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85화 (185/651)

제185화: 덫에 걸리다(1)

신호등에 차가 걸렸다.

조금 전까지 가벼운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던 카사브와 칸이 조용했다.

권총수는 아브딘 궁전이 다가오면서 고조되는 긴장 때문이라고 여겼다.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았는데 11시 40분이다.

아브딘 궁전까지는 5분이 채 안 걸릴 것이다.

권총수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폭탄을 터뜨릴 수는 없다.

처음에는 자신의 종교적 사명의식과 알라에 대한 믿음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가짜 폭탄조끼를 주거나 아니면 사람이 없는 곳으로 보낼 줄 알았다.

즉 진짜 테러범으로 자격이 있는지 테스트 차원에서 끝낼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진짜 폭탄조끼를 입히고 곧장 실전에 투입하는 이들의 행동에 권총수 자신도 당황하고 있었다.

MI6에서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조직원으로 포섭이 되거나 자원한다고 해서 곧장 작전에 투입하지 않았다.

대부분 일단 가입을 하게 되면 정신 무장을 위해 상당 시간 동안 이슬람과 기독교 즉, 이교도와 공존할 수 없는 종교적 이유, 그리고 미국을 대표하는 서방 세계에 의해 언젠가는 이슬람이 점령당할 것이라면서 지금 나서지 않으면 때를 놓친다는 투혼의 불을 지핀다.

“다 왔군.”

핸들을 잡은 카사브가 중얼 거렸다.

멀리 웅장한 건물이 보인다.

방만 500개라는 아브딘 궁전이다.

궁으로 들어가는 길 좌우로 푸른 잔디와 고무나무, 야자대추,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 탁나무와 포플러가 풍성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도로 좌우로는 유료 주자창이 있는데 주로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즐비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브딘 궁으로 들어가는데 무슬림 복장인 걸 보면 이집트 국내 관광객인 듯 보였다.

끼이익!

차가 궁전을 들어가는 입구에 섰다.

슥!

스슥!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사람은 손을 포갰다.

‘불신의 무리와 탐욕스런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아르무감 형제가 나섰습니다. 그들 모두를 지옥에 빠지도록 아르무감 형제에게 힘과 기쁨을 주소서.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마호메트는 알라의 예언자이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기도가 끝났다.

“형제여, 우리 천국에서 만나세.”

그러면서 권총수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칸이란 사내도 입을 맞춘다.

권총수는 두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은 뒤 문을 열고 내렸다.

폭약의 성분은 콤포지션 4 계열이다.

항공폭탄, 어뢰, 기뢰등 대형 폭발물에 사용되며 자신이 두르고 있는 조끼가 터진다면 방원 50여 미터 안에 있는 사람이나 건축물은 모조리 파괴되고 목숨을 잃을 것이다.

랜드로버는 신호를 무시했다.

그러자 교통경관 둘이 패트롤카를 타고 추격하기 시작했다.

애애앵!

오민철은 자신을 쫓아오는 경찰차를 보며 씹어 뱉듯 말했다.

“따라오려면 오든지.”

부우웅!

가속 폐달을 밟는다.

“제발, 제발!”

별일 없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전방 이정표에 아브딘 궁전 2킬로라고 쓰여 있다.

끼기긱!

핸들을 급하게 오른쪽으로 꺾자 타이어가 지면에 미끄러지며 찢어지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바깥으로 튕겨나가며 다른 차의 옆구리를 치고 나갔다.

오민철의 랜드로버가 그대로 도주하자 피해차량 운전자가 거품을 물고 뒤를 쫓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천천히 걸어가며 시계를 보았다.

11시 50분이다.

미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오려면 10분 정도 남았다.

권총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카사브와 칸이 탄 차량은 사람과 버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흔적은 권총수의 감각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동쪽 뽕나무 아래’

버스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그곳에 차를 대놓고 기다린다.

표를 파는 입구에서 폭탄이 터져도 그곳까지는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권총수의 양손이 조끼 아래 잠긴 자물쇠를 내려다보았다.

500원짜리 동전보다 약간 더 컸는데 은색이다.

