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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76화 (176/651)

제176화: 수도원(2)

한편 권총수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지금 자신을 인도하는 노인의 걸음걸이가 어떤 규칙에 맞춰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법(陣法)이다’

노인은 진법이 만든 어떤 공식에 따라 자신을 데려가고 있었고 먹물처럼 캄캄한 어둠 역시 설치된 진법이 만든 현상이었다.

자연적인 어둠이라면 백년 내공을 지닌 자신의 눈이 이토록 무기력해 질 리 없었다.

“그럼 전 이만.”

노인은 이쪽 대답도 듣지 않고 사라졌다.

권총수는 앞을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권총수는 가만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하여 호흡과 생각과 몸을 하나로 만드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빠진다.

앞이 조금씩 열리고 어둠속에 앉아 있는 노인이 보인다.

노인은 키가 컸는데 금방이라도 삭아 부스러질 것 같은 회색 장포를 걸친 채 결가부좌하고 있었다.

노인은 권총수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기 어려웠다.

“마음을 조절하여 세상을 보는 심안(心眼)의 경지, 예상보다 무척 높은 곳에 있군요.”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난 다할풀 수도원의 대종, 포텐차리네”

“이곳에 다할풀의 수도원을 짓고 오늘날 요가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쉬브탕카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그분은 나의 선조이시네.”

“여기는 무엇 하는 곳입니까?”

“수도원일세.”

“뭘 수도하느냐는 것이죠.”

자신의 이름을 포텐차리라고 밝힌 노인이 빙긋 웃었다.

“생사원영을 재현하고 있는 중일세.”

흠칫!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생사원영은 비록 중간에서 밀교로 흘러가 버렸지만 포탈라궁의 시작이며 끝이라 할 수 있는 최고의 검법이다.

이제 생사원영은 사라졌고 거기서 시작된 사류무라는 요가동작으로 태어났다.

그 사류무를 만든 사람이 아쉬브탕카다.

그런데 지금 생사원영을 재현한다는 건 요가로 변형된 사류무를 거꾸로 훑어 올라가 원래 동작인 검법을 찾으려 한다는 뜻인 것이다.

“왜 웃으십니까?”

노인이 웃는다.

“그 아이 때문에 왔군. 아롱바.”

권총수는 공항 여행사 여자직원 오르비가 보았다는 사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매우 마른 체구에 인도의 전통 복장인 도티(풍성한 가사)를 휘감았다는 노인이다.

“제자 되는 모양이군요?”

“만나는 봤나?”

“그가 저질러 놓은 살인만 봤습니다.”

“살인!”

“네 명을 한꺼번에 죽였더군요. 생사원영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듯 판단됩니다.”

“자네가 어찌 생사원영을 아는가.”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말을 돌렸다.

“포텐차리, 지금 이 진법은 무엇입니까? 내 몸과 마음이 상당히 흔들리는 걸 보면 평범한 진법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크훅!

돌연 멀쩡하던 포텐차리가 피를 한 모금 토했다.

시커먼 핏덩이를 토해 내더니 서서히 고개를 들었는데 퀭하니 들어간 눈이 떨리고 있었다.

“처음 예상보다 더 높군. 밀라하심법(密羅河心法)을 이토록 압박할 수 있는 것은 소림의 대력금강심법뿐일 텐데?”

대력금강심법이 아니면 밀라하심법이 기초가 되어 펼친 묵운아령진(墨雲餓靈陣)에 이토록 오랫동안 서 있지 못한다.

묵운아령진은 포탈라궁에서 빠져나온 밀교의 심혼대법 묵운섭령을 진법으로 바꾼 것이다.

더욱이 강력한 사기(邪氣)를 담고 있는 밀라하심법을 바탕하여 펼쳐졌기 때문에 한 번 빠져들면 결코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필 사(邪),마(魔),독(毒)의 상극인 대력금강심법의 수련자가 나타나게 될 줄은 몰랐다.

포텐차리의 안색을 살피던 권총수가 물었다.

“아롱바는 누굽니까?”

“내 제자였지...”

