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뛰는 놈, 나는 놈(1)
노인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권총수를 보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도 손을 모아 합장하여 인사했다.
“이곳에는 처음이시군요?”
한눈에 처음 왔다는 걸 알아차리는 걸 보면 이곳을 다니는 신자들 얼굴을 거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행자입니다.”
그러면서 옆에 놓인 낡은 여행가방을 가리켰다.
“어디서 오셨소?”
“인도네시아에서 왔습니다. 아르무감이라고 합니다.”
노인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에서는 이슬람이 가장 활발한 국가이다.
“여행자여, 차 한 잔 하시려오?”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낡은 방이다.
살림 도구라고는 오래된 가스렌지와 시커멓게 불에 그을린 놋쇠로 된 밥그릇과 숟가락, 그리고 밥상으로 사용하는 나무 탁자에는 오래된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권총수의 눈이 살짝 움직였는데 국내 오성전자 마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흰색이었는지, 처음부터 검정색이었다가 오래 사용하면서 벗겨져서인지 알 수 없는 회백색의 잔에 홍차를 따라주었다.
“어딜 가는 것이오?”
“신을 찾아 떠납니다. 알라의 음성을 듣고 싶어 고행중입니다.”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신심이 부족해 아직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듣게 되리라 믿습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천천히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맞은편에 앉은 노인의 눈이 빛난다.
권총수의 예상대로 노인은 이곳 해오탈 사원에서 예배를 집전하는 이맘 아흐메드였다.
“아르무감이여.”
아흐메드가 목소리를 낮춰 불렀다.
“알라의 음성을 듣고 알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뚝!
권총수는 잔을 마시려다 말고 멈칫 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흐메드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알라는 어디에도 계시지요. 여행자처럼 떠돌며 애타게 부르짖을 때 나타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분이 계시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권총수는 조용히 잔을 내려놓았다.
“아흐메드?”
“놀라시는군요. 물론 그러실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얘기입니다. 많은 형제들이 알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이 어딥니까?”
장소를 가르쳐 주면 금방이라도 달려갈 것 같은 기세를 보였다.
“허허허! 좋아하시는군요.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아흐메드는 느긋하게 잔을 들어 마신다.
권총수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잘하면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떠올리며 진한 향기의 홍차를 마셨다.
밤은 여관에 묵는다.
신을 찾아 떠도는 이슬람 근본주의 남자가 고급 호텔에 묵을 수는 없는 것이다.
침대라고 있긴 하지만 가난한 남녀가 쏟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배설물이 난무하여 도무지 눕고 싶은 맘이 없었다.
바닥은 바퀴벌레들이 달리기 시합중이다.
피식!
어쩔 수 없음에 실소를 지으며 침대 위에 누웠다.
당분간은 카이로에 머물며 유서 깊은 사원들을 둘러보며 기도여행을 계속 할 것이라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파주르 기도에 들어갔다.
불을 켜 놓고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메카가 있는 곳을 향해 절하며 중얼 거린다.
일반 교회로 보면 새벽 예배인 셈이다.
‘훗훗!’
한참 기도 중이던 권총수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기척이 있다.
누군가 자신이 묵고 있는 여관 근처에서 불이 켜지는지 그리고 기도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지 살피고 있는 것이다.
기척이 무거운 것을 보면 건장한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
권총수는 내공을 담아 목소리를 낮췄다.
이른바 현대과학으로 설명하면 저주파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옆방 사람에게는 큰 방해가 아니지만 엿듣는 사람의 귀에는 묵직하게 파고든다.
그건 이쪽이 절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뜻이다.
해가 떠오르고 권총수는 여관을 나섰다.
곧바로 구시가지로 향했다.
구시가지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많은 이슬람 유적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크고 작은 사원들이었다.
파티마 왕조시대에 지어진 사원, 이집트왕국의 시조인 메흐메드 알리를 기념하는 사원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전 세계에 몰려든 많은 무슬림들은 사원의 위용에 감동하고, 역사에 감격하며 곳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툴룬 왕조를 상징하는 사원 앞에 권총수는 무릎을 꿇었다.
주위로 듬성듬성 무슬림 관광객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청각을 끌어 올렸다.
‘셋!’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은 모두 세 명이었다.
