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하나파파(1)
전화가 걸려왔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는데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는 얼굴이다.
두 사람은 라흐알 호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보니 소속이 있는 기자들 보다는 프리랜서들이 많이 몰려와 있다.
그들이라고 안전할리는 없다.
그러나 위험한 만큼 중대한 사건이나 사진 한 컷을 건지면 메이저 신문사나 방송국에 거액을 받고 팔수가 있는 것이다.
호텔 커피숍에는 그런 프리랜서로 보이는 사내들 십여 명이 자신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며 얘길 나누고 있었다.
“여보세요.”
권총수는 벨이 일곱 번째 울리고 나서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알자삼씨?”
권총수는 잠시 침묵했는데 상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요. 그렇게 하죠. 알겠습니다. 당장 출발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딘데?”
“라슈카르가 모스크!”
“오라는 데로 나가면 어떡해? 함정일 수도 있잖아?”
“상당히 영리한 친구야.”
권총수는 허리 뒤에 꽂아 놓은 권총이 제대로 있는지 더듬었다.
“라슈카르가 모스크는 이 지역 성지야. 이 도시에서 수많은 테러가 일어났고 텔레반의 학살이 벌어졌지만 그곳에서 만큼은 없었지. 일테면 그린 존인 셈이야. 알자삼이 그런 곳에서 만나자고 하는 건 자신도 안전하지만 우리 쪽에 어떤 함정도 파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야. 진실로 우릴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
오민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얼른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권총수는 앞장서 호텔을 걸어 나갔다.
20여분 후 혼다 SUV 불빛에 커다란 사원 하나가 들어왔다.
회색의 높은 첨탑이 솟아 있고 한가운데 맑은 청자빛이 도는 돔이 보인다.
사원의 문은 열려 있었으나 밤에는 관계자 말고는 일반 신도들의 출입을 금지한다.
물론 강제성을 띄지는 않지만 사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인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근래에 들어 신성한 모스크에서의 테러가 발생하기 시작하자 이곳 라슈카르가 모스크 역시 조심하는 것이다.
사원 입구는 쇠사슬 하나만 쳐져 있을 뿐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나 아무도 그 간단한 줄을 넘지 않았다.
끼익!
차가 모스크 앞에 멈추자마자 한 사내가 달려왔다.
그는 다짜고짜 뒷문을 열고 차에 뛰어 올랐다.
부우웅!
오민철은 곧장 차를 출발시켰는데, 헐떡거리며 뒷좌석에 올라탄 이는 알자삼이었다.
“두려운 모양이군요?”
권총수가 앞을 보며 말했다.
“날 살려 줄 수 있소?”
바로 핵심을 꺼낸다.
자신을 살려주면 그만한 댓가를 내놓기라도 할 것 같은 말이었기에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경기의 흐름이 알자삼쪽에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 쪽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자신에게 칼자루가 있는 것이다.
“나도 내 주제가 이러쿵저러쿵 할 처지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소. 하지만 완전히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는 없소.”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있는 건 분명하지만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말이었다.
지이이이!
핸드폰이 올린다. 차가 조용해서인지 진동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냈는데 카이로 지사장 버홀터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예! 알아베드 7가 18번지, 알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전화 하도록 하죠.”
쉴튼의 죽음에 대해 어떤 진전이 있냐는 질문에 알자삼을 의식해 다음에 말하기로 한 것이다.
“알아베드 7가 18번지로 가.”
“거기가 어딘데?”
오민철이 묻자 뒤에 앉은 알자삼이 설명했다.
“헬만드 강 근처죠.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입니다.”
오민철이 룸미러로 알자삼을 바라보았다.
“사무실!”
권총수가 대답한다. 숙소라는 뜻이었다.
높이가 3미터는 될 것 같은 담장이 집을 한 바퀴 돌아 에워싸고 있었다.
놀라운 건 담장이 벽돌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철근을 넣고 통째 콘크리트를 쳐서 세웠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다고 생각 한 듯 가시철선으로 된 윤형철조망이 촘촘하게 쳐져 있었다.
