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98화 (198/651)

제198화: 아편전쟁(2)

캄캄하다.

도무지 권총수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상태는 정상인 듯한데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말이 없다.

희망적인 전설도 많지만 저주와 증오에 대한 사연도 많은 나일강이라는 것 때문인지 잠깐 잠깐씩 오싹해지기도 했다.

“떴다.”

오민철은 재빨리 어두운 강을 바라보았다.

권총수가 떴다고 했으므로 마트스야라는 물고기가 날개 짓을 하며 수면 위로 날아 오른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오민철은 재빨리 하늘을 보았다.

없다.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밤이긴 하지만 한쪽 날개가 5미터일 만큼 크다면 웬만하면 보일텐데 작은 구름조각 하나도 없었다.

팟!

어디 있느냐고 물으려다 말고 오민철의 눈이 빛났다.

상류 쪽에서 뭔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배였다.

배 한척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불이 꺼져 있는 것이 마치 영화 속의 해적선 같았다.

그때 권총수가 입을 열었다.

“형, 거기 뒤쪽에 바위 보이지.”

오민철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커다란 바위 하나가 보였다.

“그 뒤에 총 있을 거야. 꺼내.”

오민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위 뒤로 다가갔다.

낡은 양탄자에 뭔가 둘둘 말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양탄자를 풀자 두 자루 소총이 나왔는데 오민철이 깜짝 놀랐다.

“이건!”

오민철은 놀란 표정으로 소총을 이리저리 살폈다.

“진짜 AN-94?”

“뭐해. 배오는데.”

총에는 40발들이 바나나 탄창이 하나씩 끼워져 있고 예비로 네 개의 탄창이 더 있었다.

권총수는 오민철이 건네주는 총을 받으면서 말했다.

“별 것 없어. 그냥 당기면 돼. 탄창 빼고 넣는 건 M4와 똑 같아.”

그때 백여 톤 정도 되어 보이는 배가 강가로 접근해 오기 시작했는데 오민철이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마트스야(Matsya)’

배 옆면에 많이 지워지긴 했지만 분명히 그렇게 쓰여 있었다.

물고기 새에서 배로 바뀌었지만 이름은 분명 마트스야였다.

“무슨 배냐?”

오민철이 물었다.

“저 배에 생아편 500킬로가 실려 있어.”

화악!

오민철이 소스라쳤다.

“배달 트럭이 오는군.”

멀리서 트럭이 다가오는지 엔진 소리가 들렸지만 라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야시경을 끼고 운전하면 라이트가 필요 없지.”

야시경을 끼면 고속으로 달릴 수는 없지만 웬만한 속도는 낼 만큼 시야가 확보된다.

그날, 다인코프의 대표이사 메올라와 계약을 끝내고 리야드 공항으로 출발했다.

카이로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1시간 전까지 마주 앉았던 메올라가 사인한 볼펜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텐데 부탁을 하게 되었다면서 주저했다.

권총수는 사인을 한 몸이니 걱정 말고 얘기하라고 했다.

자신은 이제 직원이고 메올라는 상사이다.

메올라는 오늘 밤 나일강 도파 나루로 마약선 한 척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생아편 500킬로가 실려 있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압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총수는 알았다고 전화를 끊으려다 남미도 아닌 중동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생아편이라는 말에 어디서 들어온 정보냐고 물었다.

정보가 어디서 나왔느냐에 따라 신뢰도는 달라지고 이쪽에서 작전에 임하는 강도 역시 틀려진다.

‘미국무부요’

권총수가 잠시 의심하는 듯한 침묵을 보이자 메올라는 짧게 설명했다.

다인코프는 2015년 미국무부와 한 가지 계약을 맺었다.

미국의 힘이 필요한 곳에서 미군을 대신해 작전을 벌여주는 댓가로 50억 달러의 계약을 맺은 것이다.

블랙워터가 CIA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다인코프는 미국무부와 교류하고 있었다.

지금의 정보는 미국무부 핵심 정보기관인 ‘정보조사국(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 약칭 INR)’에서 보낸 것이라고 했다.

정보조사국은 국무부 산하 조직으로 위상이 CIA에 못지않다.

CIA와 정보 생산 시장이 다소 겹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정보취득 능력은 뛰어나며, 전 세계 군사작전에 관여하는 펜타곤(The Pentagon:국방부)도 INR을 간섭하지 못한다.

