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96화 (196/651)

제196화: 대사관의 택배(2)

리베라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서...서기관님!”

“이봐!”

“서기관님 빨리 좀 와보십시오.”

“무슨 일인데 그러나?”

“가방에 있는 것이 시신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여자입니다.”

맥보란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이마를 찡그렸다.

위험물 처리실이 있다.

폭발물로 의심되거나 탄저균 따위의 화학테러 예방을 위해 특별히 설치된 지하 창고이다.

이중으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국방색의 폭발 보호복을 걸친 한 사내가 모자만 벗은 채 있었는데 들어서던 맥보란의 눈이 커졌다.

엄마 뱃속에 든 아이처럼 한 여성이 열린 캐리어에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살았어?”

“수면 상태이긴 하지만 심장 맥박 모두 정상입니다.”

가까이 다가온 맥보란은 측면으로 누워 있는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허리를 구부렸다.

“엇!!”

맥보란은 깜짝 놀랐다.

숨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살피더니 여인을 반듯하게 눕혔다.

반듯하게 눕혔는데도 굳어버린 듯 여자는 웅크린 자세를 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얼어 버린 것도 아닌데 눕혀놨지만 풀리지 않은 몸을 보며 리베라와 보호복 사내가 놀란다.

맥보란은 핸드폰을 꺼내 앨범 속에 저장된 사진을 부지런히 밀어 올리더니 한 곳에서 멈춘다.

화면 속 사진을 여자의 얼굴 옆에 나란히 놓았다.

“그 여자야. 그 여자.”

그 여자라는 말에 여전히 두 사람은 의혹 가득한 얼굴이다.

“화이트 위도우, 사만다 루스웨이트.”

“네에?”

리베라는 다가가 핸드폰 속 사진과 여자 얼굴을 한참 비교했다.

그러더니 당혹스런 표정을 했다.

“그토록 쫓았어도 보이지 않던 여자인데.”

보고 또 봐도 CIA 일급 수배범이다.

맥보란은 펴지지 않는 사만다 루이 웨스트의 몸을 살폈다.

슬쩍 오른발을 잡아 당겨 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팔 역시도 단단하게 얼어버린 시신처럼 그대로다.

죽었다면 차가워야 하는데 따뜻한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전달이 되고 있다.

한동안 조각상처럼 되어버린 몸을 보며 맥보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바로 그때였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사만다 루스웨이트의 몸이 반듯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마치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생닭이 녹으면서 부드러워 지는 것 같았다.

두 다리를 뻗고 반듯하게 누운 자세가 된 사만다 루스웨이트가 이번에는 눈썹을 깜빡 거리더니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잠시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정리하는 듯 하더니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주위를 휘둘러보던 사만다 루스웨이트가 맥보란을 발견하고 눈을 깜빡거렸다.

그건 맥보란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잠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던 사만다 루이웨스트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조금은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 웃음이다.

“이곳으로 보내는 것이나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나 다를 것도 없는데.”

사만다 루스웨이트가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더니 반으로 접힌 쪽지를 꺼내 맥보란에게 내밀었다.

“뭐하세요. 빨리 받지 않고, 그가 당신에게 전달해 달라던데.”

맥보란은 종이를 받아 펼쳤다.

종이에는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가 길게 쓰여 있었다.

한눈에 은행 계좌라는 걸 알아보았는데 맨 밑에 쓰인 몇 글자를 읽던 맥보란의 눈이 커졌다.

‘그 여자 목에 500만 달러가 걸린 것으로 알고 있소. 미국 정부의 약속을 믿겠소.’

500만 달러를 적어 보낸 자신의 계좌에 입금 하라는 뜻이었다.

“누구였소?”

“짐작하잖아요.”

사만다 루스웨이트는 조금도 겁을 먹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사막의 흑새가 살아 있군.”

맥보란은 중얼 거렸다.

“그럼 그렇지. 그는 그렇게 쉽게 죽을 남자가 아냐. 대충 살다 죽을지 아니면 어떤 역경이 닥쳐도 반드시 부수고 나갈 사람인지 보면 안다고.”

맥보란은 자신의 판단이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 만족스런 모양이었다.

“사막의 흑새가 살아 있다는 말입니까?”

리베라의 눈이 커졌다.

“그는 지금 어딨소?”

