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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84화 (184/651)

제184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2)

권총수는 타고 왔던 랜드로버로 자신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다시 한 번 조끼를 자세히 살폈다.

자신도 폭탄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전기선은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주머니에서 작은 리모컨을 꺼냈다.

리모컨을 누르면 폭탄은 터진다.

열쇠가 없으면 벗을 수 없는 폭탄조끼.

권총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딸칵!

깊숙이 담배를 빨아들인 권총수가 길게 연기를 뱉었다.

과연 무슨 짓을 시킬까.

표적은 누굴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궁금증이었다.

흥미롭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거룩한 전쟁(聖戰:지하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순수한 이슬람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 모는 그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부북!

권총수는 담배를 비벼 끄며 미소를 지었다.

두 명의 감시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필시 랜드로버에 타고 있던 넷 중 두 명일 것이다.

권총수는 한쪽 벽을 덮고 있는 벽지를 슬며시 걷어냈다.

그곳에는 핸드폰 하나가 숨겨져 있었는데 조심스럽게 꺼내 전원을 켠다.

‘형!’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디야. 널 놓쳤어’

문자였으나 오민철이 소리쳐 부르는 듯 했다.

‘여관방’

‘정말? 알았어 금방 갈게’

‘안 돼 오지 마. 놈들이 지켜보고 있어’

그러면서 재빨리 자신의 폭탄조끼 입고 있는 모습을 찍어 전송했다.

잠시 후 문자가 다급하게 온다.

‘헉, 뭐야? 폭탄?’

‘날 더러 입으라는데’

‘그런다고 입어. 그냥 죽여 버리고 나오지. 거기에 아롱바와 화이트 위도우 있었어?’

‘없으니까 조끼 입었지’

팀원들의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탄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에 모두가 놀란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팀원들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다음 날 오전 11시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권총수는 느긋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예상대로 랜드로버에 타고 있던 칸이란 사내였다.

“잘 잤나?”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세.”

권총수는 곧장 칸을 따라 나섰고 밖에는 랜드로버가 서 있었다.

“알라후 아크바르!”

운전대를 잡고 있던 카사브란 사내가 아는 체를 했다.

권총수는 뒷좌석에 앉으며 같이 축복했다.

“지시가 떨어졌네.”

카사브가 운전을 하면서 말했다.

“아브딘 궁전을 알고 있나?”

“예!”

권총수는 고개를 들었다.

무함마드 알리 왕조(MuhammadAliDynasty)의 이스마일(Ismail, 1863-1879년 재위) 왕이 이집트 근대화 계획의 하나로 1863년에 유럽식 왕궁 건축을 시작했다. 본래 수에즈 운하가 완공되는 1869년에 맞추어 공사를 끝내고자 했으나 규모가 너무 커 1874년에야 완공되었다. 오늘 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꼽히는데 몰려드는 관광객만 일 년에 500만을 헤아린다.

사람들은 이집트 하면 가장 먼저 피라미드를 떠올린다.

그러나 여행의 맛을 아는 사람이면 제일 먼저 아브딘 궁전을 찾는다.

“12시쯤 미국인 40명을 태운 관광버스가 도착할 걸세. 그들이 궁전으로 들어가기 전 궁전 입구에서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위대한 성전을 전 세계에 알리게.”

권총수는 침묵했다.

“두려운가?”

두렵지 않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서워 못하겠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움찔한다고 들었다.

‘신부님도 죽는 것이 두려우세요?’

주일학교 시절 성경공부 시간에 불쑥 신부님에게 질문을 했다.

신부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부님은 사람 아니냐. 당연히 무섭지’

농담인 듯 말했지만 어쩌면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을 솔직하게 고백한 듯 보였다.

“알라후 아크바르.”

두렵다는 말 대신 신은 위대하다고 중얼 거렸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지. 지금의 과업을 멋지게 이행하면 자네는 천국에 있을 걸세. 거기에는 오로지 평화만 사랑하는 알라께서 계시는 곳이지.”

권총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들이 말하는 천국이 뭐냐.

천국은 믿든 믿지 않든 선을 행하고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들 갈수 있고 가야 하는 곳 아니냐.

