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09화 (209/651)

제209화: 그들의 두목(2)

의자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던 주인이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양고기 5킬로만 주시오. 숯불에 구워 먹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갈비 쪽으로 드리지요.”

사내는 커다란 냉장고 문을 열고 고깃덩어리를 꺼냈는데 권총수가 말했다.

“화장실 좀 사용할 수 있겠소?”

주인은 멈칫 하며 냉장고 안으로 반쯤 밀어 넣었던 머리를 빼고 돌아보았다.

“급해서!”

“그러시오.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당 끝 왼쪽에 있습니다.”

권총수는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짓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좁은 가게를 지나자 자갈돌이 가득 깔린 마당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아프카니스탄 특유의 벽돌집이 있었는데 마루가 보였고 안으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

1층 마루에는 나이든 할머니가 부브카를 뒤집어 쓴 채 마당을 가로질러가는 권총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탁!

화장실 쪽으로 가는 듯 하던 권총수의 손이 자연스럽게 한 번 튕겨진다.

수혈이 제압된 노인은 눈을 뜬 채로 잠에 빠졌다.

슥!

권총수는 재빨리 방향을 바꿔 마루로 들어가 2층 나무 계단을 단번에 올라갔다.

오른쪽으로 방이 있는데 굳게 닫혀 있었다.

들어올 때 봤던 가게 바로 위 창문이 있는 방일 것이다.

들어가면 안 된다.

들어가면 싸움이 일어나면서 모든 건 여기서 종료된다.

권총수는 귀를 바짝 세웠고 안으로부터 굵직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 나오고 있었다.

“모두 열두 명이오.”

“총기 문제는 어찌됐소?”

“다행히 이미 확보 되었소. 무자헤딘쪽에서 스무 자루를 구입했지요.”

무자헤딘이라는 말에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무자헤딘과 탈레반은 같은 이슬람근본주의 무장테러조직이지만 분명히 다른 집단이다.

탈레반이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부에 국한되어 활동한다면 무자헤딘은 인도,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이집트를 포함해 일부 아프리카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물론 한 명의 우두머리 밑에 움직이는 한 집단은 아니다.

무자헤딘으로 불리지만 모두 네 개의 큰 조직으로 나눠져 있다.

‘알 타이파 알 만수라 계열’

‘카트비얀 안사르 알 타우히드 왈 순나 파’

‘사라이 알 지하드 그룹’

‘알 구라바 여단’

이중 가장 강력한 집단이 ‘알 타이파 알 만수라 계열’이다.

우두머리 알 타이파 알 만수라(이하, 알 만수라)계열은 인도와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알 만수라의 얼굴은 아직 전혀 노출되고 있지 않다.

단지 인도출신이라는 것과 이슬람의 모든 여성에게 부르카를 강제로 입게 하고, 입지 않으면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자 혼자 밖에 나가는 것도 금지하고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말을 걸거나 웃어도 처벌을 시켜야 한다는 그야말로 끝장의 사내였다.

알 만수라는 다할풀 수도원의 아롱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알 만수라측에서 큰 거부 없이 거래에 임했소.”

“AN-94 스무 정이면 총기는 됐고.”

“RPG도 대기중입니다.”

“그럼 모든 준비는 끝난 건가. 저녁에 조장들끼리 다시 한 번 모여 최종 점검을 하고 이상 없으면 작전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고 하겠소.”

회의가 끝난 듯 옷자락 소리들이 들려왔다.

권총수는 물러났다.

방을 나와 시켜 놓은 양고기를 들고 정육점을 문을 나섰다.

그날 밤 카이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인코프 지사장 버홀터였는데 그로부터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내일 자비훌라 무자히드가 라슈카르가를 방문한다는군.”

“자비훌라 무자히드?”

“공식적인 텔레반 대변인이지. 미국과 막후협상도 그가 주도하고 있네.”

“미국과 협상이라면?”

권총수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미국과 협상을 알라의 신성을 짓밟은 행위이자 아프카니스탄을 팔아먹는 매국행위라고 극렬하게 반대하는 탈레반의 강경파들이 적지 않다.

“무하마드 라술과?”

“그렇다네.”

무하마드 라술은 이곳 라슈카르가 뿐만 아니라 헬만드주에서 가장 강력한 탈레반의 지도자다.

그는 줄곧 미국과 협상을 반대해온 강경인물인데 대변인 무자히드가 온다는 것은 그와 대면한다는 뜻이다.

그 틈을 노리고 하나파파에서 무자히드를 공격하여 없앤다면 탈레반 전체에 엄청난 파도가 칠 것이 뻔했다.

