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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14화 (214/651)

제214화: 밀려오는 붉은 구름(2)

양귀비 밭을 갚아 엎을 때 미군들은 주위 경계에 소홀하지 않았다.

심지어 갈아엎는 양귀비 밭 상공에 헬기를 띄워 만에 하나 공격해 올수도 있는 탈레반을 감시했다.

하지만 인명피해는 끊이지 않았다.

탈레반 저격수의 총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특히 농민으로 위장하여 마을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탈레반을 찾아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농민들도 양귀비 단속을 하는 미군에 대해 탈레반과 똑같은 심정, 즉 적으로 보기 때문에 같은 편인 것이다.

그러나 권총수가 선택한 방법은 인명피해를 확 줄였다.

갈아엎기 전 날 주위 지형을 정찰한 다음 길리슈트를 입고 미리 위장하여 잠복한다.

미리 요소요소에 매복하기 때문에 탈레반의 공격을 받을 리가 없고 오히려 이를 갈며 다인코프 용병들을 찾아다니다 거꾸로 그들이 매복에 걸리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양귀비 밭이 줄어들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올해 아편 농사는 망했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농민도 울상이고 마약을 유통하는 탈레반도 위기에 직면했다.

그리고 또 한곳이 피해를 입고 있었다.

중남미 마약조직들이었다.

산지인 아프카니스탄의 양귀비 밭이 빠른 속도로 갈아엎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이른바 사재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의 헤로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약을 확보하려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축구 경기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었다.

후반 10여분이 남은 현재 양팀 스코어는 2 대 2.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승점을 6점차로 벌리지만 패하면 동점이 되어 골득실차로 겨우 1위를 유지하는 아메리카(America)팀과 현재 승점 3점차로 2위를 달리고 있는 파추카(Pachuca)팀이다.

그야 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는 아메리카팀의 열렬한 팬이다.

사람들은 브라질을 축구의 나라라고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멕시코 축구열기가 브라질을 앞섰으면 앞섰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90,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홈구장 아즈테카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밥은 굶어도 축구는 본다.

와아아아!

홈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공격을 해오던 파추카 팀이 도중에 인터셉트 당하면서 아메리카 팀이 역습에 나선 것이다.

축구에서 가장 위험한 플레이가 공격 작업을 해 오다 도중에 볼을 빼앗기는 것이다.

더욱이 1위를 놓고 붙는 전쟁 같은 경기인데다 후반 막바지라면 양팀 모두 닥치고 공격이다.

특히 리그 우승을 하려면 파추카 입장에서는 기어이 오늘 승부를 봐야 한다.

공을 가로챈 아메리카 팀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곧바로 뛰어 들어가는 자기편 중앙 공격수에게 찔렀다.

파추카 팀의 최종수비수가 뒤늦게 뛰어 들어갔지만 한 발 늦었다.

툭!

아메리카팀의 공격수는 골키퍼가 나오는 걸 보며 칩샷(찍어 올리는 것)으로 넣어버린다.

“그거야.”

“부라보.”

9만여 홈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살라자르 역시 옆에 있는 경호원을 끌어안고 미친 듯 소릴 질렀다.

“맨도사, 맨도사!”

아메리카 팀의 중앙 공격수로 멕시코 축구의 미래로 불리는 신성이다.

선수와 관중 모두 소릴 지르며 환호했다.

3 대 2.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살라자르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가 탄 벤츠 승용차는 자신의 비행기가 있는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후아레스시에서 멕시코시티까지 축구를 보기 위해 날아 온 것이다.

더욱이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가 자신의 둥지를 떠난다는 건 자살행위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둥지에서는 강력한 통치자이지만 집을 떠나는 순간 경쟁자들의 총구가 가만 두지않기 때문이다.

경호원들과 참모들이 말려도 살라자르의 아메리카팀 사랑은 식을 줄 몰랐고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기어이 입장하여 직접 관전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자 이미 연락을 받은 항공 팀이 비행기 엔진을 켜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살자마르는 곧바로 작은 트랩을 밟고 비행기 안으로 사라졌다.

