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덫에 걸리다(2)
그동안 본신진기와 합일 되지 않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던 남은 공청석유가 순식간에 흡수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다지 큰 체격은 아니지만 몸이 줄어들고 있었고 몸에 딱 맞던 조끼가 헐렁해지기 시작한다.
끄그그그!
온 몸의 뼈가 줄어들면서 소리는 더욱 요란해졌고 권총수의 몸은 현저하게 작아졌다.
속도가 느리다.
그사이 터뜨려 버릴 수가 있었기 때문에 양팔을 조끼에서 빼내기 시작했다.
완전하게 줄어들지 않아 쉽사리 팔이 빠지지 않았지만 빼내야 한다.
투툭!
오른쪽 팔을 빼는데 성공했다.
한쪽 팔이 빠짐으로 인해 왼쪽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스르르!
권총수는 조끼를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렸다.
목 부분이 폭이 좁아 어깨에 걸리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당기자 조금씩 밀려 내려갔다.
엉덩이를 빠진 조끼는 쉽게 발목에 걸렸다.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12시가 막 넘어서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리모컨을 누르지 않은 건 혹시나 미국 관광객 버스가 올까 하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넉넉잡고 30초에서 1분 이내에 터진다고 볼 때 도망쳐야 한다.
권총수는 땅을 짚고 몸을 날렸다.
콰아앙!
바로 그 순간 조끼가 터졌다.
조끼에 달린 폭탄에 사용된 폭약은 콤포지션 4로서 대형 폭탄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가장 폭발력 강한 성질의 화약이다.
권총수의 몸이 날아갔다.
신법을 펼치며 날아갔고 폭발 풍에 또 날아간다.
순간적으로 저항을 하려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내 힘이 약해 공격을 차단할 수 없을 땐 그대로 밀려나고, 휩쓸리는 것이 그나마 부상을 줄이는데 좋다.
맞서는 건 오히려 내 몸에 더 큰 상처와 충격을 남긴다.
엄청난 충격이 몸에 가해졌고 권총수는 의식을 잃어 버렸다.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15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아브딘 궁전 일부가 흔들리면서 외벽에 금이 생겼고 건물 유리창은 산산이 부서졌다.
철책으로 된 정문이 넘어졌으며 기둥 일부가 부서졌다.
또한 미처 대피하지 못한 근처 관광객 20여명이 사망을 했다.
궁전 입구에 주차된 차량들은 앙상한 뼈대만 남았고 일부 차량은 불타고 있었다.
소방서와 경찰이 출동하면서 아브딘 궁전 앞은 난장판으로 변해 버렸다.
수많은 소방차량과 경찰차가 몰려들었다.
워낙 강력한 폭발이었기에 관광객들이 부지런히 대피를 하고 있었지만 사상자가 발생했다.
오민철은 넋을 놓고 있었다.
태어나 이토록 강한 폭발은 처음 본다.
외인부대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그중 이라크의 모술 탈환 작전과 시리아의 알레포 공격에서 여러 형태의 폭탄을 보았다.
특히 시리아 전투기들이 쏟아낸 항공 폭탄은 거의 공포였다.
거의 그 수준이었다.
콤포지션4 계열은 폭발 초속 5,000 미터를 넘기는 가장 섬뜩한 폭약이다.
“총수 어떻게 된 거야?”
나카야마가 달려왔다.
이어 카이로에서 활동하는 팀원들 전부가 몰려들었다.
“총수 어떻게 됐냐고 물었잖아. 조센징 놈아.”
나카야마가 소릴 질렀다.
오민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철!”
비렌드라의 눈이 커졌다.
“설마, 설마?”
믿을 수 없다는 듯 번개처럼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어딜 가.”
나카야마가 쫓아갔지만 소용없었다.
다다다다!
비렌드라가 달려가자 경찰들이 제지했지만 소용없었다.
퍼억!
럭비하듯 경찰관들에게 부딪혔는데 세 명이 동시에 나가떨어진다.
“캡틴!”
아스팔트로 된 바단인데 깊이 5미터는 넘을 것 같은 대형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구덩이가 패이면서 튕겨 나온 바위와 돌조각들이 자욱할 뿐 권총수의 흔적은 없었다.
“당신 뭐야?”
두 명의 사복경찰이 권총을 뽑아들고 다가왔다.
“움직이지마!”
비렌드라는 조용히 엎드렸다.
두 명의 경관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다가왔는데 깜짝 놀란다.
땅바닥에 엎드린 비렌드라가 울고 있었다.
눈물이 물처럼 지면을 흐르는 것에 두 경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흐헝! 허헝!”
