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그들의 두목(3)
뷜렌트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골목을 내려갔다.
뒤를 따라가는 하칸의 눈은 쉬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아직 멀었니?”
“거의 다 왔어요.”
뷜렌트는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백여 미터를 더 내려가더니 비스듬하게 세워진 전봇대 앞에서 걸음을 세웠다.
전봇대에서 조금 떨어진 좌측으로 높이 이십 여미터는 될 것 같은 대추야자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 아래 십여 명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뷜렌트는 전봇대를 가리켰다.
“여기요! 내가 여기서 놀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왔어요.”
“어떻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질문은 뷜렌트에게 던지지만 하칸의 시선은 주위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그냥요.”
“그냥?”
“아저씨였어요. 머리에 터번 두르고, 나한테 앗 쌀라 말라이쿰(평와가 그대와 함께)이라며 인사까지 했는데요.”
이슬람 사람에게 인사는 생활이다.
남에게 축복을 해주고 복을 빌어주는 건 아름다우며 알라의 뜻을 행하는 선이다.
“생김새 좀 말해줄 수 있겠니? 키는 얼마나 크고, 피부는?”
“잘 몰라요. 돈 준다고 해서 전 심부름을 했을 뿐인데.”
뷜렌트는 서서히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 가도 되죠. 집에 가봐야 해요.”
하칸은 깊은 시선으로 뷜렌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거라.”
뷜렌트는 순식간에 인파사이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하칸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태양은 뜨거워졌다.
대추야자나무 아래에는 햇볕을 피하려는 사람들로 더욱 붐볐다.
버스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그늘 아래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오르기 시작했다.
버스는 삼키듯 그 많은 사람을 한 번에 태우고 떠났다.
잠시 한가하던 대추야자나무 아래는 새로운 사람들로 다시 채워졌다.
두 대의 승용차는 그때 나타났다.
뒷좌석에서 네 명의 사내들이 AK-47 자동소총을 들고 내렸는데 재빨리 앞 차를 에워쌌다.
딸칵!
앞차의 뒷문이 열리고 검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오십 중반의 사내가 내렸다.
머리에 검정색 타키야를 썼고 재색의 긴 토브 위로 풍성한 까운 하나를 걸쳤다.
운전석과 조수좌석에서도 수염 수북한 사내들이 내렸는데 그들은 권총을 뽑아 들었다.
일단의 사람들이 AK를 들고 나타났지만 누구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일행은 인파를 헤치며 라흐프의 시장 골목을 거슬러 올라갔다.
수염 가득한 사내를 에워싼 경호원들의 눈이 번뜩였고 잠시 후 일행은 오늘 아침 뷜렌트라는 소년이 두드렸던 문 앞에 걸음을 세웠다.
덜컹!
안으로부터 문이 열리고 아르다가 나타났다.
재빨리 문을 열어주었고 차에서 내린 일행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20여분 지났다.
라흐프 사람들은 여전히 붐볐고 물건을 사려는 손님과 가게 주인간의 흥정을 위한 입씨름도 식지 않았다.
라우프 시장 골목입구에 세워진 돌기둥에 걸린 오래된 벽시계가 오후 1시를 가르킬 때였다.
갑자기 서북쪽 창공으로 시커먼 물체 하나가 나타났다.
검은 물체는 쐐애액! 소리를 내며 날아갔는데 정확히 20여분 두 대의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이 들어갔던 집을 때렸다.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흙먼지가 솟구쳤고 포탄은 연이어 날아와 뾰족한 지붕을 때렸다.
쾅!
쾅쾅쾅!
RPG(Rocket Propelled Grenade)였다.
RPG는 쇳덩이로 온 몸을 두르고 있는 탱크를 파괴하는 무기다.
그런 포탄이 흙과 돌로 지어진 집으로 무차별 쏟아지고 있었다.
시장을 보러 나왔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쳤고, 멀리서 한 떼거리의 사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인파를 헤치며 공격당하고 있는 집을 향해 달려갔는데 손에는 AK-47과 러시아군 최신형 소총 AN-94가 들려 있었다.
사내들은 무너진 집으로 뛰어들며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드르르윽!
두두두!
AK-47과 AN-94가 합창하듯 쏟아내는 소리에 이미 RPG로 박살난 집은 더욱 무너져 내렸다.
우당탕!
집안의 사람을 찾으려는 듯 20여명의 사내들은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다.
20여 분간 총소리와 건물 무너지는 소리, 사람을 수색하는 외침이 섞이며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뚝!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약속이나 한 듯 갑자기 무너진 집안이 조용해졌다.
활발하게 움직이던 사내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함정이다!”
누군가 절규하듯 외쳤다.
사내들이 일제히 집밖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콰아아앙!
그러나 사내들은 나가지 못했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집 마당이 솟구치면서 모든 것이 뒤집어져 버렸다.
사람의 몸이 찢겨 날아갔다.
폭풍에 휩쓸려 날아갔고, 파편으로 온 몸이 난도질을 당했으며, 날아온 커다란 돌멩이가 머리를 부셔 버리기도 했다.
쏴라라락!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던 돌조각과 흙더미들이 떨어지면서 장내는 조금씩 안개가 걷히듯 맑아졌다.
시체다.
온전한 모습을 한 시신은 단 한 구도 없었다.
주인 잃은 다리가 있고 잘려진 손목이 보인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노려보며 죽은 자, 폭발순간 곧바로 죽지 못하고 상당한 고통을 겪다 죽은 듯 입술을 깨문 시신도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사내는 홍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고 있는 직사각형의 탁자 끝에 놓아둔 전화기를 흘긋 한 번 바라보더니 시선을 다시 보던 책에 고정했다.
지이이잉!
