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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95화 (195/651)

제195화: 대사관의 택배(1)

권총수는 탁자 위에 놓인 권총을 왼손을 뻗어 쥐더니 탄창 멈치를 눌러 탄창을 꺼냈다.

그리고 권총을 창문을 향해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긴다.

탕!

하는 소리가 나고 약실에 물린 한 발이 발사 되었다.

툭!

한쪽으로 권총을 집어 던져 버린 권총수는 바닥에 떨어진 탄창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안쪽에 자주 빛 천을 덮고 자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멈칫!

사내는 옆으로 누웠는데 권총수는 반듯하게 눕혀 천장을 보게 했다.

“몰나르.”

파흐드 왕세자의 아들이었다.

정상적이라면 인질이 이토록 태평하게 잠을 잘 리가 없다.

소음기소리지만 제법 큰 소음에도 반응 하지 않은 몰나르 왕자의 등을 툭 쳤다.

“왕자님.”

꼼짝도 하지 않는다.

“왕자님!”

몸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목소리에 내공을 넣어 낮은 사자후를 터뜨렸다.

“몰나르 왕자님!”

꿈틀!

벼락을 맞은 듯 몸을 한번 떨었으나 눈은 뜨지 못했다.

양손가락과 발가락이 꼼지락 거리는 걸 보면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마약이다’

권총수가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를 돌아봤다.

“마약이군?”

정상적이라면 살려달라고 소릴 지르고 애걸복걸 하면서 지키는 감시병들을 귀찮게 할 것이다.

두들겨 패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코 대책은 아니다.

오랫동안 인질로 두고 여러 가지 거래를 이뤄 내야 하는 입장에서 방법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헤로인을 투약했소.”

권총수는 몰나르 왕자를 반듯하게 눕히고 윗도리를 완전히 벗겨냈다.

그리고 곧바로 추궁과혈에 들어갔다.

바바바바!

손바닥이 강약을 조절하면서 곳곳의 혈도를 치고 밀어내는 동작을 반복했다.

추궁과혈은 여러 가지 치료법으로 응용되는데 지금은 몸속에 있는 마약기운을 신체 한곳으로 몰아 뭉치는 주정(株精)수법이다.

몰나르의 오른 손 검지가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바바바바!

권총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추궁과혈은 손바닥으로 환자의 몸에 얼마만큼 적절하게 내공을 주입하느냐가 효과를 좌우한다.

당연히 신중할 수 밖에 없고 어떤 내가치료법 보다 진기 소모가 크다.

몰나르 왕자의 오른손 검지가 완전히 먹물로 변했다.

권총수는 결가부좌하여 몰나르 왕자의 검지를 감싸 쥐었다.

치이익!

독정화소(毒精火燒), 독을 태우는 내가신공.

몰나르 왕자 검지 끝으로부터 시커먼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합성고무를 태울 때 나는 시커먼 연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차이라면 양이 적다는 것 뿐이었다.

진하게 뿜어 나오던 연기가 조금씩 흰색으로 변하더니 한순간 조용히 사라졌다.

파악!

손바닥으로 신궐혈을 때렸다.

컥!

하는 소리를 내며 몰나르 입에서 검은색 피가 나오더니 눈을 떴다.

몰나르는 정신이 드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다 권총수 뒤쪽 의자에 얼어붙듯 앉아 있는 사내를 발견하더니 몸을 떨었다.

순식간에 얼굴은 공포로 덮였는데 권총수는 사내에게 혹독한 구타와 폭력을 당한 것이라고 보았다.

“진정 하십시오. 이제 나와 같이 가면 됩니다.”

“당신은?”

“아버님께서 보낸 캡틴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사막의 흑새라고 부르더군요.”

“정말 당신이 그 사람 맞단 말입니까?”

“이렇게 구출하러 왔습니다. 염려 말고 떠날 준비 하시죠.”

