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화: 황금의 초승달(1)
미군이 주둔 때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가뭄에 콩나듯 시민들이 몇 푼 던져주고, 또 아주 가끔 근처 라슈카르가 모스크와 구시가인 라슈카리 바자르 이슬람성지를 순례 온 관광객들의 주머니가 열린다.
“그래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지.”
그러면서 오민철이 주머니에서 1달러짜리 한 장을 꺼내 허리 구부정한 노인 앞에 내려놓았다.
“알라후 아크바르!”
노인은 크게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돈 1달러에 저런 노인에게 큰절까지 받고.”
오민철이 불편한 듯 투덜거렸다.
두 사람은 라슈카르가를 돌아다녔다.
길가에서 파는 양 꼬치도 사먹고, 석류 쥬스와 특히 땅콩이 많았는데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두 사람은 부지런히 땅콩을 씹으며 시내 곳곳을 다녔다.
이름 난 고유적지나 관광지가 아닌 곳까지 살피는 걸 보면 구경 목적이 아닌 듯 보였다.
택시를 이용하여 시민들의 종교와 정치적 성향을 살피고, 버스를 타고서 그들의 얘기를 엿들었다.
권총수는 지금 정찰을 하고 있었다.
군대용어로 적정탐지다.
적의 부대와 장비 따위를 살피는 것만이 정찰은 아니다.
그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민심을 살피고 여론의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
겉으로는 여느 아프카니스탄의 도시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라슈카르가를 주도로 두고 있는 이곳 헬만드주, 바로 옆 칸다하르주, 그리고 서북쪽의 파라주를 일컬어 골든 크레센트 즉 황금의 초승달 지대라고 부른다.
실제로 텔레반은 이 황금 초승달 지대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데 해외 마약조직들과 사실상 카르텔을 형성하여 엄청난 자금을 만들고 있다.
시내를 둘러 본 건 그런 분위기와 흐름을 읽고 살피기 위해서였다.
이미 브라질에서 한 번 경험을 했지만 마약조직이나 무장테러집단이 횡행하는 지역의 공기는 다르다.
보이지 않는 죽음의 기운이 흐른다.
단순히 탈레반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지역이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나 종교적 무장 세력은 단순하지만 마약조직이 풍기는 바람은 음습하다.
과거 영국이 아프리카에 철도를 놓을 때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사자에게 희생이 되었다.
늘어나는 사자들의 공격에 영국 정부는 핸들러라는 뛰어난 사냥꾼을 보냈다.
핸들러의 추적은 지금까지 사자를 잡겠다고 큰소리치며 왔다가 오히려 사냥당한 다른 사냥꾼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대낮에 총을 들고 숲속으로 그냥 들어갔다.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사자를 잡아 왔는데 식인사자인지 아닌지 확인을 위해 배를 갈라보면 아직 소화가 덜된 사람의 신체부위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는 다르다. 냄새도 틀리고 근처 공기도 완전 다르다. 인육을 먹으면 시큼한 신(酸)내를 풍긴다. 또한 그로 인해 근처에 많은 파리가 끓어 시끄럽다’
그의 말은 나중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는데 권총수 역시 브라질에서 핸들러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살인이 많고 거기에 마약까지 파고들면 이상한 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어때?”
저녁을 먹기 위해 두 사람은 식당에 마주 앉았다.
오랜 중동 생활로 이제 지역 음식이나 요리가 낯설지 않고 입에도 그럭저럭 익었다.
“달라!”
“그러지. 내공이 낮아 너처럼 정확하게 느끼지는 못했지만 가끔 눈발이 시뻘겋게 선 놈들을 봤지. 당연히 반군이거나 텔레반중 하나겠지만.”
마약조직의 방식은 유난히 잔인하다.
그 이유는 워낙 걸린 돈이 많기 때문이다.
한 번만 거래에 성공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거머쥐기 때문에 인정사정없다.
멕시코 갱단에 잠입했던 FBI요원 ‘짐 브라운’은 거긴 지옥이었다라고 말했다.
