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그들의 두목(1)
불과 보름동안 동안 다인코프에서 갈아엎은 면적만 30헥타르가 조금 못되었다.
일사천리였다.
타협은 없고 거절하면 이틀의 여유기간을 제공한 뒤 곧바로 들이닥쳐 꽃이 피기 시작하는 양귀비 밭을 밀어 버린 것이다.
라슈카르가 경찰이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이 지역 헬만드주에서 재배하는 양귀비의 약 20프로가 지난 보름 사이에 사라졌다고 했다.
생아편 양으로 하면 약 2,000 킬로그램 정도의 양이다.
그걸 헤로인으로 제조하여 판매 했을 경우 5억 달러 이상의 가치라고 했다.
* * *
어둠속에서 한 통의 지령이 떨어졌다.
‘사막의 흑새를 체포하거나 죽인 사람에게는 미화 백만 달러를 지불하겠다.’
살인의 자격은 없었다.
누구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막의 흑새를 없애기만 한다면 백만 달러를 준다는 얘기였다.
아프카니스탄에서도 가장 위험한 땅이라는 헬만드주, 그것도 주도인 라슈카르가의 공기가 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 낮의 라슈카르가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집트의 카이로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재래시장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소꿉장난 하듯 조금씩 가지고 나온 과일과 농산물, 옷가지들을 정성스럽게 펼쳐놓았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버젓이 각종 권총과 소총들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밀매된 물건이 아닌 인근 대장간에서 수공업으로 그럴싸하게 만든 조악한 물건이었다.
몇 발까지가 한계성능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구경하고 사가기도 했는데 경찰이 지나가면서도 내버려 두었다.
사내는 사방 1미터 정도 되는 낡은 양탄자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마른 옥수수 20여개를 쌓아 놓았다.
한 개에 ‘10아프가니(Afghani:한화 200원)’라고 종이에 가격표를 써놓았다.
“저놈이 자말인가보지.”
옥수수를 쌓아 놓은 좌판 앞을 지나가는 두 명의 행인이 있었다.
현지인처럼 헐렁한 연 보라빛 시르왈(Sirwal:우리 개량한복바지 비슷)을 입었고 윗도리는 손목까지 내려온 낡은 양복상의에 머리에는 검정색 타키야를 썼다.
두 사내는 앉아 있는 자말이라는 옥수수 상인을 흘긋 살핀 뒤 맞은편 샤슬릭(양꼬치)가게로 들어갔다.
감자와 양 꼬치를 중간중간 끼워 놓고 기름에 튀겨 붉은 소스를 묻혀 파는데 한 개당 가격이 5아프가니였다.
“꼬치 두 개 주세요.”
두 사내는 노상에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에 앉았다.
스르륵!
소스를 듬뿍 묻혀 건네주는 꼬치를 받아든 두 사내는 배가 고팠던 듯 한 입에 빼어 물었다.
서로가 불만인 듯 목소리가 높아진다.
팔려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했고, 사려는 사람은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 하다보니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한쪽의 지나친 요구는 거래가 충돌로 방향을 틀 수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어느 정도 뜨겁게 달궈지면 양쪽은 귀신같이 한숨을 돌리며 분위기를 가라 앉혔다가 다시 흥정에 들어간다.
밀고 당기는 기술, 이름하여 밀당이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 누군가 삶은 거래라고 했다.
서로가 양보하고 타협하여 의견을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스카이 차량의 운전자였던 알자삼은 그러지를 못했다.
그는 현명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깨달았어야 했다.
지나치게 자기 쪽으로 거래를 끌고 가려다 분근착골이라는 고문까지 당했다.
알자삼은 옥수수를 쌓아 놓고 앉아 있는 사내가 텔레반의 행동대원이라고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분근착골은 알자삼의 입을 상당히 열었다.
자신이 속한 단체를 이끄는 우두머리는 아타야란 사내였다.
알자삼 자신도 얼굴과 이름만 알 뿐 가족 관계라든가 출신지에 대해서는 깜깜하다고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아타야의 주무대는 산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도시로 내려왔는데, 돈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결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문제는 열악한 자금난으로 굶주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탈레반 중에는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뛰어든 이가 적지 않았다.
