였다.

“그러는 스카페이스 선생이 다인코프 용병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들어가겠소?”

이번에는 쇼베이르가 물었다.

“내가 군에서 배운 전술지식에 의하면 이런 일에는 양동작전을 씁니다.”

“양동작전이라면 다른 한길을 더 준비한단 얘기오?”

“지휘관이라면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오. 그래서 난 일부는 마을 앞길로 보내고 나머지는 저기.”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물이 흐르지 않은 산 아래 마른 개천이었다.

개천이다 보니 지대가 낮을 수밖에 없다.

왼쪽은 험준한 산이고 오른쪽 언덕 위로는 양귀비 밭이니 자연스런 엄폐가 되면서 마을 주민들의 눈을 피해 접근할 수 있었다.

쇼베이르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작전과 전술에 대해 제대로 교육 받은 사람만이 분석하고 판단 할 수 있는 매우 신선한 방법이었다.

네이비 씰 출신이라더니 생각하는 것이 확실히 틀렸다.

이어 언덕을 내려간 일행은 마을 앞길과 산 아래 마른 개천에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 * *

혼다 SUV가 시동을 걸어 놓고 있었다.

차 안에는 팀원들중 가장 먼저 아프카니스탄에 들어왔던 실턴과 라이스가 타고 있었다.

“무전기 확인.”

조수석에 앉은 라이스가 무전기를 작동하며 호출부호까지 다시 한 번 살폈다.

“이상 없습니다.”

오민철은 운전석 창가에 서서 말했다.

“가급적이면 전투는 피하라고, 캡틴이 올 때까지는 정찰 위주야.”

“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차는 출발했다.

오민철은 실턴과 라이스가 탄 차량을 향해 무사히 돌아오라는 뜻으로 거수 거수경례를 했다.

이윽고 다시 거실로 들어온 오민철은 탁자 위에 있는 휴대용 작은 무전기를 들어 말했다.

“10시까지 차만 계곡으로 집합. 반복한다. 10까지 차만 계곡으로 집합!”

지시를 마친 오민철은 권총을 허리에 찼다.

산속에 트럭 두 대가 나타났다.

5톤짜리 민간 화물트럭을 병력수송용으로 개조한 것인데 좌우로 철판을 덧대어 높이 쌓아 올렸고 지붕은 햇빛을 막기 위해 천막을 씌웠다.

민간트럭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흰색 페인트를 칠했는데 밖에서 보면 사람이 타고 있다는 걸 알 수 없었다.

트럭 두 대가 멈추고 사내들이 내렸는데 다인코프 용병들이었다.

오민철의 지휘를 받으며 사내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곳 차만 계곡은 라슈카르가 시청에 정식으로 사용료를 지불하고 임대한 다인코프 사격장이었다.

텍사스 훈련장이나 일반 군부대 시설과는 비교 할 수가 없지만 나름대로 권총수와 오민철이 무려 일주일을 걸려 만들었다.

표적은 백 미터와 이백 미터 두 개뿐이다.

사격은 다섯 명씩 이뤄졌고 모든 건 오민철이 통제하고 지시를 내렸다.

“1조 200미터 조준사격 준비.”

바위, 나무, 돌로 쌓은 제법 그럴 듯 한 담벼락, 약간 경사진 언덕 등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해 사격을 하는 것이다.

“사격개시.”

탕!

탕타탕!

한 발씩 방아쇠를 당겼다.

사격이 끝나자 오민철은 쌍안경으로 표적들을 살피고 나서 말했다.

“이번에는 100미터 사격 개시.”

또다시 총성이 요란하게 계곡을 울렸다.

사격은 여러 가지 형태로 실시되었다.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기고 쏘는 서서쏴와 무릎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재빨리 움직이며 쏘는 이동사격, 한 지점을 향해 쏟아 붓는 집중사격이 이뤄졌다.

오민철은 예리한 눈으로 팀원들의 사격을 지켜 보았다.

표정이 어둡지 않은 걸 보면 생각보다 팀원들의 사격이 안정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마지막 조가 사격을 하기 위해 사로에 들어섰다.

“너희들도 앞선 동료들처럼 좋은 사격을 보여주기 바란다. 다시 설명하지만 사격은 집중력이다. 굳이 가늠자 가늠쇠를 정렬 시키지 않아도 적을 죽이겠다는 의지만 굳건하면 얼마든지 날릴 수 있다. 사격 준비!”

모두가 각자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긴 채 총을 들어올렸다.

“레드 투, 상태가 좋지 않다. 다시 한 번 말해주기 바란다. 레드 투.”

무전병의 외침에 오민철의 고개가 돌아갔다.

“여긴 레드원 무슨 일인가 레드 투.”

“사격중지!”

오민철이 사로에 선 팀원들을 불러 내리고 무전병에게 다가갔다.

“이리 줘.”

자신이 송수신기를 들고 직접 호출을 했다.

“여긴 레드 원, 레드 투 말하라.”

“지원 바랍니다.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위치를 말하라. 어딘가?”

“페르샤워 분지다. 페르.”

더 이상 잡음이 심해 몇 번을 더 호출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출동! 목적지는 페르샤워 분지다. 일제히 탑승.”

팀원들이 개조한 트럭에 올랐고 급하게 사격장을 빠져 나갔다.

두 대의 트럭이 멈췄다.

페르샤워 분지다.

바람결에 꽃향기가 파고드는 광활한 양귀비 밭 아래였다.