탁!
식당 주인이 두 사람 앞에 음식을 내놓았다.
업구시트(abgoosht)란 것인데 양고기와 콩을 섞어 만든 수프의 일종이다.
단지 씹힌다는 차이가 있었다.
업구시트에 대한 요리법은 물론이고 섭취방법도 국가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이곳 아프카니스탄은 그냥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후룩!
국물 맛을 보던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말없이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라흐알 호텔에 불이 켜졌다.
권총수는 방에 들어서면서 놀란 표정을 했다.
호텔 외벽에는 헬기 기총사격에 맞은 듯 총구멍까지 있어 몹시 으스스 했는데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 시설은 깨끗하고 단정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괜찮은데’
옆방에 투숙한 오민철이 보낸 핸드폰 문자다.
오민철 또한 대충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권총수는 샤워를 끝내고 나온 뒤 곧장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을 켠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권총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오기 전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파슈토어를 배웠는데 알아듣기 힘들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영어와 아랍어가 있어 내용을 짜깁기 해 앞 뒤를 맞췄다.
팟!
스포츠 경기 하는 곳 없나 싶어 다른 채널을 돌리려던 권총수가 멈칫했다.
복면을 쓴 사내들이 시내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왔다.
리포터의 다급한 설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파파’
경찰을 공격한 복면인들의 정체였다.
대낮에 경찰과 총격전을 벌일 정도면 소규모 마약 조직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나파파에 대한 궁금증은 오민철이 해결해 주었다.
과거 야크부대 파견 시절 UAE에서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하나파파 조직원이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아부다비에 있는 유명 쇼핑몰에서 한 사내가 수류탄을 던졌다.
안전핀까지 뽑혔으나 수류탄은 불발이 되었고 사내는 현장에서 보안요원들에게 붙잡혔는데 그는 자신을 하나파파 조직원이라고 했다.
하나파파의 기원은 라슈카르에타이바(줄여서 라슈카르)로 올라간다.
라슈카르는 ‘옳은 이들의 군대’란 뜻이다.
사망한 오사마 빈라덴이 창설했다는 설도 있으나 정확한 기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을 넘나들며 이슬람국가 건설을 외치는데, 언뜻 IS와 흡사해 보이지만 노선은 전혀 다르다.
라슈가르 이들이 가장 분명하게 각인시킨 사건이 있다.
2008년 11월26일 밤 배를 이용해 뭄바이에 침투한 열 명의 무장 테러범이 시내와 호텔을 돌며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당시 200명이 살해 되었고 500명이 부상당한 엄청난 테러였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파파로 바뀌었고 오늘 날 강력한 조직으로 활동 중이다.
* * *
아침 일찍 전화가 걸려왔는데 이집트 지사장 버홀터였다.
카이로 시간으로 오늘 정오 비행기로 한 명의 용병이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카불 공항에는 데이비스가 마중을 나올 예정이며 우선 경찰 팀으로부터 개인화기는 제공을 받고 나머지 추가 병력은 열흘 이내에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SUV가 덜컹 거린다.
크고 작은 구덩이가 지천인 비포장 도로에서 속도를 내기란 불가능했다.
햇볕은 갈수록 뜨거워지는 것이 봄이 멀어지고 여름이 오고 있다.
사방은 툭 트인 황무지였다.
군데군데 야생화들이 피었고 오른쪽 멀리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정말 평화롭구나!”
오민철은 풀을 뜯는 양들을 보며 감탄했다.
“꼭 달력 속에서 보던 옛날 우리나라 농촌 같지 않냐?”
권총수도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무척 청명한 날씨였다.
평지가 끝나고 차는 본격적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은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아프카니스탄의 도로, 그중 산길은 대부분이 역사 속 침략자들이 만들었고 그 옛날 실크로드를 다니던 상인들 발자국이라고 했는데 사실인 듯 보였다.
