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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06화 (206/651)

제206화: 영혼이 상쾌해지는 꽃(1)

권총수의 움직임은 빨랐다.

순식간에 숲을 헤치고 바위 뒤에 몸을 숨긴다.

케인은 소총을 거머쥐고 뒤를 따랐는데 혹시 총알이 머리를 때릴지 모른다고 생각 한 듯 잔뜩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서 앞이 보이겠나?”

앞서가던 권총수가 싸늘하게 한 마디 뱉는다.

슬쩍!

고개를 드는 듯 했지만 불안한 듯 총소리가 날 때마다 움찔 거리며 자라목을 했다.

슥!

권총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케인은 재빨리 나무 뒤로 숨었다.

있다.

터번을 두른 세 명의 사내가 바위 뒤에 숨어 다리 중간에 있는 아카데미 용병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드르르륵!

권총수가 벌떡 일어나더니 M4가 불을 뿜었다.

거리는 30여 미터 정도 되었는데 두 사내가 나동그라졌고 한 명은 재빨리 엎드린다.

그러더니 권총수 쪽을 향해 십여 발을 쏟아내고 산 위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권총수는 총을 들어 정확히 조준사격을 했다.

드륵!

“커헉!”

사내의 비명이 총소리만큼이나 크게 울렸다.

권총수는 사격자세를 풀지 않고 다가갔다.

바위 뒤로 돌아가자 두 명의 사내가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머리가 으깨진 채 숨져 있었다.

케인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30미터란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물론 해병대 출신이고 다인코프 텍사스 훈련소에서 조준사격 집중사격을 반복 훈련했기 때문에 자신도 충분히 쓰러뜨릴 수는 있다.

그러나 맞으면 결코 생존할 수 없는 머리만을, 그것도 두 명을 동시에 정확히 조준해 쓰러뜨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권총수는 10여 미터 위쪽에 쓰러진 사내를 발로 툭 차서 반듯하게 눕게 만들더니 살핀다.

사내는 도주하면서 정확히 등에 다섯 발을 맞은 듯 앞가슴이 부서져 버렸다.

기척에 케인이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 선두로 자신과 같이 온 실턴, 픽퍼드, 라이스 셋, 그리고 낯선 사내 네 명이 뒤를 따라 올라왔다.

한 눈에 공격을 받던 아카데미 용병들이라고 짐작했다.

“이 자식들이야.”

오민철이 어느새 쇠파리가 붙기 시작한 시신들을 살폈다.

드르륵!

한숨을 돌리고 담배 하나 물려던 권총수는 갑작스런 총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왼쪽 귀에 해골 모양의 귀고리를 하고 있던 약간 마른 사내가 죽은 시신에 총알을 박고 있었다.

“멈춰!”

권총수가 천둥처럼 소릴 질렀다.

하지만 사내는 멈추지 않고 도망치다 죽은 사내에게 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수는 입에 물린 빈 담배를 빼어 주머니에 넣고 걸어갔다.

“너 뭐야?”

확인사살을 한 사내는 오늘 오는 아카데미 신참을 인솔하는 리더로 보였는데 권총수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세 명이 죽었어!”

사내가 험악하게 소리쳤다.

빠악!

그러나 권총수의 주먹이 벼락처럼 뻗어나갔고 사내는 피하지 못했다.

척!

처...처처!

순간 동시에 아카데미 용병들이 총을 들어 올렸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바로 이 새끼들을 두고 한 소리잖아. 어디서 재수 없이 총구를 들이대는 거야.”

오민철 일행도 총구를 올리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주먹에 맞아 주저앉은 사내가 일어났다.

“아카데미는 이런 식이오? 아무리 악명 높은 탈레반이라고 해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첫 월급도 받아 보지 못하고 죽었소.”

“아름이?”

“트리피어, 씰 출신이오.”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직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다리 위의 포드 익스플로러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트리피어, 세상에 태어나 채 꿈도 피워보지 못하고 죽은 인생이 어디 한둘이오.”

