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92화 (192/651)

제192화: 흑새는 날아오고(2)

단번에 몸이 떠올라 지붕 위로 올라갔다.

멀지 않은 곳에 지붕을 뚫고 우뚝 솟아 있는 돔이 보였는데 빙 둘러 창문이 한 개씩 붙어 있었다.

스으으으!

권총수의 몸이 수평으로 날아가 닫힌 창문 아래 섰다.

손바닥을 유리에 대고 내기를 끌어 올리자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스윽!

허리를 구부려 안으로 들어간 권총수는 원형계단을 통해 천천히 내려갔다.

발자국 소리는 없다.

보통 사람처럼 계단을 밟고 내려가지만 허공에 떠있다.

허공답보(虛空踏步).

계단 끝에 이르자 넓은 예배실이 나왔는데 캄캄한 어둠만 내려 앉아있을 뿐 조용했다.

벽쪽으로 굳게 닫힌 십여 개의 기도실을 살폈지만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없다’

스으윽!

넓은 실내를 날아가 끝에 있는 작은 문 앞에 내려섰다.

스르르!

나무로 된 문이 열리며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강기로 차단했다.

문밖으로는 작은 회랑이 이어졌다.

어른 두 명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돌기둥들이 중간 중간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30여 미터 정도 되는 회랑 끝에 도착하자 낙타를 타고 가는 쿠드라에 이갈을 두른 사내가 조각된 청동문이 있다.

‘사람이 있다’

숨소리가 고른 것이 잠에 빠진 듯 했다.

권총수는 손잡이를 당겼는데 예상대로 잠겼고 곧장 내가강기를 끌어 올렸다.

손잡이 근처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면서 문이 힘없이 열렸다.

스르르!

안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또 하나의 나무문이 있었다.

권총수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안은 캄캄한 어둠이 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바닥에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왼쪽 벽으로 붙은 나무 침대에 비쩍 마른 사람 한 명이 누워있었다.

캄캄했지만 권총수의 눈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노인의 얼굴을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해오탈 사원의 이맘이었던 아흐메드였다.

그는 권총수가 다가온 줄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시 잠속에 빠진 아흐메드를 바라보던 권총수는 검정색 노트북이 놓인 책상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말보로 레드를 피워 물고 불을 붙인다.

라이터 겨는 소리 때문일까 아니면 뿜어낸 담배연기 냄새를 맡아서 인가 아흐메드가 눈을 떴는데 코를 벌름 거렸다.

담배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헛!”

사람은 잘 보이지 않고 빨아 당긴 담배의 붉은 빛을 발견하고 소스라쳤다.

“그 총 잡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베개 아래 감춰둔 권총을 잡으려던 아흐메드가 멈칫했다.

권총이 숨겨진 걸 알고서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행동이었다.

뛰는 가슴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며 누워 있던 아흐메드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어둠에 적응된 눈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권총수가 보일 것이지만 눈살을 잔뜩 찌푸리는 것이 처음 보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권총수는 주위를 둘러보다 물 컵을 발견하고 그곳에 담배 꽁초를 집어넣고 껐다.

“간단히 끝냅시다. 오늘 무기상인 ‘파라오’와 만난다고 들었습니다?”

아흐메드는 움찔했다.

극비중의 극비사건을 알고 있다.

파라오.

본명은 호삼 앨 바드리,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가진 총기의 70프로가 그의 손에서 나온다고 전해진다.

러시아, 중국, 미국 무기를 가리지 않고 판매하는데 파라오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대답하기 싫다는 거요?”

“묘하군요. 얼굴은 처음 보는데 기분이 이상해요. 우리 아는 사이 아니었던가?”

상당히 안정을 되찾은 목소리였다.

두두둑!

권총수의 얼굴이 밀가루 반죽처럼 여러 형태로 변하더니 멈췄다.

“자네는?”

제 얼굴을 드러내자 아흐메드가 깜짝 놀란다.

그런 폭발 속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알라께서 정말 내 앞에 나타났소.”

