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무자헤딘(1)
생사원영은 강한 검식이다.
그런 생사원영 7가지 초식 중 여섯 가지는 얻어야 무시무시한 현대무기 속에서 살아 날 수 있다.
더욱이 전혀 예상 못한 대소림의 제자 권총수까지 나타났다.
과거도 오늘도 밀교는 한 번도 소림을 넘어서보지 못했다.
밀교(密敎)에 의한 중원 침공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럴 때마다 마지막 소림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밀교 제자들에게 소림은 불편하고 곱게 보이지 않는 집단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소림의 제자가 찾아왔다.
노인의 눈이 감긴다.
한 사람이 떠오른다.
자신의 다리를 자르고 떠난 제자였다.
다리가 제자의 손에 잘려 나가면서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건 혹시나 하는 기대였다.
워낙 뛰어난 아이였고 생사원영을 거의 복원해 버렸으며 놀라운 위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저의 질문에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아롱바는 어디 있습니까?”
“출문은 사실이지만 행방까지는 알지 못하네. 다만 한 가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이곳 수도원 다할풀에서 위대한 알라를 위해 자기 한 목숨 아까워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세.”
“원주님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오민철의 눈이 빛났다.
“설마 많은 제자들이 테러범일리는 없고?”
“이보게 젊은이, 비를 맞고 처마를 찾아든 새를 쫓아내는 집주인도 있던가.”
자신들을 안내한 우달파의 말을 빌리면 인도와 네팔의 유명 정치인, 특히 라라자니 현 이란 국회의장과 포텐차리가 가깝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미국과 가장 날카로운 대립을 하고 있는 이란의 국회부의장이 찾았다는 것은 다할풀 수도원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테러범들과도 교류가 있다는 뜻이다.
비를 피해 들어온 새는 곧 미국이 쫓는 테러범들이다.
“하지만 원주님, 그들은 새가 아니라 테러범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그렇겠지만 수도자의 눈은 오갈데 없는 슬픈 아이들일 뿐이네.”
노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 내버려두면 그들끼리 행복하게 살아갈 사람들인데. 그놈의 석유가 뭔지, 주기 싫다는 아이에게 총 들이대며 석유 내 놓으라고 하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권총수가 가볍게 웃었다.
“과거 밀교는 왜 자꾸 중원을 침략했습니까? 가만 내버려두면 중원 사람들은 평화롭게 자신들 인생을 만들어가며 행복하게 살 것인데?”
자신의 말에 대한 반박이다.
“이보게!”
권총수는 말을 잘랐다.
“그리고 지금 생사원영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무엇 때문입니까. 힘으로 지배해보려는 욕망 때문 아닌지요. 조금 전 비를 피해 처마로 날아든 새를 어찌 내쫓느냐고 했는데 인간과 동물이 한가지에서는 똑 같습니다. 그게 뭔 줄 아십니까?”
“듣고 싶네!”
“약자를 잡아먹는다는 거죠. 인간도 동물 아니겠습니까?”
“얄팍한 궤설일세.”
권총수는 소리내어 웃었다.
“원주님, 이곳을 찾아온 테러 집단은 어딥니까? 제자 아롱바가 그들과 같이 동행한다고 봐야 하겠죠?”
“중동 테러단체라고 하면 IS, 텔레반, 얄샤바브, 알카에다 뭐 그런 곳 아니겠어?”
오민철이 슬쩍 운을 떼며 노인의 눈치를 본다.
유도 심문을 해 본 것이다.
“나무환희불!”
노인은 입가에 미소를 담고서 조용히 눈을 감아 버렸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권총수는 넓은 대전을 둘러보았다.
‘아닌 듯하면서도 은근히 합리화 한다. 제자가 자신의 다리를 잘랐다는 것 말고는 밀교 천하를 꿈꾸는 둘 모두 생각은 똑같다.’
권총수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졌다.
