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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82화 (182/651)

제182화: 공중납치(2)

권총수는 마테르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믿었다.

IS를 시작으로 적지 않은 이슬람무장단체들을 경험해 봤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 하나가 있었다.

자신의 직책이나 위치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딱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무게만큼만 알고 있었다.

이슬람 무장 테러단체들의 조직도를 보면 거의 세 단계로 나눈다.

처음 조직을 결성하는 창업자(start member)와 중간에 뜻을 같이 하여 들어온 중간자(middle member), 마지막으로 행동대원이랄 수 있는 기다리는 자(Bench member) 이름하여 쓰리 엠(three member)으로 불린다.

창업자는 거의 한 명으로 조직의 최고 우두머리다.

나머지는 거의가 중간자들인데 어찌보면 이들이야 말로 조직의 핵심이고 중추다.

마지막으로 전쟁을 하여 이슬람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성전)극단주의자들인데 병력이고 군대이다.

이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생활하고 가정을 지닌다.

그러다 조직의 지시가 내려오면 그대로 이행하는데 마테르는 기다리는 자였다.

“화이트 위도우가 처고모 사촌 조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아내는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소.”

“그건 잘못된 소문이다?”

“난 그 여자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화이트 위도우 어쩌고 하는 별명도 당신의 입을 통해 처음 듣는 것입니다.”

권총수는 고개를 가만 끄덕였다.

카이로 공항이 북새통이다.

무장 경찰이 공항 활주로를 완전히 에워쌌고, 여기저기 정장을 걸친 사복차림의 사내들이 눈을 번득인다.

청사에는 수백 명의 외신기자들이 몰려와 에미레이트 항공 558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오긴 오는 거야?”

“공중 납치되었다고 했잖아.”

기자들도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듯 안면있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맥보란은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옆에 정복을 착용하고 있는 뚱뚱한 체격의 사내는 이집트 국가보안부(경찰청)부장 알샤크란이다.

맥보란은 활주로 끝 공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항로를 이탈하여 테헤란으로 향하던 비행기가 다시 원래의 항로를 찾아 돌아왔다.

기장 대신 부기장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최대 정보였다.

“리베라!”

조금 떨어져 있던 리베라가 재빨리 들고 있던 쌍안경을 가져다주었다.

맥보란은 쌍안경으로 하늘을 살폈는데 희끄무레한 점 하나가 보인다.

“오는군!”

알샤크란 보안부장이 맥보란을 돌아보았다.

맥보란은 쌍안경을 다시 리베라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수사진들이 기내로 들어가 1차 조사를 마무리 한 뒤 버스에 태워 이동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래 계획은 승무원까지 포함하여 내리는 즉시 버스에 태워 안전한 정소로 이동 시킨 뒤 그곳에서 정밀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알샤크란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불쾌하다.

미국측과 원활한 조사가 이뤄지도록 잘 협조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어 하긴 하지만 불편하다.

도대체 미국은 왜 끼어드는가.

이 사건은 이집트 정부가 조사해야 할 일이다.

이집트 영공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카이로행 비행기였으며 기장 또한 이집트인이다.

국내법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제법상으로도 이 사건의 처음과 끝을 이집트 경찰이 맡아야 하는데 갑자기 미국이 뛰어들어 이래라 저래라 관여했다.

“맘대로 하시오.”

알샤크란 청장의 목소리는 상당히 무뚝뚝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았고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춘다.

비행기가 완전히 정지하고, 무장경찰들이 신속하게 에워 쌓아버렸다.

출입문에 트랩이 닿았고 비행기 문이 열렸다

평소와 달리 검정색 커텐이 쳐진 가운데 여승무원 말고는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알샤크란 청장을 비롯해 맥보란과 이집트 수사관들이 줄줄이 트랩을 올랐다.

맥보란은 커텐을 걷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섰다.

툭!

기내에 들어서자마자 맥보란은 핸드폰 액정에 한 사람의 얼굴을 끌어냈다.

머리에 페즈를 쓴 무슬림 복장이다.

승객들은 이미 승무원들로부터 사전고지를 받은 듯 수사관들이 들어서서 질문을 던지고 이곳저곳을 살펴도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맥보란은 오직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탑승객 명단에는 ‘토니 권’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지만 그가 바로 권총수라는 건 어렵지 않게 간파했다.

파팟!

맥보란의 눈이 한곳에 멈췄다.

토니 권, 권총수다.

창가에 앉아서 다가오는 자신을 바라보는데 입가에 미소를 담고 있었다.

맥보란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권총수는 오랜만이라는 듯 방긋 웃더니 옆의 백인여자를 향해 말했다.

“잠깐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백인 여자가 몸을 좁혀 비켜주었다.

“땡큐!”

권총수는 다시 한 번 백인여자를 향해 목례를 하고 통로를 걸어가는 맥보란을 따랐다.

맥보란은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지키고 있던 이집트 경찰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이집트 경찰관들은 순간적으로 긴장하는 표정을 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권총수는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청사로 들어선 두 사람은 나란히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역시 CIA는 다르군요. 이런 엄중한 사건 속에서도 유유자적 날 데리고 나오다니.”

권총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웃었다.

맥보란이 팔짱을 낀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집트 경찰로부터 대략적인 상황보고는 전달 받았습니다만?”

권총수는 맥보란이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당신이 도왔다는 건 아는데 어떻게 조종실 문을 열수가 있었는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동 드릴 따위로 뚫리는 샷시 문도 아닌데.”