무자히드는 협상을 하기 위해 온 동료를 죽인 나쁜 사람이 될 것이고 3대 탈레반 지도자인 ‘히바툴라 아쿤자다드’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어쨌든 가장 타격을 입은 곳은 어딜까.

“미국이군요.”

“그렇지. 탈레반 강경파들은 좋아 할 것이고 미국은 목전까지 다가온 평화 협상이 단번에 날아갔으니 골치 아프지.”

전화를 끊고 난 권총수는 담배를 빼어 물었다.

“무슨 전화야? 버홀터 지사장 같은데?”

오민철이 커피를 마시며 다가왔다.

권총수는 통화 내용을 말해 주었다.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도대체 평화를 거절하는 이유가 뭐야? 아프카니스탄에서 석유가 난다거나 아니면 금덩이가 쏟아져 미국이 챙기려는 심보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같은 동맹국 지위로만 남겠다는데 왜 반대를 하느냐고?”

권총수는 창문을 열었다.

“정치인들 말 중 가장 극악한 거짓말이 뭔 줄 알아.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거지. 말짱 개소리야.”

권총수가 가는 웃음을 지었다.

그때 마당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체구 당당한 사내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맨 마지막에 들어선 사람은 유일한 해병대 출신 케인이었다.

“데려왔습니다.”

권총수는 사내들과 악수를 나눴다.

“어서 오시오.”

“환영합니다.”

권총수가 다섯 명의 사내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고, 일행은 의자에 앉았다.

케인이 차근 차근 사내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들 다섯 명은 앞서 케인을 비롯해 실턴과 픽퍼드 라이스에 이어 텍사스 훈련장에서 온 두 번째 신참들이었다.

둘은 백인이었고 둘은 히스패닉, 한 명은 흑인이다.

히스패닉과 백인들 모두 국적은 미국이지만 흑인만 이스라엘 출신으로 이름이 배나윤이었다.

“왜 웃으십니까?”

배나윤이 권총수를 향해 물었다.

권총수는 웃음을 그치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일부러 웃었던 건 아니야. 사실 난 이게 많이 비었거든, 그래서 이스라엘 하면 유대민족을 떠올리지. 영화 십계에 보면 흑인이 한 명도 없더라고.”

권총수는 자신의 머릿속에 든 것이 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유대인중 흑인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해서 말이야.”

그제서야 배나윤이 소리내어 웃었다.

“난 또, 흑인이라고 인종차별 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에 흑인들 많습니다. 유대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게 질서를 지켜가며 살면 영주권도 주고 자국민으로 받아줍니다. 문을 활짝 열고 세계 어디서든 조건만 맞으면 이스라엘 국민이 되는 거죠.”

“한 가지 더, 신상자료에 사이렛 메트칼(Sayeret Matkar:이스라엘 특수부대)을 전역했던데?”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사리엣 메트칼은 결코 국가에서 배운 기술을 민간에서 돈벌이를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지.”

“누가 그런 재수 없는 말을 한단 말입니까? 사실 나도 그렇게 떠도는 얘길 들었는데 한마디로 개소립니다. 범죄가 아닌 이상 먹고살기 위해 군대에서 배운 지식을 써먹든 말든 누구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오케이.”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2층에서 실턴이 내려왔다.

“준비 끝났습니다.”

“가지!”

일행은 모두 2층 회의실로 올라갔다.

모인 사람은 권총수를 포함해 모두 열한 명이었다.

실턴은 커다란 텔레비전 화면에 노트북을 연결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탁!

엔터를 치자 텔레비전 대형 화면에 허름한 거리가 나타났다.

권총수는 민속 공예품을 파는 크고 작은 상가들이 몰려 있는 라우포 거리라는 것을 알았다.

거리라기보다는 조그만 골목이었는데 좌우로 가게들이 즐비했고 사람들이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뒤쪽 보이십니까? 지붕이 뾰족하게 올라온 집?”

팀원들로부터 그다지 반응이 없자 실턴은 직접 텔레비전 화면으로 걸어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집!”

“누가 사는 집이지?”

실턴은 대답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여기서 내일 극비 만남이 이뤄진다는 것만 알뿐.”

“괜찮아. 계속 해.”

권총수의 이해에 용기를 낸 듯 실턴의 목소리가 커졌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차에서 내려가야 합니다. 좁은 골목이기 때문에 일체 차량통행은 불가능하죠.”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만약(테러)을 대비한 장소라고 보았다.