권총수는 자신이 신을 찾아 여행 중인 구도자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말은 정말로 알라를 만났고 도움을 받아 살아났다는 얘기지만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아흐메드를 향한 비아냥이었다.

걸핏하면 지하드(聖戰)를 외치고 알라의 이름으로 심판한다고 떠드는데 성전이고 신이고 핑계거리일 뿐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애꿎은 형제들을 선동하고 유혹하여 죽음으로 내 몰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보는 관점과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요.”

아흐메드는 차분하게 말했다.

“영감, 내가 어떻게 가짜인 것을 알았소?”

아흐메드는 빙긋 웃었다.

“이집트 입국자 명단을 뒤졌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아르무감이라는 사람이 들어온 기록이 없었소.”

권총수의 눈이 좁혀졌다.

어느 나라든 출입국 명단은 적법절차를 밟지 않고 외부에 개방되지 않는다.

결국 이집트 정부의 고위 관료까지 이들 조직원이라는 뜻이다.

“얼굴은 완벽하게 위장했지만 목소리까지는 바꾸지 못했소. 결정적인 건 다할풀 수도원의 원주 포텐차리께서 우리가 녹음한 음성을 들어보더니 당신이라고 말해주더군.”

권총수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남기지 않을수록 안전하다’

훈련 시절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일까 했다.

그러나 자대에 배치를 받고 전장으로 뛰어들면서 남기지 않을수록 안전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군인은 어떤 사유와 이유로라도 민간인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혀서는 안 된다.

그건 제너바 협약으로 분명하게 못을 박고 있었다.

그러나 제너바 협약을 이행하다 죽은 군인들이 적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참사로 기록된 것이 2005년 6월에 있었던 네이비 씰의 ‘레드윙’작전이다

네 명의 정찰대원이 작전 중 양치기 소년들을 만났지만 고민 끝에 살려주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돌아가 신고를 했고 텔레반의 포위공격을 받아 넷 중 3명이 죽는다.

피해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온 지원부대 헬기가 RPG에 날아가면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죽이느냐 놔두느냐.

놔두면 필시 해가 되어 돌아온다는 걸 알면서도, 또한 제너바 협약이 아니어도 총이 없는 민간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권총수는 속으로 웃고 말았다.

사실 포텐차리라는 노인은 죽여도 크게 꺼릴 건 없었다.

아롱바에 대해 말하려는 굴샨이라는 심부름 노인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만하면 명분도 생겼다.

그런데 제자에게 다리까지 베인 노 스승의 모습에서 잠시 흔들렸다.

잠깐의 자비가 자신을 어마어마한 함정으로 몰아넣어 버린 것이다.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포텐차리는 금세 구별해 냈고, 아르무감이라는 이름으로 카이로에 들어온 인도네시아인이 없다는 것까지 드러나면서 아흐메드 일당은 백퍼센트 사막의 흑새라는 걸 확인했을 것이다.

권총수는 후끈 달아올랐다.

도둑질 하다 들킨 사람 같기도 했고, 웬지 창피했다.

“얘기마저 하죠.”

권총수는 무기상 파라오와 만나기로 한 장소를 캐물었다.

하지만 아흐메드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권총수의 표정이 갈수록 차가워진다.

더 이상 자비는 없다.

권총수의 눈에 손때 묻은 전기 주전자가 보였다.

찻물을 끓일 때 사용한 것으로 보였는데 필립슨이라는 낯익은 상표가 보였다.

스텐리스로 된 듯 묵직했다.

안에 물이 들어 있었는데 권총수는 목이 마른 듯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셨다.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은 걸 보면 모조리 마신 듯 보였다.

아흐메드는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휘이익!

권총수는 들고 있던 전기주전자로 마흐메드의 머리를 찍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에 피하고 자시고 할 기회도 없었다.

빠악!

둔탁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지고 아흐메드의 얼굴이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빨갛게 덮였다.

아흐메드는 신음을 흘리지는 않았으나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찡그렸다.

퍼억!

아흐메드는 침대에서 결가부좌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을 찍었다.

“컥!”

이번에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말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빡!