탁자가 울리는 진동음에 책을 보는 사내의 눈썹이 꿈틀했다.
전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흔들린다.
전화가 지금 오면 안 된다.
최소한 지금보다 10분에서 20분 정도 늦게 오는 전화가 정상적인 것이다.
너무 빨라도 나쁘고, 늦어도 좋지 않은 전화를 기다리며 있었다.
잠시 끊어졌던 전화가 다시 울린다.
지이이이이!
지이이이이!
탁!
사내는 보던 페이지를 접고 책을 덮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탁자 귀퉁이에 놓인 핸드폰을 향해 걸어갔다.
핸드폰은 조금씩 옆으로 이동했는데 사내는 한참을 내려 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손을 뻗어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조용했다.
말을 않는다.
꿈틀!
사내의 눈썹이 요동쳤다.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오길 기다린다.
계획대로 작전이 성공리에 끝났다면 상대는 흥분해서 외치듯 보고해야 한다.
“큰일 났습니다. 함정이었습니다.”
이쪽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상대는 제대로 듣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 듯 더욱 큰소리로 외쳐 말했다.
“덫이었습니다. 전멸했습니다.”
사내의 표정만 봐서는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없는 백면(白面)의 얼굴이다.
툭!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바로 그때 문밖이 소란스럽다.
사내는 재빨리 현관 앞에 화분에 놓아둔 권총을 잡기 위해 달려갔다.
마루를 가로질러 입구 화분에 올려놓은 권총을 잡으려는 순간 퍼어엉 하며 현관문이 떨어지며 사내를 후려쳤다.
뻐퍽!
현관문에 맞은 사내는 충격으로 마루에 나동그라졌다.
뜨겁게 뭔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손으로 만져 보았는데 피였다.
낯선 사내들이 들어섰다.
사내들 손에 들린 건 미군 제식총 M4였는데 순간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와당탕!
사내들은 집안 곳곳을 뒤지며 수색하기 시작했다.
딸칵!
라이터 소리에 고개를 들었는데 한 사내가 말보로 레드를 물고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사내는 일부러 그런 건지 아니면 뱉다보니 그렇게 된 건지 뿜어낸 연기가 하필 자신에게 몰려왔다.
사내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우더니 다리가 아픈 듯 근처에 있는 의자 한 개를 끌어다 앉았다.
“AK 두 자루와 미화 1,500달러가 발견됐습니다.”
“별 것 없는데요.”
집안을 수색하던 사내들이 하나둘 담배를 피우는 남자 앞으로 다가왔다.
“케인만 남고 나머지는 외곽 경계!”
사내들이 일제히 집밖으로 사라졌고 AK와 미화 1,500달러를 찾아낸 케인만 남았다.
툭!
사내는 담배꽁초를 마루바닥에 버리고 신발로 눌러 껐다.
신발을 바라보던 사내의 눈이 빛났다.
눈에 익은 전투화다.
바로 미군들이 신는 벨빌이었다.
의자에 앉은 오민철은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 하시오. 만약 거짓말을 하거나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면 그땐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오.”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 했다.
적을 잡아 취조하는 권총수를 보며 느낀 건 너무나 멋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 적을 사로잡아 조사할 기회가 생긴다면 상대가 꼼짝 못하도록 예리하게 다루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담배도 그냥 피운 것이 아니었다.
권총수가 하던 모습 그대로를 따라 시늉을 낸 것이다.
‘만약 거짓말을 하거나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면 그땐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오’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해 냈던 말인데 막상 뱉어놓고 보니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스로 굉장히 차가운 말이라고 생각 했는데 시장골목에서 힘없는 상인들에게 눈을 부릅뜨며 설치는 동네 불량배들이 내뱉는 그런 말투였다.
‘아줌마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벌교 장에 갔다가 보호비 명목으로 어느 아줌마를 향해 뱉던 덩치 큰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행스러운 건 케인 말고는 아무도 자신의 조금전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젠장!’
오민철은 투덜거리며 신경질적으로 가래침을 뱉었다.
카악!
더욱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요?”
사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름이 뭐냐니까? 당신 하나파파 우두머리 아타야 맞지?”
“하나파파는 뭐고 아타야는 또 누구요?”
“완전히 알고 왔으니까 거짓말 할 생각 않는게 좋아. 너 아탸야 맞지. 아탸야지?”
“난 모함마디란 사람이오. 이곳에서 대대로 밀 농사를 하지요.”
“인간적으로 대우 해주려고 했더니 자식이.”
오민철은 큰 주먹을 들었다가 멈춘다.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깜짝 놀라며 케인의 눈치를 살폈다.
사람을 때리는데 어려울 일은 없다.
학창시절부터 숱하게 싸워 왔고 성인이 되어서도 누가 시비를 걸어오면 피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경찰서 출입 경험도 있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폭력이 있었다.
그건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을 향한 폭력이었다.
싸우다 보면 맞지 않기 위해 때리고, 이기기 위해 공격하지만 지금처럼 포로가 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태권도를 가르쳐 주던 사범은 항상 말했다.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야 말로 가장 비겁한 짓이다’
오민철은 난감했다.
항상 권총수가 닦달하는 것만 봐왔다.
그렇다고 권총수가 저항할 힘도 없는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비겁한 놈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상대는 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두들겨 패고 고문해서라도 승자가 원하는 정보나 이득을 얻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하려니 가슴이 뛰면서 주먹에 힘이 빠졌다.
707시절 북한군을 만나면 망설이지 않고 목을 따기 위한 훈련을 했었다.
정말로 당시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평양으로 들어가 완전히 난장판을 만들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압송해!”
케인이 아타야의 양팔을 뒤로 돌려 꽁꽁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