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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07화 (207/651)

제207화: 영혼이 상쾌해지는 꽃(2)

권총수는 재빨리 무전기 송수신기를 쥐고 말했다.

“레드 투 뭔가?”

“지원을 요청한다. 포위됐다. 지원 바란다. 비잔뜨리 계곡을 넘어가는 지점이다. 반복한다. 적에게 포위됐다.”

“알았다 이상.”

재빨리 송수신기를 놓고 외쳤다.

“승차!”

케인과 실턴이 뛰어올랐고 차는 출발했다.

“비잔뜨리 계곡이야.”

권총수는 재빨리 서랍에 넣어둔 GPS 수신기를 꺼내 정확한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위성항법시스템은 미군으로부터 지원받는다.

스스스!

화면이 정확하게 고정되지 않고 흔들린다.

산악 지역인데다 자동차로 움직이다 보니 신호가 잡혔다 말았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촤락!

이번에는 군용작전지도를 꺼내 펼쳤다.

“여기군! 서쪽으로 10킬로 정도”

부우웅!

도로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차는 최대한 속도를 올렸다.

“레드 투, 여긴 레드원!”

“레드 투 말하라 레드원!”

“적의 규모는 어떻게 되나?”

“알 수 없다. 대략 20여명으로 추산하며 PKM 두 정이 보인다.”

“탈레반인가?”

“그것까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탁!

그때 누군가 송수신기를 가로채는 것 같더니 오민철의 외침이 들렸다.

“어디야. 실탄이 아슬아슬해.”

기본 120발에 예비용 30발까지 더해 150발씩 지급했다.

“우라질, 갑자기 나타나 갈겨대니 대책이 없잖아. 빨리 좀 와.”

“기다려!”

권총수의 표정이 굳었다.

웬만해서는 죽는 소리 않는 오민철이다.

사태가 교신내용보다 훨씬 위험해 보인다.

아찔한 길이었다.

오른쪽 길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이고 왼쪽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산들이 뻗어 있었다.

그렇다고 조심조심 거북이 기어가듯 할 수는 없었다.

부우웅!

엔진이 곧 터질 듯 차량은 가파른 절벽 길을 달렸다.

훈련소에서 사격 훈련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운전이다.

운전이야 말로 경호원이 지녀야 할 최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남미의 부호들과 중동의 재벌들중 상당수가 차를 타고가다 피격당해 숨졌다.

보안업계 관계자들은 운전자가 조금만 더 유능했다면 피해를 좀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공격을 받은 차는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직진.

운전자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다고 앞에 누군가 도움을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달린다는 건 적과 멀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권총수는 몇 번 따로 움직여 볼까 했다.

반박귀진에 오른 내공 수위면 평지가 아닌 산길에서는 차량보다 더 빠를 수 있다.

하지만 지형이 너무 험했다.

수직 절벽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낭떠러지는 강호 절정고수이지만 무척 난 코스였다.

에스(S)자로 이어진 커브와 커브사이의 거리가 백 미터가 훌쩍 넘는다.

최대한 내공을 끌어 올린다면 한 번 도약에 40미터 정도는 날아갈 수 있다.

바로 그 다음이 문제였다.

비행술을 펼칠 수 있다면 100미터 정도는 곧장 날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40미터를 지나면 몸은 떨어지게 되어 있고 뭔가를 딛고 다시 떠올라야 한다.

하지만 굽이와 굽이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자칫 추락할 수도 있다.

물론 발 밑에 아무것이 없어도 곧장 떨어져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딱딱한 물체를 딛고 도약한 것만큼은 못해도 강한 내공을 이용해 재차 튕겨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날아가는 거리는 훨씬 짧아지고 속도 역시 느려진다.

이때 누군가 작정하고 방아쇠를 당긴다면 저격당하기 매우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호신강기 역시 솟구치는데 쏟는 내공으로 인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조약파(海鳥躍波)라는 신법이 있다.

물새가 파도를 차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데서 창안한 신법인데 분명한 건 물이라도 밟을 곳이 있다.

