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12화 (212/651)

제212화: 묻어 버려(2)

라이스의 눈이 빠르게 굴러다닌다.

“화장실 좀!”

재빨리 아랫배가 불편하다는 시늉을 하며 곧장 2층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 올라갔다.

꿀꺽!

혼자 남은 케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서일까 아타야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죽여야 할 사람과는 절대 시선을 맞추지 마라’

해병대에서 배운 대로 시선을 피하며 부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벽에 걸린 플라스틱 칼집에 두툼한 손잡이로 된 부엌칼이 꽂혀 있었다.

케인은 칼을 꺼냈다.

아프카니스탄의 부엌칼은 미국의 것과 비교해 5센티 정도 길었고 칼의 폭도 넓었다.

웬만한 짐승을 해체하는데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크고 묵직했다.

케인은 칼을 쥐고 아타야 앞으로 다가갔다.

칼을 바라보는 아타야 눈빛이 흔들린다.

죽는 건 두렵지 않다.

어차피 총을 맞으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칼이라면 다르다.

더욱이 아프카니스탄의 부엌칼은 지역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이곳 파슈툰족은 육식을 좋아하고 특히 집에서도 양을 잘 잡아먹는다.

양을 해체하려면 당연히 부엌칼이 커야 하고 무게는 말할 것도 없다.

클리버(Cleaver:흔히 중식도로 불리는 사각의 뭉텅한 칼)모양에 약간의 곡선을 가미했다.

즉 일반 칼과 달리 끝이 뾰쪽하지 않기 때문에 내리쳐서 죽여야 한다.

아타야는 고개를 들었다.

케인이 자신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면 알 수 있는데 칼을 쥔 손을 떨고 있었다.

그건 사람을 한 번도 직접 죽여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으로는 누구든지 죽일 수 있으나 칼을 사용한 살인은 분명히 틀리다.

IS에서 목을 자르는 참수형 보다 탈레반의 참수형이 역사는 훨씬 앞선다.

참수는 탈레반이 구소련과 전쟁시절에 시작된 처형 방법이었다.

적군의 사기를 무너뜨리기 위해 목을 잘라 걸어 놓거나 길가에 버려두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탈레반의 전통을 IS가 가져간 것이다.

아타야는 눈을 감았다.

많은 사람의 목을 베어봤고 심장이 멎으면 정말로 죽는지 실습하듯 찔러도 보았다.

인체에서 총이 아닌 칼로 가장 빨리 숨을 끊을 수 있는 부위가 심장이었다.

정확히 찌르면 금세 숨이 멎는다.

처음 탈레반에 들어오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미군이나 또는 서방세계와 협력하는 반 이슬람인들을 잡아다 죽일 것을 지시한다.

자신도 그렇게 살인을 배우기 시작했고 어느 한순간은 그렇게 죽이는데 재미를 느꼈다.

그러면서 사람을 총이 아닌 칼로 죽이면서 느낀 것 하나가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무척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경험이 없는 탈레반에 갓 들어온 신참들이 휘두르는 칼이란 무질서하기 그지없다.

신참들에게 죽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외치는 절규가 제발 빨리 죽여달라는 것이다.

물론 신참도 두려움에 휩싸인 나머지 빨리 죽이기 위해 마구 칼을 휘두르지만 인간의 목숨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금방 끊어질 것 같은데도 죽지 않는다.

칼을 맞으면서 이틀 만에 죽는 사람도 본 적이 있었다.

“미...미안합니다. 당신에게 원한은 없습니다.”

케인이 더듬거린다.

“군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는 것은 알테죠.”

아타야 두 눈이 흔들렸다.

찌를 수 있는 칼도 아닌 내려쳐서 단단한 것을 자르는 것에 특화된 클리버 칼로 자신을 죽이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심장을 찍는다는 것이 잘못되어 애꿎은 갈비뼈만 박살낼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숨통을 끊어주면 괜찮은데 얼른 죽지 않으면 초보자이니 당황할 것이 뻔하다.

얼른 죽지 않으니 더욱 미친 듯 칼을 휘두른다.

여기저기 마구 찌르고 찍으면서 제발 빨리 죽으라고 소릴 지를 가능성이 높다.