투욱!

꼼짝하지 않는다.

권총수는 제대로 고개를 숙이고 지퍼를 살핀 뒤 다시 자물통을 잡아 당겼다.

여전히 꼼짝하지 않는 자물통에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재빨리 내공을 끌어올려 잡아당겼지만 소용이 없어 급기야 십이성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끄으으으!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극성의 내공으로 당겼지만 자물통은 요지부동이다.

쿠쿵!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설마!’

느껴지는 바가 있어 다시 한 번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부르르!

자물통이 가는 떨림을 보였지만 열리지 않는다.

안 된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백년의 내공도 어찌 해볼 수 없는 단단한 금속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세상에는 많은 금속이 있는데 굳이 이토록 강한 것을 선택했다는 건 한 가지다.

‘덫에 걸렸다’

적은 자신을 알고 치밀하게 준비 한 것이다.

말도 안 된다면서 더욱 힘을 주어 끊어 보려고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재빨리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11시 55분.

미국 관광객들 도착까지 5분 남았다.

물론 일반 버스이기 때문에 교통체증에 따라 빨리 올 수도 있고 늦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그러나 5분이라는 숫자가 떠나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리모컨을 꺼냈는데 필시 가짜일 것이다.

진짜 리모컨은 차에 있는 카사브와 칸 둘 중 한 명에게 있을 것이다.

권총수는 얼어붙었다.

꼼짝 할 수가 없는 서늘한 냉기가 등골을 적시면서 바늘 몇 개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자신의 작전은 어디에서도 허점이 없었고 완벽했으며 변장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변체환용은 당연히 목소리까지 바꿀 수가 있으나 그 보다 한 단계 아래인 변피탈용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변피 탈용만으로도 알아본다는 건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목소리는 신경쓰지 않았다.

부우우웅!

그때 굉장한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렸다.

랜드로버 한 대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아브딘 궁전 진입로를 마치 고속도로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빵!

빠바바바방!

미친 듯 경적을 울리자 사람들이 돌아보더니 하나같이 몸을 날렸다.

“저런 씨불놈!”

“아 놔.”

사람들의 욕설을 들으며 랜드로버가 멈추더니 오민철이 뛰어 내렸다.

“총수야!”

“오지마.”

권총수는 오민철을 향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진짜야?”

정말로 덫이었냐는 질문이다.

“내 걱정 말고 형 일단 물러나.”

“진짜라고?”

오민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권총수는 미소를 지었다.

“일단 사람들부터 물러나게 해.”

권총수는 걸치고 있던 윗도리를 벗었다.

그러자 폭탄이 주렁주렁 매달린 조끼가 드러났고 오민철은 기겁했다.

“소릴 질러 사람들에게 내가 폭탄을 갖고 있다고 말해. 날 가리키면서 어서.”

“총수야.”

“별일 없을 거야. 진정해.”

“폭탄입니다. 모두 피하세요. 폭탄이 터진다고, 저길 봐. 저 사람 지금 폭탄조끼를 입고 있어.”

사람들이 하나둘 권총수를 돌아보더니 기겁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악!

다다다!

넘어지고 팽개치고, 갖고 있던 캐리어 까지 내동댕이치면서 사람들은 달렸다.

차에서 내려 아브딘 궁전 입구를 살피고 있던 카사브와 칸의 표정이 변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다.

권총수가 조끼를 드러내 보이면서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터뜨리면 안 된다.

이집트 국내 관광객이 적지 않고 성시순례처럼 아브딘 궁전을 찾은 무슬림이 절반 이상이다.

카사브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놈이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조끼를 보이며 사람들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카사브는 상대의 말을 듣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핸드폰을 내린 카사브가 칸을 향해 말했다.

“그냥 날리라는군. 어차피 이 소동에 미국인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들어올 리 없으니.”

카사브가 차로 걸어갔다.

의자 아래에 손을 집어 넘어 조그만 리모컨을 꺼냈는데 거리는 200 미터까지 작동한다.

“저 친구가 오민철인가 보지?”

권총수와 호형호제 하는 사이며, 같은 한국인이라고 들었다.

