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기어이 악수(惡手)1
다인코프 이집트 지사장 버홀터와 권총수가 노트북을 통해 영상 하나를 보고 있었다.
온통 흰색의 양귀비 꽃이 가득한 산속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부 밭에서는 아편 수확이 한참 진행중이다.
꽃이 지고 둥그렇게 맺힌 봉우리에 가벼운 칼 자국을 남기자 하얀 액체가 흘러나와 굳었다.
농민들은 칼끝으로 액체를 긁어 옆에 메고 있는 통에 담는다.
오랫동안 해 온 일인 듯 농민들의 손동작은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탁!
화면이 꺼졌다.
권총수는 꺼진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작년 미군에서 드론을 이용해 찍은 영상일세.”
권총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프카니스탄은 경험 있는가?”
무척 조심스럽다.
용병회사의 지사장은 절대권력이다.
그의 한마디면 회사를 나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말투 하나도 함부로 뱉지 않는 건 시장에서 갖는 권총수의 위치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다인코프 대표이사 메올라가 백지수표를 제의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이곳도 민간기업이다.
철저히 능력 위주이며 그의 목소리가 크다.
“없습니다.”
이라크와 시리아전 경험은 있으나 아프카니스탄은 출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외인부대시절 환경과 전쟁의 역학관계란 제목의 이론 교육을 받을 때 가장 많은 예로 들었던 지역이 아프카니스탄이었다.
아직까지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이든 민병대든 그들과 맞붙어 이긴 나라는 없다.
구 소련이 침공했다가 20,000명이 전사하고 50,000명이 불구가 되는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고 미국도 7,000억 달러라는 큰 돈을 쏟아 부었지만 승리라고 할 수 없는 상당한 피해를 입고 기어이 발을 빼고 있었다.
어느 미군사령관은 월남전 이후 두 번째 패배라는 표현을 썼다.
어쨌든 미국은 돈과 자국민(군인)의 목숨만 빼앗긴 채 떠나고 있으며 그 자리는 민간 기업 아카데미와 다인코프가 차곡차곡 메워 가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의료지원을 나온 전 미 육군 대위 출신이자 의사인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펜스’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다는 얘기를 듣고 때마침 트럭을 타고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어느 부족을 치료하기 위해 가며 중얼거렸다.
‘미국이 이 전쟁을 이긴다는 전문가들이 대다수였는데 저걸 보고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저 무지막지하게 높고 복잡한 산들을 봐라. 괜히 힌두쿠시(힌두인들이 죽어간 무덤이라는 뜻으로 비옥하고 따뜻한 힌두스탄에 살던 인도인들이 춥고 척박한 아프간에만 쳐들어오면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붙인 별명)에 구소련이 괜히 고전한 것이 아니다. 위성장치? 최첨단 과학장비?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들이다. 저 깊고 높은 산 속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멈출 것이다. 위성도 무전도, 전차도 불가능하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초반에 반짝하며 미국이 이기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탈레반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두 달 전 미국무부로부터 극비 문서 하나가 백악관으로 보내졌다.
‘인도를 비롯해 네팔, 이집트 일대의 양귀비 농사는 유엔의 지원과 당사국들의 노력으로 90퍼센트 이상 사라졌는데 아프카니스탄이 문제다.
워낙 산세가 깊고 험해 항공기를 이용한 실태 파악도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부 양귀비 농가의 배후엔 이슬람 테러조직이 도사리고 있다. 양귀비가 있는 한 아프카니스탄은 끝없이 서방 세계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백악관은 즉각 추경예산 편성을 지시했고 의회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닷새전 국무부로부터 다인코프에 협조 공문이 내려온 것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병력일세.”
“그보다 현재 아프카니스탄의 전황은 어떻습니까?”
“전황.”
버홀터가 중얼거리듯 말하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도 아카데미도 탈레반을 몰아가고는 있긴 한데 압도적으로 제압하지는 못하고 있네.”
애매한 대답이다.
이기고 있기는 하지만 전쟁을 끝낼 만큼 몰아치지는 못하고 있다는 말에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만만치 않다는 고백이다.
그렇다고 지구전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런 전쟁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무리수는 많은 희생을 부른다.
더구나 다인코프 아카데미 입장에서 보면 아프카니스탄은 사업장인 셈이다.