트리피어가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조금 놀란 얼굴이었는데 권총수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산을 내려갔다.

“우리 캡틴 말 틀린 것 없잖아.”

오민철이 조심하라는 듯 손가락 한 개를 들어 보이며 돌아섰다.

“행운을 빕니다. 모두가 살아서 고향땅 밟으쇼.”

“누구죠?”

씰 출신이라는 사내가 마지막으로 몸을 돌리는 케인을 향해 물었다.

케인은 트리피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캡틴, 사막의 흑새.”

홱!

순간 나머지 사내들이 일제히 아래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권총수는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아직 이슬이 깨지 않은 이른 아침에 차가 나타났다.

끼익!

차는 길가에 멈췄고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내렸다.

운전석에서 델타포스 출신인 실턴이 내렸고 뒷문에서는 케인이 M4를 거머쥐고 내렸는데 차에서 무전기를 끌어내려 등에 멨다.

마지막으로 조수석 문이 열리며 권총수가 나타났는데 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개울물이 흘렀고 주위로 푸른 풀밭이 이어졌다.

권총수의 시선은 개울 건너로 향한다.

넓은 밭에 눈에 익은 꽃들이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군.”

무슨 말이냐는 듯 케인과 실턴이 돌아보았다.

“배 째라는 식으로 이제는 더 이상 숨지 않고 드러내놓고 경작한다더니.”

미국은 유엔과 협의하며 아프카니스탄의 양귀비 재배를 막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농민들에게 보조금도 지원하고 그들이 재배하는 밀을 좀 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 주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런 지원을 해도 손에 들어오는 돈이 양귀비 재배 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귀비 재배로 받은 돈 절반을 겨우 버는데 누가 미쳤다고 이걸 재배하겠는가!’

정부 보조금도 그렇다.

유엔을 통해 농민 지원자금이 들어오는데 부패한 정부 관료들이 앞 다투어 챙기다 보니 농민 수중에 떨어지는 액수는 초라하다.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이 낫다’

최소한 양귀비 재배로 얻은 수익의 80프로까지 보상이 없으면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보다 못한 미국은 비행기를 동원한 고엽체 살포로 양귀비 재배를 막으려 했지만 넓디넓은 아프카니스탄 곳곳에 있는 양귀비 밭을 찾아 없앤다는 건 불가능했으며, 그러다 보니 목화나 밀을 재배한 농민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었다.

“어이가 없군. 단속하는 사람 체면을 봐서 숨어서 짓는 모양이라도 만들어 놓지. 위로 그물을 씌운다던지 하면서 말이야.”

권총수는 쓴 웃음을 흘렸다.

“일단 촌장부터 만나야죠?”

케인이 쳐다본다.

“만나야지.”

그때 치지직 하며 무전교신이 들려왔고 케인이 재빨리 교신을 시도했다.

“레드 원 레드 원, 여긴 레드 투. 응답하라.”

“레드 투 말하라. 이상.”

“이리 줘.”

권총수가 재빨리 무전 송수신기를 받아 들었다.

“레드 투 뭔가?”

“크다. 아주 넓다. 엄청나다. 그곳 상황은 어떤가?”

상대는 오민철이었다.

오민철은 픽퍼드와 라이스 둘을 데리고 무사칼란 북동쪽 비잔뜨리 계곡으로 향했다.

오민철의 말은 그쪽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귀비 재배지역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여기도 많다. 오늘은 농민들 건드리지 말고 정찰에 집중하도록 이상.”

“알겠다 이상.”

권총수는 송수신기를 케인에게 건네주고 다시 차에 올랐다.

차는 오른쪽으로 꺾어지며 밭 사이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차는 개울을 건너 기우뚱 거리며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양귀비들은 이제 막 개화기에 접어들어 하나 둘 피기 시작했는데 형형색색의 화려한 모습에 핸들을 잡은 실턴은 계속 감탄했다.

“웬만한 꽃은 눈도 깜짝 않는데 정말 색깔 한번 죽이는구나.”

실턴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까지 찍었다.

