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밀려오는 붉은 구름(1)
아타야는 여전히 손과 발이 묶인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툭툭!
권총수는 묵직한 부엌칼로 손과 발을 묶은 노끈을 잘랐다.
몸을 일으켜 세운 아타야는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듯 손목을 좌우로 움직였는데 얼마나 단단히 묶었는지 양 손목에 깊은 골이 만들어졌다.
그때 오민철이 들어오더니 안쪽 방에서 의자 한 개를 가지고 나와 조금 떨어져 앉았다.
권총수는 아타야에게 담배를 건네고 자신도 피워 물었다.
아타야는 길게 담배를 빨아 들였는데 손가락 끝이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그건 긴장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묶인 손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다.
권총수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여기저기 살피기 시작했다.
묻지 않는 상대, 서둘지 않는 남자, 완벽한 칼자루를 쥐었음에도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절제는 아타야를 더욱 짓눌렀다.
“알고 싶은 것이 뭐요?”
권총수가 핸드폰을 손에 든 채 시선을 들었다.
“질문을 하시오.”
권총수는 핸드폰을 탁자에 놓고 허리를 세웠다.
“당신이 한 해 거래하는 아편과 그 아편을 구매해 가는 마약조직만 얘기하면 됩니다.”
“500킬로는 될 것이오.”
생아편 500킬로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걸 정제하면 어느 정도 되는 양의 헤로인이 나오는 것이오?”
“기술자에 따라 다르지. 3분의 2정도까지 정제해낸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술자도 있소. 그래서 헤로인 정제 기술자의 몸 값은 상상을 초월하지요.”
“운반 루트는 어떻게 됩니까?”
“국경은 불가능하고 거의 해상루트를 이용하죠. 배로 일단 아프리카로 간 다음 그곳에서 다시 화물세탁을 한 뒤 미국과 남미로 들어갑니다.”
“중간 경유지가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를 많이 이용하죠.”
“거래조직은 어디요? 당신들과 거래하는 그쪽의 마약조직들 말이오?”
아타야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시날로아 카르텔이오. 멕시코.”
“으음!”
권총수의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민철은 권총수가 상당히 놀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분명 시날로아 카르텔이라고 했소?”
“분명합니다.”
시날로아 카르텔은 멕시코 뿐만 아니라 남미 최대의 마약 집단이다.
권총수는 이를 물었다.
“당신들이 관할하는 재배지는 어디입니까?”
“릴우 분지와 수루드할 계곡이오.”
촥악!
기다렸다는 듯 오민철이 벽에 걸린 지도를 펼쳤다.
“릴우 분지 면 여긴데, 수루드할 계곡은 이쪽이고.”
두 곳의 장소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농민들 모두가 하나파파 사람들이오?”
“일부일 뿐이오. 아닌 사람도 많지요.”
“무장상태는 어느 정도요?”
“총이 전부입니다.”
“당신이 죽게 되면 하나파파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탈레반은 후계자를 지명하지요.”
“그건 아직까지 지명하지 않았다는 얘기오?”
아타야는 빙긋 웃었다.
“왜 웃는 거요?”
권총수가 눈을 치켜떴다.
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뭔가 자신의 질문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내 나이 올해 마흔 한 살이오.”
팟!
권총수 눈이 빛난다.
아타야의 말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타야가 자기 나이를 얘기 한 건 아직 한참 때인데 무슨 후계자냐는 뜻이다.
후계자를 일찍 지목하면 조직의 균열이 생길 수가 있다.
차기 우두머리가 될 후계자를 중심으로 힘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반란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몇몇 탈레반의 우두머리들이 일찍 후계자를 내 세운 바람에 뒤통수를 맞은 일이 적지 않았다.
“어떻게 죽고 싶소?”
권총수는 태연하게 물었다.
그런데 아타야 역시도 태연하게 대답을 했다.
“총으로 죽여주시오. 한방으로.”