“부탁이 있다.”

아타야는 말했다.

“다른 것 필요 없이 그 칼로 내 머리를 부숴 달라. 그것뿐이다.”

머리가 깨지면 빨리 죽는다.

심장을 잘못 노려 다른 상처와 아픔을 남기는 것보다 머리는 몇 번 후려치면 금방 숨이 멎는다.

자신이 심장 다음으로 가장 잘 죽는 신체 부위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심장을 노린다면서 만신창이로 만들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알아서 합니다. 건방진.”

불쾌하다는 듯 한 번 노려보더니 뻑 하고 발로 앞가슴을 걷어찼다.

아타야는 힘없이 뒤로 넘어졌는데 케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자신의 심장이었다.

벌벌벌!

칼을 쥔 케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눈을 감으시오.”

아타야는 입술을 깨물었다.

‘죽는건 두렵지 않다. 가장 두려운 건 고통이지. 수많은 형제들이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지. 그래서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적에게 잡히면 어떻게 해서라도 총을 쏘도록 유도하라는 것이다’

열일곱 살 나이로 처음 탈레반에 들어갔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된 1대 탈레반의 우두머리였던 물라 오마르가 했던 말이다.

그는 2대 우두머리와 3대 현 우두머리인 히바툴라 아쿤드자다와 달리 상당히 온건했고 실리주의자였다.

형제들의 배신에 굳이 분노하지 않았고 인간의 나약함을 안타까워 했을 뿐이다.

벌컹!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오민철이 고개를 내밀었다.

“죽였어? 구덩이 다 팠는데.”

그러다 아직 살아 있는 아타야를 발견하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직도 안 죽이면 어떡해.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 테니까 빨리 죽여!”

쾅!

오민철이 성화를 부리며 사라지자 케인의 눈이 충혈됐다.

케인이 짜증난다는 듯 클로버 칼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캡틴이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 그와 얘기 하겠다.”

누워있던 아타야가 급하게 말했다.

케인은 눈살을 한 번 찌푸리고는 재빨리 현관문을 열고 나가 외치듯 말했다.

“캡틴에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이야? 알았어.”

오민철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었다.

한편 권총수는 한 사람과 마주 앉아 있었다.

흰색의 터번에 검정색 외투를 걸친 50가까운 사내였는데 커피잔을 들어 올리는 오른손의 약지가 없다.

오민철에게 카불을 간다고 했던 말은 작전상 벌인 자작극이다.

눈앞에 앉아 있는 인물은 ‘무하마드 라술’이었다.

무하마드 라술은 명실공히 이곳 헬만드주에서 ‘피다이 마하즈’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탈레반 세력인 ‘말로툴라’의 지도자다.

그는 며칠 전 미국과 협상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라슈카르가를 찾아온 탈레반의 공식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를 만나기로 했다.

만약 일정대로 자비훌라 무자히드를 만났다면 회담을 반대하는 하나파파의 공격을 받아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건 권총수 때문이었다.

권총수가 하나파파의 계획을 그들에게 귀띔한 것이었다.

그날 라우프 시장골목 입구에서 내려 회담이 열리는 지붕 뾰족한 집으로 들어갔던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가짜였다.

권총수가 제공한 정보에 따라 가짜를 보내 하나파파 조직의 시선을 모은 뒤 준비된 비밀 통로로 빠져 나갔다.

하나파파는 결국 텅 빈 집에 RPG를 퍼부은 셈이 됐고 오히려 무하마드 라술의 부하들이 설치한 폭탄에 20여명이 죽는 참사를 당했다.

“내가 보자고 한 것은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서요.”

게임을 하고 있는데 무하마드 라술이 만나고 싶어 한다며 말로툴라 측에서 문자가 온 것이다.

오민철에게는 카불을 간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한 가지 노림수가 있었다.

오민철을 포함한 지금의 부하들 심성과 과거 군 경력을 볼 때 절대 살아 있는 사람을 총도 아닌 칼로 죽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서툰 칼질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이다.

