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기어이 악수(惡手)2
제국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큰 나라가 힘만 믿고 치고 들어왔다가 웃고 나간 나라가 거의 없는 곳이다.
과거에는 몽고가 아프카니스탄에서 주저앉으며 인도를 얻지 못했고, 영국이 인도군과 같이 쳐들어갔지만 주권까지 뺏지는 못했다.
소련이 들어갔다 능지처참을 당했고 미국 역시도 알카에다와 텔레반에게 재미를 보지 못하고 슬며시 발을 뺐다.
‘죽음(death)의 스펀지(sponge)’
누군가 아프카니스탄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발을 담그지 마라.
발을 담그는 순간 당신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죽어서 나갈 가능성이 높다.
카불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늦은 봄이라는 계절 탓인가 상상했던 것 보다는 느낌이 좋다.
공항 직원들도 상냥했고 사람들도 환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며 지나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데이비스입니다.”
입국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건장한 체구의 머리를 짧게 깎은 사내가 다가왔다.
“경찰팀장입니다.”
경찰 팀은 치안을 목적으로 파견된 용병들이며 그들의 훈련까지 지원한다.
다인코프의 한 팀은 쉰 명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숫자의 차이는 생기지만 1소대 25명씩 2개소대 오십 명 한 개 팀으로 운영한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크게 야전에서 싸우는 전투 팀과 치안을 다스리는 경찰팀, 고위급 인사의 신변을 지키는 경호팀, 그리고 대기업의 중요 시설이나 공사현장을 경계하는 경비팀으로 나눈다.
물론 임무는 수시로 바뀐다.
경비팀이 전투팀으로 바뀔수도 있고, 경찰팀이 경호팀의 임무를 수행 할 수도 있었다.
“정확히 경찰 팀이 하는 일은 뭐죠?”
“평소에는 아프칸 경찰이 질서를 통제하죠. 하지만 테러가 일어나거나 시위가 발생하면 우리가 나섭니다. 평소에는 경찰학교의 훈련을 맡습니다.”
데이비스는 카이로의 버홀터로부터 아프칸의 상황을 브리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데이비스는 혼다 SUV에 두 사람을 태우고 핸들을 잡았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어떤 상황을?”
오민철이 묻자 룸미러로 바라보았다.
“그냥 전체적인 것 말입니다. 뉴스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총소리가 울린다던데?”
“맞습니다. 장난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든지 테러범으로 돌변할 수가 있고 특히 외국군대에 대한 적대감은 굉장합니다.”
“우린 군대가 아니잖아요.”
“저들 눈에는 미국 심부름꾼으로 보이죠. 어쩌면 미국보다 더 나쁘다는 겁니다.”
조수석에 앉은 권총수는 데이비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이곳 양귀비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시죠?”
“사실 그게 난처한 일입니다. 아프카니스탄의 특징이라는 것이 있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은 양귀비를 죽음의 꽃이라 부르지만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재배하는 단순한 농사꾼일 뿐이죠.”
“아프칸 정부에서는 단속하지 않습니까?”
“왜 안하겠습니까. 합니다. 하지만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제대로 단속이 되겠습니까. 서로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담당 공무원이 돈 몇 푼 받고 눈감아 주죠. 얼마 전, 보다 못한 미군이 항공기로 약을 살포했는데 양귀비보다 밀과 옥수수 재배 농민들 피해가 더 컸습니다.”
“무슨 약을 뿌렸기에?”
“베트남전 하면 떠오르는게 뭡니까?”
“고엽제?”
“제초제를 왕창 뿌렸는데 양귀비는 말할 것도 없고 바로 옆에서 자라는 밀과 옥수수까지 말라죽어버린 거죠. 그것뿐 만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미리 농민들에게 통보를 하여 피할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군사작전 하듯 쏟아버린 것죠. 그 바람에 제초제를 뒤집어 쓴 농민들 피부에 물집은 기본이고 살갗이 벗겨지고 심지어 일부에서는 피부괴사까지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세계에서 마약에 대해 가장 엄격하고 강력한 제재를 하는 나라가 중국과 미국이다.
중국은 아편전쟁이라는 참혹한 과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잔인하다 싶을 만큼 엄격한 법 집행을 한다.
