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11화 (211/651)

제211화: 묻어 버려(1)

눈이 가려 있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처음에는 울퉁불퉁 차가 움직였다가 이어서 아스팔트를 달리는 듯 요동이 덜했고 지금은 다시 흔들렸다.

집에서 나오는 길은 비포장이다. 결국 시내를 관통하여 시외로 다시 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30여분 달리더니 차창 밖에서 육중한 소리가 들렸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땅을 울릴 정도인 걸 보면 평범한 가정집 대문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끼익!

차가 멈춘다.

“내려!”

누군가 뒷덜미를 쥐고 잡아당겼다.

마당으로 내려선 아타야는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느낌에 중얼 거렸다.

‘자갈을 깔았다’

아프카니스탄에서 마당에 자갈을 까는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침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아무리 훈련이 잘된 특수부대라고 할지라도 자갈을 밟으면 소리가 울린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침입방지 장치로 자갈이 이용되는데 주로 탈레반이나 반군의 표적이 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밟고 있는 자갈 마당의 주인은 탈레반에 쫓기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쫓기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숨으려 든다.

설혹 경호원들을 많이 데리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 같은 탈레반 사냥꾼을 공격하지 않는다.

“어서 가!”

한 사내가 거칠게 잡아끈다.

아타야는 사내가 이끄는 대로 걸어가다 하마타면 넘어질 뻔했는데 계단에 발이 부딪힌 것이다.

‘가정집이다’

현관을 오르는 계단이고 발바닥이 매끈한 걸 보아 전통가옥이 아닌 현대식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판단했다.

“풀어줘!”

한 사내가 지시를 내리자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풀렸다.

자신의 예측은 정확했다.

시멘트 벽으로 지어진 서구식 주택이며 넓은 거실에 자주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툭!

하며 손을 묶고 있던 포승줄까지 풀렸다.

아타야는 아픈 손목을 좌우로 흔들며 다시 한 번 실내를 살폈는데 자신을 데리고 온 사내들은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아타야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구도 앉으란 말을 하지 않았고 버리듯 놔두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누굴 잡아왔다고?”

문밖에서 들여온 낯선 사내의 목소리다.

“거기서 정리해버리고 오지 피곤하게 뭘 데리고 와.”

아타야는 정리해버리란 말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기에 표정이 변했다.

죽여 버리지 왜 여기까지 데리고 왔느냐는 약간의 타박이다.

오민철이 들어서고 조금 있단 선글라스를 낀 권총수가 나타났다.

아타야는 하마터면 소릴 지를 뻔했다.

커다란 선글라스가 얼굴 상당부분을 가리고 있지만 누군지 금방 알아보았다.

제일 먼저 이라크 반군들이 그에게 무너졌고 뒤이어 IS가 그의 총구를 피하지 못했다.

결정적인 건 베네수엘라와 사우디 쿠데타를 완성 시킨 기획자이다.

작년 ‘타임’지에 올해의 인물로 터번을 휘감고 선글라스를 낀 권총수의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사막의 흑새는 이슬람 무장테러세력 조직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그를 발견하면 죽여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자신 또한 제공받은 권총수의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이 사람이야?”

“응!”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권총수를 보았는데 눈썹이 꿈틀했다.

묻지 않아도 낯선 남자가 끌려 왔다면 당연히 아탸야라는 걸 알텐데 굳이 물어보는 이유는 뭘까.

특히 조금전 마당에서 거기서 정리해버리지 왜 데려왔냐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가급적 생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권총수다.

절대 거기서 없애고 빈손으로 돌아오라는 말은 없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잠깐 취조를 했던 건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죽여버리지 데리고 왔냐는 귀찮다는 듯 내 뱉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앉으세요.”

권총수는 먼저 소파에 앉아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건넨다.

아타야가 받지 않자 권총수는 계속 내밀고 있었다.

아타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담배를 물었고 권총수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자신도 한 개비 피워 물더니 길게 연기를 뿜으며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렸다.

다리를 꼰 채 상체를 소파 등에 붙인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 뭔가 살피고 있었다.

꿀꺽!

오민철은 처절한 실패의 맛을 봤기 때문에 권총수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배워야 한다.

배워서 남 주지 않는다.

권총수는 확실히 전문가이고 자신에게 없는 뭔가를 갖고 있었다.

후우!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담배를 피웠다.

아타야는 흘긋 거리며 권총수의 눈치를 살폈는데 몹시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권총수는 게임을 하는지 아니면 뭔가를 찾는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오민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평소 생각 없이 권총수의 행동을 봐왔지만 오늘은 한 수 배우겠다는 자세로 임한 탓인지 장내 분위기가 묘했다.

칼자루를 잡고 있는 권총수는 핸드폰에 몰두해 있고, 죽여 버리지 왜 데리고 왔냐며 짜증을 부리던 아타야에게는 담배까지 권하는 친절함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만약 자신이 아타야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까 생각해 보았다.

끌려왔으니 당연히 겁이 날 것이다.

또한 상대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할 것이다.

말로 하면 절대 진실을 얘기 하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 고문을 당한다면 견딜 수 있을까.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특전사에서는 적의 포로가 되어 고문을 받을 때를 대비한 훈련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훈련 중 사망자가 발생해 중단 되었다.

양팔이 묶인 상태에서 수건으로 얼굴 덮고 물을 뿌렸는데 기도가 막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음!’

매 앞에 장사 없다고 했다.

자신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린들, 잘 죽었다 이놈, 하하하!”

그때 권총수가 환하게 웃었다.

‘설마 이 상황에서 헤드벗(Head butt:박치기)게임을.’

주먹 대신 머리로 싸우는 게임이다.

