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05화 (205/651)

제205화: 하나파파(2)

탈레반은 처음 파슈툰족 중심으로 탄생했다.

파슈툰족은 자신들만의 전통 교리 파슈튼왈리(전통 생활 강령)와 자기들이 독자적으로 해석한 이슬람 율법을 따른다.

그들의 율법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여자 환자는 절대 남자 의사가 볼 수 없으며, 여자는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또한 불의를 보면 참지 말라는 구절이 있는데 파슈툰족 여인이 다른 부족 남자와 결혼을 하면 이 또한 불의라고 판단하여 죽인다.

이렇게 강력한, 마치 원시시대 같은 무지막지한 율법을 강요하자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예전만큼 강력하지는 못한 것 사실이지만 라슈카르가를 비롯한 헬만드주 일대에서 나름대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럼 뭐야. 이교도 소탕도 아니고 미국을 무찌르자도 아니고 그런 말도 안 된 곰팡이 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싸운단 말이야.”

“이들의 총에 가장 많이 희생된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 바로 자국민이야.

“외인 7중대 행정과 미테랑 중사의 말이 떠오르는데. 말로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슬며시 자신의 이익에 골몰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한마디로 정치인은 사기꾼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짓던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계속 떠벌리지 않고 뭐하는 거야.”

오민철이 버럭 소릴 지르자 알자삼은 재빨리 떠들기 시작했다.

알자삼은 권총수를 두려운 눈으로 보며 자신이 속한 하나파파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알자삼은 사고 없이 일을 끝냈다.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상대는 동료인 자말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내일 새벽 3시까지 바자르 유적지 앞으로 차를 가져오라면서 상부의 지시라고 했다.

상부의 누구냐고 물으려다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탈레반 말단 하부조직원에게 왜? 라는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알자삼은 정확히 다음 날 새벽 2시50분까지 바자르 유적지 앞에 도착했다.

텔레반에 의해 많은 이슬람 문화가 파괴되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모스크처럼 둥근 돔이 보였는데 시아파 창시자 ‘시즈앗 알리’의 묘였다.

으르스름한 달빛에 알리의 묘 주위로 크고 작은 돌기둥 10여개가 보이는데 기원전 1세기경 이슬람보다 훨씬 앞서 들어온 불교 문화가 만들어낸 아홉 개의 불탑의 흔적이었다.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고 한때 불교가 융성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자르 유적지 출입이 금지되어 들어갈 수 없다.

알자삼은 차에서 내려 입구에서 한 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며 10여 분쯤 기다리고 있을 때 라이트를 켠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다.

차에서는 낯익은 사내 넷이 내렸고 트렁크를 열더니 시뻘건 핏덩이를 꺼냈다.

처음에는 산에서 잡은 멧돼지 인 줄 았았으나 버켓에 담을 때서야 비로소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

한눈에 미국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한 놈 잡았다네.”

피가 묻는 것을 막기 위해 장갑을 낀 채 시신을 옮기던 자말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다인코프 용병이야.”

알자삼은 눈살을 찌푸렸다.

헬만드주에는 미군과 아카데미 용병은 있지만 다인코프는 수도 카불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몰려있다.

“새로 온 ‘서디 콘치나 메디’가 아름다운 인사를 했다네.”

서디 콘치나 메디는 ‘행동하는 벗’이란 뜻이다.

새로 탈레반이 되거나 가입한 사람을 일컷는데 신입 탈레반이 다인코프 용병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주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알자삼은 시신을 운반하여 신호등에 걸었다.

라슈카르가 근처에 있는 보스트 공항(BostAirport)에 에미레이트사 소속 여객기 한 대가 착륙했다.

오랜 내전으로 공항은 자주 폐쇄되었다가 열렸다를 반복했다.