행정부이지만 매우 독특한 기관이다.

2009년 미 상원은 국방부의 계속된 이라크 전 헛발질에 분노하며 청문회를 열었다.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원의원들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과거 INR이 펜타곤의 압력이 있었음에도 베트남 전쟁의 진행 과정과 악영향을 정확히 분석했다는 것이었다.

‘빨리 종전할수록 미국에게 좋다’

는 서류가 국가기록관에서 발견 된 것이다.

CIA를 비롯한 미국의 많은 정보기관들이 이라크가 곧 핵무기를 만들 것이라면서 전쟁의 군불을 지폈지만 INR 만큼은 이라크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전쟁을 치른 후 드러난 사실은 INR 보고 그대로였다.

INR의 정보력이 대단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국무부는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국가에 외교공관이 있으며, 비교적 합법적인 선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첩보 활동을 하기 수월하다.

이들은 수시로 여러 국가들과 면담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입장이라 각 나라의 정세, 문화, 그리고 언어까지 통달한 직원들이 널려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INR은 각 경쟁국의 인사 자료까지 관리하면서 누가 그 나라의 실세인지도 파악하고 있었다.

정보조사국이란 말에 권총수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 막 국무부로부터 갑작스럽게 들어온 의뢰이다 보니 팀을 짠다거나 하는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혼자서 어떻게 해보라는 것이 메올라의 얘기였다.

“생아편 500킬로면 돈으로 얼마나 되지?”

“메올라 말로는 최소한 10억 달러 달러는 될 것이라던데.”

10억 달러라는 말에 오민철의 눈이 커졌는데 입술이 빠르게 꿈틀 거렸다.

한화로 계산하는 모양이었다.

오민철은 돈 얘기가 나오면 습관처럼 한화로 계산하는 버릇이 있다.

“모두 실은 모양이군.”

조금씩 배가 멀어졌고 트럭에 다섯 명의 사내들이 올라탔다.

두 명은 앞좌석에 올라탔고 세 명의 아편이 실린 뒷칸에 뛰어 올랐다.

“10억 달러면 우리 돈으로 1조가 넘어.”

“제조하여 헤로인으로 만들어내면 가격은 몇 배 급등한다던데.”

“헤로인!”

오민철의 눈이 빛난다.

“가자고!”

두 사람은 갈대숲 사이로 난 샛길을 이용해 트럭을 앞질렀다.

자동차가 오는데도 여전히 라이트가 켜지지 않는다.

갈대숲을 돌아 검정색 트럭 한 대가 나타났다.

“갈겨!”

“그냥 갈기라고?”

두두두두!

권총수가 자동으로 놓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에 뒤질세라 오민철도 트럭을 향해 40발들이 탄창 한 개를 순식간에 소비했다.

툭!

빈 탄창을 버리고 새 탄창으로 갈아 끼웠다.

슈우욱!

그때 권총수의 몸이 검은 그림자를 남기며 트럭으로 이동했는데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한걸음 움직이는 듯 했는데 어느새 트럭 측면으로 바짝 붙어 버린 것이다.

권총수는 뒷바퀴 아래로 바짝 웅크렸다.

화물칸에서 숨소리가 들린다.

앞에 탄 두 사내는 벌집이 되었는데 화물칸은 아직은 멀쩡한 모양이었다.

자신들끼리 경찰이니 경찰 같지는 않다느니 하면서 가벼운 다툼이 일어났으나 이내 조용해졌다.

스윽!

뒤로 돌아간 권총수가 머리를 올렸는데 세 사내가 허리를 숙인 채 전방을 살피고 있었다.

“엇! 아무도 없잖아.”

드르륵!

십여 발의 총알이 두 사내를 관통했고 맨 왼쪽 사내는 그대로 얼어 붙어버렸다.

어느 새 다가온 오민철이 트럭위로 올라가 사내 손에 들린 AK를 빼앗았다.

“내려!”

오민철의 명령에 사내는 땅으로 내려섰다.

“최신형이군.”

운전석을 뒤지던 권총수가 AN/PSQ-20A 야시경을 들고 왔다.

“굉장한데.”

오민철이 야시경을 써보더니 놀란다.

