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97화 (197/651)

제197화: 아편전쟁(1)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권총수를 찾는다.

파흐드 왕세자 주변사람들에게 권총수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KAS와 감정문제로 그쪽과 접촉하고 있는지 알아봤지만 그들도 찾고 있다는 대답을 보내온다.

잡아야 한다.

그동안 권총수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신비스런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용병업계에서 몸값이 조금 비싸다 싶으면 하나같이 총을 맞아도 죽지 않으며, 일당 백이 아니라 진짜로 혼자서 백 명의 적을 해치웠다는 얘기가 쉽게 떠돈다.

헌데 권총수는 한 술 더 떴다.

‘하늘을 날아간다.’

믿는 사람은 믿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안 믿었다.

하지만 콤포지션4로 제조한 폭탄이 터졌는데도 살아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연봉은 백지 위임이다.’

보안업체들 마다 백지 수표를 들고 권총수를 찾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헤집고 다녔다.

스톤스는 라이터 불을 켰다 껐다 반복했다.

탁!

딸칵!

탁!

딸칵!

은색 지포 라이터였는데 불이 켜지면 뚜껑을 닫아 껐고 다시 뚜껑을 열고 불을 켜기를 계속했다.

사실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워낙 사건이 커져 버렸고 누군가 분명한 책임을 지지않는 한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미안하지만 죽은 사람이 모든 걸 끌어안고 사라지는 것이 그나마 살아 있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돕는 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권총수 개인의 일탈로 모든 것을 몰아 버렸다.

딸칵!

이번에 켜진 불에 담배를 붙였다.

길게 한 모금 빨아 내 뿜더니 인터폰을 눌렀다.

“네 회장님!”

“관리이사 좀 오라고 해요.”

자리에서 일어난 스톤스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금방 눈이라도 내릴 듯 런던의 하늘은 잔득 찌푸려 있었다.

“결정을 내렸나?”

친구이자 관리이사인 리네커가 들어오고 있었다.

스톤스는 소파로 걸어가 앉았고 리네커는 맞은편에 앉았다.

“아무 일 없네.”

“무슨 말인가?”

“사우디 정부와 맺은 경호사업은 아직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았다는 얘기지.”

“이보게 스톤스.”

“사우디에서 새로운 사업에는 뛰어들기 쉽지 않겠지만 기존 사업에서 내 발로 물러날 일은 없을 걸세.”

“내 말 듣게.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으려 하나. 사우디에 우리의 많은 사업이 집중되어 있긴 하지만 발을 뺀다고 당장 망하지는 않네. 도의적인 책임, 권총수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우리 스스로가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일 때 권총수 역시 마음을 조금은 추스릴 것 아닌가.”

“자네 지금 사우디에 걸려 있는 돈이 얼만 줄 알고 그러나. 자그마치 20억 달러가 넘는 큰 돈이야. 신규사업은 불가능 하겠지만 진행중인건 마저 계약을 끝내야 할 것 아닌가.”

“지금 돈이 중요한가. 우린 회사 성장의 일등공신을 파렴치범으로 몰아 버렸어. 잘못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는 것 말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통 크게 행동하게 자칫 하다간 진짜 크게 다칠걸세.”

“KAS란 전함은 그대로 항해하는 거야. 도중에 항로를 바꾼다거나 속도를 늦추는 일은 절대 없을 걸세.”

스톤스는 단호했다.

* * *

벤틀리 한 대가 리야드 메리어트 호텔 앞에 멈췄다.

이어 뒤따라 멈춰선 검정색 포드 익스플로러의 앞 뒤 문이 동시에 열리며 정장을 한 네 사내가 벤틀리 뒷문을 에워싼다.

벤틀리 문이 열리고 쉰 정도 들어보이는 금발의 사내가 내렸다.

금테안경을 끼었는데 유난히 코가 우뚝 솟았고, 2대8 가르마가 흐트러짐이 없다.