“호출이 안 됩니다.”

무전병이 다가왔다.

다시 한 번 오민철은 직접 송수신기를 들고 호출을 시도했지만 어떤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 팀으로 나눠서 이동한다. A팀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하고, B팀은 저쪽 산 아래 개천을 따라가며 수색한다. 이동.”

양귀비가 심어진 마을 앞길로 A팀이 이동을 했고, 오민철은 B팀과 함께 맞은편 산 아래 마른 개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무전기 개방 신경 쓰도록!”

A팀 통신병에게 힘주어 말하고 두 팀은 각자 헤어졌다.

작은 개천은 바짝 말라 있었다.

개천 왼쪽으로 수직에 가까울 만큼 험준한 산이 버티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야트막한 언덕과 그 위로 양귀비 밭이다.

오민철을 따르는 B팀 통신병 케인은 계속 레드 투를 호출하고 있었다.

“여긴 레드 원, 레드 투 응답하라.”

송수신기에서는 지지직 소리만 들려 나올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부 팀장님 여길 보십시오.”

첨병으로 30여 미터 정도 앞서가던 팀원이 소리쳤다.

오민철은 재빨리 앞으로 달려갔다.

“핏자국입니다.”

적지 않은 핏방울이 마른 개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오민철은 주위를 날카로운 눈으로 살폈는데 여러 개의 사람 발자국이 보였다.

수북하다 싶을 만큼 핏자국이 많다는 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여기도 있습니다.”

10여 미터 앞으로 올라간 첨병이 다시 가리켰다.

피는 마른 개천을 따라 위로 이어졌다.

불길한 징후를 예감한 듯 M4를 쥔 팀원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세를 낮추고 사방을 살피면서 일행은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이어지던 핏방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오민철은 지금까지 겪었던 많은 전쟁 상황과 경험을 끄집어 내봤지만 지금의 핏자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연 떨어진 핏방울의 주인은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총을 쥔 전쟁터에서 핏자국이 점점이 떨어져 있는 일은 드물다.

핏방울은 주로 부상자들이 홀로 이동하면서 떨어뜨리는데 문제는 흔적이었다.

피를 흘릴 정도면 부상이 깊다는 뜻이므로 걷는 걸음도 불편해야 한다.

아무리 개천 바닥을 살펴도 지면은 깨끗했다.

비틀거린다거나, 총상 입은 다리를 끈다거나, 아니면 절뚝거리면서 쏠리는 체중에 의해 한쪽 발자국이 깊게 찍힌다거나 하는 증거들이 전혀 없다.

“정지!”

오민철이 손을 들어 올렸다.

더 이상 올라가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오민철을 바라보는 팀원들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오민철의 눈이 다시 빛난다.

차분하게, 아주 천천히 이마를 찡그리며 주위를 살폈는데 뭔가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쏙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팀원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개천은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철수!”

“네에?”

팀원들은 핏방울 자국이 점점이 찍혀있으므로 계속 흔적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으로 본다.

“A팀은 어디쯤 있는지 위치 파악해!”

오민철이 통신병을 향해 말을 하고 돌아 섰을 때였다.

쾅!

지진이 일어난 듯 개천이 흔들렸다.

콰가가강!

집채 만한 바위가 하늘 높이 솟구쳤으며 주먹만한 자갈돌은 파편이 되어 팀원들을 후려쳤다.

폭발이 생기며 발생한 엄청난 후폭풍에 근처 산의 나무들이 태풍에 휩쓸린 듯 흔들렸다.

쿵!

콰앙!

폭발은 십여 차례 발생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 개천을 덮어 버렸다.

후두둑!

뻥!

공중으로 날아 올라간 바위들이 떨어지고, 모래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수십 층 건물을 짓기 위해 땅속 깊이 파고 내려가 듯 엄청난 구덩이 하나가 생겼다.

처참했다.

온전한 시신은 단 한 구도 없었다.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짓이겨진 시신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주인 잃은 팔과 다리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M4방아쇠를 단단히 쥐고 있는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몸은 어디로 갔는지 잘린 머리만 뜨거운 햇볕 아래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했다.

무전병 케인은 움직여 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온 몸에 수백 킬로짜리 바위를 묶어 놓은 듯 도무지 꼼짝 할 수가 없었다.

기억의 편린들이 하나 둘 합해지면서 조금 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으으!”

눈을 떠야 한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왜 이렇게 눈이 떠지지 않는 것일까.

케인이 눈을 뜨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을 때 귓가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붙어 있는 놈은 모조리 갈겨.”

눈을 떴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 무척 몸이 불편했다.

상체가 꼼짝을 않았는데 등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한순간 케인은 자신이 통신병이라는 걸 깨달았고 누가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등에 지고 있는 무전기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누운 체 주위를 살피던 케인은 불편한 이유 또 한 가지를 찾았다.

자신이 쓰러진 곳은 왼쪽으로 솟아 있던 가파른 산이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산에 거꾸로 누워 있는 것이다.

“욱!”

다리 한쪽이 칼로 쑤신 것처럼 아프다.

케인은 직감적으로 골절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앞에 있는 소나무 기둥을 잡고 몸을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위쪽으로 뻗은 다리를 혼신을 다해 시계 방향으로 돌렸는데 너무 고통스럽다.

“으으으!”

입 밖으로 새어 나가려는 신음을 악착같이 참으며 겨우 두 발이 4시 방향 정도까지 내려왔다.

몸이 어느 정도 바로 되면서 전방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