권총수는 의자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하나 마나 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물어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롱바 어딨소?”

사내는 권총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모른다는 뜻이다.

지이잉!

권총수의 귓가로 핸드폰 진동음이 들렸다.

자신은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으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몰나르 역시도 압수당하고 없다.

권총수는 허리를 구부려 사내의 오른쪽 아랫주머니에 손을 넣고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지 제한 표시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스윽!

통화버튼을 누르고 귓가에 댔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로부터 아무런 말이 없다.

“훗! 이렇게 만나다니.”

권총수는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는 듯 미소를 지었다.

“불청객이어서 어색한 모양인데 기다리시오. 찾는 사람 바꿔 드리죠.”

핸드폰을 사내에게 주려고 하는데 굵직한 남자 음성이 들려왔다.

“경이롭군. 설마 했는데 진짜 살아있다니.”

“나도 놀라고 있소.”

“생각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고인이셨군요.”

“어디요?”

“너무 서두르지 마시죠. 시간 많지 않습니까?”

“더 많은 사람을 죽이겠다는 거요? 무사의 칼은 민초를 겨누지 않는 법이오. 오직 무사를 향해서만 뽑혀야 합니다.”

“웃기는 소리, 나중에 또 봅시다.”

전화는 끊겼다.

권총수는 잠시 핸드폰을 바라보더니 사내에게 던져주었다.

몰나르가 떠날 채비가 되었다는 듯 다가와 있었다.

“가시죠.”

권총수는 몸을 돌렸고 몰나르는 사내가 무서운 듯 서둘러 밖으로 걸어갔다.

권총수는 두 걸음 정도 걸어가다 돌아서더니 사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권총수는 권총을 뒷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극비 작전이었다.

몰나르의 신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소기업 ‘셀릭’전기회사의 사장이었다.

권총수 역시 라비 야신이란 이름을 가진 사우디 외교 공무원이었다.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관계로 리야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나란히 앉았는데 권총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특히 승무원들이 지나갈 때마다 긴장했다.

두 달 전 파리행 비행기에서 여자 승무원이 미국인 여승객에게 칼을 휘두르는 일이 벌어졌다.

칼에 찔린 여인은 다행히도 승객 중 의사가 있어 위기를 넘겼는데 후에 승무원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알려졌다.

권총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도록 했다.

승무원으로부터 기내 서비스로 콜라를 받았지만 마시지 못하도록 했다.

리야드 공항에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2시간 30분, 권총수는 나중 기자들과 회견에서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길고도 긴장된 여행이었다고 고백했다.

비행기가 착륙했지만 내려야 할 문이 쉽게 열리지 않자 승객들이 웅성거렸다.

승무원은 아무 일 없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내 방송을 했다.

그러는 가운데 단 두 사람, 권총수와 몰나르만 통로를 걸어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덜컹!

승무원이 문을 열었고 두 사람이 승객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권총수는 비서실장 사울란과 홍차를 놓고 앉았다.

사울란은 충격과 감격을 주체 못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기쁨, 감사, 축복, 행복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런 표현들은 알라를 향해 감사 기도를 할 때, 아니면 청원기도를 할 때 들어가는 극 존칭의 표현인데 권총수에게 쓴 것이다.

그 만큼 몰나르의 귀환은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것이다.

그때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울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권총수의 귀에는 파흐드 왕세자가 옷자락을 끌며 다가오고 있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권총수는 들어서는 파흐드 왕세자를 향해 깍듯하게 허리를 구부렸다.

“캡...틴!”

파흐드 왕세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서 들어오지 않고 뭐하십니까?”

권총수는 안내를 받아 집무실로 들어섰다.

안쪽으로 몰나르 왕자가 서 있었는데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

와락!

파흐드 왕세자는 권총수를 끌어안았다.

“당신은 알라 다음가는 내 스승이오.”

알라 다음가는 스승이라는 말 보다 더 적극적인 표현은 없다.