권총수는 갖고 있던 권총을 뽑아 들더니 서랍에서 소음기를 꺼내 끼워 돌렸다.
“내가 만난 탈레반 중에 당신이 가장 멋있었소.”
피슉!
총은 정확히 아타야의 이마를 뚫고 들어갔다.
잠시 꼼짝 않고 앉아 있던 아타야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퍼억!
탁자 위로 쓰러진 아타야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일단의 사내들이 릴우 분지와 수루드할 계곡으로 몰려 들었다.
그들은 모두 다인코프 용병들이었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의 양귀비 밭을 보며 입을 떠억 벌렸다.
그들은 근처 마을 사람들을 전부 한데모아 이틀 안에 갈아엎도록 지시했다.
스스로 갈아엎는 농민들에게는 밀 수확에 준하는 보상금이 주어지지만 거절하면 그땐 한 푼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틀 후 다시 찾은 두 지역의 양귀비 밭은 그대로 있었다.
갈아엎은 농민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농민보다는 하나파파 소속의 탈레반이 많기 때문에 말을 들을 리는 없었다.
“엎으시오!”
권총수가 핸드폰을 대고 말했다.
트랙터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곧장 양귀비 밭을 갈아 엎기 시작했는데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밭을 갈아엎게 되면 농민들이건 탈레반이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다인코프 용병들을 향해 총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용병들이 없다.
갈아엎는 양귀비 밭을 분노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농민들중 일부의 손에 AK소총이 들려 있었다.
숨기려 들지도 않고 눈에 보이면 그냥 갈겨버리겠다는 듯 이를 갈고 있었으나 보이는 사람은 상황을 살피고 관리하는 단속 공무원 몇 명 뿐이다.
그렇다고 공무원들과 트랙터 운전자를 죽일 수는 없다.
공무원중 일부는 자신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하청을 받은 다인코프 용병들이 양귀비 밭을 찾아내 갈아엎도록 지시하면 공무원들로서는 거절할 수가 없다.
그건 정면으로 법을 어기는 것이 된다.
하지만 보이지 않은 곳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들과 대화한다.
가장 간단한 예가 다인 코프 용병들은 양귀비 밭을 자주 찾아낸다.
그러나 단속 공무원들은 오늘도 찾을 수 없다는 보고서를 올린다.
잘해야 한 달에 한두 건 정도, 그것도 소규모 경작지를 찾아내 보고할 만큼 농민 친화적(?)이다.
그건 공무원들이 자신들 편이라는 걸 반증이다.
물론 정기적으로 일정한 돈을 모아 건네주기 때문인데 어쨌든 누이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죽일!”
총을 든 농민들은 눈을 희번득 거리며 다인코프 용병을 찾고 있었다.
열흘 전, 길리슈트 서른 벌이 화물로 포장되어 왔다.
권총수가 급히 주문한 것이었는데 팀원들도 그 사용처를 몰라 의아했다.
권총수가 저격수 출신이므로 혼자 쓰려나 보다 했으나 한 두벌도 아닌 서른 벌을 사용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팀원들은 물건이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를 숨긴다’
저격수의 기본이자 끝이기도 하다.
얼마나 잘 숨고, 숨기느냐가 목숨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격수에게 길리슈트는 생명이다.
길리슈트는 산이 많고 건조한 기후로 대지가 마른 아프카니스탄의 특성을 살려 사막색과 짙은 초록색 두 가지가 도착했다.
길리슈트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던 권총수가 팀원들을 향해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권총수의 얘기를 들은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빛내며 반색했다.
초록색 길리슈트를 입은 사람은 숲속에서, 사막색 슈트를 걸친 사람은 밭이나 언덕에 몸을 숨겼다.
비록 저격수 출신들은 아니지만 특수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길리슈트를 이용한 접근과 탈출, 도피 훈련은 기본으로 받는다.