중국이 국내 마약수호에 국한한 단속이라면 미국은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단호하다.
한 마디로 생산지부터 공격하는 원천 봉쇄 작전인 것이다.
미국 자체에서 생산된 마약은 극히 미미하고 거의가 외부에서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마약은 사람을 황폐화 시키면서 마피아를 비롯한 범죄조직을 살찌운다.
범죄조직이 비대해지면 사회는 부패하게 되어있다.
막대한 자금으로 대척점에 있는 경찰과 단속 공무원, 심지어 그 지역의 정치인들까지 포섭하여 순식간에 국가를 썩은 물이 흐르는 강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발본색원을 하려는 것은 테러조직으로의 자금 유입 때문이다.
금융권 거래가 막히면서 돈줄이 차단되자 마약으로 눈을 돌렸다.
마약처럼 단 시간에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산업은 없다.
‘마약을 퇴출시키면 테러와 범죄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는 것이 FBI의 목소리다.
“서남아시아에서 양귀비를 뿌리 뽑지 못하면 테러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게 미국의 분명한 입장입니다.”
“재배 면적이 어느 정도 됩니까?”
뒷좌석에 앉은 오민철이 물었다.
“모르죠. 단지 유엔에서 발표한 추정치를 보면 전 세계 아편 생산량의 90프로가 아프카니스탄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권총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어금니만 단단하게 물려 있었는데 가장 잔인한 싸움이 마약전쟁이라는 걸 이미 브라질에서 한 번 경험 했다.
그들은 어떤 특수부대 보다 응집력이 강하면서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
한 해 마약을 단속하며 사망한 미국의 마약단속국 직원이 평균 10여명을 훌쩍 넘긴다.
후우!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프칸의 마약밀매조직은 어느 선이오?”
어느 선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데이비스가 돌아본다.
“다른 나라 조직들과 비교해서 말이오.”
“비슷하죠. 목숨 걸고 하는 놈들이 얌전할 리 있겠습니까? 더욱이 테러조직이 마약조직까지 겸하고 있으니 더욱 사납죠.”
차는 다인코프 경찰팀 숙소를 향해 달려갔다.
다인코프 경찰 팀이 묵고 있는 숙소는 카불 경찰청에서 도보로 10여분 떨어진 작은 건물이었다.
과거 시청 건물로 쓰였지만 텔레반의 공격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겨우 남은 별관 건물 한 동을 숙소로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정문에는 M4를 거머쥔 두 명의 용병이 차량 넘버를 확인하고 재빨리 바리케이트를 올려 주었다.
2층 숙소 앞에 차가 멈추고 권총수와 오민철이 내렸다.
건물 현관으로 들어갔는데 제법 넓은 로비에 이어 좌우로 복도가 뻗어 있고 정면으로는 2층을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데이비스는 사무실(office)라는 작은 글씨가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법 넓은 방에는 쇼파도 있고 책상과 컴퓨터까지 갖춰져 있다.
놀라는 얼굴의 오민철을 보며 데이비스는 웃었다.
“과거 시청 직원들이 쓰던 것 그대로입니다. 컴퓨터만 회사 재산입니다.”
데이비스는 내려놓은 커피를 잔에 부어 두 사람 앞에 한 잔씩 놓았다.
“가장 궁금한 것이 무엇입니까? 회사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많이 모자랍니다.”
권총수는 데비이스를 바라보았는데 씰 출신 답지 않게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붙임성이 있었다.
촤악!
데이비스는 한쪽 벽에 둘둘 말아 올려놓은 아프카니스탄 지도를 펼쳤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입니다. 지금 이곳 카불시내도 해발 1700미터죠. 가장 높은 산이 ‘노샤크’로 7,000 미터가 조금 넘습니다.”
지도를 치우더니 이번에는 커다란 사진 한 장을 벽에 걸었다.
눈 덮인 하얀 산이 찍힌 사진이었는데 군작전용이 아닌 누군가 풍경을 즐기기 위해 찍은 듯 보인다.
“보다시피 온통 산입니다. 워낙 골이 깊고 봉우리가 높아 핸드폰, 위성장치, 무전기 따위의 첨단장비가 소용 없습니다.”
