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16화 (216/651)

제216화: 감도는 전운(1)

여전히 불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나지불라’

권총수 입에서는 끊임없이 나지불라라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도살자.

탈레반 사상 최악의 인물. 총을 놔두고도 꼭 칼로 목을 베어 죽이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내다.

여자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남자의 노리개로만 이용되는 물건 취급하는 이슬람의 광신도였다.

오죽했으면 강제력은 없지만 현 탈레반 지도자 아쿤드자다는 나지불라는 더 이상 형제가 아니라며 파문을 결정했다.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가 파문했다는 건 그는 더 이상 같은 탈레반 전사가 아니므로 누구도 그의 명령이나 지시를 따르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독재자들은 한결같이 머리가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어’

불쑥 한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외인7중대장이었던 튀랑 대위가 맥주를 마시며 했던 말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에 스스로 대답을 했다.

‘하긴 영리한 머리니까 권력을 잡고 나라를 다스리겠지만’

권총수는 튀랑 대위가 정의한 독재자에 나지불라가 아주 가깝다고 보았다.

무자비한 성격인데도 그를 따르는 부하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권총수는 핸드폰 시계를 보았는데 현지 시간으로 밤 12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뭔가 망설이나 싶더니 곧장 번호를 눌렀다.

딱 한 번 신호가 갔는데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전화를 할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굳이 해석해 본다면 정보원으로서의 감각, 어떤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징후나 징조라 여기는 찰라의 본능이 발동되어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여보세요.”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받으니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뭔가 큰 것 하나정도 내놓지 않으면 굉장히 실례가 될 것 같군요.”

“오마이 갓!”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화라는 듯 맥보란은 크게 놀랐다.

“밤도 늦었는데 본론부터 얘기하죠. 폭격기 한 번 썼으면 합니다만?”

조용하다.

불쑥 전화가 걸려온 것도 놀랍지만 전폭기를 요청하자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폭격기를 한 번 움직여 주면 나도 언젠가 당신 회사를 위해 적지 않은 지원을 해드리죠.”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군요.”

“불리한 거래는 절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확실히 받은 만큼 갚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전달할 얘기도 있고 하니 시간 좀 내주시죠.”

“내가 갈까요?”

“아닙니다. 이쪽에서 가야죠.”

아쉬운 사람, 부탁을 해야 하는 쪽이 움직이는 것이 낫다.

아니라고 해도 이쪽에서 좀 더 자세를 낮추는데 기분 나쁠 상대는 없을 것이다.

또한 전화로 말하는 것과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하는 것의 결과물은 천지차이다.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났다.

다행히 10시쯤 보아트 공항에서 수도 카불로 가는 비행기가 있었다.

“일이 잘 되려나 본데. 가뭄에 콩 나듯 다니던 비행기가 오늘 뜨고 말이야.”

태워다 주기 위해 핸들을 잡은 오민철이 웃는다.

차로 갈려면 열악한 도로 사정에 비춰 10시간 이상 소요될 것이다.

즉 내일쯤 카이로행 비행기를 탈수 있게 되는데 한시가 급하다.

생육이 빠른 일부 양귀비는 꽃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도 아편 채취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지역도 광범위하여 트랙터가 이동하는 시간과 갈아엎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적지 않는 양의 아편이 수확 될 것이 뻔했다.

공항에 도착한 권총수는 곧장 발권을 받아 탑승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잘 될거야.”

오민철이 손을 흔들었다.

사실 오민철 자신도 오늘 아침 일찍 맥보란과 통화를 했다.

블루요원답게 무겁지 않은 몇 가지를 전달해주었는데 맥보란은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 웃음의 의미는 알고 있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중요한 것이나 되는 것처럼 전달하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적당히 해. 귀띔해줄 건 해주고 넘길 건 넘기고’

권총수의 말이었다.

웬만한 건 눈감아 줄 테니 다른 팀원들 눈이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뜻도 있었다.

이번 일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도 약간의 보따리를 풀어 놓은 것이다.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카불공항과는 모든 것이 다르다.

사람들이 밝고 맑았으며 공항 곳곳에서 만남과 이별이 짙게 이뤄지고 있다.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다.

아프카니스탄의 농민들 얼굴은 빛바랜 겨울나무 같았다.

희망도 없고 미래가 포기된 지독한 좌절과 포기만이 있었다.

오로지 돈만 벌어서 가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맹세하지만 그런 가난한 이들을 보면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목이 메인다.

‘원장 수녀님, 미사가 먼저입니까. 아니면 자선이 중요합니까?’

신을 찬양하고 섬기는 종합적인 의식을 개신교에서는 예배라 하고, 가톨릭에서는 미사(missa)라고 표현한다.

미사는 가톨릭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제식(祭式)으로 어떤 행위보다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의문이 들었다.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 하느님이 보기에 미사가 중요한 걸까 아니면 이웃 사랑이 더 필요한 것일까.

‘어느 것이 더 우선이라고 볼 수 없다. 미사도 자선도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 가톨릭 신앙의 근본이란다.’

당시 보육원 원장수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미사와 자선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막중한 사명이라고 했다.

‘제길!’

알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이웃을 바라보는 습성이 생겼고 특히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생활은 더욱 자신을 성찰하도록 만들었다.

“캡틴!”

맥보란이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권총수는 가까이 다가가 악수를 나눴는데 맥보란의 손이 무척 따뜻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공항 청사를 걸어 나갔고 주위로 정장을 한 CIA요원들이 에워쌌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이 경호원이라는 걸 알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소 대신 양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놓고 앉았다.

리야드에서 양고기 스테이크를 가장 잘하는 집이라는 이른바 맛집인 셈이다.

“맛이 어떻소?”