더욱이 은폐와 엄폐에 관한 나름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양귀비 밭을 갈아엎는 릴우 분지 주변에도 길리슈트를 입은 다인코프 용병들이 숨어 있었고, 수루드할 계곡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쪽이 숨어 버리면 적이 움직이게 되어 있다.’
권총수는 철저히 저격수 스쿨에서 배운 지식을 도입했다.
트랙터가 밭을 갈아엎을 땐 근처에서 매복하거나 숨어있는데 탈레반의 보복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몇 번 갈아엎을 것을 지시해 놓고 돌아갔는데 다음 날 와서 보자 밭은 그대로 있었다.
아프카니스탄의 양귀비 재배를 막기 위해서는 부패한 관료들부터 쳐내야 한다는 미국무부 문서가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탈레반이나 총을 든 농민들로부터 몇 번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 아직까지 피해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단순히 숨는다고 하여 위험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길리슈트를 이용한 매복을 택한 것이다.
지형이나 지리를 이용한 매복은 눈에 발견되면 사람이 보이지만 길리슈트는 다르다.
봐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는다.
“에이 원, 에이 원, 여긴 에이 투.”
“에이 투 뭔가 말하라.”
“적이다. 적이 다가오고 있다.”
“몇 명인가?”
“다섯이다 이상.”
“에이 투 적의 무장 상태를 말하라.”
“개인화기, AK-47이다. 복장을 보아 농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두 명은 터번을 이용해 얼굴을 가렸다 이상.”
“에이 투, 명령을 내리겠다. 적을 모조리 사살하라. 모조리 사살하라.”
“실행하겠다 에이 원.”
무전교신이 끝났다.
개잎갈나무(히말라야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비탈이 꿈틀거렸다.
마치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듯 보였는데 푸른 나뭇가지 사이로 총구 세 개가 삼각형을 이루며 슬며시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조용하던 산속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AK를 거머쥔 채 다섯 명의 사내들이 다가왔는데 복장은 가지각색이었다.
선두에 오는 사내는 ‘우드랜드’ 얼룩무늬의 군복 바지를 입고 상의는 헐렁한 자켓을 걸쳤다.
나머지 네 명은 일반인 복장이었는데 두 사내는 터번을 끌어 내려 얼굴을 가렸다.
“사격준비!”
누군가 속삭이듯 말을 했다.
다가오는 탈레반들은 갈아엎어지고 있는 양귀비 밭을 보며 욕설을 뱉었다.
“쳐 죽일 다인코프 놈들 도대체 어디 숨어 있는거야?”
“그놈들을 반드시 쫓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투쟁은 힘들어진다.”
사내들은 이를 갈며 다가왔다.
“사격개시!”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산이 시끄러워졌다.
두두두두!
드르륵!
30미터가 채 안되는 지척에서 날아오는 M4를 피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선두 사내는 즉사한 듯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엎어졌고 뒤따라오던 네 사내 모두 바위틈 사이로 나뒹굴었다.
“사격중지!”
조용한 명령과 함께 풀숲이 들썩거렸다.
풀이 일어난다.
길리슈트를 걸친 세 명이었는데 한가운데 오민철이 얼굴에 잔뜩 위장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신중하게 접근했다.
죽은 척하다 기습공격을 하는 일들이 너무 흔했고 실제로 미군은 많은 희생자를 냈다.
세 사람은 시신들을 겨냥하며 일일이 죽음을 확인했다.
“에이 원, 여긴 에이 투, 작전완료.”
“수고했단 에이 투.”
세 사람은 길리슈트를 벗었다.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길리슈트는 열전도율이 낮고 겹겹이 잇대어 있기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오는 열기는 아주 낮다.
그로인해 열화상카메라에도 지열로 달궈진 숲이 움직이는 정도로 밖에 비치지 않지만 대신 몸이 발산하는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안에서 삶는다.
땀이 찰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