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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89화 (189/651)

제189화: 끄나풀(1)

스톤스 회장을 비롯해 회사측에서 권총수를 망상장애도 모자라 분노조절 장애로까지 몰아버리는 처사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사직서를 쓴 것이다.

아무리 피해배상을 줄이기 위해서라지만 오늘날 KAS를 아카데미 수준까지 올려놓은 권총수를 너무 잔인하게 팽개쳤다.

처음에는 사직서를 반려했다.

권총수 만큼은 아니지만 오민철의 능력 또한 대단했기 때문이다.

오민철이 만류를 뿌리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자 회사측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계약서대로 하자’

에반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서 복사본 한 부를 부탁했는데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리야드로 떠날 것이다.

계약서가 분실됐거나 회사 측 입장대로 그런 내용으로 사인이 된 것이라면 미련 없이 돌려주고 인천행 비행기를 타겠다고 마음먹었다.

* * *

뿌리는 것도 중요 하지만 거두는 것 또한 깨끗해야 한다.

지금 자신보다 더 아롱바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없고, 이번 테러를 당하면서 무자헤딘에 대한 규모와 크기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었다.

적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다.

복수 차원이 아니라 사건 해결 측면에서 쫓아야 한다.

해질 무렵 저녁기도를 위해 사원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해오탈 모스크는 금세 사람들로 메워졌고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복장을 한 권총수는 기도를 하면서 쉴 사이 없이 예배를 이끄는 이맘을 살폈지만 당시 자신이 만났던 아흐메드가 아니다.

혹시 기도 중에 있는 사람중 아흐메드가 있나 훑어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흐메드 뿐만이 아니라 고물상 주인 주나이드도 보이지 않았다.

고물상 자체가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하긴!’

있을 턱이 없다.

그들은 한 번 있는 곳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기도가 끝나고 사원을 나오는 사람들 속에 권총수도 있었다.

기대를 한건 아니지만 소득이 없자 힘이 빠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며 권총수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랜드로버 운전자 카사브, 칸, 라크비, 이스마일에 대한 정보는 없다.

남은 사람은 해오탈 사원의 이맘 아흐메드와 고물상 주인 주나이드, 그리고 화이트 위도우로 추정되는 여인 사만다 루스웨이트와 마테르다.

팟!

마테르를 떠올리는 순간 한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문이 열리고 수갑이 채워진 마테르가 들어섰다.

면회 왔다는 말에 누굴까 가장 궁금했다.

그들이 면회를 올리는 없다.

면회는 정체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자신을 찾는 사람들은 이집트 경찰의 집중 관찰 대상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건 신분이 어떻기에 정치인이나 재벌총수들 만이 사용할 수 있는 면회실이 아닌 사무실로 불렀을 까였다.

한 사내가 창밖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뒷모습을 봐서는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일부러 자신이 들어섰다는 걸 알리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담배를 피우던 사내가 천천히 돌아섰다.

처음 보는 인물이다.

마흔 중년 정도로 보였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낯설다.

부욱!

사내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는데 멀리서도 말보로 레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말보로 레드를 봐서일까 갑자기 흡연욕구가 생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내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말보로 한 개비를 내밀었다.

마테르는 주위를 살폈다.

그건 여기서 피워도 되느냐는 의미였다.

사내는 괜찮다는 듯 빙긋 웃었다.

마테르는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딸칵!

라이터로 불까지 붙여주며 자리를 권했다.

마테르는 의자에 앉았다.

척!

사내는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뒷주머니에서 잡지 한 권을 뽑아 펼쳤다.

뉴스위크지다.

마테르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멈췄는데 자신도 뉴스위크지를 자주 보는 편이다.

담배의 취향도 같고 자주 읽은 시사주간지도 같다.

마테르는 우연치고 매우 특이하다고 판단하면서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취향이 같다는 건 자신과 매우 통하는 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팔랑!

마테르는 담배를 피우며 뉴스위크지를 보는 사내에게 시선을 박았다.

사내는 자신에게 전혀 눈길도 주지 않고 잡지를 읽는데 집중했다.