금발의 사내는 경호원들에 둘러 싸여 호텔로 들어갔는데 곧장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5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와 문이 열리고 일행이 올랐다.

다른 투숙객들이 동승하려다 분위기가 불편한 듯 멈칫 거리더니 물러서 버렸다.

탁!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10층에 멈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커피숍이었다.

오후 2시의 커피숍은 한산했고 채 열 명이 안 되는 손님들이 차를 마시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커피숍으로 들어선 일행이 멈칫하며 빠른 눈으로 안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창가에 한 사내가 앉아 잡지를 보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금발 사내의 일행은 곧장 잡지를 읽고 있는 창가의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권총수씨?”

잡지를 보고 있던 권총수가 고개를 들었다.

권총수의 시선은 경호원들이 아닌 금발의 사내에게 멎었다.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금발의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앉았다.

경호원들은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앞뒤로 두 명씩 짝을 이뤄 자리를 잡았는데 시선은 커피숍 구석구석을 향해 있다.

“하는 일이라는 것이 총 맞기 좋은 직업이다 보니 이해해 주십시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금발의 사내는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명함을 받은 권총수 잠시 눈으로 읽는 듯 하더니 조용히 윗주머니에 넣었다.

‘다인코프(DynCorp)대표이사 메올라’

메올라 하면 가장 먼저 ‘고딕 서펀트(Gothic Serpent)’작전을 떠올린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거물 군벌 아이디드를 사살하기 위한 미군의 비밀 작전이었다.

델타포스(Delta Force), 네이비 씰(Navy SEAL), 그리고 육군의 레인저(Ranger)로 이뤄진 강습부대와 160 특수전 항공대로 구성된, 그야말로 미군이 자랑하는 최정예가 모여 아이디드가 있다는 올림픽 호텔을 급습했다.

호텔에는 160명의 무장군인들이 있었으나 미군의 작전은 과감했다.

작전은 계획대로 이뤄졌고 상당수를 사살하고 체포했다.

하지만 작전중 미군 UH-60 블랙 호크 두 대가 적의 RPG에 맞아 격추되고 세대가 추락하는 사고를 입었다.

문제는 추락한 헬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들이었다.

문제는 격전지가 시내 중심가라는 것이었고 아이디드를 지지하는 엄청난 수의 민병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미군의 피해도 컸다.

더 이상 미군희생은 안된다고 판단한 현장 지휘관이 철수 지시를 내렸지만 델타포스의 한 팀이 소말리아 민병대가 쏟아내는 불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메올라 상사였다.

그는 17명만을 데리고 뛰어들어 기어이 헬기 조종사를 구출해 낸 것이다.

조종사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무려 40명이 넘는 민병대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면서 일약 전장의 불사신으로 불리게 된다.

델타포스가 창설되고 가장 뛰어난 다섯 요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 눈앞에 앉아 있다.

권총수를 찾는 사람들의 전화로 가장 곤욕을 치룬 사람은 비서실장 사울란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전화나 방문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 모두가 예전 파흐드 왕세자가 핍박받던 시절 알 살만의 눈을 피해 도움을 주었던 기업가들과 보안업체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이 권총수를 만나려고 한 건 뻔했다.

자신은 권총수의 연락처를 알고 있으며 부탁을 한다면 백퍼센트는 아니어도 관심있게 얘기는 들어줄 것이다.

그중 다인코프의 메올라의 방문은 뜻밖이었다.

자신들과 한 때 절친했으나 권총수를 앞세운 KAS가 들어오면서 밀려났다.

감정이 좋을 리 없는데도 대표이사가 직접 왔다는 말에 권총수는 의외로 흔쾌히 만나겠다고 했다.

스윽!

수표 한 장을 내밀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문장이 찍힌 수표용지다.

메올라 대표는 빙긋 웃었다.

“마음대로 사인하셔도 됩니다. 전 결코 후회 하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불과 얼마 전까지 당신들과 서로의 목에 총구를 겨누었던 물과 불이었는데.”