길도 험난한데 폭이 좁아 맞은편에서 차가 한 대라도 온다면 무척 애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부우웅!
SUV인데도 무척 헐떡인다.
“으와!”
오민철이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흘렸다.
굽이도는 산길은 거대한 벼랑으로 이어졌다.
반면 왼쪽으로는 수직 절벽이 솟아 있어 언제 바위가 떨어질지 모를 만큼 아찔했다.
“저 바위 떨어지면 어떡하지?”
전방에 집채 만 한 바위 한 개가 도로를 덮듯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무슨 산이라고?”
“무사칼란.”
무사칼란이라는 말에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왜 그렇게 놀라는데?”
오민철은 길게 숨을 내쉬더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은데, 오늘 아침에 들었는데 이 지역은 탈레반 반, 반군 반이래. 농민도 절반이 총을 갖고 있어 재수 없으면 간다는 거야.”
“이제 알았어?”
“뭐야? 그럼 넌 알고 있었어?”
“난 카이로에서부터 알고 있었는데 형은 전혀 몰랐나 보군.”
권총수를 보는 오민철의 눈 꼬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일부러 숨긴 것이 분명했다.
사실 오민철은 요즘 권총수 몰래 이슬람 사원을 다닌다.
벌어 놓은 돈이 적지 않기 때문에 죽으면 안된다.
꼭 살아서 한국 땅을 밟아야 한다.
이슬람의 신이든 기독교의 신이든 신은 위대한 분이니까 누구에게 빌든 정성을 다하면 도와줄 것이라는 게 오민철의 생각이었다.
필시 자신의 신앙생활을 눈치 챈 권총수가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만약 사방이 탈레반이라는 지뢰밭이라는 걸 알았다면 아프카니스탄에 왔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 헬만드주는 피했을 것이다.
“형이 외인부대시절 그랬잖아 전쟁터는 복불복이라고.”
“그땐 군대였고 지금은 민간인 아냐. 나 죽으면 안돼. 이번 주식투자로 벌어 놓은 돈이 얼만데.”
“미안해. 위험한 작전일수록 옆에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
용병세계에도 배신은 넘쳐난다.
탈레반은 탈레반대로 미군이나 거물 용병들 목에 상금을 걸어 놓고 싸운다.
아프카니스탄, 특히 이곳 헬만드주 같은 경우에는 사람 죽는게 결코 뉴스거리가 아니다.
어제의 부하가 탈레반에게 고자질 할 수도 있다.
사막의 흑새의 목에는 이미 수백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었다.
“보너스 크게 요구했어.”
“얼마?”
“연봉에 버금가는 돈을 쥘거야.”
순간 오민철의 눈빛이 잽싸게 바뀌었는데 권총수를 부드럽게 바라본다.
자신과 권총수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 하나가 있다.
권총수는 위험을 알고서도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험할수록 판이 크잖아’
권총수의 지론이다.
안전하게 돈을 벌수 있다면 좋겠지만 고용주들은 절대 멍청하지 않다.
위험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많은 돈을 주지 않는다.
“양귀비를 제거하는 양에 따라 계산하고, 탈레반을 향해 쏘는 방아쇠 한 방에도 돈을 요구했지.”
“숨 쉬는 것 빼고 모두 돈이야?”
“그런 셈이야. 그러니까 그만 불평 좀 해.”
“내가 언제 불평을 했다고 그래. 나 안 불평해.”
운전을 하던 오민철의 눈이 확 커졌다.
고개 정상에 올라섰는데 놀라운 광경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멀리 하늘과 닿을 듯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하얀 눈에 덮여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히말라야를 닮았다.
“여기서도 저런 그림을 볼 수 있다니.”
두 사람은 입을 떠억 벌렸다.
“5월 말인데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어.”
“여기에서는 그럭저럭하게 보이지만 해발 5,000미터가 넘어.”
두 사람은 한동안 무사칼란 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만 가자고.”
부르릉!
차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커브길 한 개를 돌아섰을 때 권총수가 외쳤다.
“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