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75화 (175/651)

제175화: 수도원(1)

대설산의 한 계곡을 찾아 가는 길이다.

일단 잠무카슈미르주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뒤 거기에서 날씨를 보아가며 이동수단을 선택할 것이다.

흔히 앞의 두 글자 ‘잠무’를 뺀 ‘카슈미르주’로 불리는데 중국 파키스탄이 끝없이 영토 분쟁을 벌이는 지역이다.

권총수는 유리를 내리고 말보로 레드를 피워 물었다.

도로는 사람과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넘쳐났다.

교통신호도 멀쩡히 있고 군데군데 경찰관들이 보였지만 엉망인 도로를 통제하거나 질서를 이끌어내려는 행동은 없었다.

“어마어마하군.”

오민철은 혀를 내둘렀다.

“우달파, 인도 인구가 몇 명입니까?”

우달파는 씨익 웃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1위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이 몇이죠?”

“14억이라더군요. 인도가 바로 턱 밑을 쫓아 13억, 하지만 얼마전 16억에서 17억 명은 될 것이라는 유엔의 발표가 있었죠. 물론 인도 정부에서는 무슨 소리냐며 발끈 했지만.”

“고등학교 때 인도가 우리나라 보다 33배 크다고 배운 것 같은데, 음 그러니까 남북한 합쳐 8천만명 잡고 8X3은 24...26억, 에이 땅 대비 대가리는 우리가 훨씬 많잖아.”

“땅 대비 인구 밀도 따지면 우리가 훨씬 바글바글하지.”

권총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어! 저것 봐라.”

오민철이 놀란 눈을 했다.

소 한 마리가 지나가자 수많은 차량들이 속도를 늦추고 조심스럽게 비켜가고 있었다.

“완전 개판이구만, 아니 저런 소새끼를.”

어이없다는 오민철을 보며 우달파가 말했다.

“민철, 내 종교가 귀하면 타인의 종교도 존중해야 합니다.”

“우달파는 이슬람이라고 했잖아?”

이슬람인데 뭘 그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느냐는 얘기였다.

“내 종교가 욕먹지 않는다고 타 종교를 폄훼하는 모습을 방관해서도 안 됩니다.”

“아, 돌아버리겠네.”

오민철이 화가 난 듯 얼굴이 빨개졌다.

“우달파, 누가 종교를 폄훼했다는 거야. 가뜩이나 막힌 도로에 소 새끼까지 끼어드니 해본 소린데, 아무리 신성시 한다지만.”

우달파는 입을 닫았다.

오민철이 생각 밖으로 흥분을 하자 당황한 모습이었다.

“우라질, 주둥이 한 번 잘못 놀렸다가 졸라 얻어맞았네. 내 입 갖고 이 무슨 개 쪽이야.”

권총수는 못 본 체 담배만 피웠다.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오후 2시에 목적지 ‘스리나가르도’에 도착했다.

스리나가르도는 인도 북부 카슈미르주 주도(主都)이다.

파키스탄, 중국, 아프카니스탄과 경계를 하고 있어 스리나가르도 북쪽으로 인도군 2개 사단이 진주하고 있다.

공기는 서늘했다.

“여기서 ‘마활리’까지는 어느 정도 걸립니까?”

가이드 우달파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보였다.

“깜짝이야. 난 또 20시간이라고 하는 줄 알았잖아.”

오민철이 투덜거리며 담배를 물고 스윽 사방을 살피더니 한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산은 뭔데 흰 눈이 있어?”

우달파의 시선이 오민철의 손가락 끝을 향하더니 말했다.

“카라코람 산맥이야. 여기서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좀 더 들어가면 ‘하늘의 군주’가 있지”

하늘의 군주라는 말에 권총수와 오민철이 동시에 바라보았다.

“K2.”

우달파의 말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는 K2를 천황, 하늘의 군주라고 부른다고 했다.

권총수는 경이의 표정을 했는데 그건 언젠가 봤던 K2봉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에 이어 히말라야 고봉 넘버2지만 안나푸르나와 함께 가장 오르기 힘든 봉우리로 알려졌다.

