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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87화 (187/651)

제187화: 겨우 살아나다(1)

권총수는 의식을 차렸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뼈가 없는 사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고 축 늘어진다.

진기를 끌어 올리려다 말고 포기했다.

단전이 텅 비었다.

순간적으로 주화입마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워낙 강한 충격에 일시적으로 진기가 모이지 않는 기여심공(氣餘心空)현상일 것이다.

강한 충격이 몸속의 기경팔맥에 충격을 주면 육신은 뒤틀리고 끊어지면서 제자리를 이탈한다.

이때 내공 또한 몸과 같이 부서지는 것이다.

즉,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튕겨 날아가는 형태가 된다.

몸이 정상이 되면 흩어진 내공은 다시 하나로 모인다.

내공이 모아지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부상이 심하다는 뜻이었다.

“음!”

권총수의 눈동자가 좌우로 굴러다닌다.

이제야 이곳이 다락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폭풍에 휘말리며 날아간 몸뚱이가 시멘트 벽을 뚫고 다락방으로 쳐 박힌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눅눅한 사막의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멀리 깜빡이는 불빛 한 개가 보인다.

방안에서 깨진 시멘트 조각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흠칫!

권총수는 갑자기 깜짝 놀랐다.

뚫린 벽의 구멍이 성인의 몸이 밀고 들어왔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의외로 작았다.

“아!”

그제서야 자신이 축골신공을 펼친 상태라는 것을 인지 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내공을 끌어 올렸는데 축골신공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욱!”

엄청난 통증만 밀려 올 뿐 내공이 모이지 않는다.

펼칠 때는 이갑자의 내공이 필요하지만 신공을 거두어 원래도 돌아갈 때는 그다지 많은 공력이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내공도 모아지지 않아 십여 세의 소년 정도 되는 작은 몸이었다.

그러다 보니 입고 있는 옷도 헐렁하여 마치 장포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았다.

권총수는 결가부좌했다.

되든 안 되든 빨리 해결해야 한다.

신체를 변화 시키는 신공들은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는 단점을 끌어안고 있다.

내공의 깊이에 따라 지탱하는 시간이 길고 짧은 것이다.

그중에서 스스로 해공(解功)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굳어버리는 몇 가지 신공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축골신공과 변체환용이다.

차분해지자.

서둘러 될 일이 아니다.

이만큼 된 것도 천만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해도 자꾸 조급해진다.

다행스러웠던 건 폭발 직전 자신이 금강부동신법을 극성으로 펼쳤다는 것이다.

또한 축골신공으로 인해 몸이 아주 작아졌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 앞에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이를 두고 하는 것인가 싶다.

금강부동신법의 발신(發身)은 유난히 강력하고 빠르다.

콤포지션 계열의 폭발은 순간 최대속도가 초속 5000미터를 넘는다.

금강 신법의 발신이 그 만큼은 빠르지 않으나 정지된 상태에서 맞는 것 보다는 튕겨 나가는 상태이다 보니 상당한 도움이 됐다.

거기에 축골신공으로 신체가 줄어들어 받은 충격의 면이 작아진 것도 지금 숨을 쉴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크흑!

비명이 절로 터진다.

이를 악물었지만 단전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겨내야 한다.

무리하다간 주화입마에 걸려 패인이 될 수도 있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위험이 크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지금은 살아나야 하고, 살아나지 못한다면 죽는 것이 오히려 낫다.

“크흑!”

세찬 비명을 질렀고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죽는다고 해도 크게 아쉬운 일은 없다.

후회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다.

이제 서른을 갓 넘은 나이지만 이만하면 나름대로 폼 나게 살았다.

사막의 흑새란 이름은 영원히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들에게는 저승사자로 남을 것이다.

씨익!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몸은 아픈데 입가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갑자기 친구 유병칠이 떠오른다.

‘자식’

어쩌면 유병칠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유병칠의 부지런함은 보육원 시설에서부터 소문이 날 정도였다.

시설을 나오자마자 자기 주제를 안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막노동판에 뛰어들었고 기어이 조적 기술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나이 스물을 갓 넘어 조적기술자 대우는 아마 유병칠이 처음이라고 했다.

‘공학지본(空學之본), 비우는 것이야 말로 만학의 시작과 끝이니라’

공공선사가 수시로 꿈에 나타나 가르쳤던 말이다.

죽는 것에 미련이 없어서 일까.

비록 짧은 생이지만 누구보다도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마음이 가볍고 웃음이 피어난다.

“후훅!”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휘청하던 권총수 입에서 먹물을 갈아 놓은 것 같은 시커먼 핏덩이가 쏟아졌다.

‘된다’

갑자기 권총수 눈이 빛난다.

운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단전에서 진기가 꿈틀거리고 서서히 소용돌이치듯 돌기 시작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잠깐이었지만 후회 없는 삶이라고 자부를 하는 순간 진기가 발생한 것이다.

마음을 비운 건 아니지만 죽어도 괜찮다는 편안한 마음이 잠깐 생겼고 그 틈에 단전의 기운이 일어났다.

권총수는 운기에 몰입했다.

노화순청에서 축골신공을 펼치는 순간 남은 공청석유 기운이 흡수되며 반박귀진에 들어선 내공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공은 보잘 것이 없었다.

많은 걸 원치 않는다.

우선 축골신공을 거두고 정상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만 모아지면 된다.