“몰나르 왕자를 데리고 갔으니 아마 사우디에 있겠죠.”

“몰나르 왕자까지 구출했단 말이오?”

“잘났다는 CIA도 이제 보니 형편없군요.”

맥보란은 급히 입을 열어 말했다.

“이 여자를 취조실로 데려가.”

그리고 지하 위험물 처리실을 나온 맥보란은 감청위험이 없는 전화로 랭글리와 통화를 시도했다.

“사막의 흑새가 살아 있습니다. 몰나르 왕자를 구출해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사관에 사만다 루스웨이트가 있습니다.”

“지금 누구라고 했나?”

랭글리 직속상관 R이다.

“화이트 위도우 말입니다.”

“정말로 그 여자가 잡혔단 말인가?”

맥보란은 사만다 루스웨이트가 캐리어에 실려 왔다고 했다.

랭글리의 R도 매우 놀란 듯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단호히 한마디를 했다.

“돈은 보내주게. 그건 약속이니까. 그리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사막의 흑새와 접촉하게.”

“알겠습니다.”

맥보란은 전화를 끊고 다시 지하 위험물처리실로 향했다.

다인코프 카이로지사에 오민철이 나타났다.

사무실은 카이로 외곽에 있었는데 개인주택처럼 보이는 3층짜리 회색 건물과 판넬로 지어진 길다란 단층짜리 건물 한 동이 있었다.

정문은 에이치(H)빔을 삼중으로 잇대어 세웠는데 웬만한 장갑차도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고 허리를 구부려야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어디서 오셨소?”

경비실 창문이 열리며 젊은 사내가 오민철의 위 아래를 훑었다.

“오민철이라고 합니다. 이미 지사장님과 통화를 끝냈습니다.”

“아, 오민철씨 연락 받았습니다. 들어오시죠.”

탁!

하는 소리가 들리며 작은 문이 열렸다.

오민철이 허리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가자 경비실 문이 열리고 권총을 허리에 찬 서른 후반의 사내가 나왔다.

“저기 3층 건물 보이시죠. 1층이 사무실입니다. 지사장님께서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민철은 경비가 가리켜준 3층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는 오민철을 바라보는 경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이 바닥이지만.”

오민철과 권총수는 다인코프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보안업계는 때로는 상대 회사의 에이스를 스카웃 하거나 장애가 된다 싶으면 몰래 제거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 대표적인 상대가 KAS고 그곳 에이스가 권총수와 오민철이었다.

더욱이 권총수 때문에 사우디에서 밀려난 다인코프 입장에서는 그의 그림자라도 할 수 있는 오민철을 곱게 볼 리 없다.

똑똑!

오민철은 노크를 했다.

느릿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덮는다.

사무실은 상당히 넓었는데 여자 한 명과 마흔 초반 가량의 사내가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여자는 백인이었는데 단발머리였다.

아마 군 출신일 것이다.

보안업계에 근무하는 여자들 대부분이며 최소한 총 정도는 쏠 줄 아는 여자들을 채용한다.

“어디서 오셨죠?”

“지사장님 뵙기로 했죠. 오민철입니다.”

“오민철씨.”

안쪽의 사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다니 황급히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민철은 지사장이란 사내가 내미는 손을 굳게 잡았다.

사내는 오민철을 소파로 안내하더니 명함을 꺼내 주었다.

‘버홀터’

직위는 다인코프 중동지사장이다.

델타포스 출신이며 중사로 제대했고 훈장처럼 자신이 참여한 작전을 명함에 빼곡하게 기록해 놓았다.

“텍사스에 연락했더니 무척 좋아하더군요.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텍사스에 다인코프 본사가 있다.

자신과 통화가 끝나자 곧바로 본사로 전화를 한 모앙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연봉에 대한 적정선도 이미 마련되었을 것이 뻔했다.

스카웃 형태도 아니고 스스로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연봉협상에서 결코 유리한 위치가 아니다.

마음속으로 CIA에서 받은 50만달러를 연봉에 포함시켜 150만 달러면 미련없이 사인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승리 수당이나 보너스를 제외한 순수 연봉으로 150만 달러를 제의해 왔다.

굳이 오래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으므로 곧장 사인했다.

그때 업무를 보고 있던 여자, 캐서린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지사장님 사막의 흑새가 살아있다는 뉴스가 지금 막 인터넷에 떴어요.”