부아아아!

마침내 차가 고개 정상에 올랐다.

“저기!”

실턴이 저 멀리 맞은편을 가리켰다.

거대한 계곡이 가로지른 맞은편 산중턱에 20여명의 사람들이 산 아래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직선거리로는 700미터 정도 되어 보였는데 권총수는 차를 세우도록 했다.

“두 사람은 신속히 내려가 합류하도록!”

차량은 다시 출발했고 권총수는 혹시나 하고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전장에서 지원은 시간 싸움이다.

자신은 지금 지휘관이다.

어떤 피해든 발생하면 책임자인 자신이 져야 한다.

권총수는 곧장 바위 사이에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조준경도 없는 M4로 저격하기에는 다소 먼 거리이지만 과감하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설혹 맞추지는 못해도 지원병력이 나타났다는 건 심리적으로 적들을 위축 시킬 것이다.

길게 호흡을 조절한 뒤 총을 오른쪽에 견착하고 가늠자와 가늠쇠를 정렬 시켰다.

보통의 병사들 눈에는 사람은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가늠자와 가늠쇠가 만든 동그라미 속에 집어넣으면 희뿌옇게 시야가 변한다.

즉 700미터의 거리를 조준하여 사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권총수는 호흡을 가다듬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안력이 강해지면서 흔들리던 사람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저격은 적이 가장 타격을 받게 될 대상부터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PKM을 갖고 있는 수염 가득한 탈레반을 찾아 총구가 멈췄다.

오랜만에 원거리 표적을 노리고 있으니 가슴이 뛰었다.

타앙!

총소리가 계곡을 울리며 하늘 높이 울렸다.

퍽!

육안으로 PKM을 잡고 있는 탈레반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이 보인다.

탈레반들이 어디서 날아온 총알인지 찾으려는 듯 주위를 살핀다.

하지만 맞은편 고개에서 노리고 있다고는 아직 생각하지 못한 듯 했다.

스으으!

재빨리 왼쪽 끝에 있는 또 한 명의 PKM사수를 노렸다.

동료가 죽자 목을 움츠린 채 전방을 살피지만 권총수가 보일 리는 없다.

탕!

또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PKM을 잡고 있던 탈레반의 머리 일부가 날아가 버렸다.

“캡틴이다.”

오민철은 기관총 사수들이 나동그라지는 걸 보고 권총수가 왔다는 걸 알아 차렸다.

권총수가 왔다는 건 픽퍼드와 라이스에게 굉장한 용기를 주었다.

전설 같은 사내, 이곳에 오기 전 텍사스 다인코프 훈련장 교관들이 입에 침을 바르며 떠들었다.

너무 신비스럽고 어떤 부분에서는 직접 보기 전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아프카니스탄에서도 헬만드주는 걸어 들어갔다가 항상 관에 담겨 나온다는 말이 돌 만큼 기피하는 곳이다.

그러나 재수 없음을 탓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막의 흑새를 만난다는 생각에 약간은 흥분하기도 했다.

타앙!

또 다시 총성이 울리며 머리에 타키야로 불리는 검정색 둥근 모자를 쓰고 있는 사내가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민철은 그를 탈레반의 우두머리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권총수 역시 저격수답게 한 번에 간파한 모양이다.

바로그때였다. 탈레반들이 있는 왼쪽으로부터 M4소리가 들려오면서 몇 명이 나동그라졌다.

오로지 계곡으로만 쏟아 붓던 AK총구가 측면으로 돌아간다.

“치고 올라가!”

오민철은 케인과 실턴이 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두두두두!

드르륵!

탈레반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총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치는 적을 소총으로 저격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으므로 숫적 열세인 이쪽에서 모른 체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슈우욱!

총을 오른손에 쥐고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수십여 미터를 날아 사라졌다.

오민철의 풍부한 전쟁경험이 위기를 넘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인원과 장비 부족일 때는 적을 이기겠다는 생각 보다는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지형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오민철이 방어진지로 잡은 장소는 매우 적절했다.