“해결됐으면 된 것 아니오?”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투다.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우리와 KAS모두 테러범을 쫓고 있소.”

“협업하자는 얘기오?”

“나쁠 건 없잖습니까?”

좋은 패(정보)가 있으면 좀 꺼내 보라는 얘기였다.

“우린 민간 기업이오.”

“이익이 없는 거래는 하지 않는다는 말씀 같은데 좋습니다. 이번 테러사건 해결에 얼마의 보너스가 걸렸습니까? 회사 보다는 파세드 왕세자 쪽이 더 많은 액수를 내 걸었을 테고?”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기를 두드려 본 뒤 연락드리죠.”

권총수가 몸을 돌렸다.

맥보란은 걸어가는 권총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때 부하 리베라가 다가왔다.

흘긋!

맥보란의 표정을 살피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간파한다.

“바깥 상황은 어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서.”

“뭐가?”

“아, 글쎄 승무원들이 그냥 권총수가 조종실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손바닥을 손잡이 근처에 대자 쇠가 녹아 버렸다는 겁니다. 충격을 받아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듯 합니다.”

맥보란은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그게 말이 됩니까?”

권총수가 앉았던 자리에 앉은 리베라가 이마를 찡그렸다.

맥보란은 커피만 마셨다.

뭐라고 한마디쯤 보태든지 아니며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지금까지 봐온 맥보란이었다.

‘설마!’

침묵은 시인이라는데 승무원들 말을 믿는 것일까.

“진짜 일지도 모르지.”

“네에?”

리베라의 눈이 커졌다.

맥보란과 헤어진 권총수는 택시에 올랐다.

“헤오탈 모스크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기사는 밝게 웃었다.

마테르 기장은 혈도가 풀렸는데도 아직 고통과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자꾸 시선이 권총수의 오른손에 닿는다.

오른 손에서 뭔가 날아왔고 온 몸은 새끼줄 마냥 뒤틀렸다.

누군가로부터 학대와 고문을 당한 경험은 없지만 조종실에서 당한 고문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다시 말하죠.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뿐입니다. 가장 먼저 그들을 만났을 때, 어디서 만났는지 그것만 말해 주면 됩니다.”

“해오탈 모스크요.”

그러자 반쯤 올라간 권총수의 손이 내려갔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곳으로 간 것 아닙니다.

비행을 끝내고 돌아온 다음 날인데 하필 그때가 아내 일주기였어요.

혼자서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기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골목을 따라 올라간 그곳에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자그마한 사원이 있었다.

채 백 평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대리석 바닥에 낡은 토브(긴 옷가지)를 걸친 이백여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말랐고, 허옇게 탈색된 얼굴을 했으며, 퀭한 눈은 그들의 삶이 굉장히 궁핍 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행색은 남루 했으나 그들이 토해내는 기도문은 장중하고 엄숙하게 울려 퍼져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알라의 은총이 내려올 것 같았다.

마테르는 사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백 여명이 내 뱉는 기도소리는 천국을 지향하는 그들의 절규였고 마테르 또한 무릎을 꿇고 알라를 향해 외쳤다.

‘날 불쌍히 여기시고, 닫힌 내 마음을 열어 세상을 사랑하게 하소서. 고통은 짧게 주시고, 기쁨은 오래도록 누리게 하며 길을 잃지 않게 하시고 작은 길 보다는 넓고 큰 길을 마음껏 걸어가도록 인도 하소서, 아내의 외로움을 닦아주시고...’

아내의 죽음과 회사 동료들과의 갈등으로 마테르의 삶은 부쩍 메말라가고 있었다.

죽는 것이 오히려 편하고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 아침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들과 같이 소리 높여 기도함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홀가분했고,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뜨거움은 알라의 끝없는 사랑이며 은혜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요.”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알라께서는 길 잃은 양들을 찾아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죠. 그리고 따뜻하게 위로하며 큰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답니다.”

봄날 코끝을 파고드는 화향인들 이토록 온화하고 청명한 목소리는 되지 못할 것이다.

마테르는 눈을 떴다.

검정색 니캅(온 몸을 가리고 두 눈만 내 놓는 것)을 걸친 여자가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리를 가득 메우고 소리치며 기도하던 사람들은 어느샌가 모두 떠나고 없었다.

너무 깊이 기도에 빠지다 보니 사람들이 떠나 간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십니까?”

“알라께서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려 들죠.”

그 말을 들으니 마치 눈 앞의 여자가 알라가 보낸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기도로 몸과 마음이 평온해져 있는 마테르에게는 더욱 이 순간이 신비했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녁 기도가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백 여명이 넘어 보이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남아 있는 사람은 달랑 회색 캐피야를 쓰고 앉아 있는 허름한 행색의 권총수 뿐이었다.

권총수의 얼굴은 사십대 초반의 아랍계로 보였는데, 변체환용(變體換容)의 전 단계인 변피탈용(變皮脫容)이다.

변체환용은 내공으로 온몸의 근육을 마음껏 조정하여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으나 변피탈용은 피부색을 바꾸어 얼굴 생김새를 다르게 하는 것이었다.

적당히 검은 피부에 아래턱을 지나 양쪽 귀에 이르는 구렛나루는 완전한 아랍계였다.

사르륵!

옷자락 끌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흰색의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검정색 토브(Thobe:원피스처럼 길게 내랴오는 옷)를 걸친 칠십 가까운 노인이었다.

권총수는 한눈에 이곳 해오탈 사원의 이맘(목사나 신부)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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