포텐차리가 숨을 가다듬고 얘길 꺼내기 시작했다.

생사원영을 토대로 만들어진 요가 ‘사류무’의 기본 정신은 몸을 열고(身啓), 마음을 열고(心啓), 생각을 열어(思啓) 하늘과 하나(天人一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과 일치를 이루는 내가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내가 되는 천인일체의 정신이 퇴락하고 새로운 사상이 꿈틀 거렸다.

요가는 몸의 완성이다.

몸과 마음을 닦고 궁극에는 평화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몇 가지 동작이 바뀌더니 점차 무예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요가를 무예로 발달시켜 세상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류무의 달인이라 불리는 인물들의 몸은 평범한 사람들과 틀렸다.

심지어는 물위를 걸어가는 사람까지 나타나면서 군중들은 종교처럼 그들에게 빠져 들었다.

“아롱바라는 제자가 대표적이라는 말이군요?”

“그렇긴 하지만 시작은 그가 아닐세.”

“설마 당신?”

노인은 웃었다.

“사실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천하를 거머쥐려는 야망을 가졌지. 사류무를 거슬러 올라가 생사원영을 얻는다면 허황된 꿈만은 아닐세.”

“성공 하셨습니까?”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걸 확신하고 있네. 내가 아니라도 내 제자는 성공할지 모르겠네. 난 아직까지 그토록 뛰어난 놈을 본적이 없으니까. 그는 생사원영을 있는 그대로 거의 복원하고 있네. 물론 아직은 아니지만.”

“그는 어디 있습니까?”

“떠났지.”

“세상을 다스릴 능력이 갖춰졌다는 겁니까?”

스윽!

그때 결가부좌하고 있던 노인이 자신의 무릎을 덮고 있던 장삼을 거두었다.

“엇!”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노인은 두 다리가 잘려나가고 없었다.

무릎 아래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 이르다고 말렸더니 녀석이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가버렸네.”

권총수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을 가르친 스승의 두 다리를 잘라 버리고 사문을 박차고 나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나마나 사부인 눈 앞의 노인은 좀 더 깨우치고 완전하게 닦은 뒤 세상을 나가도록 권유했을 테지만, 제자 아롱바는 오만했을 것이다.

지금의 실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신하며 가로막는 사부의 다리를 잘라 버렸을 것이다.

아롱바는 굉장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세 개 네 개를 깨우치고 습득하는 놀라운 두뇌를 가졌고 자신이 배운 요가의 동작 하나 하나를 역으로 추적해 올라가며 생사원영에서 빠져나올 당시의 무공초식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생사원영은 모두 일곱가지 식(式)으로 이루어졌는데, 아롱바는 그중 네 개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버린 것이다.

비렌드라의 말을 빌리면 생사원영이 곧 포탈라궁이라고 했다.

생사원영만 얻으면 굳이 복잡하고 방대한 포탈라궁의 다른 무공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

포탈라궁의 무공을 하나의 검초로 만든 것이 생사원영인 것이다.

“아롱바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대통령이 될 분의 아드님을 납치해갔습니다.”

포텐차리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길 밖에 없었겠지.”

“무슨 뜻입니까?”

“세상을 가장 빨리 지배하는 방법이 뭔가. 권력 기반이 안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 아니던가.”

“파흐드 왕세자의 자리를 빼앗으려는군요.”

“자네 같으면 어떤 수를 쓰겠나? 내가 보기엔 아주 영리한 행동일세. 가장 가능성 높은 곳에 칼을 휘둘러야 하는 것 아닌가.”

권총수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노인의 말은 틀리지 않다.

언제라도 또 다른 구심점, 어떤 강자가 나타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갈 사람이 사우디 안에는 적지 않다.

특히 군주제를 해체하려는 파흐드 왕세자를 적대시 하는 왕족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권력을 탄생시킬 수 있는 엄청난 돈을 갖고 있다.