특히 아직까지 겨울에 K2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늘의 군주’

새삼 이곳 사람들이 K2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름이었다.

때로는 신이 되고, 한편으로는 따뜻한 마음의 고향이면서 화가 나면 엄청난 눈 폭풍으로 세상에 경고한다는 우달파의 말이 이어졌다.

스리나가르도에서 점심을 먹고 일행은 다시 출발했다.

길은 갈수록 험해졌고 절벽이 나타났다.

길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에 길 위로는 카라코람의 산맥이 하늘 높이 솟구쳐 있었다.

맞은편에서 차가 한 대라도 오면 숨을 멈추며 비켜서야 했다.

그때마다 우르르 하며 절벽으로 떨어지는 돌멩이 소리는 심장을 오그라들도록 만들었다.

“저승길이 따로 없구만.”

좀체 겁을 모르는 오민철도 워낙 아찔한 도로인 탓에 목소리가 떨렸다.

터널 아닌 터널이 나타났다.

길을 넓히다보니 아래쪽은 불가능하고 결국 산 쪽으로 파고들다보니 지붕이 생긴 것이다.

“무너지면 찍소리도 못하고 가겠구만. 차라리 총알 날아다니는 전장은 잘만 짱 박혀 있으면 괜찮은데.”

지붕이 씌워진 길을 빠져나가자 왼쪽 절벽 아래로 상당한 규모의 호수가 나타났다.

“와우!”

호수는 푸르도록 맑았다.

“검의 호수!”

우달파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무슨 말이냐는 듯 권총수가 돌아보았다.

우달파는 검의 호수에 대한 꿈결 같은 전설을 말해 주었다.

오래전 검의 신이 살았다.

검의 신은 카라코람의 수백 고봉을 다스렸고 모두가 그의 발 아래 엎드렸다.

원래 카라코람의 산맥에는 8,000미터 이상 되는 봉우리가 일천여개가 넘었다.

하지만 오늘 날 K2와 낭카파르밧 말고는 모두가 8,000미터 이하의 봉우리들이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우달파가 묻는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렸다.

“카라코람 일천여 고봉을 다스리는 신들이 있는데 그들이 검의 신에게 항명을 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것이죠. 분노한 검의 신은 반란을 일으킨 신들을 모조리 베고 짓밟았죠.”

“칼에 베어져 지금은 그 많은 봉우리들이 낮아졌다?”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맞습니다.”

“높은 산, 깊은 바다 어딜 가도 한두 개씩의 전설이 있지만 이번 것은 상당히 내용이 있는데.”

오민철이 눈을 깜빡 거리며 호수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랜드로버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길인 듯 아닌 듯 하는 계곡이 나타났다.

부르릉!

4륜 구동 차지만 거친 비명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차는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계곡물을 지났다.

그렇게 200미터 정도 올라갔는데 길이 끊어졌고 더 이상 차로 올라가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걸어가야 합니다.”

세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80도 가까이 되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계곡의 미름은 마활리, 일행이 찾아가는 곳은 이 계곡 어딘가에 있다는 ‘다할풀’ 수도원이다.

다할풀은 인도요가의 창시자이며 요가를 학문으로 발전시킨 ‘아쉬브탕카’가 백년을 수련했다는 곳이다.

그는 평생 단 한 발자국도 다할풀 수도원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시작된 인도의 요가는 전 세계로 퍼졌고 여러 모양과 형태와 운동으로 끝없는 진화를 하고 있다.

우달파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파르기는 말할 것도 없고 거의가 암벽이다시피 하여 자신은 기다시피 하는데 오민철과 권총수는 평지를 걷듯 했다.

특히 권총수의 걸음은 몹시 안정되어 있었다.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평지처럼 걸어간다.

요가 연구자들을 태우고 몇 번 오긴 했지만 굉장히 위험한 길이다.

자신이 길을 안내하다 추락하여 죽은 사람도 있었다.

“맙소사!”

200미터 쯤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수직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이라기보다는 절벽이었다.