위험한 곳에서 어떤 중요한 만남을 가지려면 회담의 결과보다는 장소선택을 중시한다.

회담을 하기도 전에 적의 공격을 받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런면에서 적으로부터의 공격이 용이치 않는 괜찮은 장소라고 보았다.

“무장 상태는 어때?”

델타포스 출신 라이스가 물었다.

“외부에서는 총기 한 자루 볼 수가 없었어. 내일 중요한 회담이 열리는 장소라는 걸 근처 시장사람들도 전혀 모르더라고.”

“다른 건 몰라도 무장 상태는 알아야 하는 것 아냐.”

라이스는 권총수의 눈치를 살폈다.

권총수는 어떤 호응도 하지 않았다.

리더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누군가를 지적하거나 단점을 들춰내는 행동과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골목은 사람들로 붐볐다.

형형색색의 양탄자와, 아프카니스탄 테페푸롤지역에서 출토되어 이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재현 생산되는 꽃무늬 가득 찬 밥그릇과 대접(盃)이 현란했다.

아프카니스탄의 꽃무늬(花樣)식기는 유럽에서도 꽤 인기가 있다.

또한 산악지역인 탓에 일찍부터 가죽 신발이 유행했는데 기원전부터 오늘날까지의 모든 변천과정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한 신발과 민속 공예품들이 즐비했다.

복잡한 시장 골목에 한명의 소년이 나타났다.

대략 십여 세 정도로 보였는데 아이들이 즐겨 입는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는 골목 좌우로 늘어선 가게들의 번지수와 간판을 살피며 계속 걸어가더니 한 곳에서 멈췄다.

담장이 높이 쌓아 올라간 집이었는데 폭이 1미터가 조금 넘을 것 같은 검정색 대문이 굳게 잠겨 있다.

쾅쾅쾅!

소년은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재차 힘차게 두드리며 외쳐 불렀다.

“아저씨! 아저씨!”

덜컹!

하는 소리가 들리며 굳게 잠겨 있던 문이 열렸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삼십 초반 가량의 사내가 주변을 스윽 훑고 나서 소년에게 말했다.

“뭐냐?”

“이거요.”

소년은 사내에게 접혀진 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어느 아저씨가 가져다주래요. 안녕히 계세요.”

“잠깐! 기다려.”

사내는 소년을 불러 세워놓고서 재빨리 쪽지를 펼쳤다.

‘공격이 있을 것이오’

간단한 글귀였다.

안색이 변한 사내가 물었다.

“누가 주더냐? 어떻게 우리 집은 알았고?”

“그 아저씨가 11번지, 한쪽 대문이 있는 집에 가져다주라고 했어요. 지붕도 뾰족하잖아요.”

소년의 말은 맞다.

누군가 정확히 가르쳐준걸 보면 잘못 찾아온 심부름은 아니었다.

사내는 다시 한 번 북적이는 골목을 살피더니 소년을 집안으로 끌어 당겼다.

쾅!

문이 세차게 닫히고 사내는 소년을 데리고 안으로 걸어갔다.

작은 복도처럼 생긴 통로를 지나자 좁은 마당이 나타났다.

사내는 마당에 걸린 빨래들을 헤치며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하칸, 하칸 잠깐 나와보게.”

덜컹!

닫힌 문이 열리고 비슷한 또래의 사내가 반팔 차림으로 나타났다.

하칸이라는 사내가 소년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아르다?”

소년이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이것 좀 읽어 보게.”

아르다는 소년에게서 건네받았던 쪽지를 하칸에게 주었다.

쪽지를 받아 살핀 하칸은 이게 무슨 말이냐는 듯 아르다를 바라보았다.

하칸이 신발을 끌고 내려오더니 소년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뭐냐?”

“뷜렌트요.”

“뷜렌트 이 종이를 누구에게 받았느냐?”

“모르는 아저씨요.”

“날 그 아저씨 만났던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겠니?”

“네!”

하칸은 고개를 끄덕인 뷜렌트의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고맙구나. 앞장서거라.”

뷜렌트가 앞장서서 걸어갈 때 하칸은 재빨리 허리에 숨겨둔 권총을 뽑아 탄창 멈치를 눌러 끼워진 탄창을 꺼냈다.

푸욱!

손가락으로 탄창에 들어 있는 총알을 눌러보더니 가득 찼음을 확인하고 다시 끼워 넣었다.

탁!

왼손으로 힘껏 쳐서 올린 뒤 슬라이드를 당겼다 전진 시키며 말했다.

“자넨 여기서 기다리게.”

“그러지!”

하칸은 재빨리 열린 문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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