기업은 최소투자로 최대 이익을 얻어내야 한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익을 얻는 것이 더 우선이다.
“전쟁 중인 병력을 뺄 수는 없고, 현재 이집트에 있는 인원과 텍사스 훈련소에 있는 인원을 급히 보충하면 50여 명은 될 듯 하네, 문제는...”
버홀터는 잠시 말을 끊었다.
“알겠지만 헬만드주 칸다하르주 일대, 그러니까 우리가 가야 할 곳의 전황이 굉장히 엄중하다는 거야. 미군 영국군, 아프칸 정부군과 텔레반과 반군이 붙고 있지.”
“어제 뉴스에 보니 미군의 무덤이더군요.”
알고 있으니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전투부대가 양귀비 단속을 한다는 건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지역은 너무 위험하고...”
“거기에 병력은 없다는 말이군요.”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무리 민간 기업이지만 위에서 가라고 하면 가야죠.”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권총수의 표정이 조용히 잠긴다.
생각에 빠졌던 권총수가 입을 열었다.
“50명!”
“미안하네만 그 쉰 명도 한 번에 보충이 되는 건 아닐세.”
권총수는 담배를 소리나게 빨아 들였다.
전쟁처럼 숫자가 승패에 영향을 끼치는 게임도 없다.
특히 탈레반 같은 테러조직은 정규군이 아니다.
즉 게릴라 전에 특화된 집단이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카불로 갈테니 병력들 준비되는 대로 보내 주시죠.”
“오케이!”
권총수는 사무실을 나왔다.
지이잉!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는데 오민철이었다.
“뭐하는데 그렇게 전화를 안받아.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미안 미안!”
그러면서 흰색의 랜드로버 한 대가 사무실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민철의 차였다.
문이 열리고 내리는 오민철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 물려 있었다.
“왜? 좋은 일 있는 거야? 옛날에 소개받았다는 그 누님과 결혼하기로 한 거야?”
서울과 카이로 사이에 지금 뜨거운 결혼이 진행중이다.
큰 누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여자가 있는데 서로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지금 결혼이 중요하냐.”
“뭐가 중요한데?”
“아 이걸 어떻게 얘길 해야 하나? 그래 평범하게. 아주 부드럽게 말하지 뭐. 아주 엄청 떴다.”
오민철은 담배를 꺼내 물더니 어깨에 잔득 힘을 주며 라이터를 켰다.
후우!
길게 연기를 뿜어내며 느릿하게 말했다.
“주식, 연 사흘째 고공행진이다. 봐라 텔레비전 화면 사진까지 찍어왔다.”
오민철이 핸드폰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뉴욕주식시황 화면이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던 권총수를 보며 오민철이 외치듯 말했다.
“여기 다인코프 주식 보이지. 나도 주식 조금 하는 편이지만 어떻게 올라도 이렇게 오를 수가 있냐? 그냥 미사일이다.”
권총수의 계약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인코프의 주식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계약직전 권총수에게 언질을 받은 오민철은 돈이란 돈은 모조리 긁어 모아 다인코프 주식을 사 모았다.
그리고 연 사흘째 고공행진이다.
“언제 뺄건데.”
“빼긴 빼야지. 지나치게 오르면 견제심리가 발동해서 주춤 할 수가 있거든.”
오민철의 눈이 반짝거렸다.
“회사에서 여권 만들어 줄거야. 내일 카불 들어가야 돼.”
“카불! 아프카니스탄?”
“랭글리 똘마니 됐다면서?”
권총수가 자기 차로 걸어가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어...어떻게 알았어?”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욕 안해. 잘했다고 칭찬하기 위해 꺼낸 얘기야.”
“기회를 봐서 너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미안하다. 총수야.”
“괜찮다니까? 알아봤는데 블루요원 그거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고 길게는 몰라도 1, 2년 정도는 해볼만 하다더군.”
“누가 그래?”
“그들은 지독한 라이벌이야. 서로가 국가를 위해 일을 하지만 CIA와 국무부 정보조사국은 미국이란 나라의 정보의 양 축이야. 서로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백악관의 신임을 받기 위해 불꽃튀는 경쟁을 하고 있지.”
“정보조사국에서 가르쳐 줬단 얘기네?”
권총수는 차 문을 열고 돌아섰다.