급기야 비렌드라는 소리 내어 통곡했다.
이집트 정부에서 KAS 카이로 책임자에 대한 소환조사가 시작되었다.
대표로 부 캡틴인 오민철이 출두했다.
국가보안부 앞에 몰려 있던 기자들이 승용차에서 내리는 오민철을 에워쌓았다.
“현재 심정 한 말씀 해주시죠.”
“테러범과는 어떤 사이입니까?”
홱!
오민철이 질문을 던진 기자를 노려보았다.
“주둥이 찢어 버리기 전에 말조심해 임마, 테러범이라니.”
사납게 소리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단독주택은 정적에 잠겨있었다.
오스카르와 호간이 죽고 오민철은 이집트 경찰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했다.
방안에는 비렌드라와 나카야마, 피아퐁과 모리스, 그리고 몰나르 왕자 경호팀장 오도이를 포함한 네 명이 전부였다.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종일 어제 일어난 아브딘 궁전 앞 테러사고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죽일 놈들!”
“개자식들!”
모두가 욕설을 쏟아냈다.
누구를 향한 욕인가.
이집트 경찰은 권총수가 연봉에 불만을 품고 테러를 자행했다고 발표했다.
권총수를 돈 몇 푼에 분노를 터뜨리는 싸구려 범죄자로 낙인찍은 그들도 패죽이고 싶지만 욕설의 대상은 그들이 아니다.
팀원들이 욕하는 상대는 무자헤딘이었다.
아직 이번 사건이 백퍼센트 그들의 작품이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심증은 이백프로다.
‘아롱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도 모르는 밀교의 후예를 씹듯 중얼 거렸다.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보자’
모두가 부드득 이를 갈 때 현관문이 열리고 에반이 들어섰다.
사고가 발생하자 스톤스는 곧바로 에반을 런던으로 불러 들였다.
스톤스를 만난 에반은 곧장 이곳 카이로를 향해 온 것이다.
에반스 등장에 모두가 기대를 거는 눈빛을 던졌다.
필시 어떤 식의 복수를 할지 구체적인 지침을 가져 왔을 것이라고 믿었다.
딸칵!
에반스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길게 연기를 내 뿜으며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테러 뉴스를 바라보았다.
스톤스 회장의 호출을 받고 급히 런던을 다녀왔으므로 뭔가 중대한 보따리를 풀어놔야 한다.
그런데 에반의 입이 쉽게 열리지 않자 팀원들 얼굴에 불안이 깃든다.
“지사장님!”
참다못한 나카무라가 입을 열었다.
뚝!
에반이 텔레비전을 끄고 담배도 재떨이에 비벼 껐다.
“다들 앉지.”
팀원들이 앉았다.
에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훑어 보고나서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서 캡틴을 위해 앞으로 100일간 뿌자 의식을 행할 것이라고 했네.”
“뿌자 의식?”
모두가 입을 떠억 벌렸다.
뿌자 의식은 인도의 장례 풍습의 한 과정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장례를 주관하는 승려가 갠지스 강에 꽃을 띄우고 초를 내걸며 기도를 한다.
힌두교의 신 비슈누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곳으로 떠나기를 비는 것이다.
“스톤스가 독실한 힌두교 신자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힌두교 신자라면 백일동안의 뿌자의식은 엄청난 정성이고 그 보다 더 죽은 자를 위하는 산자의 노력은 없다.
“얼마 전 사업차 인도를 방문했는데 그때 힌두교에 푹 빠졌다네.”
“어이가 없네.”
비렌드라가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벌렸다.
“KAS를 오늘 날 아카데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강력한 브랜드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 누군데, 비록 위로금을 받아갈 유족 한 명 없는 캡틴이지만 최소한 성의를 보여야 되는 것 아냐. 그까짓 기도 몇 마디로 끝내겠다고.”
“이거 진짜 너무 속 보이는데, 아니 힌두교를 알게 된지 고작 일 년도 채 안된 사람의 기도가 무슨 신통력이 있을 것이라고 100일 동안을 지랄한다는 거야.”
나카야마가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수십 년을 믿어온 사람의 기도발이 세겠어요. 이제 갓 들어간 초보신자의 기도발이 먹히겠어요. 런던에서 어떻게 강에 꽃을 띄우고 촛불을 걸 건데? 템즈강을 오염시켰다고 당장 뉴스에 나올 일인데, 더러운 속셈 훤히 보인다 보여.”
“무슨 생각?”
피아퐁이 물었다.