하나파파의 악명은 탈레반 가운데에서도 이미 정평이 나있고 우두머리 아타야가 휘두른 칼에 죽은 미군과 아카데미 용병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야말로 난자를 해 죽였는데 ‘블랙 터번의 살인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항상 검정색 터번을 하고 다닌 데에서 붙은 것인데 1년 전 알자지라와 했던 그의 인터뷰는 더욱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검정색 터번을 한 이유는 한가지다. 흰색과 달리 피가 묻어도 잘 티가 나지 않는다. 자꾸 세탁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어 좋다’

그런 아타야인 만큼 총이 아닌 칼에 의한 죽음, 특히 서툰 칼질이 얼마만큼 고통인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것이다.

자신의 계획에 아타야 넘어가면 좋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죽이는 것으로 끝낼 셈이다.

“며칠 밤을 새우면 당신과 우리 마로툴라의 관계에 대해 고민 했소. 난 당신과 총을 겨누지 않을 것이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처음 상당히 불쾌했다.

목숨을 구해주었는데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빈말일지라도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없어 머리를 잘못 굴린 것 아닌가 후회를 하기도 했다.

모든 적을 죽일 수는 없다.

살상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탈레반과는 우호적일 필요도 있고, 할 수 있다면 자신들끼리 총부리를 겨누도록 만드는 것이 좋다.

그런 차원에서 귀띔을 한 것이다.

어쨌든 사건이 끝난지 일주일 여가 흐른 지금 찾아왔다는 건 지금 말을 하기 위해 무척 고민이 많았다는 것을 뜻했다.

자신보다 탈레반 내에서도 지명도가 약한 아타야에게 죽는다면 그것보다 불명예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현 지도자에게 힘을 싣기로 했소.”

현지도자라고 하면 탈레반 3대 우두머리인 히바툴라 아쿤드자다를 의미한다.

그는 지금 미국과 협상중인데 일부 강경파들이 협상반대를 외치며 방해를 획책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암살명령을 내렸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히바툴라 아쿤드자다의 협상론에 무게를 싣겠다는 뜻이다.

“일단 협상을 한 뒤 미군이 물러나면 그때 우리 손으로 현 정부와 담판을 짓는 것이 평화를 가장 빨리 찾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훌륭하십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서로를 마주보는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자비훌라 무자히드의 차량이 멀어져간다.

한참 동안 떠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권총수는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딸칵!

라이터로 불을 켜 담배에 붙인다.

씨익!

담배를 두 모금 빨고 나더니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아프카니스탄의 평화를 위해 일익을 담당한 것 아냐’

사건을 아무리 복기해 봐도 자신이 해도 너무 큰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병이란 평화 속에는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은 평화를 깨러 온 사람이지 지키거나 확립할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동을 화약고로 조장하고 만들어가는 건 돈 때문이다.

자신들이 생산한 무기를 팔아 돈을 벌려면 전쟁이 일어나야 한다.

용병 역시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

‘포화속에 핀 사랑’

언젠가 뉴욕타임즈 1면에 포탄이 떨어지는 불바다 속에서 갓난아기를 안고 뛰어가는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의 한 사람의 사진을 싣고 써 붙인 타이틀 기사였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며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름없는 평화주의자’

나름대로 자신이 아프카니스탄을 위해 엄청나게 큰 일을 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리고 만약 신문에라도 난다면 그런 타이틀 기사가 실렸으면 좋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오민철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권총수씨 아닙니까?”

“맞아요. 말해 형.”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뭐가?”

“왜 그렇게 무겁게 깔렸냐고? 어디야? 너 카불 가는 것 아니지?”

눈치는 빠르다.

“용건이 뭐야?”

“아타야가 너와 말하겠다는데? 널 찾는다고?”

순간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기대하지는 않았다.

고문을 해도 입을 열지 않을 사람이니 죽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머리를 좀 굴린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효과를 얻은 것이다.

권총수는 피우던 담배를 발로 비벼끄며 주차되어 있는 차로 걸어갔다.

권총수가 들어서자 케인과 실턴이 마당에 파놓은 구덩이를 메우고 있었다.

“무슨 구덩이야?”

권총수가 턱으로 묻자 작은 바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오민철이 말했다.

“아타야 묻으려고 팠지.”

권총수는 피식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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