“드레이븐 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더라고? 여기 대사관 직원인데 국무부 소속이더라고.”
오민철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은 다인코프 소속의 용병이다.
그런데 CIA를 위해 정보원 노릇을 한다면 결코 유쾌할 리가 없다.
“너무 걱정마. 내가 드레이븐에게 입 관리 좀 잘해달라고 부탁해 놨으니까.”
정보조사국 입은 막았으니 나머지 다인코프 관계자들 귀는 알아서 막으라는 얘기였다.
부우웅!
권총수를 태운 랜드로버가 멀어졌다.
오민철은 권총수가 멀어지자 신경질적으로 침을 뱉었다.
‘빌어먹을’
자신이 하는 일은 항상 어딘가 탈이 나고야 만다.
극비에 진행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왜 권총수처럼 깔끔하고 뒷탈 없이 처리하지 못하는 걸까.
‘가만, 문제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오민철의 눈이 빛났다.
드레이븐이라는 대사관 국무부 소속 직원이 가만 있는 권총수에게 전화를 했을리 없다.
파팟!
오민철의 눈이 빛났다.
자신이 맥보란에 대해 옛날과 달리 좋게 얘기를 하자 눈치 빠른 권총수는 둘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걸 알아 챈 것이다.
급기야 자신이 직접 전화를 하여 국무부에서 파견 나온 드레이븐과 통화를 했을 것이다.
상대가 사막의 흑새라는 것에 국무부 직원은 숨기지 않고 권총수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았을 것이다.
‘오민철씨가 CIA 블루요원이 됐습니다’
CIA는 국무부와 치열할 라이벌이기 때문에 오민철을 곱게 볼리 없다.
그러나 그 뒤에 사막의 흑새가 버티고 있으므로 직접 말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적당히 해 주십시오’
CIA에 흘러 들어가도 되는 정보는 줘야겠지만, 무게가 있는 내용들은 적당히 처리해 달라는 뜻이다.
오민철은 또 한번 권총수에게 신세를 졌음을 알고 크게 숨을 내 쉬었다.
런던 KAS사무실은 한겨울이었다.
조금전 사우디에 퍼져 있는 여러 현장에서 내용이 똑같은 메일 한 통을 보냈기 때문이다.
‘KAS는 이달 15일까지 사우디 영내에서 모두 떠날 것’
비밀경찰 마비히스의 발신으로 보내진 추방 통첩장은 마침내 권총수의 보복이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 했다.
스톤스는 계속해서 핸드폰을 누르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가 되지 않는 듯 표정이 굳어 있다.
빠악!
급기야 시멘트 바닥에 핸드폰을 집어 던져 버렸다.
핸드폰은 산산조각이 되었는데 모인 회사 중역들 모두의 안색이 굳었다.
“전화를 안 받는 모양이군. 하긴 나라도 받지 않을 거야.”
그나마 가장 절친한 관리이사 리네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날 약 올리는 건가?”
스톤스가 매섭게 노려본다.
리네커는 정색했다.
“각오했던 일 아닌가. 그나마 계약서 내용은 존중하겠다고 했으니 다행일세.”
부들부들!
스톤스는 주먹을 쥐며 부르르 떨었다.
사우디 시장이 가장 크다.
용병 숫자로 보면 이라크에 가장 많이 들어가 있지만 매출 즉, 수주액으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라크의 수십 배이다.
“죽일, 파흐드.”
스톤스 입에서 살기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흐드 잘못은 아니지. 자네 카드가 처음에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끝내 악수(惡手)로 마무리 된 것일 뿐이야.”
스톤스의 카드라는 건 권총수를 버린 걸 의미했다.
폭탄조끼 사고가 터지자 가장 먼저 스톤스 머리에 떠오르는 건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었다.
시장의 80프로가 중동에 몰려 있는 이상 테러범이 아닌 회사직원으로 인해 피해를 봤으니 당연히 유가족들과 합의를 해야 한다.
KAS라는 회사 이미지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보상은 불가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를 쳐야 했다.
재빨리 권총수를 구제불능의 정신병자로 몰아야 조금이라도 책임에서 자유롭고 보상액수도 작아진다.
“우라라라!”
스톤스는 다시 한 번 괴성을 지르더니 책상 위 서류들을 집어 던져 버렸다.
그래도 분을 삭히지 못한 듯 씩씩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