머리 이외에는 어떤 도구나 신체의 다른 부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마치 발정기에 들어선 아메리카 들소가 암놈을 차지하기 위해 대가리 싸움을 하듯 오로지 머리로 상대를 무너뜨려야 한다.

린들은 강력한 주인공 상대역이다.

고통지수라는 것이 있다.

미즈리 인덱(misery index), 경제적 용어이지만 게임에서는 상대와 한 번씩 머리가 부딪힐 때마다 고통지수가 올라가는 것이다.

고통의 최고 지수는 백만 점이다.

한 번 부딪힐 때마다 화면에 혈압계처럼 고통지수가 올라가는데 피를 흘려도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계속할 수 있고, 스포츠 경기에서처럼 부상이 심할 땐 헤드벗 닥터가 선수 상태를 살핀 뒤 싸움의 중단과 속개를 결정하는 것이다.

한편 권총수도 생각이 많았다.

IS나 탈레반 고위급 인물들의 입은 함부로 열리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CIA에서 고문은 사라졌죠. 그러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달려들어도 그들 입은 열리지 않아요.’

맥보란의 말이었다.

이미 경찰팀과 경호팀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인코프 용병들로부터 탈레반 고위급에 대한 고문을 시도했지만 성공한 예는 없었다.

국가 기관인 CIA가 보안업체이기 때문에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으나 닫힌 입을 여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권총수는 지금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아타야가 고분고분 말을 할까에 집중 되어 있었다.

분근착골은 사용할까 했지만 망설이고 있었다.

만에 하나 분근착골이 실패 한다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상대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반드시 아타야의 입을 통해 마약 유통과정과 그들이 운영하는 자금 상태를 파악해야 했다.

“캡틴!”

기다리다 못한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일단 묶어!”

권총수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오민철은 단단한 노끈을 가져와 아타야의 손을 허리 뒤로 돌려 묶었다.

이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발목까지 단단히 묶고 있을 때 갑자기 권총수가 깜짝 놀랐다.

“이런!”

“왜 그러는데?”

끈을 묶던 오민철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 며칠이야?”

“27일!”

“오마이 갓!”

권총수는 재빨리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 가는데?”

“카불에 좀 다녀와야겠어. 약속이 있어.”

“누구와?”

“다녀와서 얘기할게.”

“그럼 이 놈은 어떻게 하고?”

“내가 뭐랬어. 죽여 버리라니까 괜히 끌고 와서, 마당 넓은데 파묻어 버려.”

“죽이라고?”

“독종들이라고, 절대 입 안 열어. 총소리 내면 이웃들이 이상하게 생각 할 수도 있으니까 소리 안 나는 방법으로 죽여.”

탁!

권총수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오민철이 눈을 깜빡 거렸다.

말이 카불이지 600여킬로 떨어져 있다.

항공편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 약속이라면 오늘 출발해야 하는데 빨라도 1박2일이다.

오민철은 난감한 표정을 했다.

전쟁중에 사람을 죽여 본적은 있으나 이렇게 포로가 된 비무장 상태인 대상의 목숨을 빼앗아 본 적은 없다.

더욱이 총을 사용하지 말라는 건 칼이나 다른 방법을 사용하라는 뜻이다.

한 방에 깨끗하게 정리하는 총도 빤히 바라보는 사람을 향해 당긴다는 것이 쉽지 않는 일인데 소리없는 무기라면 칼이다.

흘긋!

주방 쪽을 바라보았는데 며칠 전 구입한 부엌칼이 칼집에 꽂혀 있었다.

아무리 칼질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사람을 한 번에 찔러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찌를지 몰라서가 아니라 총과 달리 칼은 휘두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살인이라는 중압감을 굉장히 오랫동안 받게 하는 무기다.

죽이기 위해서는 칼을 잡아야 하고, 상대의 얼굴을 봐야 하며, 사람 몸을 향해 휘둘러야 하는데 전문 칼잡이가 아닌 이상 그 과정이 절대 매끄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케인! 케인!”

오민철이 이층을 향해 소릴 질렀다.

“예 부 팀장님!”

2층에서 케인이 뛰어 내려왔다.

“케인!”

“말씀 하십시오.”

“지금 눈앞에 누가 있나? 나 빼고?”

“우리 팀원 쉴튼을 죽인 원수가 있습니다.”

“원수, 맞아 놈은 우리의 원수지. 원수와는 공존 할 수 없다. 죽여라.”

“네에?”

“동네 사람들은 우리를 평범한 회사직원들로 알고 있다. 그런데 총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되겠나?”

“동네 사람들중 탈레반의 정보원이 있지 말란 법은 없죠.”

“정확히 보았다. 그러므로 네가 책임지고 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하나파파의 우두머리 아타야를 죽이도록, 난 그사이 놈을 묻을 구덩이를 파겠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오민철은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 버렸다.

케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뭐하는데 케인?”

텍사스에서부터 함께 동행했던 동료 라이스가 내려왔다.

“부 팀장님께서 이 자를 죽이라고 해서.”

라이스가 흠칫했다.

델타포스를 나왔다고 많은 사람을 죽여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위험한 지역에 몇 번 투입이 된 적은 있지만 두 눈으로 자기 총알이 적을 죽이는 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얼마 전 양귀비 재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비잔뜨리 계곡을 지나다 탈레반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 권총수일행이 재빨리 지원을 하여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태어나 그토록 치열한 총격전은 처음이었다.

자신의 총알에 누가 맞아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형적으로 워낙 불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캡틴은?”

“모르겠어. 부 팀장님은 지금 밖에서 이자를 묻을 구덩이 파고 있어.”

밖에서 땅을 파는지 퍽퍽 하는 삽질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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