빠바박!

연거푸 무릎을 찍었고 아흐메드는 온 몸을 떨었다.

살점이 떨어지고 허연 무릎 뼈가 드러났는데 산산이 부서졌다.

이번에는 왼쪽 무릎을 후려쳤고 빠직 하는 소리가 들리며 슬개골이 조각났다.

양쪽 무릎을 거덜 낸 권총수는 이번에는 오른쪽 어깨를 찍었다.

뚜욱!

어깨뼈가 부러지는 소리다.

권총수는 왼쪽 어깨까지 박살냈다.

“마...르스!”

굉장히 고통스러운 듯 온 입술을 들썩 거렸다.

“나 알라가 있으니.”

철컥!

권총수는 뒷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더니 소음기를 끼웠다.

“고통해서 해방되리라”

권총수는 코란의 한 구절을 중얼 거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총알은 이마를 관통했고 아흐메드는 뒤로 벌렁 눕더니 조용해졌다.

권총수는 방을 걸어 나갔다.

마르스는 나일강을 끼고 있는 조그만 어촌이다.

주민의 20프로가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나일강의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해 간다.

정확한 위치는 수도 카이로와 칼리우비야 주도(州都)인 바나(Banha)시 사이에 있다.

권총수는 흰색의 랜드로버를 몰고 있었다.

주나이드 말에 의하면 상당한 무기가 마르스에서 거래 될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길은 나쁘지 않아 새벽 2시쯤 되어 마르스에 도착했다.

권총수는 강물이 흐르는 부둣가로 나가보았다.

강이지만 바닷가 부두처럼 수십 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었으며 일부 배는 새벽 조업을 나가는 듯 불을 켜고 출항하고 있었다.

부둣가의 여기저기를 대략 한 번 살핀 권총수는 닻줄을 묶는 시멘트로 된 말뚝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뿌우우!

20여톤 가까이 되어 보이는 어선 한척이 물살을 가르며 나일강의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귓가로 조금 전 출항한 배가 만들어낸 파도소리가 들린다.

온갖 전설과 신화를 담고 있는 나일강으로부터 눅눅한 바람 한 조각이 불어왔다.

툭!

권총수는 강물에 담배 꽁초를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부둣가를 걸으며 오늘 벌어질 일에 대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에는 전략과 전술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인원이고 두 번째가 장소다.

통상적으로 밀매 현장에는 다섯에서 일곱 명이 동원된다.

무기를 구입하는 무자헤딘 쪽은 당연히 상대보다 많은 인원을 동원할 것이다.

정확한 거래가 이뤄진다면 숫자는 큰 의미가 없으나 암거래조직들은 세 과시 차원에서라도 머리수에 신경을 쓴다.

30여분 부둣가를 서성거리던 권총수는 모텔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나일강은 크다.

강 맞은편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폭이 넓었으며 엄청난 크기의 화물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밤새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어선들이 쏟아 놓은 생선들로 부둣가는 활기가 넘쳤다.

권총수는 들어오는 배들을 유심히 관찰했고 조금이라도 수상쩍다 싶으면 은밀히 접근하여 살폈다.

흘긋!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가 오전 10시를 가리킨다.

주나이드는 정확한 시간을 모르고 오늘이라는 날짜만 분명하게 특정했다.

여기저기 부지런히 살피고 확인하고 있을 때 또 한척의 어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거대한 작살과 두꺼운 그물이 실린 걸 보아 나일강의 거대한 고기 ‘나일퍼치’를 잡는 어선으로 보였다.

배는 속도를 줄이며 부두에 닿았다.

닻을 내리고 선원들이 1미터가 조금 넘는 상자를 하나씩 들고 나왔는데 나일퍼치를 담은 상자였다.

나일퍼치는 시장 거래보다는 미식가들에 의해 예약 판매되기 때문에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잡아서 상자에 담아 예약 손님에게 바로 배달되는 것이다.

사내들이 부둣가에 내려놓은 상자는 20여개 정도 되었다.

그때 트럭 한 대가 부둣가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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