“이곳의 빈집들은 과거 큰 사업체를 갖고 있거나 고위 공직자들이 머물렀던 집이죠. 부패와 비리로 텔레반의 표적이 되자 집을 버려둔 채 대부분 해외로 도망친 겁니다.”
혼다 SUV는 처마와 지붕이 없는 육중한 철 대문 앞에 멈췄다.
“지금은 거의 시에서 사용하죠.”
“어쨌든 사유 재산 아니오?”
권총수의 질문에 알자삼이 말했다.
“시에서 적당한 가격으로 매입한 것으로 압니다. 집 주인들도 더 이상 돌아 올 수 없다는 걸 알고 가격은 크게 문제되지 않은 걸로 압니다. 라슈카르가 시 청사가 작은 관계로 그런 식으로 구입한 몇 채의 집은 사무실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다인코프에서 그런 집들 중 한 곳을 임대한 모양이었다.
그때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다.
오민철이 본능적으로 차에 실린 M4를 잡았다.
“시청 직원이야.”
승용차가 다가왔는데 ‘라슈카르가 시청’이라는 글씨가 차 옆면에 쓰여 있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머리에 터번을 두른 남자가 다가왔다.
“오라스콤 건설 회사에서 오셨습니까?”
오라스콤은 카이로에 있는 다인코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권총수는 그렇다고 대답을 한 뒤 회사 사원증을 보여 주었다.
사내는 사원증을 랜턴으로 확인하더니 어른 검지 손가락 만한 굵기의 둥근 열쇠 한 개를 내 주었다.
“그럼!”
사내는 곧장 차를 돌려 사라졌다.
열쇠를 받아든 권총수가 오민철에게 내밀었다.
오민철은 미군 기관총 M240 실탄처럼 생긴 둥근 키를 가지고 어른 주먹보다 큰 자물쇠에 꽂았다.
털컥!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잠긴 자물쇠가 열렸다.
그그그긍!
오민철은 굳게 닫힌 철문을 한쪽으로 밀었다.
이윽고 SUV는 저택 마당으로 들어섰다.
“들어 가시죠!”
권총수는 알자삼을 데리고 현관으로 향했고, 오민철은 다시 열린 대문을 닫았다.
불을 켜자 시청에서 사용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거실이 매우 깨끗했다.
방은 1층에 두 개였고 2층에는 세 개였다.
대신 1층은 부엌과 거실이 굉장히 넓었다.
아프카니스탄의 부동산 시세가 유럽이나 미국에 비교 할 수는 없지만 이만한 크기의 저택을 헬만드주의 주도 랴슈카르가에 짓고 살려면 웬만한 경제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권총수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구조도 1층과 큰 차이 없었는데, 거실이 조금 작았으며 바닥에서 천장까지 통 유리로 창문을 박았다.
권총수는 2층까지 꼼꼼하게 살핀 뒤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우리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소?”
권총수는 거실에 놓인 나무로 된 탁자 의자에 앉았다.
“거듭 밝히지만 난 당신과 가까워지는 걸 바라는 사람이오. 이제 한 식구가 되었으니 가급적 숨기는 것이 있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난 더 이상 여기서 살지 못합니다.”
알자삼이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날 미국으로 보내주시오.”
권총수의 이마가 약간 찌푸려졌다.
미국으로 보내고 안보내고는 자신의 역량 밖에 있는 일이었다.
회사 차원에서 준비를 해야 할 뿐 아니라 신분이 전직 텔레반이기 때문에 반드시 CIA에게 알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맥보란을 만나야 하는데 그는 필히 정보를 공유하자고 할 것이다.
민간 보안회사에서 정보는 곧 돈이다.
회사에서 난색을 표할 수도 있다.
“난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소. 미국으로 가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소.”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탁자 위에 올려놓기 전에는 가급적 마주 앉는 걸 피하는 것이 좋을 듯 하군요.”