남을 죽이고도 알라후 아크바르만 외치면 천국을 갈수 있다니 그런 어이없는 신이 어디 있냐.

권총수는 입술을 달싹 거렸다.

전음을 보내는 것이었다.

여관 주위에서 잠복하고 있던 오민철과 나카야마는 권총수를 태운 랜드로버를 따랐다.

‘잘 들어’

오민철도 전음이 가능하지만 내공이 약해 거리가 너무 짧다.

더욱이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을 때는 음파가 공기 저항을 더 심하게 받기 때문에 간격은 더욱 짧아진다.

‘난 지금 아브딘 궁전으로 가고 있어. 그곳에서 미국인 관광객 40명을 폭탄으로 날리라는 명령이야’

‘허걱’

오민철과 나카야마는 동시에 놀랐다.

권총수의 전음은 계속 파고들었다.

‘미행 접고 당장 울페르나 6번가로 달려가. 골목의 특징은 노면이 울퉁불퉁하고 아주 조용해. 아참, 물 담배 파는 가게가 있어. 그 맞은편에 보면 회색으로 된 철문이 있는 집이야.’

오민철은 몇 마디 설명을 더 듣고 재빨리 차를 돌렸다.

“출동이야.”

오민철이 핸드폰으로 다급히 말했다.

쥐색 랜드로버 두 대가 골목 입구에 멈췄다.

차문이 열리고 8명의 사내들이 내렸는데 오민철이 보였다.

그중 두 명은 경찰제복을 입고 있었다.

“캡틴이 설명한 골목 맞지?”

오민철이 주위를 휘둘러보며 멀리 물 담배 가게를 발견했다.

골목은 조용했다.

일행은 윗도리 속에 APC9 기관단총을 숨기고 있었다.

접철식 개머리판이기 때문에 총은 더욱 짧아져 품속에 넣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일행은 물담배를 파는 가게 맞은편 회색 철문을 발견했다.

그리고 권총수가 가르쳐준 문 위쪽 처마에 붙은 CCTV도 찾아냈다.

‘형 얼굴은 알려졌을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게 좋을 거야’

경찰복장을 한 브라질 출신 오스카르와 호건이 윗도리 속에 총을 숨긴 채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나머지는 CCTV 각도 밖에서 대기했다.

문 옆 벽에 초인종이 설치되어 있다.

오스카르가 천천히 다가와 벽에 설치된 초인종을 툭 치듯 눌렀다.

누가 봐도 검문을 나온 경찰의 모습이었다.

콰아앙!

그런데 초인종을 터치하는 순간 엄청난 굉음이 흘러나오며 철문이 폭발했다.

초인종을 누른 오스카르와 그 옆에 있던 호건의 몸이 퉁기듯 날아갔다.

와장창!

두 사람의 몸은 맞은편에 있는 물 담배 가게의 유리창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콰콰쾅!

연이어 터지는 폭발에 근처 주택의 창문이 박살났고 길가에 주차된 차량들이 찢겨져 날아갔다.

“뭣들 해.”

오민철이 폭발소리에 엎드렸다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모리스와 나카야마가 맞은편 물 담배 가게로 뛰어 들었다.

“오스카르! 호건!”

가게에는 세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한 사내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는데 몇 번 신음을 흘리더니 축 늘어졌다.

담배 가게 주인인 듯 보였으며 낯익은 두 사내는 구석에 처박혀 꼼짝하지 않았다.

둘은 동시에 달려들었다.

“오스카르!”

“호건!”

오스카르를 끌어안은 나카야마가 소릴 질렀다.

오스카르 얼굴 반쪽이 날아가 버렸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고 살아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결코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날아가 버린 모습에 나카야마는 얼어붙었다.

“오스카르.”

나카야마는 힘껏 끌어안았다.

“오스카르!”

나카야마는 이를 깨물며 눈을 감아 버렸다.

눈물이다.

아직까지 한 번도 흘려 보지 않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언젠가 나카야마가 잠을 자려는데 오스카르가 다가왔다.

“왜? 나 술 안 먹어.”