‘재산을 몰수 하십시오. 어차피 그들이 땀 흘려 모은 재산은 아니지 않습니까. 돈은 또 다른 반란을 끌어들이고 만들어내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파흐드 왕세자에게 강력하게 권고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어떻게 핏줄인 왕족들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 있느냐면서 자신은 절대 그런 식으로 사우디의 민주화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이번 납치 사건은 사우디 일부 왕족들과 연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

정에 연연해서는 한 시대를 다스릴 수 없다고 간청했지만 끝내 파흐드는 말을 듣지 않았다.

“소림의 제자인가?”

“예!”

“21세기에 소림의 제자라?”

포텐차리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인연이란 과학을 넘어서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은 닿을 사람에게 닿는다.

“아롱바를 죽일 건가?”

“그럴 것 같습니다.”

“요가를 했어도 세상을 뒤집어 놓을 만한 근골일세. 요가란 일단 몸이 좋아야 하거든, 몸에서 마음이, 마음에서 생각이 차오르고 마침내 내 의지가 하늘에 닿는 걸세.”

“이 진법을 깨뜨려도 되겠습니까?”

“파훼한단 말인가?”

“처음에는 몰랐는데 포텐차리와 얘길 나누면서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노인의 눈이 커졌다.

“달마역근경에 보면 구해불(十解佛)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과연 구해불이 무엇일까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지만 전혀 알차 차릴 수도 없었고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아홉(九)은 불가에서 최고의 숫자이자 시작의 숫자이지. 즉 완전함을 뜻하네.”

“아홉번의 불심을 가지면 뭐든지 해결 할 수 있다는 이치가 왜 지금 막 떠올랐을까요?”

이마를 찡그리며 생각하려는 마음도 먹지 않았다.

단지 자신을 감싸고 있는 묵사아령진을 깨뜨려보고 싶었다.

용병 권총수이지만 소림의 제자였다.

소림은 무조건 천하제일이다.

소림은 시작도 끝도 없다.

공공선사는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이 이뤄진다는 것으로 소림의 깊은 무공을 설명했다.

십이성 경지라는 건 없다는 뜻이다.

자질에 따라 한없고, 끝없이 성장하는 것이 소림의 무공인데 지금 구해불이 떠오른 것이다.

보고 터득하면 늦다.

머릿속에 담고 본능과 자질이 해결책을 찾는 것이 진정한 소림제자의 모습이라고 했다.

촤아아!

권총수의 오른손이 허공을 향해 쭈욱 뻗었다.

추울렁!

순간 어둠이 크게 움직였다.

번쩍!

한순간 손이 노랗게 변하더니 부챗살처럼 수평으로 퍼져 나갔다.

모두 열 두 개의 황금의 손.

십이금룡산수(十二金龍散手)가 펼쳐졌다.

어떤 상대의 공격도 부드러운 바람으로 풀어 해체 시켜 버린다. 강력한 내가 강기가 실린 열두 개 황금손이 빗살처럼 내리쳤다.

마치 칼로 뭔가를 자르는 듯한 쾌속절륜한 손동작에 검은 구름이 밀려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반응은 오민철의 목소리였다.

“총수야!”

“오오, 신이여”

두 번째로는 우달파가 놀랐고 마지막으로 세 사람을 안내 했던 노인이었다.

어둠이 걷힌 실내는 상당히 넓은 대전이었다.

바닥은 차가운 암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오랜 세월과 역사를 보여주듯 반들반들 했다.

한가운데 웅장한 석주(石柱)를 제외하고는 어떤 장식도 없다.

오직 포텐차리라고 부르는 노인만 결가부좌하고 있었다.

노인은 입술을 물었다.

문득 이곳 수도원 다할풀에 대대로 내려오는 한 가지 전설을 떠올렸다.

‘묵운실진파멸(墨雲失陣破滅), 검은 구름이 거두어지면 다할풀은 긴 생을 마감한다.’

노인은 마침내 그 날이 왔음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두 다리를 자르고 수도원을 떠난 아롱바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아롱바를 자랑스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적지 않은 선조들이 사류무에서 원형인 생사원영을 찾아내기 위해 피와 땀을 쏟았다.

하지만 누구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도 생사원영을 찾아낸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랜 전설을 믿고 있다.

단지 아롱바가 성급하게 나갔다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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