사막의 흑새라는 말에 오민철은 얼어붙어 버렸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오민철은 곧장 캐서린의 컴퓨터 앞으로 달려왔다.

“여기 보세요.”

캐서린이 오픈 시켜 놓은 화면을 가리켰다.

‘사막의 흑새 살아 있다’

그리고 이어진 기사에는 권총수가 사우디의 몰나르 왕자를 구출하여 리야드로 돌아갔다는 얘기였다.

오민철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권총수의 옛날 번호였는데 없는 전화번호라는 멘트가 흘러 나왔다.

잠시 고민하던 오민철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재빨리 또 하나의 번호를 눌렀다.

액정에 ‘사울란’이라고 뜬다.

파흐드 비서실장인 사울란에게 직접 전화를 해보려는 것이다.

문제는 그에게 자신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저장되지 않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절대 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과 만나려면 비서나 보좌관을 통해 일차 신분을 검사받고 연락을 취하는 것이 정상코스였다.

예상대로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았다.

권총수 외에는 누구의 전화번호도 갖지 않은 모양이었다.

심장이 얼마나 세차게 뛰는지 온 몸이 쿵쿵 거렸다.

다시 캐서린의 컴퓨터로 다가가 다른 언론사 기사를 찾았다.

수많은 언론사들이 사막의 흑새 생존소식을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었다.

영국의 ‘더 선’과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사막의 흑새가 살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동안 보합세를 보여 오던 뉴욕과 런던의 보안업계 주가가 꿈틀 거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대중의 가장 큰 관심사는 KAS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아직까지 어떤 논평이나 발표도 내놓지 않고 있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모든 걸 권총수 개인에게 몰아 버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아랍 쪽 언론들 또한 철저히 폭탄테러로 규정해 버렸다.

백악관 또한 테러라고 발표해 버렸는데 이 모든 배후에는 KAS가 있었다.

권총수의 명예를 보호하려다가는 엄청난 손해배상 요구가 들어올 것이 뻔했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면 빨리 털어야 한다는 것이 KAS 내부 의견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세에 있지만 한때 KAS주가는 무자비할 만큼 폭락을 거듭했었다.

그러던 중 권총수 개인의 일탈로 정리되면서 어느 정도 주가는 회복세를 보였다.

“볼만 하겠는데.”

지사장 버홀터가 미소를 지었다.

“이것 좀 보세요.”

오민철이 돌아서려는데 캐서린이 뉴스 한 대목을 클로즈업했다.

‘KAS주식 급락’

가디언의 인터넷판 기사였다.

주식급락의 가장 큰 이유는 KAS가 사우디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KAS로부터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권총수가 과연 가만 내버려 두겠느냐는 것이었다.

파흐드 왕세자 입장에서는 하나 뿐인 아들을 구출한 권총수에게 무엇을 준들 아깝겠느냐는 것이었다.

오민철은 당장 권총수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사고 때 전화기를 잃고 난 이후 아직 새로 전화를 개통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일반전화를 통해 얼마든지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

꿈틀!

오민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에게는 가정 먼저 전화를 해야 한다.

일가친척도 없는 이집트에서 권총수의 생사에 가장 울고 웃을 사람은 자신뿐이다.

그런데 왜 여지껏 전화를 하지 않을까.

혹시 자신이 권총수에게 섭섭하게 한 것이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었다.

설혹 실수가 있었다고 해도 삐치거나, 연락을 않을 권총수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게 미치도록 즐거우면서도 한 편으로 연락이 없다는 것이 불안하다.

지이잉!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재빨리 핸드폰을 꺼낸 오민철은 문자를 오픈 시켰다.

‘당장 다인코프 주식을 사. 있는 돈 삭삭 긁어 살 수 있는 만큼 사라고’

부르르!

누가 보냈는지 흔적도 증거도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이런 말투로 문자를 보낼 사람은 세상에서 한 명 뿐이다.

“오케이!”

오민철은 재빨리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역시 내 동생 바오로야."

말을 하다 말고 오민철은 흠칫 했다.

"너무 흥분하다 보니 그 새끼가 제일 싫어하는 세레명을 불러 버렸네."

오민철은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거래 은행 담당자에게 다인코프 주식을 봐주지 말고 긁어 담으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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