계단도 잘 정돈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르면서 만들어진 작은 구덩이었다.

우달파는 앞서 시범이라도 보이듯이 능숙하게 홈이 패인 곳을 손으로 잡고 올라갔다.

뒤따라 오민철이 올라갔는데 무공을 배운 사람답게 확실히 안정되었고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부우웅!

권총수는 그대로 떠올랐다.

어떤 신법이나 보법이 아닌 단순히 내공을 끌어 올려 몸을 허공으로 띄우는 부운등공이다.

20여 미터 되는 수직 절벽을 날아올라 지면에 내려서자 우달파는 소스라쳤다.

권총수가 열심히 올라가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듯 꼼짝을 하지 않자 뒤를 이어 올라오던 오민철이 소리쳤다.

“빨리 올라 가.”

놀란 우달파는 부지런히 올랐고, 마지막쯤 왔을 때 권총수가 손을 뻗었다.

탁!

우달파의 손을 잡은 권총수는 가볍게 끌어 올렸다.

이어 오민철까지 올라왔는데 우달파는 권총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금의 계단이 아니면 이곳 다할풀 수도원은 올라 올 수 없다.

뒤쪽으로는 해발 6,000 미터가 넘는 샤마츨루봉이 있다.

삼면은 수백 미터의 절벽과 얼음으로 이뤄져 그나마 지금의 화강암 계단을 통하는 이곳 남쪽이 가장 안전했다.

“가...가시죠.”

우달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어떻게 된 일이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암반으로 된 바닥이 쭈욱 뻗어 있고 거대한 봉우리를 등지고 전각 한 채가 보였다.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닌 절벽을 파고들어가 만든 동굴형태의 건축물이었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고도로 인해 나무는 보이지 않고 마른 풀과 바위에 달라붙은 노란 이끼가 전부다.

“저기!”

오민철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쳤다.

한 명의 붉은 가사를 걸친 노인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비쩍 말랐다.

훅 부는 입김에도 날아갈 듯 앙상했는데 맨발에 도띠(한장으로 된 천)를 몸에 둘렀을 뿐이다.

노인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합장을 하며 예를 취했다.

“어서 오소서. 귀인이시여.”

귀인이라는 말에 권총수는 눈을 치켜떴다.

“이 늙은이를 따라 오십시오.”

노인은 앞장서 걸었고 오민철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알았지. 우리가 벨을 누른 것도 아닌데.”

그러면서 우달파를 바라보았다.

혹시 사전에 연락을 했느냐는 시선이다.

“노오, 전혀.”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 하면서 승려의 뒤를 따라갔다.

노인은 열린 전각으로 서슴없이 들어갔는데 절벽을 파고 축조한 석조건물답게 문이 없었다.

우달파는 이마를 찡그렸다.

몇 번 와봤지만 이상하게도 이 어둠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안 보이는 건 여전했다.

척!

가장 앞서 노인을 따라가던 우달파가 걸음을 멈췄다.

더 이상 보이지 않았으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더해서 그가 멈춰 버린 건 앞서가는 노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디 계시오.”

앞쪽을 향해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두 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뒤를 돌아보았는데 권총수와 오민철이 보이지 않는다.

“총수, 민철!”

분명히 같이 들어왔다.

전번에 캠브리지 대학 교수를 안내해 올 때는 어둡기는 했으나 사람을 놓친 적은 없었다.

“두 분 내 말 들려요?”

더럭 겁이 났다.

‘메아리도 없다’

실내기 때문에 메아리가 생겨야 정상인데 뻗어나간 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암석으로 된 실내 건축물이라면 더욱 메아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달파는 오도 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서 버렸다.

두 번째로 걸음을 세운 사람은 오민철이었다.

이상하게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뭔가 자신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스윽!

손을 뻗어 더듬어도 앞을 막는 물체 따위는 없다.

그런데 걸음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깊은 물속에 빠진 사람처럼 가슴에 상당한 압력이 느껴졌다.

“총수야!”

권총수의 대답이 없다.

“총수야. 총수야.”

어둠은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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