‘아름답다고 가까이 하지 마라. 곁에 두고 향기를 맡으려 하다가는 죽음의 그림자가 덮칠 것이다’

아편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 관료 유곤일의 말이다.

화려하고 선명하다.

그러나 꽃의 유혹에 빠지면 지옥보다 더 큰 고통에 빠질 것이다.

저 만치 마을이 나타났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마을은 조용했다.

입구에는 잎이 우거진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고 그 아래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 나무로 된 평상이 빙 둘러 있었다.

“하차!”

차를 올리브 나무 근처에 세워놓고 일행은 내렸다.

셋 모두 M4를 움켜쥐었는데 케인과 실턴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조금만 이상해도 갈겨버릴 태세이다.

“진정하라고.”

권총수는 긴장한 두 사람을 다독였다.

마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으와아앙!

갑자기 열린 대문으로 시커먼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털이 수북한 개는 티벳개였다.

사자개로 불릴만큼 덩치가 크고 사나운데 금방이라도 달려 들것처럼 으르렁거리더니 느닷없이 꼬리를 내리며 쳐들던 고개를 숙인다.

대력금강심법에서 나오는 강력한 내기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불기(佛氣)는 만기(萬氣)의 으뜸이다.

특히 사악하거나 살기, 또는 음험한 기운은 전혀 맥을 추지 못하는데 맹수들의 공격성 역시 무너진다.

끄으응!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나왔다가 열린 대문으로 재빨리 들어가 버렸다.

권총수는 겨눴던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때 하나 둘 골목으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동네 주민들로 보였는데 어른과 아이 여자, 노인들까지 포함해 대략 30여명쯤 되었다.

M4를 든 권총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미군이 지상단속을 포기하고 고엽제를 통한 공중살포로 방향을 틀었던 건 인명 피해 때문이었다.

제일 난감한 일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탈레반인지 농민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다.

농민들 품속에서 튀어나오는 총을 피할 방법이란 없었다.

그렇다고 모조리 죽일 수는 없다.

수확된 아편이 탈레반과 일반 마약조직으로 들어가는 건 분명하지만 재배 과정의 어느 선까지 그들이 개입하고 있느냐.

탈레반은 농민들이 수확한 아편만 사들이는 단순 상행위만 한다면 이들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탈레반이 아편 농사까지 개입하고 배후에서 지원을 한다면 이들 중 총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는 곧 탈레반이다.

그렇다고 모두 옷을 벗겨 놓고 검사 할 수도 없고, 온 동네 가가호호마다 총기를 찾기 위한 수색을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촌장이 누구요?”

그러자 비쩍 마른 노인 한 명이 천천히 걸어왔다.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합장하여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촌장이란 노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사를 했는데 표정은 굳어 있었다.

“우린 양귀비 재배 단속을 나온 사람들이오.”

그러면서 아프카니스탄 정부에서 발행한 단속 공무원 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저 들판에 있는 양귀비는 모두 이 마을 사람들의 것입니까?”

“그렇소.”

“양귀비 재배가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시겠죠.”

“알고 있소.”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농민 여러분께서 갈아엎는 것과 아니면 우리가 없애는 것이죠.”

촌장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내 손으로 지은 농사를 내 손으로 어떻게 엎는단 말이오.”

그럴 수 없다는 노골적인 거부였다.

권총수는 빙그레 웃었다.

“촌장님 갈아 엎으셔야 합니다. 갈아엎으면 보상금이 어느 정도 지불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불가하오.”

권총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의 기회를 드립니다. 그때까지 양귀비꽃이 온전히 서 있으면 엎겠습니다.”

권총수는 주민들을 쭈욱 한번 훑어 본 뒤 몸을 돌렸다.

“우린 여러분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을 뿐입니다.”

케인과 실턴은 만약을 대비해 등을 돌리지 못하고 주민들에게 총을 겨눈 채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권총수가 올리브나무 아래에 있는 차량 곁으로 다가갔다.

“레드원, 레드원 응답하라. 레드 원.”

그때 차에 놔 둔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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