특히 활주로는 걸핏하면 파괴가 되어 임시 처방으로 복구를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다 보면 비행기 운항시간이 들쭉 날쭉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의 비행이여서 인지 공항 직원들 전부가 하던 일을 멈추고 착륙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울퉁불퉁한 노면이지만 비행기는 안전하게 게이트까지 들어와 섰다.

트랩이 닿고 앞 문이 열리면서 승객들이 내렸다.

라슈카르가 헬만드강 다리 공사를 하는 이집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관광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노동자들 말고는 가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카데미 용병들이 내린다.

비행기가 도착하면 공항 청사 밖은 잠시 긴장에 휩싸인다.

아카데미 용병들을 향해 몇 번의 테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전에는 탈레반이 아카데미용병 다섯을 공항 청사 안에서 해치워 버렸다.

기다리고 있다가 입국장을 들어서자 갈겨 버린 것이다.

당시 아카데미 용병들을 마중나온 동료들이 무장을 갖추고 있었지만 청사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설마 청사 안에서 일을 벌이리라곤 아무도 예상 못한 것이다.

그때 건장한 체격의 흑인 세 명과 백인 한 명이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누가봐도 용병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네 사람은 건들거리며 수속을 밟고 나갔는데 바로 M4를 쥔 동료 셋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손바닥을 치며 큰소리로 포옹하고 웃고 떠들었다.

한산한 청사인 탓에 그들의 목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고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자식들 요란스럽긴.”

오민철이 피식 웃었다.

권총수와 오민철도 동료들 마중 나왔다.

오늘 네 명이 오기로 했는데 모두가 텍사스 다인코프 훈련 10주를 마치고 오는 신참들이다.

넷 중 셋은 델타포스 출신이고 한 명은 해병출신이었다.

“왔어!”

오민철의 말에 권총수는 고개를 돌렸다.

네 명의 사내들이 긴 스포츠 백을 메고 들어섰다.

둘은 야구 모자를 눌러 썼고 나머지 두 사람은 청바지에 티셔츠 사람이다.

앞서 빠져나간 아카데미 쪽 용병들과는 달리 네 명 모두 몹시 긴장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환영한다.”

권총수가 다가갔다.

“미스터 캡틴?”

“흑새?”

사내들이 물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사람과 악수를 나눴고 오민철은 격하게 끌어 안아주었다.

“오오! 어서오게 형제들이여.”

이슬람식으로 힘껏 가슴을 부딪힌다. 퍽!

퍽!

권총수는 그런 오민철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사내과 청사를 걸어나갔다.

사내들은 권총수 뒤를 졸졸 따랐는데 누구도 입을 열거나 말하지 않았다.

그걸 지켜본 오민철은 귀엽다는 듯 씨익 웃으며 그 옛날 한 때를 떠올렸다.

외인부대 시절이다.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로 떠난다는 말을 듣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매우 당황했다.

특히 부대로 가는 길에 이라크 반군들로부터 매복 공격을 받았고 현장에서 모로코 이민자 출신 막스의 죽음을 보았다.

그때의 충격은 굉장했다.

한동안 막스의 죽음이 떠나지 않아 애를 먹었었다.

이들 또한 해병대와 델타포스를 나왔지만 이력서에 보면 전투 경험은 전무했다.

여긴 아프카니스탄에서도 가장 위험하다는 헬만드주다.

오민철은 네 사내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담배도 권하고 농담을 자주 던졌다.

차량은 혼다 SUV 한 대 뿐이다.

오민철이 핸들을 잡았고 조수석에는 권총수가 앉았다.

뒷좌석에 세 명이 앉았으며 한 명은 맨 뒤 짐칸에 자리를 잡았지만 누구도 불평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총기 상태 살피도록.”

네 사람은 각자에게 주어진 M4를 만졌다.

노리쇠를 당겨 보기도 하고 탄창을 뺀 뒤 제대로 방아쇠가 작동하는지 고장 난 곳은 없는지 살폈다.

“이상 없습니다.”

“이상무!”