처음과는 달리 긴장은 상당히 풀렸지만 면회를 온 사람이 잡지만 읽고 있는 것에 의혹이 안개처럼 피어난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아직까지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 뱉지 않았다.

여객기를 테헤란으로 끌고가는 공중 납치는 실패 했으나 마테르에게는 테러 혐의가 적용되어 지금 재판을 밟고 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앞으로 이십년 이내에는 교도소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부욱!

아껴 피운다고 했지만 꽁초를 잡은 손가락이 뜨거울 만큼 필터까지 타들어온다.

북!

재떨이에 담배를 끈 마테르는 입을 열었다.

“어디서 오셨소? 이집트 경찰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기장님과 어떤 얘기를 나눌까 고민을 했죠. 가급적 오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 어떤 반응을 할까.”

“다른 건 모르겠고 난 당신이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믿소.”

“감사합니다.”

사내는 들고 있던 뉴스위크지를 놓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기장님, 석방은 장담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오 년 안에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마테르의 눈이 커졌다.

현재 나이가 마흔 둘이다.

가장 적게 계산하여 딱 20년 살고나온다고 해도 예순 둘이다.

자신을 조사하던 경찰들은 감형을 당근으로 내 놓고 배후와 조직도를 집요하게 추궁했다.

말이 20년이지 현재 마흔 둘이므로 빨리 나온다고 해도 환갑을 넘긴다.

무덥고 황량한 사막이 전부인 이집트에서 늙은 노인이 벌어먹을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없다.

더욱이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이라면 길거리에 앉아 구걸을 하거나 아니면 쓰레기더미를 헤집는 것 뿐이다.

“미안합니다.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한 명 뿐 입니다.”

“아흐메드.”

“아는군요?”

“난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

“허면 뭘 원하십니까?”

“주나이드.”

마테르는 주나이드가 누구냐는 듯 이마를 찡그린다.

“고물상 사장님이오.”

“그 날 포함하여 두 번 만났습니다.”

“첫 번째는 어디서 만났소?”

마테르는 옛날을 생각하는 듯 눈을 좁히고 넓혀 뜨기를 반복했다.

“이제 생각났소. 코니체 카페였소.”

그곳이 어디냐는 듯 사내가 뚫어져라 보았다.

“콥트.”

“콥트?”

“스트리츠 14번지에 있는 케이크 카페죠. 그 집 햄버거와 샌드위치가 뛰어나지요.”

탁!

사내의 오른손이 파리를 쫓듯 허공을 휘저었다.

기억력을 관장하는 풍지혈(風池穴)을 제압하여 오늘 자신을 만났고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전혀 기억을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줄을 섰다.

마테르 말에 의하면 의자가 스무 개가 채 되지 않아 잘못 가면 줄만 서다 빈 손으로 돌아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긴 줄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십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권총수는 30여분을 기다렸다가 샌드위치와 양유 한잔을 시켰다.

손님은 연령층이 다양했는데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다.

맛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샌드위치 중 가장 부드럽다.

콥트에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했다.

오늘로 벌써 닷새 째였는데 주인의 눈을 의식해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변체환용!

내공이 반박귀진에 들어서면서 변체환용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얼굴뿐 만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자유자재로 바꾸는 변성도 가능했다.

10대 후반의 소년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고희에 접어든 노인이 되어 나타났고, 마흔의 노동자 행색으로도 나타나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기도 했다.

고물상의 주인 주나이드가 마테르와 이곳에서 만났다는 건 햄버거와 케이크, 샌드위치를 좋아 한다는 뜻이다.

습관 중 가장 불변하는 것이 식성이라고 했다.

그건 언젠가는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희미한 가능성일지라도 올인해야 한다.

* * *

리야드로 계약서 확인을 위해 갔던 오민철이 카이로 공항으로 돌아왔다.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는데 기다리고 있던 나카야마가 다가왔다.

“민철!”

오민철은 마중을 나온 나카야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뭐하러 바쁜데 나왔느냐는 타박이다.

오민철은 말없이 커피숍으로 들어갔고 나카아먀가 졸졸 따라 들어왔다.