자신이 죽여도 전혀 양심에 꺼릴 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제자에 의해 동료 네 명이 죽고 두 명이 다쳤으니 강호의 법이라면 당연히 척살 대상이고, 용병 바닥에서도 용서는 불가하다.
꾸욱!
하지만 다리 잘린 노인이라는 것이 걸린다.
분노를 악착같이 삼켰다.
그때 오민철이 권총을 만지작거렸는데 권총수의 살기를 간파하고 내 손에 피를 묻힐 테니 넌 가만있으라는 뜻이다.
‘형, 하지마!’
전음에 오민철이 왜 살려두냐는 항의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냥가자. 그냥 가자고.’
권총수는 돌아서서 자신을 안내한 노인에게 물었다.
“이름을 묻지 못했습니다.”
“굴샨.”
“굴샨, 아롱바에 대해서 알고 있죠?”
“맞습니다. 난 압니다.”
“몇 가지만 얘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팟!
순간 감겨 있던 노인이 눈을 떴고 오른손을 뻗었다.
“갈(喝)”
쩌렁한 외침이 터지고 노인의 손에서 주먹만 한 물체가 날아갔다.
검정색이 번쩍 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굴샨이라는 노인의 목젖을 파고들었다.
“눈 속에 묻혀 죽어가던 놈을 살려줬더니 감히”
분노의 외침이 터졌다.
바로 그 순간 권총수의 오른손이 뻗었고 푸른 광채가 폭발했다.
쉬익!
하며 목젖을 파고들던 검은색 물체는 푸른 섬광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조각난 물건은 백단(白檀:박달나무)으로 만들어진 노인이 사용하던 바리때(鉢)였는데 노인의 눈이 커졌다.
“관음청강수(觀音靑剛手).”
노인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해하지 마십시오.”
권총수는 한 번 만 더 이 따위 행동을 하면 그때는 정말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해 주었다.
권총수는 몸을 돌려 굴샨을 바라보았다.
“아롱바는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자신의 생사원영이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살펴야겠다면서.”
굴샨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는 듯 몸을 떨었다.
“이곳 카라코람 산맥에는 승(僧), 도(道), 속(俗), 걸(乞)을 포함해 다양한 신분의 수행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각자의 꿈을 위해 노력하지요. 그 중에는 무인(武人)도 적지 않습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무술을 좀 더 단단하고 강하게 연마하여 출세를 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몸과 마음을 닦아 등선의 깨우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도 있죠. 아롱바는 무(武)를 연마하는 사람들만 찾아다니며 자신의 칼을 시험했소.”
“많이 죽인 모양이군요?”
“숫자는 모릅니다. 단지 하얀 눈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 몇 개를 갖고 하얀 눈이 붉게 물들었다는 표현을 할리는 없다.
권총수는 굴샨의 입을 막으려 했던 노인을 흘긋 돌아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대전을 벗어났다.
“헛헛!”
노인이 힘없이 웃는다.
그건 어떤 절망이었다.
상대는 자신들이 그토록 두려워 한 소림의 제자이다.
더욱이 밀교의 후예 아롱바는 아직 생사원영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데 지금 보여준 권총수의 관음청강수는 가공했다.
왝!
노인은 피를 토했다.
“왜 저래?”
오민철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걸어가며 말했다.
“무공 초식은 내공이 뒷받침 되지. 무형의 강기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강한 반격이나 공격이 맞부딪히면 고스란히 그 충격을 받게 되어 있어.”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노인이 굴샨을 공격했지만 바리때 혼자 날아온 것이 아니야. 강력한 힘이 바리때를 받치고 있는 꼴이지.”
“아아!”
오민철은 이제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바리때를 치자 그 충격이 노인에게 전달되어 피를 토한거군.”
권총수는 대전을 나와 주위를 살폈다.
21세기에 이런 곳이 있고, 이런 사람들이 존재 한다는 것이 경이롭다.