맥보란은 양고기 스테이크의 생명은 노린내를 잡는 것인데 이 집 고기는 전혀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말씀대로 맛있습니다.”

권총수는 입 안 가득 고기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맥보란은 눈을 빛냈다.

권총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직업적으로 정말 가까이 해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동안 권총수와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권총수 측에서도 CIA라는 이름 때문에 무척 신경을 쓰며 거리 조정을 했다.

그런데 먼저 다가왔다.

이 기회를 살려야 했다.

* * *

탈레반은 어떤 특수부대보다 훈련이 잘되어 있다.

그들의 실전 경험이야 말로 네이비 씰이나 SAS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탈레반에게 네이비 씰 만한 수준의 장비를 쥐어 준다면 아마 싸움은 일방적으로 끝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예상이다.

전쟁처럼 실전경험이 실력인 게임도 없다.

그중에서도 나지불라가 이끄는 ‘파다이 마하즈’는 탈레반 분파세력중 가장 강력하다는 것이 미국무부의 판단이고 이곳에서 직접 겪어본 권총수의 확인이었다.

전쟁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살인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떤 길일지라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목적일지라도 과정이 온전하지 못하면 빛날 수 없다고 했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다.

그건 서로가 총을 겨누고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전쟁이었다.

전쟁일지라도 인간의 도리, 보편적인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약속이다.

그래도 막상 비명이 난무하고 어머니와 가족을 그리며 쓰러지는 옆의 전우를 본다면 크게 흥분한다.

전범, 이따금 그 보복성이 심한 자에게 전범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권총수 자신이 데리고 있는 팀원은 정확히 39명이었다.

원래는 1차로 50명을 지원하고 2차로 70명을 보낸다는 것이 텍사스 본사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원이 빈약하여 상당한 인원이 훈련도중 탈락을 한 것이다.

인원부족을 이유로 회사 규정에 미달하는 용병들을 채용할 수는 없었다.

용병시장 만큼 뿌린대로 거두는 곳도 없다.

출신 부대, 훈련소 성적에 따라 그만큼 자신의 가치를 빛낸다.

중요 작전에 투입했다가 실패라도 하면 회사 가치에 직격탄을 맞는다.

팀원들은 전쟁경험이 전무했다.

특수부대를 나오긴 했지만 이라크전이나 시리아 내전, 또는 특수 작전에 투입된 경험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기습을 하고, 또는 완벽한 전략을 세운다고 해도 백전의 경험으로 무장한 ‘파다이 마하즈’대원들을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다.

너무 시작부터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맺히는 상처 또한 커진다.

스포츠 경기로 따지면 아마와 프로차이고 그래서 이렇게 맥보란을 찾아온 것이다.

당분간은 수비적 자세로 단속에 임해야 한다.

“부럽군요.”

권총수의 얘기를 듣고 있던 맥보란이 눈을 치켜세우며 혼잣말처럼 뱉었다.

“무슨 말입니까?”

“당신 같은 리더를 둔 다인코프 용병들이 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용병이 된 사람에게 과연 인간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인간미 유무는 관심 없습니다. 난 이기는 것에 최종 목표를 두고 움직일 뿐이죠.”

“풋내기들인 부하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에게 사정을 하는 당신의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분명 감동할 것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사막의 흑새로 알려졌는데.”

“가능하겠습니까?”

권총수는 정색하고 물었다.

“여기서 단언할 수는 없소. 다만, 최선을 다하겠소.”

“감사합니다.”

맥보란은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잔을 내리고 난 맥보란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화를 통해 했던 말은 아직 유효 합니까?”

“물론입니다.”

전화를 통해 폭격기를 띄워주면 이쪽 부탁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사내는 눈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선글라스를 끼고 질겅질겅 껌을 씹고 있었다.

사내는 근처 지리와 지형을 한참 살피며 정탐했다.

그를 안내하던 파다이 마하즈의 넘버 2 쇼베이르와 십여 명의 부하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 오늘 이틀 동안을 계속 페르샤워 분지 일대를 수색하듯 살피고 다닌다.

불쑥 나타난 사내.

아직까지 선글라스을 벗는 걸 보지 못했다.

쇼베이르는 견디다 못해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물으려는데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쇼베이르님.”

존경이라는 말에 쇼베이르는 멈칫하면서 그래 무슨 말을 하려느냐는 듯 바라보았다.

사내는 넓은 페르샤워 분지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쇼베이르님께서 이 지역 양귀비 밭을 점령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고 하죠. 그럼 어떤 방법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어떤 방법이라뇨?”

“양귀비 재배 농민들은 소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그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가 있죠. 농민들은 대책 없이 단속만 하는 다인코프측에 잔뜩 분노해 있는데 말입니다?”

쇼베이르 뿐만 아니라 같이 있던 부하들은 붉게 피어난 양귀비 밭을 바라보았다.

양귀비 밭 가운데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그리고 왼쪽 산 아래로 지금은 비록 말랐지만 잠깐의 우기 때면 산에서 내려온 물이 흐르는 작은 개천이 있다.

“그야 어쨌든 우선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 하겠죠.”

이 지역 헬만드주는 아프카니스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아편을 생산하고 있다.

헬만드주 전체 산업의 25프로를 아편이 차지하고 있을 만큼 엄청난데 그중 이곳에서 생산된 양이 3분의 1은 된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단속이 심해지고 단속권한이 미군에서 하청을 받은 보안업체 다인코프로 넘어가면서 더욱 공격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었다.

이쪽에서 거칠게 나오다 보니 농민들 또한 총기를 동원하여 맞서고 있었는데 다인코프에서 이곳까지 노린다는 정보를 얻었다.

여긴 안 된다.

파다이 마하즈의 핵심 재배지역이다.

의문의 사내는 지금 어떻게 하면 다인코프를 막을까 설계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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