“과거 없는 인생 있습니까?”

사업가다운 발상이다.

장사꾼은 과거를 기억하되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KAS회장 스톤스의 지론이었다.

슥!

권총수는 윗주머니에 꽂힌 볼펜을 꺼내 수표에 숫자를 쓰기 시작했다.

메올라 대표의 두 눈이 수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랜드로버 한 대가 나일강변을 빠르게 달렸다.

노면이 울퉁불퉁 하여 금방이라도 전복 될 것 같았지만 차는 더욱 속도를 내면서 쿵쾅쾅 하는 소리가 석양지는 강변을 울렸다.

끼이이익!

달리던 랜드로버가 멈추고 오민철이 내렸다.

뚝!

오민철의 시선이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석양 속에 까만 점 하나가 보인다.

비록 선홍빛 석양에 눈이 부셔 까만 점의 형태를 분명하게 볼 수 없지만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민철이 달려갔다.

다다닥!

백 미터를 달리는 육상 선수처럼 뛰어가던 오민철이 걸음을 세웠다.

불타는 나일강의 석양을 바라보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에 익다.

꿈엔들 잊을손가.

그였다.

꽃이나 새를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사람이 얼마만큼 멋지고 경이적인 동물인지를 알게 해준 당사자였다.

천천히 걸어갔고 사내는 낚싯대를 담가 놓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총수야!”

오민철이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이쪽에 앉아!”

권총수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멈칫!

미쳐 못 봤다.

3미터 정도 떨어진 옆으로 의자 하나와 낚싯대 한 개가 물속에 담가져 있었다.

“뭐해. 앉아.”

오민철은 엉거주춤 하며 의자에 앉았다.

“이게 뭐냐?”

오민철은 약간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느닷없이 낚싯대는 또 뭔가.

“나일강에 마트스야가 살고 있대.”

그건 또 무슨 물고기냐는 듯 오민철이 물었다.

권총수는 진짜 낚시꾼처럼 조릿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몸은 물고기인데 양쪽에 날개를 갖고 있는 전설속의 어조(魚鳥)인데 평소에는 물속에서 살다가 백 년 만에 한 번씩 물 위로 올라와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거야.”

순간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이 감격스러운 순간에 이런 김빠진 얘기해야 되냐.”

“날개 한쪽 길이가 5미터이고 등에 사람을 태우고 다닐 수 있으며, 물속에서 한번 뻐끔 하며 물을 들이마시면 나일강의 수위가 줄어들었다가 뱉어내면 다시 늘어난다는 거야.”

오민철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는데 권총수를 뚫어져라 돌아보았다.

“마트스야가 한 번 울면 천둥이 치는 것 같고, 발톱은 강철보다 단단하여 부수지 못할 것이 없어. 그 마트스야가 오늘 밤 하늘로 날아 오른 다는 거야”

오민철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무슨 개소리야. 임마 형이 부르면 고개 좀 돌려 봐야 할 것 아냐. 권총수.”

“왜?”

권총수가 돌아보았는데 표정은 진지했다.

“내가 누구야? 내 이름 말해봐.”

오민철은 혹시나 권총수의 정신에 문제가 있나 싶어 물었다.

“오민철.”

“좋아. 우리가 어느 부대를 제대했지. 같이 근무한 군부대 말이야.”

“레지옹 에트랑제(외인부대).”

“중대장이 누구였어?”

“튀랑대위님.”

“지금 우리 직업은 뭐지?”

“용병.”

꿀꺽!

오민철은 침을 삼켰다.

자신의 질문에 전혀 흔들리거나 틀리지 않고 정확한 대답을 한 걸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는 없어 보였다.

“우리 큰누나 이름이 뭐야?”

“오미자.”

오민철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무리 봐도 정상으로 보이는데 갑자기 물속에 사는 새는 뭐고, 울음소리가 천둥치듯 한다는 건 뭔가.

“너 미친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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