외인부대에서는 물론이고 KAS 근무시절 이라크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아카데미 용병들과 교전을 벌일 때 썼던 것보다 한 단계 더 개량된 야시경이었다.

“어느 쪽인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사내는 권총수의 질문에 담긴 의도를 간파한 듯 망설이는 눈치였다.

“난 당신을 죽일 이유가 없소.”

사실대로만 말해주면 얼마든지 살려주겠다는 뜻이었다.

“우린 운송만 맡았습니다.”

권총수는 웃었다.

뭣 좀 한다는 조직들은 거의 이런 식의 대답이다.

모든 걸 자기선에서 끊어내려고 한다.

“목적지는 어디요?”

사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살고 싶은 본능이 비밀 유지보다는 앞선 모양인 듯 입을 열었다.

“26가 101번지.”

그때 라이트가 비추며 포드 익스플로러 두 대가 나타났다.

탁!

차가 멈춰서며 라이트가 꺼졌고 문이 열리면서 모두 6명의 사내들이 내렸는데 하나같이 손에 M4를 들었다.

유일하게 총을 들지 않은 사내를 보았는데 맥보란이다.

선 조치 후 연락.

미국무부 정보조사국에서 CIA로 사건을 이첩 한 것이 분명했다.

마약 단속이나 거래는 정보조사국 관할이 아니다.

정보조사국에서는 우선 급하다 보니 다인코프에 지원을 요청했고 곧바로 CIA로 모든 걸 넘겼을 것이다.

중동에서 대규모 마약 운송은 테러자금과 연결될 가능성이 99퍼센트 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맥보란은 빙긋 웃는 권총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다지 밝은 얼굴은 아니었다.

이쪽이 무안할 만큼 한참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이제 당신에 대해 어떤 소문이 돌더라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런 강한 폭발에서 살아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분께서 26가 101번지가 물건이 도착할 장소라고 말해주었소.”

권총수는 맥보란의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10여 미터 걸어가던 권총수가 돌아보며 말했다.

“형 안 갈거야?”

“갈 거야.”

오민철은 재빨리 자신의 차를 숨겨 놓은 갈대밭 쪽으로 달려가 차를 끌고 나왔다.

탁!

랜드로버는 권총수를 태우고 사라졌다.

“서기관님!”

한 사내가 다가왔다.

“보시죠. 어마어마 합니다.”

맥보란은 사내를 따라 트럭 뒤에 실린 아편 덩어리를 보았다.

사내들이 랜턴을 켰고 크고 작은 시커먼 덩어리가 가득했다.

“10킬로그램짜리 50개입니다.”

꿀꺽!

맥보란이 침을 삼켰다.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15년 넘게 현장근무를 하면서 이토록 많은 마약은 처음 본다.

국무부 정보조사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사실 반신반의 했다.

마약을 운반한다는 정보를 흘려 함정을 설치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그렇게 희생된 CIA요원만 10여명에 이른다.

정보조사국으로부터 정보를 이관 받았지만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하여 서두르지 않았다.

바쁘다 보면 결과물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주의력이 떨어지면서 함정에 꼼짝 못하고 걸려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인코프에 연락하여 일단 1차 상황 파악을 지시했다는 말에 좀 더 안정감 있게 달려온 것이다.

“일단 26번가 101번지부터 감시에 들어가.”

사내들에게 지시를 내린 맥보란은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맥보란은 권총수가 탄 랜드로버가 사라진 어둠속을 바라보았다.

‘변했어’

지금까지 권총수와 딱 두 번을 만났다.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첩보원으로서의 상대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은 두 번을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본다거나 권총을 뽑아들며 위협하지도 않았다.

그냥 빙긋 웃으며 바라보고 있기만 했는데 답답할 만큼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런 자신의 신체적 반응을 맥보란은 알고 있었다.

심리적 카리스마에 짓눌린 것이다.

지금까지 누굴 만나도 기세를 뿜어내며 항상 위에 있었지 한 번도 밀려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으로 짓눌린 것이다.

‘강호무사’

티벳 고승, 포탈라궁으로부터 강호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기록을 얻었지만 모든 것이 미스터리였다.

‘도대체 그곳은 어디일까’

지상 최고의 정보 창고라는 CIA를 샅샅이 뒤졌지만 강호라는 곳에 대한 건 일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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