“우달파 이런 수도원이 여기 뿐이오?”
“모릅니다. 단지 분명한 건 이곳 카라코람산맥을 포함해 설산(雪山:히말라야)에는 신비스러운 일들과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는 거죠. 4년 전 안나푸르나봉을 등정하던 독일 원정대는 기암절벽의 설산을 평지처럼 올라가는 사람을 보았답니다. 물론 과학자들은 고산병에서 오는 착시 현상이라고 묵살했지만 그들은 분명히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뿐 아니죠. 8개월 전 하늘의 군주 K2 원정에 나선 오스트리아 팀의 짐을 운반하던 네팔의 포터 반다리는 잠시 휴식을 하고 있는데 높이 300미터가 훌쩍 넘는 ‘달의 절벽’ 중간에 검정색 가사를 걸친 노인이 서 있더랍니다.”
권총수는 우달파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자신이 보았던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기변괴사가 너무 많고 자주 일어난다.
자신이 21세기에 강호 무사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더구나 아직도 존재 하고 있는 소림사의 제자라고 하면 평범한 주먹질 몇 번 하는 무술 연마자 정도로 생각 할 것이다.
달마역근세수경에 나온 무공을 연마 했다고 하면 웃을 것이다.
공중으로 30, 40미터쯤은 어렵지 않게 날아오른다고 하면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다.
우달파 역시 세상의 그런 고정관념, 과학맹신에 밟히다 보니 그런 얘길 함부로 꺼내기 어려웠다고 했다.
“총수야!”
랜드로버가 있는 곳까지 내려왔을 때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가장 궁금한 것이 있다. 아롱바가 그들에게 섞였을까 아니면 그들이 먼저 아롱바를 찾아왔을까?”
매우 중요한 얘기였다.
권총수는 노인이게 그에 대한 대답을 듣고자 했지만 거절했다.
“그들이 왔소.”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굴샨이 있었다.
뛰어 내려온 듯 숨을 헐떡거렸다.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려서 왔습니다.”
급히 전해줄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무자헤딘(mujahideen).”
“무자헤딘?”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권총수의 안색이 변했다.
“무자헤딘이 뭔데 그래?”
“아프카니스탄 이슬람 무장단체야.”
권총수는 한쪽 바위에 걸터앉아 말보로 레드를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인 권총수 이마에 주름살이 생긴다.
구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에 맞서 일어난 민중들의 무장투쟁이 무자헤딘의 시초다.
그들은 강력했고 집요 했으며 빨랐다.
산악 지대와 협곡이 많은 아프간의 지형을 이용해 게릴라전으로 첨단 장비를 갖춘 소련군을 몰아세웠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슬람권 전역에서 무슬림 전사들이 소련에 맞서고자 아프카니스탄으로 몰려들었다.
거기에 소련의 아프칸 진출을 불편하게 여긴 미국은 뒤에서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결국 소련은 10년간 5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내고 철수한다.
소련을 위해 똘똘 뭉쳤지만 전쟁에서 승리하자 각자의 종교관 정치색에 따라 사분오열되면서 무자헤딘은 핵폭발을 한다.
이후 여러 조직으로 갈라지는데 아프카니스탄 무자헤딘, 소말리아 무자헤딘, 인도 무자헤딘, 파키스탄 무자헤딘 등으로 퍼져나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이 지원하고 도운 무자헤딘이 오늘날 미국을 가장 반대하고 반드시 없어져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긴 인도니까 그럼 인도 무자헤딘일 가능성이 높잖아?”
권총수는 대답 없이 담배만 피웠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났다.
‘무자헤딘’
일부에서는 IS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고 했다.
특히 미국과 사우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적으로 규정한다.
‘그 세 나라 놈들은 무조건 죽여라’
무자헤딘의 강령을 떠올린 권총수는 담배를 끄고 차에 올랐다.
세 사람을 태운 랜드로버가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