“그럼 부대 간 연락은 어떻게 합니까?”
오민철이 물었다.
“미군들 말에 의하면 터지면 좋고 안 터지면 터지는 곳까지 이동해서 교신을 했다고 합니다.”
오민철이 입을 떠억 벌렸다.
어이 없다는 얼굴로 권총수를 돌아보았는데 그 모습에 데이비스가 빙긋 웃는다.
“영국군이 패하고, 소련이 나가 떨어지고, 미군이 바그람 공군기지 하나 남기고 슬쩍 발을 뺀 이유가 저 산들 때문입니다. 전투중 공중 공격이나 포병 지원을 받는게 굉장히 어렵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헬기로 이동해야 하는데 헬기가 어떤 항공기입니까. RPG 밥 아닙니까.”
권총수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팀장님께서는 우리를 돕는 것입니까. 아니면 투지를 꺾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까?”
움찔!
그제서야 데비이스는 자신이 너무 부정적이고 사기 저하적인 얘기만 했다는 걸 깨닫고 놀란다.
“미안합니다. 있는 그대로 설명하다보니.”
“하긴 아무리 용기도 좋고 사기진작도 중요하지만 작전회의에서는 있는 그대로 적의 상황을 말해야 하죠.”
오민철이 잠깐 어색해지려는 공기를 풀었다.
“밖에 차 좀 써도 되겠습니까?”
“두 분께서 사용할 용도로 준비한 것입니다. 총기는 어떻게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권총수는 담배를 피우며 말을 이었다.
“M4 두 자루 만 주시죠. 가능하겠습니까?”
“총은 충분히 있습니다.”
“권총도 있으면 주시죠.”
“글록 17이 있는데.”
구식 모델인데 괜찮겠냐는 표정이다.
“주세요!”
데이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벽으로 걸어갔다.
벽에는 어른 주먹만한 자물쇠로 잠겨진 문이 있었다.
톡!
열쇠로 자물쇠를 열더니 문을 열었다.
그그긍!
미닫이 형태의 문을 밀어내자 안에는 M4를 비롯한 십여 종의 총기들이 보였는데 M4가 가장 많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권총수는 총기들을 살피다 손을 뻗어 권총 한 자루를 쥐었다.
권총수는 총을 좌우로 한번 살펴보더니 슬라이드를 잡아 당겼다 놓았다.
쉬익!
번개처럼 사격자세를 취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데이비스는 M4 두 자루를 탁자 위에 놀려 놓았고 칠이 벗겨진 검정색 탄총을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탄총 안에는 30발들이 M4탄창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탄알이 채워져 있었다.
“이건 글록 탄창입니다.”
박스형 17발들이 탄창 세 개를 내 놓는다.
권총수는 세 개의 탄창을 주머니에 넣었다.
남한의 여섯 배 면적의 넓이라는 말을 실감했고 진정한 산악지대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고 있었다.
역시나 도로 사정은 최악이었다.
비포장인데다 오랜 전쟁으로 도로를 일부러 파헤쳐 놓은 듯 했다.
거기에 산악지역이다 보니 돌덩이들이 심심찮게 굴러와 도로를 막고 있었다.
SUV가 아니었다면 절대 갈 수 없는 그야말로 악전고투가 아닌 악전고행(惡戰苦行)이었다.
중간에 하루 밤을 쉬었지만 이틀을 걸려 목적지 헬만드주의 주도 라슈카르가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도시는 구름이 잔뜩 내려 앉아 있었고 적지 않은 차량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뭔 걸인들이 이렇게 많아?”
낡은 카페트 조각이나 보자기를 깔고 앉아 구걸하는 사람들이 지천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때 미군이 주둔하면서 지역민들과의 선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물자와 군용식량을 지원하면서부터 걸인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들이 내민 손을 미군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상부로부터 절대 매몰차게 대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미군을 침략자로 보는데 일반 시민들과의 관계까지 나빠지면 큰 타격은 불을 보듯 뻔했다.
말 그대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부지런히 자선을 행했는데 문제는 미군이 철수한 뒤에도 이들은 자리를 거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