잠 잘 때면 오스카르는 어디서 구했는지 위스키를 가져와 유혹했다.

“흐흐! 오늘은 술이 아니야.”

그러면서 슬그머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뭐지?”

나카야마는 취침전등 아래 비춰 보려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간 그는 작전용 플래시를 켜서 오스카르가 건넨 종이를 읽었는데 그건 부동산 계약서 사본이었다.

쌍파울루 시내에 큼지막한 단독주택을 계약했다는 내용인데 구매자 이름이 오스카르였다.

“축하해.”

쌍파울루는 브라질 최대 공업도시이자, 금융 중심지이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중심가 트리앙글루에는 초고층 빌딩과 각국의 은행과 회사들이 즐비하고 고급 저택들이 퍼져 있다.

하지만 한 블록만 건너가면 브라스와 모카 거리로 그야말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빈민가다.

빈민가 사람들의 꿈은 도로를 건너 맞은편 트리앙글루가로 진입하는 것이다.

오스카르 역시 이 지독한 빈민굴 브라스 거리에서 성장했다.

그의 꿈 역시 다른 빈민가 아이들처럼 맞은편 트리앙글루가로 들어가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가장 빨리 성공하는 건 두 가지였다.

축구선수가 되거나, 마약단원이 되든가.

축구에 모든 걸 쏟아 넣었다.

자질+노력=프로.

노력만큼은 결코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노력을 뒷받침 하려면 자질이 있어야 하는데 오스카르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건 안 됐다.

결국, 자신의 실력으로는 브라질 3부 리그도 진출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방향을 틀었다.

BOPE(Batalhão de Operações Policiais Especiais)를 지원했다.

그의 최종목표는 외인부대, 그리고 용병이 되어 돈을 버는 것이다.

오스카르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듯 노력하고 또 노력했고, 마침내 두 번째 꿈이 이뤄졌다.

덜덜덜!

갑자기 진동이 느껴진다.

나카야마는 오스카르의 아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조그만 핸드폰 한 개가 나온다.

오스카르의 엄마다.

나카야마는 차마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전화가 끊기고 문자가 온다.

‘오스카르 오늘 이사를 했단다. 엄마는 너무 기뻐 이게 꿈인가 싶다. 내가 아들 하나는 정말 잘 뒀어. 바쁜가 본데 문자 보면 전화 줘. 몸조심하고 늘 사랑한다. 아들.’

'부재중 전화’ 표시가 연이어 다섯 개가 찍혀 있었다.

어서 기쁜 소식을 알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손으로 전해지는 듯 했다.

‘털썩!

나카야마는 주저앉아 버렸다.

삶이 꺼졌고 희망이 떠나갔다.

끄으윽!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짐승 같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편 오민철을 비롯한 비렌드라와 피아퐁은 날아가 버린 철문 안으로 뛰어들어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 올라선 세 사람은 흩어져서 온 방안을 뒤졌다.

없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여기!”

피아퐁이 걸음을 세웠는데 거실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오민철이 사나운 표정으로 다가왔다가 벽에 붙은 A4용지를 발견했다.

오민철은 벽에 붙은 종이를 떼어 살폈다.

‘형제들, 진심으로 환영한다.’

조롱하듯 쓰인 짤막한 글귀에 종이를 쥔 오민철의 손이 부르르 떨었다.

“쳐 죽일 놈들.”

이를 갈던 오민철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함정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치밀하게 그물을 쳐 놓았고 자신들은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어어!’

갑자기 권총수가 떠올랐다.

온 몸에 폭탄조끼를 걸치고 있다.

권총수는 자신의 충성심을 실험해 볼 계산이기 때문에 폭탄조끼를 거부할 필요 없다고 했다.

다만 진짜 터뜨리고 터뜨리지 않고는 그때 상황을 봐서 결정할 것이라면서 걱정하는 자신을 안심 시켰다.

우당탕탕!

오민철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핸드폰도 없다.

처음부터 함정을 파고 끌어들였다면 권총수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당장 철수해.”

“어디 가는데?”

피아퐁이 소릴 쳤지만 오민철은 대답하지 않고 차를 끌고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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