모두가 이상 없다면서 30발들이 탄창을 끼운 다음에 조정간을 안전에 놓았다.

“출발!”

권총수의 말이 떨어지자 오민철이 시동을 걸며 차를 출발 시켰다.

차는 공항 주차장을 천천히 빠져 나갔다.

보스트 공항은 라슈카르가 남쪽에 있었다.

일반적인 도시의 공항 개념, 즉 외곽에 공항이 있고 시내로 들어오는 데 반해 보스트 공항은 틀리다.

헬만드의 옛 주도가 보스트였고 공항은 그때 당시 생겼다.

이후 70년대 중반에 주도가 바뀌면서 공항에서 라슈카르가까지 오는데 40킬로 이상 먼 거리로 벌어졌다.

더욱이 보스트에서 라슈카르가까지 오는데 무사칼란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산길을 지나야하는 것이다.

공항을 나와 5분 정도 달릴 때 국도 오른쪽으로 헬만드강 10킬로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차는 오른쪽으로 빠졌다.

덜컹덜컹!

포장도로이긴 하지만 오래되어 아스팔트 곳곳이 움푹 패어 있었다.

길 왼쪽으로는 무사칼란 산맥이 거칠게 뻗어나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작은 개천이 있었다.

헬만드강 지류중 하나인 레일루천이다.

개천 주위로 이름모를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염소와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끼이익!

갑자기 운전을 하고 가던 오민철이 차를 세웠다.

“저거 뭐야?”

레일루천을 건너기 위해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가는 순간 다리 중간에서 불타고 있는 한 대의 SUV를 발견한 것이다.

탕!

드르르륵!

이어 총소리가 강가를 울렸고, 일행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각자 엄폐물을 찾아 엎드렸다.

피융!

파팍!

총알에 다리 난간의 시멘트 조각들이 떨어져 나갔고 불타지 않은 SUV를 엄폐물 삼아 세 명의 사내들이 도로 맞은편 무사칼란 산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수는 왼쪽 무사칼란 산에서 다리를 건너는 포드 익스플로러 두 대를 공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저 친구들, 그들 아냐.”

권총수는 다리에서 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사내들을 알아보았다.

공항에서 봤던 아카데미 용병들이다.

그렇다면 산에서 공격한 쪽은 탈레반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간간히 들어오는 용병을 표적삼아 공격하던 탈레반이었고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한 사람만 날 따라와.”

네 명의 용병 모두가 움찔하며 서로를 돌아본다.

두려운 얼굴이다.

“케인 따라와.”

권총수는 검정색 야구 모자를 눌러쓴 케인을 불렀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가방에 수류탄이라도 들었어?”

가방까지 메고 오려고 하자 권총수가 이마를 찡그렸다.

툭!

케인은 재빨리 가방을 내려놓고 권총수를 따라 산으로 올라섰다.

오민철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위험한 움직임이다. 아카데미 용병들에게 내가 올라갈테니 사격 지점을 적당히 바꾸라는 사인 정도 해야 하는데 무작정 탈레반을 치기위해 올라간다는 건 자칫 이쪽 총알을 맞을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총수, 캡틴!”

오민철은 낮은 소리로 부르다 그만 두었다.

시끄러운 총소리에 다리 위에서 고전을 하는 아카데미 용병들이 알아들을 리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민철은 재빨리 윗도리를 벗어 M4 총구에 끼운 뒤 흔들었다.

회색 티셔츠를 계속 움직였는데 그 순간 아카데미쪽에서 한 사내가 오민철을 향해 주먹을 쥐었다.

그건 발견했다는 뜻이다.

오민철은 산 위쪽을 가리켰다.

그건 우리 일행이 올라갔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였고 상대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

사내들은 조준사격으로 바꿨다.

자동으로 놓고 비슷한 지점을 향해 쏟아 붓는 집중사격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자동사격은 총구가 흔들린다.

따당!

땅!

단발 또는 점사로 사격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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