계곡이기 때문에 숨을 곳은 많았다.

하지만 적이 계곡 위쪽, 즉 머리 위에서 공격을 하는 꼴이기 때문에 언덕이나 흙으로 막힌 엄폐물은 좋지 않았다.

위에서 내리 꽂기 때문에 총격전이 길어지다 보면 흙이 패이면서 총알이 깊이 들어올 위험이 있다.

그래서 오민철은 바위를 택했고, 더욱 절묘한 건 셋이 한곳에 모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5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적은 세 방향을 공격해야 하고 세 방향에서 공격을 받아야 하는 꼴이 됐다.

“무전기 안 터지면 어떡하나 정말 마음 졸였는데.”

오민철이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권총수는 곧장 비잔뜨리 계곡을 빠져 나가더니 오민철 일행이 지나왔던 길을 거슬렀다.

계곡을 빠져 나가자 주변으로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펼쳐졌고 많은 양귀비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고개 하나를 넘었는데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다.

총소리를 들은 듯 적지 않은 농민들이 동네 앞으로 나와 있었으며 걸어오는 권총수 일행을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죽었어야 할 인간들이 살아 있다 이거지.”

오민철이 가래침을 뱉었다.

“저 늙은이가 촌장이야.”

오민철이 검정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권총수는 굳은 얼굴로 다가갔다

“앗 쌀라 말라이쿰(평화가 당신과 함께)”

합장을 하고 입을 열었다.

“저 위쪽에 있는 양귀비 밭이 마을 사람들 소유라고 들었습니다.”

촌장은 흘끗 옆에 있는 오민철을 한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것이 맞습니다.”

마을사람들 시선이 모두 집중해 있다.

권총수와 오민철을 제외한 나머지 용병들은 아차하면 방아쇠를 당기겠다는 듯 총구를 세우고 있었다.

“우리 직원이 이틀 안으로 갈아엎어야 한다고 전달했는데 들으셨습니까?”

“들었지요. 나뿐만이 아닌 우리 마을 사람 모두가 알고 있소.”

“그런데 비잔뜨리 계곡을 지나가던 중 탈레반의 매복공격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이곳은 작전 지역이 아닙니다. 즉 탈레반 출현 지역이 아니라는 거죠. 바그람에 주둔하고 있는 미공군기지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해주었죠.”

“아프카니스탄에 이교도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탈레반뿐인 줄 아시오. 우리에게 총이 없어서 그렇지 총만 쥐어준다면 당신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것이오.”

권총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이 마을과 조금전 우릴 공격한 탈레반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우린 모르는 일이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두 대의 차량이 오고 있었는데 풀을 벨 수 있는 콘디셔너를 설치한 트렉터였다.

‘라슈카르가 시청’이라고 쓰인 흰색 깃발을 달고 왔는데 오면서 권총수가 전화로 부른 것이다.

잠시 후 트렉터가 동네 앞에서 멈추고 터번을 두른 시청 직원 2명이 내렸다.

“고개를 넘어가면 양귀비 밭이 있소. 오늘 내에 전부 갈아엎으시오.”

다인코프에서 양귀비 재배지를 찾으면 시청에서 갈아엎는다.

처음에는 모든 단속을 공무원들에게 일임했고 다인코프는 나중 보고만 받는 형태로 진행 되었다.

하지만 부패한 공무원들이 양귀비 재배 농민으로부터 돈을 받고 갈아엎었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다인코프가 직접 나선 것이다.

“네 사람, 따라가서 작업을 지휘 감독하도록.”

“옛썰!”

새로 온 네 명의 팀원들은 곧장 무장을 하고 차에 올라 사라졌다.

트랙터와 팀원들이 사라지고 권총수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무전기를 꺼내 말했다.

“비무장한 마을 사람들에게 총기를 사용하면 안돼. 그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어.”

권총수는 다시한번 주의를 주고 송수신기를 내려놓았다.

부우웅!

오민철이 운전하는 SUV가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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