탈레반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편은 아니다.
전쟁이 오래되면서부터 수많은 정치적 종교적 노선이 생겨났고 분열되고 갈라졌다.
유일하게 동일한 목표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외세배격이다.
그들이 말하는 외세는 미국을 의미했다.
미군이 대부분 철수하고 그 자리를 전쟁 청부업자들이 차지했지만 여전히 단호했다.
‘그들도 미국이다’
행동대원은 작전에 투입되는 요원을 말한다.
방아쇠를 당기는 탈레반도 행동대원이고 알자삼처럼 일반인 신분으로 탈레반의 일에 적극 협력하는 것도 행동대원인 것이다.
다만 행동대원들은 내려오는 명령과 지시만 따를 뿐 누가 누군지, 왜 그런 일을 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가 아는 건 자말이란 옥수수 파는 사내와 자신이 지금까지 여러 가지 공격과 테러에 동원되었다는 것이었다.
자말은 알자삼이 알고 있는 유일한 조직원이다.
활동하다 위험에 빠질 때가 있으면, 그럴 때 가장 먼저 서로를 찾는다.
조직에서 두 명씩 그렇게 짝을 지어준다.
자말 역시 농사를 짓고 사는 농민이었다.
그러다 비그람 미군기지의 동정이나 아니면 아카데미 용병, 다인코프 용병들 움직임이 체크되면 조직에 연락을 하고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 출동하는 것이다.
“의외로 사가는 사람이 많은데.”
무슬림으로 변장한 두 사람은 권총수와 오민철이었다.
팔릴 것 같지 않던 옥수수는 하나둘 없어지기 시작했다.
비쩍 마른 옥수수를 찧어 가루로 만든 뒤 뜨거운 물에 붓고 끓인다.
옥수수 가루가 익어가면서 물로 인해 불어나는데 그렇게 하면 두 명의 식구가 한 끼를 해결 할 수 있다.
즉 옥수수 두 개면 4인 가족 한 끼 식사가 해결 되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는 왜 정치가 부패 하는 것일까? 부패하기 때문에 가난한 것일까.”
오민철이 혼자 묻고 혼자 답했다.
첫 째 둘 째 날은 아무도 만나거나 이상한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둘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모습으로 변장해가며 자말이란 사내의 근처를 서성거렸다.
사흘 째 다시 날이 밝았고 두 사람은 시장을 찾았다.
한 사내가 발목 근처까지 내려오는 토브(긴 상의)와 브라운 계열의 헐렁한 바지를 입고서 자말의 옥수수를 고르고 있었다.
옥수수 크기는 거의 비슷했지만 사내는 조금이라도 더 큰 것을 고르겠다는 듯 눈을 빛내며 살핀다.
권총수의 모든 청각은 자말과 사내의 대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시끄러운 시장이지만 양의공심술(兩意功心術)을 펼치면 자신이 원하는 소리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둘은 물건 거래하는 말 이외의 전혀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사내는 15아프가니에 옥수수 두 개를 원했고 자말은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양의공심술을 거두려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팟!
먹는 옥수수는 눈으로 살피고 말로 흥정해야 한다.
사지도 않으면서 여러 사람이 만지게 되면 떼가 묻고 더러워진다.
지난 며칠 지켜본 결과 자말은 절대 만져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등을 돌리고 앉은 사내의 오른팔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글씨로 대화를 주고받는 모양인데.”
그제서야 오민철의 시선이 사내의 오른팔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눈이 커졌다.
“진짜 같다.”
등을 돌리고 앉아 바닥에 글씨를 쓰던 사내가 일어났는데 옥수수 두 개를 종이봉지에 담았다.
“형님은 여기서 자말을 지켜봐. 난 저놈을 따라가 볼 테니까.”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사내를 따르기 시작했다.
사내는 시장을 벗어났는데 수시로 돌아보며 미행이 있는지를 살폈다.