알자삼이 강경하게 나오자 권총수는 알자삼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보자보자 하니까.”
오민철이 달려들 듯 눈을 부라렸다.
“넌 포로야 임마. 용병들에게 제네바 협정은 개소리라는 걸 몰라?”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알자삼은 전혀 흔들리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내 목포는 오로지 미국이오. 거래의 조건은 그것뿐입니다.”
“어디서 큰 소리야. 죽고 싶어?”
오민철이 권총을 뽑으려 하자 권총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형, 포로에게 화를 내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냐.”
멈칫!
알자삼의 눈이 빛났다.
조금 전 오민철도 제네바 협정 운운하며 자신을 포로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권총수의 입에서 나온 포로라는 말에는 기분이 묘했다.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오싹한 것이다.
그렇다고 오민철과 달리 권총수는 조금도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알자삼씨, 좋은 게 좋은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미국 문제는 내가 성심 성의껏 알아봐 줄테니 가지고 있는 정보 좀 꺼내 보시죠. 다시 말하지만 우린 이제 한 배를 탄 동지입니다.”
권총수가 좋게 말하는 듯 보이자 알자삼의 입 꼬리가 약간 말려 올라간다.
그건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미안합니다. 한 식구 사이에 숨기는 게 있다는 건 매우 불편한 일임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내 입장을 이해 해주시죠. 저는 미국으로...”
꽈당!
권총수가 탁자를 알자삼 쪽으로 걷어 넘겨 버렸다.
알자삼은 탁자에 밀려 거실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콱!
권총수는 탁자 다리 하나를 발로 부수더니 오른손에 거머쥐었다.
퍽!
앉아 있는 알자삼의 머리를 망설이지 않고 내리쳤다.
알자삼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으악!”
권총수는 닥치는 대로 알자삼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퍽!
퍼퍼퍽!
“살려 주시오. 살려만 주시오.”
피로 범벅이 된 알자삼이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권총수의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구석으로 기어가는 알자삼을 쫓아가며 후려쳤다.
“으아으아!”
알자삼이 멈췄다.
앞이 벽이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그야 말로 막다른 구석이었다.
빠악!
하늘에서 불벼락처럼 떨어지는 몽둥이다.
둥글면 덜 아프겠지만 예리한 모서리를 자랑하는 사각형이어서 한 번씩 몸에 닿을 때마다 뼈가 울린다.
“말하겠소. 말로 합시다.”
말하겠다지만 권총수는 그만두지 않았다.
퍼퍼퍽!
“말한다니까요. 뭐든지 물어 보십시오.”
“말한다잖아. 그만 해라.”
오민철이 말리는 척 거든다.
“진정해. 말한다고 하는데 더 이상의 폭력은 낭비야.”
권총수가 허리를 바로 세웠다.
뚝뚝!
권총수의 손에 들린 탁자 다리에서 핏물이 떨어졌다.
“캡틴답지 못한 행동이야. 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라고.”
오민철은 신음을 흘리는 알자삼을 보며 말했다.
“입 뒀다 어디쓸거야. 대화로 하자고.”
툭!
권총수는 탁자 다리를 한쪽으로 던지고 주머니를 뒤진다.
“담배 하나 줘.”
오민철이 재빨리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꺼내주고 라이터 불까지 붙여주었다.
후우!
권총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알자삼은 핏덩이가 되어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텔레반입니다.”
“텔레반이라도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색깔에 따라 여러 노선이 있다고 들었소.”
“하나파파 입니다.”
하나파파란 말에 오민철은 멈칫했다.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를 돌려 권총수를 보는데 그다지 표정 변화는 없다.
“하나파파라면 수니파의 한 계열이지만 오늘날은 사이비로 불리는 곳 아닌가?”
“사이비라뇨? 우리야 말로 온전한 알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습니다.”
알자삼은 그 와중에도 억울하다는 듯 불만을 드러냈다.
권총수는 깊은 눈으로 알자삼을 바라보았는데 하나파파란 집단은 살벌한 곳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