반박귀진의 내공이 조금만 늦게 생성되었다면 폭발의 충격에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운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이십년의 내공이 증가하고 나서 폭탄이 터졌다.

드으으!

운기조식이 거듭되면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공이 조금씩 쌓이는가 싶었는데 멈춘다.

한 치라도 더 끌어 올려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아직은 축골신공을 해공하기에 부족하다.

툭!

갑자기 몸에서 소리가 들렸다.

‘된다’

더욱 이를 악물고 운기조식에 박차를 가했다.

투투툭!

축골신공으로 작아진 몸이 원상태로 회복이 되고 있었다.

연거푸 뼈 부딪히는 소리가 다락방을 울렸고 권총수의 몸은 처음과 같아졌다.

후우!

땅이 꺼질 것 같은 숨을 내 쉰다.

딸칵!

갑자기 아래로부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 주인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들어온 모양이었다.

지붕 바로 아래 처마 근처 외벽이 뚫렸고 다락방으로 이어져 아직 집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때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텔레비전을 켠 듯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는데 권총수는 뉴스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귀를 기울였다.

리포트 기자가 아브딘 궁전 앞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를 보도하고 있었다.

‘나흘!’

나흘전 사고라고 했다.

자신이 이곳에 쓰러진지 나흘이나 지난 것이다.

권총수는 잠시 귀를 기울여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집중했다.

뉴스 내용을 종합하면 나흘 전 아브딘 궁전 앞에서 자살 폭탄테러 사고가 발생했으며 20여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5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치료 결과에 따라 사망자 숫자는 더 늘어날 것 같다는 것이며 놀라운 건 범인이 KAS용병이며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며 자살을 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이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자살 테러를 감행했단다.

권총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아랫방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들으며 웃음을 지었다.

‘내가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자살 테러를 해’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교활한 장사꾼 스톤스 답다.

자신에게 모든 걸 뒤집어 씌워 조금이라도 회사 피해를 줄여보겠다는 계산이다.

‘아롱바’

문득 얼굴도 모르는 한 사내를 떠올렸다.

아직 사실로 확인된 건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그가 주동이 되어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꿈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나친 자신감이 문제였기도 했으나 상대 역시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롱바를 생각하면서 또 하나 드는 의문이 있다.

어떻게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느냐는 것이었다.

아래층이 조용하다.

다행히도 집 주인은 다락방에 외부인이 묵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락방에는 사용하지 않는 잡동사니들로 가득했고, 그러다 보니 올라올 일이 없는 듯 보였다.

정상적인 몸이 아닌 지금 이곳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

문제는 배가 고프다는 것이었는데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집안이 조용해지자 슬며시 널판지로 된 바닥을 밑으로 밀어 내렸다.

널빤지가 펴지면서 접이식 계단이 내려진다.

권총수는 계단을 밟고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텔레비전과 부엌에 커다란 냉장고가 있고 바닥은 오래되어 보이긴 하지만 붉은 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자 열대 과일 망고가 보인다.

권총수는 곧장 손을 뻗어 망고를 꺼낸 다음 껍질을 깎지도 않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망고를 먹으면서 냉장고 안을 살폈다.

화악!

냉장실을 보던 권총수 눈이 커졌는데 낯익은 음식이 있었다.

양고기와 감자 야채를 가득 채워 넣고 얇은 빵으로 한 바퀴 돌린 건 케밥의 하나인 샤와르마였다.

권총수는 순식간에 샤와르마를 해치웠고 망고 다섯 개를 삼키자 그제서야 배가 불러왔다.

권총수는 주위를 깨끗하게 만들어 놓았다.

누군가 음식을 먹었다는 건 알겠지만 사람이 침입했다는 흔적은 남겨서는 안 된다.

당분간 다락방 보다 더 안전한 둥지는 없다.

배불리 음식을 먹고 난 권총수는 다시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결가부좌했다.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몸으로 움직인다는 건 자살 행위다.

특히 아롱바는 밀교의 인물이다.

그의 생사원영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는지 알 수는 없으나 평범하지는 않다.

지금의 몸 상태에서 그를 만난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음!”

여전히 단전의 진기가 뜻대로 모이지 않는다.

권총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던 한순간 눈빛이 차가워졌다.

살기다.

죽여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수십 차례 운기를 시도를 했지만 더 이상 내공이 늘어나지 않는다.

무인의 몸은 가끔 현대 의학으로 치료 할 수 없는 부상을 당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경우다.

강력한 폭발이 몸을 으스러뜨리려는 때 몸을 보호하기 위해 대력금강심법이 스스로 일어나며 호신강기가 펼쳐졌다.

그러나 너무 폭발이 강해 호신강기가 찢어졌고 몸속의 장기는 물론 기경팔맥이 뒤틀리고 부서졌다.

무사의 몸은 내공이 있어 일반인보다 더욱 빨리 부상에서 회복되지만 상처가 너무 깊을 땐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

외부의 힘.

그건 강한 내공을 이용한 전이대법, 또한 공청석유나 천년설삼 같은 희대의 영약이 갖고 있는 뛰어난 효능을 빌리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많은 시간이다.

시간이 흘러야 낫는다.

우욱!

권총수는 어금니를 물고 계속 도전했다.

포기할 수는 없다.

권총수는 고통과 싸우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어느새 열흘이 지났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아무리 티가 나지 않게 음식을 훔쳐 먹는다고 해도 길면 꼬리가 밟힌다.

‘옮겨야 한다.’

권총수는 뚫린 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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