“뻔한 것 아냐. 입 쓱 닫겠다는 거지. 장례문화는 각 나라마다 다르지만 변하지 않은 게 뭐야. 부의금 아니야. 적은 돈이라도 유족에게 건네면서 위로 하는 것 말이야. 마피아도 조직원이 죽으면 유족들에게 상당한 보상을 하여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잖아. 영화에서 안봤어?”
“나쁜 사람이군.”
몰나르 왕자를 경호했던 오도이 팀장이 에반을 노려보았다.
“돈에 인색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힌두교 운운은 위로금을 주지 않기 위해 끌어들인 개수작이야.”
“말조심하게. 아무리 회장님이 없는 자리지만 표현에 신경 좀 쓰게.”
“이집트 경찰의 발표에 대해서는 뭐라고 합니까? 작전 중 사망했다는 제대로 된 진실을 말해야죠. 가만 놔두면 저 자식들 캡틴을 완전 쓰레기로 만들 기세인데?”
비렌드라가 말했다.
“무슨 얘기가 있겠지.”
그때 오도이 팀장이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가나. 아직 회의 끝나지 않았네.”
오도이가 돌아섰다.
“사망했을 확률이 아무리 높아도, 시신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이상 찾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스팔트를 직경 5미터 깊이로 뚫어 버릴 만큼 강력한 폭탄 아래서 살아날 수 있다고 보나?”
“마치 캡틴이 죽었으면 하는 것 같군요.”
“말조심하게. 누구보다 캡틴을 존경하고 믿었던 사람 중 한 명일세. 자네들 보다 못하지 않아. 캡틴의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알고 있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게.”
아무도 손을 들지 못한다.
“유감이군. 팀의 리더의 생일도 모르는데 이런 식의 항의가 날 얼마나 감동시킬 수 있다고 보나?”
“생일 모르면 인간관계가 벌어진다는 논리는 난생 처음이군. 영국 사람들은 생일 모르면 친구 아닌가 보죠.”
출입구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이 들어서고 있었다.
“나도 총수의 생일을 모릅니다. 허면 내가 지금까지 동생처럼 녀석을 아끼고 챙긴 것이 가식이란 얘깁니까?”
“민철!”
“그 자식, 그렇게 쉽게 죽을 놈 아닙니다. 죽지 않았어요.”
마지막 말에서 오민철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말은 죽지 않았다고 했지만 마음속에는 결코 살아 날 수 없다는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라고 하던가?”
에반이 물었다.
오민철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몰아쉬던 오민철이 퉁명스럽게 뱉었다.
“웃기는 소리 말라고 했죠. 부끄럽지만 오히려 테러범을 잡기 위해 잠입했다가 역으로 당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날 욕하고 KAS를 비난하는 건 좋지만 우리 캡틴에게 손가락질 하는 건 절대 참을 수 없다. 지금 당신들은 테러범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배후가 누구래?”
나카야마의 눈이 빛났다.
“KAS내부 사건으로 몰아가는 마당인데 배후를 입에 담을 필요 없지.”
“뭐 내부사건?”
모두가 경악했다.
“무슨 얼어 죽을 내부사건이야. 정말로 캡틴이 연봉협상에 불만을 품고 폭탄을 터뜨린 파렴치범으로 못을 박겠다는 거야.”
나카야마가 에반을 돌아보았다.
“지사장님!”
“난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네. 설마하니 회사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보도를 두고 보겠나.”
“캡틴의 명예를 건드리는 놈은 내가 가만 안둬.”
비렌드라가 일어나더니 권총을 챙겨 나갔다.
“어딜 가는데?”
나카야마가 물었지만 비렌드라는 그냥 나가버렸다.
아브딘 궁전 앞은 여전히 통제되고 있었다.
비렌드라는 경찰이 통제하고 있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멀찍이 서서 사건현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몰랐다.
네팔에서는 죽음이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잠시 허물을 벗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생전 쌓은 업대로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짐승으로 돌아오지 않기 위해 선을 행하고 이웃과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시의 이별에 목이 매긴 하지만 통곡하며 몸부림쳐 서러워 할 일 아닌 것이다.
‘캡틴!’
권총수는 최소한 자신에게는 미륵이며 보살이었다.
그와 있음으로 인해 얻은 물질적 풍요는 상상을 초월했다.
외인부대 출신들 중 적지 않은 인원이 용병시장에 진출해 있지만 자신들 몸값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일급이다.
하루 300달러를 넘기지 못하는 박봉에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은 어떤가.
네팔의 가족들은 이미 땅을 소유했고 원하던 이층짜리 주택을 구입해 3대가 한곳에 모여 살고 있다.
하루아침에 네팔의 경제적 상류층이 되어버린 것이다.
‘총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입술이 부르트도록 불러보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것이 괴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