여관을 나올 때는 혼자였는데 점심 때 쯤 한 명이 더 붙었고, 한 시간여쯤 전에 또 한사람이 지원되었다.
권총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열심히 중얼거리며 허리를 숙인다.
만약을 대비해 핸드폰도 가져오지 않았다.
자신이 없는 틈을 이용해 여행가방을 뒤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인도네시아 사람이 아니면 휴대할 수 없는 물건들을 채웠다.
나일강 너머로 해가 진다.
권총수는 지친 몸으로 돌아와 곧장 가방을 살폈다.
예상대로 누군가 뒤진 흔적이 있다.
간단하게 씻고 난 권총수는 저녁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때 한 사내가 찾아왔다.
그는 해오탈 사원 이맘 아흐메드의 소개를 받았다면서 신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자신을 안타르라고 했다.
“아흐메드께서 소개 하셨단 말입니까?”
권총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구원을 찾아 떠도는 구도자가 어느 광야에서 신을 만나 뛰는 가슴을 주체 못할 때 볼 수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힘차게 악수를 하고 가방을 메고 따라나섰다.
안타르는 쥐색 피아트를 몰고 왔다.
권총수가 차에 오르자 안타르는 다시 한 번 만나서 반갑다면서 미소를 짓는다.
차는 여관을 떠나 사라졌고 잠시 후 오민철이 나타났다.
그리고 곧장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승용차는 카이로 시내를 벗어나 서쪽으로 향했다.
30여분 달리던 승용차가 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섰다.
듬성듬성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차는 한동안 달렸다.
갈수록 산길 험해지고 바위 절벽과 삐죽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작은 집 한 채가 나타났다.
돌담으로 이뤄져 있고 지붕은 검은 기와를 올려 덮었다.
끼이익!
차는 산 중턱에 있는 집 앞에 멈추었고 둘은 내렸다.
권총수는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았는데 얼핏 이라크 신자르 산맥이 떠올랐다.
메마른 땅과 바위, 그리고 힘들게 버티고 선 아카시아나무들이 풍경의 전부다.
음메에에!
안쪽에서 양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헛간 쪽에서 터번을 두른 허름한 행색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안타르.”
“베차라.”
두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서 볼을 비볐다.
“아르무감, 인사해요. 베차라, 우리의 영원한 귀감이죠.”
“아르무감이오.”
“평화가 그대와 함께.”
“평화가 당신과 함께.”
권총수는 적극적으로 베차라를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짧게 호흡했다.
냄새가 난다.
그건 화약 냄새였다.
헛간에는 분명 양이 있다.
누구라도 산속에 있는 평범한 이 오두막 주인을 양을 치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그런데 화약 냄새다.
세 사람은 마당가에 놓인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라이트가 비치며 한 대의 SUV가 올라오고 있었다.
검정색 랜드로버다.
차는 산속 움막집 앞에 멈추고 네 명의 사내들이 내렸다.
점퍼에 바지를 차려 입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없는 일반인 행색이었다.
권총수는 가장 끝에 있는 방에서 자고 있었다.
저녁은 아슬란이라고 부르는 이슬람식 빵 두 개에 우유 한잔으로 해결하고 안타르, 베차르와 잠시 얘기를 나누다 건너와 자리에 누운 것이다.
덜컹!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권총수는 피곤한 듯 코까지 골며 자는 척 했다.
“아르무감!”
권총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무감!”
두 번째 부르고 나서야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네 명의 사내가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덤덤한 얼굴들이다.
“위대한 알라를 만나야 할 것 아닌가?”
“누구십니까?”
자다가 봉변당하는 사람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우릴 따라오시오!”
네 사내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권총수는 벽에 걸린 케피야를 쓰고 밖으로 따라 나갔는데 랜드로버 한 대가 시동이 걸려 있었다.
권총수는 뒷좌석 한 가운데에 앉았는데 포위하듯 두 사내가 좌우로 자리를 잡았다.
부르릉!
랜드로버는 뒤로 후진을 하더니 다시 왔던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뚱한 눈으로 차안의 사내들을 둘러본 권총수가 약간 겁먹은 듯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걱정 마시오. 우린 아르무감 형제께서 알라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알라를 만날 수 있단 말입니까?”
감격한 듯 목소리가 떨린다.