“아주 잠깐 당신을 오해 했소. 인간의 귀라는 것이 이토록 분별력이 없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폭탄조끼 사건으로 권총수에 대한 오염된 뉴스가 지천이었다.

워낙 심하게 집중되다 보니 아닐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일면 의심을 했다는 것을 고백했다.

얘기는 정치로 흘러갔다.

얼마 전 민주주의를 향한 개헌 투표가 사우디 역사상 처음으로 열렸고 무려 88퍼센트가 헌법 개정에 찬성했다.

국왕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고, 임기 4년에 연임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국회의석을 300석으로 묶어 놓고 지역 나누기에 들어갔으며 사법부 또한 독자 기관으로 자립하는데 분주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아부딘 궁전의 사건 전말을 설명해 주었는데 파흐드 왕세자가 놀라며 중얼거렸다.

콤포지션 4 폭약 아래서 살아났다는 대목에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파흐드 왕세자는 쉬지 않고 신은 위대하다고 했다.

모두를 물리치고 권총수와 파흐드 왕세자 단둘이 마주 앉았다.

“내게 할 얘기 많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얘긴 뭐든지 하라는 눈빛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 *

미국 국가가 흘러나왔다.

미 해병대원 두 명이 절도있는 동작으로 대사관 깃대에 게양된 성조기를 거두고 있었다.

아침이면 올려지고 저녁 퇴근 무렵이면 내려진다.

맥보란 또한 퇴근을 하기 위해 작업 중이던 컴퓨터를 껐다.

드르륵!

창문을 열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멀리 성조기를 내리는 해병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문득 한 사내가 떠올랐는데 오민철이다.

다인코프의 문을 두들길 예정이라면서 씨익 웃었다.

과거 악연이 적지 않은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오민철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먹고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얽히고설키는 것이 인생살이인데 앙심을 품는다면 세상 지천이 원수들일 겁니다.’

‘훗!’

짧게 웃었다.

CIA 파일에는 오민철이 단순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본 오민철은 교활할 만큼 영리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CIA블루 요원은 단순한 사람보다는 교활한 편이 낫다.

후우!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맥보란을 흘긋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일은 그럭저럭 잘 진행되고 있는데 시원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길한 그림자는 아니다.

물론 긍정적인 기운도 아닌 매우 어정쩡한 그런 감정이 가슴을 누른다.

‘이 기분은 뭐지’

꺼림칙할 뿐 정확하게 왜 하루 종일 기분이 이러는 건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부하요원 리베라가 고개를 들이 밀었다.

“서기관님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무슨 일이야?”

“서기관님 앞으로 소포 하나가 왔는데 엑스선 투시 결과 사람 같습니다.”

가끔 반미를 외치는 집단이나 개인들이 놀래줄 목적으로 죽은 시신을 보내는 일이 발생한다.

그럴 때면 카이로 경찰에 시신을 인수해 가도록 하는데 대부분 무연고로 확인된다.

“쳐 죽일 놈들, 그냥 보내 버려.”

맥보란이 버럭 짜증을 냈다.

“알겠습니다.”

리베라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시체가 배달되었다는 소식에 욱 하며 분노가 치솟는다.

“으음!”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갈수록 미국을 향한 이슬람의 시선은 적대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문제는 이슬람근본주의 무장 테러단체가 아닌 미국인 관광객들을 향한 일반인들의 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대사관에서는 가급적 혼자 다니지 말 것을 권유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중동지역으로의 여행을 삼가 할 것을 권유하지만 기독교 성지를 순례하려는 순례자들의 발길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그나마 중동에서 이집트가 가장 미국에 우호적인데 시체를 보냈다는 건 이곳의 공기 또한 갈수록 반미로 달궈지고 있다는 뜻이다.

벌컹!

인상을 잔뜩 쓰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조금 전 돌아갔던 리베라가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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