트랩이 자동으로 닫히고 비행기는 곧장 활주로를 향해 움직였다.

부우우우!

점차 속도가 높아지면서 보잉 737기종의 비즈니스제트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보잉 737, 보통 ‘BBJ(Boeing Biz Jet)’라고 불리는 ‘점보제트(Jumbo Jet)’의 하나로 10,000여 킬로를 중간급유 없이 논스톱으로 달릴 수가 있다.

“좋아. 정말 좋군.”

얼음을 채운 언더락스 잔에 양주를 마시는 살라자르의 얼굴이 환하다.

“대단한 골이었습니다.”

“아메리카에서 한 방을 벼르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듯 보입니다.”

비서들이 입을 모았다.

“나도 그런 것 같아. 하프라인 근처에서 걸리면 대책 없지.”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최측근중 한 명인 비서이자 변호사인 오초아가 핸드폰을 들고 일어났다.

“잠깐 통화 좀 하겠습니다.”

핸드폰을 들고 비행기 뒤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오 분 정도 지나 다시 돌아온 오초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웃고나간 사람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살라자르는 단번에 오초아의 불편한 표정을 알아차리고 묻는다.

주위 경호원들까지 전부 오초아를 바라보았다.

“문제 생겼나?”

“지금 아프카니스탄 쪽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놈의 나라는 항상 좋지 않았지 언제 좋은 적 있었나? 뭔데 그래 말해봐?”

“하나파파가 관리하는 밭이 무더기로 갈아엎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뚝!

양주잔을 입에 대려던 살라자르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 정도인데?”

이쪽으로 연락이 온 걸 보면 가벼운 상황은 아닐 것이다.

“어제까지 약 83퍼센트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팍!

살라자르는 들고 있던 유리잔을 떨어뜨렸다.

경호원 한 명이 재빨리 깨진 유리조각을 치웠다.

“하나파파에서 우리에게 넘어올 생아편이 어느 정도 되지?”

“1톤이 조금 넘습니다.”

“1톤이면 헤로인으로 정제 했을 때 800킬로.”

“도매가격으로 5억 달러가 조금 넘습니다.”

오초아가 눈을 빛냈다.

즉 자신들이 입을 손해가 5억 달러라는 뜻이었다.

“헬만드주에 미군 있나?”

“비그람 공군기지와 일부 해병들이 있지만 양귀비 제거 작전은 전혀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갈아엎은 놈들이 누구야?”

“다인코프가 미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죠.”

“빌어먹을 용병 놈들, 그 자식들은 도대체 뭐하는 인간들이야. 쓰레기만도 못한 자식들.”

“메일을 보내 왔는데요!”

사내 한명이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전면에 달린 커다란 스크린을 켰다.

스크린이 켜지면서 곧장 한 남자의 얼굴 사진이 나타났다.

“누구지?”

“헬만드주 다인코프 양귀비 제거 팀장입니다.”

“동양계 아닌가?”

“한국계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화면이 계속 바뀌고 있었는데 전부가 권총수의 얼굴 사진이었다.

“저 따위 한 놈에게 우리 공급선이 완전히 망가졌단 말인가.”

“아타야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들어와 있습니다.”

“아타야가 죽어?”

그러더니 살라자르 시선이 다시 화면으로 향했는데 조금 전과 달리 권총수를 보는 눈빛이 사납다.

“허면 저자가 그...뭐지?”

“사막의 흑새라는 친구 입니다.”

한참 동안 권총수를 바라보던 살라자르가 중얼 거리듯 말했다.

“저거 물고 있는 것 말보로 레드 아냐?”

권총수 입에 담배가 물려 있었는데 말보로 레드 문양이 뚜렷하게 보였다.

“말보로 레드입니다.”

경호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멕시코 후아레스 시는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후아레스 시가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마약 때문이다.

하루 평균 10여명이 마약과 관련하여 사망한다는 통계를 발표했는데 그중 절반이 경찰관이고 나머지는 양심있는 시민들이다.