“물론입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나직한 소리로 신은 위대하다며 중얼거렸다.
차는 산길을 내려가더니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에 진입했다.
랜드로버는 카이로 시내로 들어섰다.
구 시가지에서 신시가지로 넘어오더니 울페르나 6번가라고 쓰인 이정표를 발견했다.
카이로에서 한 달여 생활하다 보니 골목골목은 아니어도 큰 도로와 고층빌딩 몇 개 정도는 알고 있었다.
덜컹!
랜드로버는 노면이 울퉁불퉁한 낡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조금씩 속도를 멈추더니 멈춰 섰다.
골목은 지나가는 사람도 없이 조용했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단단한 철문 옆에 만들어진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른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잠시 후 안으로부터 철문이 열렸다.
‘저 것이군’
처마 밑에 CCTV가 걸렸다.
바로 이층으로 올라가도록 계단이 나 있었다.
권총수는 계단을 올라 2층에 들어섰는데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들어서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아니다’
권총수는 선글라스 사내를 빠르게 훑었는데 그에게서는 강호무사에게만 있는 무형의 기세가 없다.
다할풀 수도원의 원주인 포텐차리의 제자인 아롱바가 아닌 것이다.
‘없다’
평범한 살림집으로 보였는데 실내에는 선글라스 사내 말고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권총수 얼굴이 실망의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권총수는 이곳을 이들의 본거지라고 생각했고 화이트 위도우와 아롱바 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쉽지 않군’
권총수가 엉거주춤 서 있자 랜드로버 핸들을 잡았던 카사브란 사내가 웃었다.
“아르무감, 소개하겠네. 하심 선생일세.”
“어서오시오. 신은 항상 당신을 평화로 인도할 것입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악수를 하며 웃었다.
“아르무감, 이쪽으로.”
하심이 닫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따라 들어간 권총수의 표정이 변했다.
조끼 하나가 보인다.
그런데 조끼 앞으로 달려 있는 뭉텅한 여섯 개의 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왼쪽에 세 개, 오른쪽에 세 개다.
양쪽 모두 맨 위에 한 개를 가로로 달았으며 두 개는 세로로 나란히 붙였다.
하심이 조끼를 들었는데 묵직한 듯 조끼가 축 쳐진다.
“이걸 입게.”
“뭡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다.
“신은 우리에게 땅을 주시고 자손을 낳고 번성하라고 하셨네. 그런 우리의 땅을 이교도들이 침입해왔지. 그들은 중동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했지만 내심으로는 알라께서 선물로 주신 검은 황금(石油)을 약탈해 갈 목적이었지. 우린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웠고 지금까지 많은 형제들이 거룩한 전쟁(聖戰: 지하드)에 참여했다네.”
하심의 눈이 이글거린다.
“땅을 지키고 이교도를 몰아내는 건 곧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신 알라의 뜻을 받들고 기리는 일이지.”
“어떻게 하면 됩니까?”
권총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단 이 조끼를 입고 기다리면 곧 연락이 갈걸세.”
하심은 조끼를 펼쳤다.
자신이 입혀 주겠다는 동작이었는데 권총수는 느릿하게 돌아섰다.
양팔을 조끼에 끼우고 걸쳤다.
폭탄조끼다.
여기서 거절하면 지금까지의 수고가 헛된다.
딸칵!
조끼 아랫단으로 쇠로 된 사슬을 넣고 버튼처럼 채운 것이다.
지퍼를 올리고 목을 감아 내려오는 부분에서 아래처럼 똑같은 쇠사슬 버튼을 걸어 잠갔다.
쇠사슬 버튼은 조끼를 벗지 못하도록 위 아래를 단단히 잠근 자물쇠였다.
권총수는 개의치 않고 무게를 가늠해봤다.
묵직한 것이 최소 20킬로는 될 듯싶다.
조끼 위로 겉옷을 걸치자 약간 뚱뚱한 듯 보이긴 했지만 겉에서는 얼른 알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르무감 형제께서 우리의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네.”
밖으로 나간 하심이 의자에 앉아 있는 랜드로버 사내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네 사람 모두 환영의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씩 뱉었다.
“아름다운 무슬림일세.”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그들이 내미는 축하 악수를 거절하지 않았다.
권총수는 어금니를 물고 단호한 결의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