시장을 벗어나자 조용한 도로가 나타났다.
100여 미터를 따라 걷자 삼층짜리 학교가 나타났는데 학교 앞이 엉망이었다.
두꺼운 철문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고 담벼락 일부가 무너졌다.
또한 아스팔트가 깔린 지면이 크게 패여 있었다.
경찰 두 명이 통제를 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학교 앞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학교 앞을 지난 사내는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졌다.
차량 두 대가 간신히 비킬 정도의 골목길이었는데 사내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골목을 20여 미터 걸어가던 사내는 갑자기 오른쪽 굳게 닫힌 대문을 노크했다.
안에서 문이 열리고 사내가 들어서자 꽝 소리를 내며 닫혔다.
권총수는 지나가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대문 앞으로 지나면서 내공을 끌어 올렸다.
“잘 전달했나?”
담벼락을 통해 집안으로부터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단히 준비하라고 일렀습니다.”
“조금도 빈틈이 생겨서는 안 되네. 이번 일은 정말 중요하지.”
주위 눈을 의식해 대문을 지나친 권총수는 보는 사람이 없자 단번에 지붕위로 올라갔다.
지붕이 기역자다.
그건 집이 기역자라는 뜻이었는데 대문을 들어서자 조그만 마당이 있고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두 사람은 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자말을 만나 옥수수 두 개를 구입한 사내와 옷차림이 비교적 깨끗한 마흔 초반의 사내였다.
권총수는 내공을 집중하여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마흔 가량의 사내가 지위가 높은 듯 알겠네, 그러지, 이렇게 하는게 어떤가 하며 말을 낮추었다.
반면 옥수수를 가져온 사내는 깍듯했다.
또한 대화 중에 두 사람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옥수수 두 개를 가져온 사내가 슐라이마니였고 이 집 주인으로 보이는 마흔 초반의 사내 이름은 자베르였다.
파팟!
한참 얘기를 엿듣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아타야!’
아타야께서 기대가 크다네 하는 말소리를 들었다.
아타야란 이름은 굉장한 무게를 갖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혹시나 하며 더 엿들었으나 새로운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권총수는 몸을 날려 지붕을 내려왔다.
그때 아래 주머니가 시끄러워졌는데 핸드폰으로 문자가 온 듯 싶었다.
지붕을 내려온 권총수는 자연스럽게 걸으며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빨리 올 것, 발흐 2번가 양고기 정육점 앞’
문자를 보낸 사람은 오민철이었다.
발흐 2번가에 도요다 SUV 한 대가 멈췄다.
차에는 권총수가 앉아 있었는데 맞은편 양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거리를 살폈다.
팟!
정육점을 약간 지나쳐 회색 랭글러 한 대가 멈춰 있었는데 오민철의 차다.
며칠 전 둘 모두 차를 바꿨다.
하나의 차종만 지나치게 오래 타다 보면 자칫 탈레반의 레이더 망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판단이었다.
전화가 걸려왔는데 오민철이 핸드폰을 귀에 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딘데?”
“가게 맞은편, 무슨 일이야?”
“그 자식이 여기 정육점으로 들어갔거든. 자말 말이야.”
“그래서?”
“너 놀라지마. 자말이 들어가고 20분 정도 지나 십여 명의 사람들이 정육점으로 몰려왔어.”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고기 사려는 손님들 아냐?”
“내가 고기 살 손님, 안 살 손님 모를까봐. 모두 남자들이었고 주위를 경계하는 표정들이었다고.”
딸칵!
권총수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인 뒤 핸드폰으로 오민철과 몇 마디 더 나눴다.
“알았어!”
권총수는 차문을 다시 열고 운전석 아래에 숨겨 놓은 권총을 꺼냈다.
이어 의자 측면에서 소음기를 찾아 돌려 끼운다.
권총수는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갔다.
50미터 정도 올라가면 횡단보도가 있지만 멀리 신호등이 적색이었고 10여명의 현지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건너자 슬며시 합세한 것이다.
차에 앉은 오민철이 조심하라고 검지를 들어 보였다.
권총수는 정육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