즉 마약조직의 범죄를 고발했다가 살해된 사람들인 것이다.

과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후아레스 시를 이 세상의 지옥이라는 표현을 해가면서 마약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했다.

경찰서가 새로 생기면 마약 카르텔에서 총탄을 넘어서 기관총탄과 수류탄을 개업기념으로 뿌린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무법천지인 도시였다.

그렇다고 멕시코 정부에서 손을 놓는 것도 아니다.

어느 도시보다 더 많은 경찰병력을 배치하고 재정적으로도 지원을 하지만 가려는 경찰관이 없다.

후아레스 시로 발령이 나면 그 자리에서 사표를 내는 것이 유행이다.

어느 날 용감하고 정의감에 불탄 젊은 여자 경찰관이 후아레스 시 경찰서장직을 자청했다.

누구라도 후아레스시 경찰서장으로 부임하면 하나같이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부패 혐의로 옷을 벗거나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시체로 발견 된다.

후아레스시 경찰서 서장 자리는 비어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자 마르띠나라는 스물아홉 살 먹은 경찰학교 수석 졸업생이 자청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옷을 벗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을 해버렸다.

사돈의 칠촌 팔촌까지 마약조직원들이 찾아가 총질을 하고 협박을 하자 견디지를 못한 것이다.

그녀가 떠난 집에는 AK소총으로 ‘우리에게 도전하는 자는 죽는다’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 후아레스시를 장악하고 있는 사내가 지금 막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살라자르가 나타나자 공항 직원들도 아는 체를 했다.

살라자르는 미소를 머금고 일일이 손을 들어주기도 하고 악수를 청했다.

“이사장님! 사랑해요.”

“살라자르.”

공항에 나온 마중객들중 일부가 살라자르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살라자르는 ‘멕시코 러브 유’란 어린이 구호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점심을 굶거나, 치료비가 없어 병원을 가지 못하는 아이, 공부를 하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 주위 불우한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민간기관이었다.

벤츠 마이바흐 S클래스 문이 열리고 살라자르가 올랐다.

탁!

문이 닫히고 두 대의 경호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차는 출발했다.

“보스, 사막의 흑새에 관한 서류입니다.”

비행기로 날아오는 동안 권총수에 대한 자료를 준비하라고 지시를 내렸었다.

오초아는 메일로 온 서류를 재빨리 프린터 하여 살라자르가 편히 볼 수 있도록 건네주었다.

살라자르가 권총수의 신상자료를 읽는 동안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차안에는 점차 긴장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조수석에 앉은 오초아는 흘긋 거리며 서류를 보는 살라자르를 살폈는데 표정을 찌푸리기도 했고 가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랑!

마지막 장을 넘긴 살라자르는 잠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않는다.

묘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 분여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고 살라자르는 다시 한 번 서류를 살폈다.

“요즘 청소부들의 몸값이 얼마인가?”

청소부는 살인청부업자들을 뜻했다.

“메이저리그 급이라고 한다면 백만 달러는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스카페이스는 아직도 뛰고 있나?”

“석 달 전에 통화 한 번 했습니다.”

“지금 무엇하고 지내는 거야?”

“낚시에 취미를 붙인 모양입니다.”

“낚시?”

살라자르가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번개보다 더 성질 급한 인간이 낚시를 한단 말인가? 정말 웃기는 일이로군.”

“제가 낚시는 아무나 못하는 것이라고 하자 자신도 처음에는 답답하고 고기가 입질이 없으면 권총까지 빼들곤 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야?”

“기다림의 미학이 뭐지를 알게 되었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모르겠습니다. 왜 내가 이제야 낚시를 알게 되었는지 후회스럽다면서 낚시 예찬론을 펴는데.”

“물고기 잡아 죽이는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미친놈은 뭐가 달라도 달라. 연락해서 내가 한 번 보잔다고 해.”

“알겠습니다.”

살라자르는 다시 서류를 살폈다.

오초아의 눈이 빛난다.

자신의 보스가 서류를 세 번 씩 읽은 걸 아직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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