권총수는 자꾸 물러나라고 손짓을 했지만 오민철은 20여 미터 거리를 두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권총수는 최대한 표정을 밝게 하여 말했다.

“형 맘 알아. 진정하고 일단 물러나. 내가 봐서는 100미터 이내는 초토화가 될 거야.”

오민철은 너무 절망스러운 듯 말을 못했다.

“도대체!”

해줄 수가 없다.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다.

처음으로 자신이 무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장 뛰어난 군인, 무적의 사나이, 안되면 되게 하는 707군인이라고 자부했다.

아직까지 누구와 싸워서도 져 본 적이 없고 707과 외인부대에서 40킬로 군장을 맨 채 달리는 산악구보에서 항상 선두권이었다.

심지어는 사막의 흑새(권총수)보다 더 잔인한 놈이라는 말을 IS에게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릴 뻔 했었다.

“총수야!”

“날 생각한다면 떠나줘.”

“널 두고 내가 어떻게 가냐고, 같이 죽자.”

“형 죽으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부모님 누님들, 조카들, 벌교 친구들이 겪을 그 비극을 내가 모두 떠 앉으라고? 나 때문이라고 원망할 것 아냐. 난 죽어도 울어줄 사람 한 명 없어. 난 지금 매우 홀가분하고 기분 괜찮으니까 방해 하지 말고 떠나.”

권총수는 단호했다.

시간은 11시58분이다.

놈들의 계획은 확연히 드러났다.

KAS소속 용병이 폭탄자살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뉴스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사막의 흑새를 죽이고, KAS 회사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이중 포석이다.

KAS를 건드리면 사우디의 파흐드 정권이 흔들릴 것이고 순식간에 중동의 판세가 뒤바뀌는 엄청난 사태가 생긴다.

권총수는 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계획은 소름끼칠 만큼 완벽했다.

일석이조가 아니라 삼조 사조를 얻는다.

반면 자신에게서는 너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첫째 결정적인 포인트는 손에 사정을 두었다는 것이다.

다할풀 수도원장 포텐차리를 죽였어야 했다.

마음속으로 깨끗하게 청소를 해버려야 뒤탈이 없다면서 노인을 죽일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그쪽에서 곧장 아롱바 측에 연락이 갔을 것이 뻔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정체였다.

아르무감이라는 인도네시아인으로 변장한 자신을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변피탈용을 알아 볼 현대인은 없다.

피부 변색이기 때문에 의학적으로도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가장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해보자’

권총수는 심법 운용에 들어갔다.

지금 자신이 꿈꾸는 것은 한 가지 절륜무쌍한 외문무공이었다.

축골신공(縮骨神功)이다.

축골신공은 골격을 변화 시키는 상승의 무공이다.

뼈대를 줄임으로써 신장을 줄이는 것 이외에도 결박을 당하거나 좁은 틈새로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축골신공을 펼치려면 내공이 이 갑자 이상이어야 한다.

자신의 내공은 현재 일백년이다.

몸속에 아직 본신진기와 융합하지 않은 공천석유의 기운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언제 흡수될지는 자신도 모른다.

공력이 이십 년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

권총수는 마음을 가라 앉혔다.

심법이 운용하면서 곧장 내공은 온 몸으로 퍼뜨렸다.

내공이 전신 기경팔맥에 골고루 분포 되었을 때 동시에 흡(吸)자결을 이용해 뼈를 줄이는 것이다.

축골신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내공이며, 두 번째는 얼마만큼 전신에 골고루 내공을 분배하느냐다.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넘치면 그 신체 부위만 많이 줄어들거나 아니면 적게 줄어든다.

균형을 갖춘 축골일 때가 가장 좋다.

물론 특정 신체부위를 늘이거나 줄이고자 할 때는 그 부분에 내공을 보내 흡자결을 펼치면 된다.

꿈틀!

눈썹이 움직인다.

갑자기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온 몸으로 스며들 듯 사라져 버렸다.

투툭!

그러더니 몸에서 소리가 들린다.

투투투!

연이어 팔과 다리에서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몸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헛!’

권총수는 소스라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