오민철이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나카야마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문하고 있는 오민철을 보는 나카야마의 얼굴이 착잡했다.

어떻게 됐냐고 차마 물어 볼 수가 없다.

어두운 표정은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민철이 커피 두 잔을 가져왔다.

아옹다옹 다투기도 하고 금세 희희낙락거리며 거리낌이 없었던 둘 사이지만 오늘 따라 공기는 무겁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오민철이었다.

“계약서가 진짜 없어졌어.”

“없다니?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내 총기고 안에 잘 넣어 놓고 자물쇠를 채웠는데.”

총기고는 본인 이외에는 누구도 열지 못하도록 각자 열쇠를 갖고 있다.

물론 열쇠는 아라비아 숫자로 되어 있다.

“그래서 런던 본사에 있는 계약서 사본을 요청해서 살폈지.”

나카무라의 눈이 빛났다.

“맞아. 그들의 요구가 잘못된 것 없어. 부상을 입고 계약을 이행할 수 없을 때는 몰라도 자의에 의해 떠나고자 할 땐 먼저 받았던 연봉의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는 조항이 있더라고.”

용병들 계약서는 각자 틀리다.

근무했던 부대와 경력, 출신국가 혼인 여부와 투입되는 국가의 치안 상태에 따라 세밀하게 내용이 조정된다.

나카야마 자신의 계약서에는 오민철과 같은 내용은 없었다.

“어떡할 건데?”

“돌려줘야지.”

“민철, 반 년치를 돌려준다고? 그러지 말고 꾹 참고 반년을 채워 온전히 받아 챙기는 것이 낫지 않아?”

“누가 간대? 어딜 가?”

오민철의 눈이 번득였다.

“이대로 못가.”

“무슨 말인데?”

“다른 회사로 옮겨야겠어.”

“복수?”

“나도 오기가 있지. 내 일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총수의 명예를 자근자근 짓밟은 건 절대 넘어갈 수 없어. 재수 없으면 내가 먼저 죽을 것이고 더럽게 운이 좋으면 스톤스 목에 내 칼이 들어가겠지.”

쭈욱!

오민철은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휴 뜨거.”

오민철은 애꿎은 커피를 노려보며 버럭 짜증을 냈다.

“너 조심해. 지금은 같은 회사니까 봐주지만 갈라서면 그땐 이놈 저놈 안 가릴 거야. 눈에 보이면 골로 갈 줄 알아.”

전장에서 만나면 죽여버리겠다는 뜻이다.

나카야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민철은 지금 잔뜩 끓어올라 있었다.

뜨거운 쇳물에 물을 부으면 식는 것이 아니라 폭발해 버린다.

위로한답시고 이것저것 간언(諫言)하다가는 오히려 불을 지르는 꼴이 되고 만다.

“죽어도 그냥은 못가.”

오민철은 남은 커피를 단 번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아악, 새 슬피 운다. 졸라.”

버럭 소릴 지르자 주위 사람들이 쳐다본다.

어느 새 10일이 지났다.

그러나 가게 종업원 누구도 동일한 사람이라는 건 알아보지 못했고 주나이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햄버거를 주문해 콜라와 같이 먹고 있었다.

가게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전 축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집트와 카메룬이 경기를 벌이고 있었는데 후반전이 끝나가는데 양 팀 모두 0대0으로 팽팽했다

“샌드위치 하나 주시오.”

권총수는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꿀꺽!

아직 덜 씹은 햄버거를 삼켰다.

구석진 곳에 앉은 사내는 틀림없는 고물상의 주인이었던 주나이드였다.

그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구레나룻가 더 길어졌다는 것이었다.

권총수는 남아 있는 햄버거를 한입에 넣고 몇 번 씹은 뒤 콜라와 함께 삼켰다.

이른 아침인데도 가게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나이드는 느긋하게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게 먹는다.

씹는 이의 강도만 봐도 그가 허기를 채우기 위한 단순 식사인지 아니면 햄버거를 좋아하는 건지 알 수 있다.

권총수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미국을 공격하는 테러집단의 조직원이 미국의 상징이랄 수 있는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몹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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