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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74화 (174/651)

제174화: 새로운 손님(2)

사우디 쿠데타 성공으로 CIA는 물론 각국의 정보기관의 KAS 감시는 더욱 적극적이고 노골화되고 있었다.

특히 권총수에 대한 조사는 치밀했다.

독재에 항거하는 반체제 인사들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권총수를 만나고 싶어 했고, 반대로 독재자들은 권총수가 자국의 정치에 관여하여 반란을 기도하지 않는가 하여 감시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권총수는 팀원들에게 문자 하나를 발송했다.

카이로에 밤이 찾아왔다.

타흐리르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다.

이곳 광장을 중심으로 카이로의 주요 도시기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그래서 이곳을 카이로 여행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또한 대표적인 쇼핑 거리이기도 하여 도시의 청춘과 여행객의 낭만이 뜨겁게 북적이고 있었다.

광장 왼쪽으로 흘러가는 나일강이 보이는데 두 그루 커다란 야자나무 아래 일단의 사내들이 앉아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얘기하고 노래 부르는 주위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꽉 막힌 실내보다 툭 터진 실외가 안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 권총수는 이곳을 회의장소로 정했다.

필시 리야드에서 카이로까지 오는 동안 감시가 붙었을 것이다.

테러단체일수도 있고 아니면 CIA 같은 국가정보국 같은 곳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밖에서 회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감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때 장소를 실내로 옮길 생각이었다.

권총수를 포함해 모두 열한 명이다.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어.”

“그래서 기다리자고?”

권총수의 말에 오민철이 물었다.

“증거도 없고, 털끝만한 단서도 없는 지금 뭘 어떻게 움직일 건데.”

“그렇긴 한데 언제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잖아.”

나카야마가 끼어들었다.

“이번 작전은 좀 특이하긴 하지. 아직까지는 납치범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우린 끌려갈 수밖에 없어.”

“그래서 무작정 기다리자?”

세르게이가 눈을 빛냈다.

“게이 형 좋은 생각 있어?”

나카야마가 물었다.

세르게이는 권총수의 눈치를 살피더니 피식 웃었다.

“없어. 답답해서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야.”

“한마디 하시죠?”

권총수가 침묵하고 있는 오도이 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도이 팀장은 어색한 표정을 했다.

“내가 뭘.”

죄인처럼 오도이 팀장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팀장님, 실수를 인정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최선을 다했을 때는 불가항력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오도이 팀장의 눈이 커졌다.

난 당신이 몰나르 왕자 경호에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는 뜻이었다.

오도이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그건 오도이로서는 고맙다는 최선을 다한 감정 표현이었다.

카이로 공항에 권총수가 다시 나타났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고 상의는 회색체크무늬 자켓에 검정색 티셔츠를 받쳐 입었다.

권총수는 느린 걸음으로 공항청사를 돌아다녔다.

‘사람이 지나가면 흔적이 있다’

공공선사는 분명하게 말했다.

바람도 자국을 남기고 햇빛도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보이는데 하물며 사람이 어찌 왔다 갔음을 드러내지 않겠느냐고 했다.

CCTV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CCTV가 없는 곳으로 가버리면 되는 것이지만 사람의 눈은 절대 피할 수 없다.

네 명을 단 한 번의 칼질로 죽일 정도의 인물이라면 보통사람과 반드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생김새 아니면 행색에서 눈 여결 볼 부분이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한 번 더 쳐다봤을 수도 있다.

권총수는 청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시 섰다.

지금 일곱 번째 입구에 선다.

적이 공항청사로 들어설 때를 가정해 시뮬레이션 해보려는 것이다.

먼저 자동문을 통해 들어선다.

넓은 홀이 나오면서 오른쪽으로 여행사 카운터가 줄지어 서 있다.

뚝!

갑자기 걸어가던 권총수가 걸음을 세우고 여행사 카운터 쪽을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권총수는 20여개의 여행사 카운터를 훑어 본 뒤 조금 한가해지길 기다렸다.

티켓팅을 하려는 여행객들이 조금 뜸해졌다.

권총수는 맨 오른쪽 ‘밀리나 여행사’라고 쓰인 곳을 향해 걸어갔다.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하면 빨리 떠올릴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

“말 좀 묻겠습니다.”

유리로 칸막이가 되지 않은 오픈된 창구였다.

백인 여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사람 본적 있습니까?”

자신이 묻고도 이상했다.

권총수는 조금은 난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열흘 전 이곳에서 발생한 납치사건 때문에 그렇습니다. 혹시 행색이 이상하다거나 아니면 주위를 경계하는 듯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까.”

“네 보지 못했어요.”

권총수는 차례대로 여행객을 기다리며 서있는 직원들을 향해 물었다.

워낙 큰 사건인 탓인지 대부분 표정이 굳어졌고, 일부는 대답하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이상한 점 있어요.”

9번째 여자, ‘선(SUN)’ 여행사란 글씨가 등 뒤 벽에 붙어 있었다.

여자는 흑인이었는데 권총수를 향해 말했다.

“오후 이때쯤 됐을 거예요. 한 명의 노인을 봤어요?”

“노인?”

“나이는 모르겠어요. 상당히 말랐어요. 키도 작았어요.”

자신의 이름을 오르비라고 밝힌 여자는 그날 자신이 보았던 한 명의 노인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왜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느냐고 묻자 오르비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내가 요가를 하거든요.”

오르비 말에 의하면 그 날 이 앞으로 지나갔던 가냘픈 노인은 떼에 찌든 누르스름한 천을 목과 허리에 감고 있었다.

권총수는 이슬람복장중 하나인 머리에 쓰는 구트라 아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르비는 자신이 이슬람신자인데 구트라와 도티(Dhoti)를 구분 못할 것 같냐고 했다.

“도티?”

“힌두교 전통복장이기도 하고 인도 남자들이 즐겨 입는 옷이죠.”

힌두교 전통복장이라는 말에 권총수의 눈은 더욱 가늘어졌다.

비렌드라는 인도의 고유 의상에 대해 해박했다.

인도나 네팔이나 복장에서 닮은 점이 많다면서 오르비가 말한 도티와 룽기(Lungi), 아즈칸(Achkan)의 복식에 대해 말했다.

비렌드라는 세 가지의 복장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었다.

“도티가 요가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는 옷이란 말 아냐?”

오민철이 물었다.

“맞아. 인도 여행하다 보면 구걸하듯 앉아 있는 요가 수행자들이 즐겨 입지. 일단 편하고 단순하니까.”

“요가라고?”

권총수가 고개를 돌렸다.

비렌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가가 무공에서 파생된 신체 훈련이라는 건 알 것이고.”

“어디 무공?”

“캡틴?”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뜻이었다.

“달마대사, 소림 무공의 창시자인 그분이 태어나 자란 곳이 인도야. 범어로는 보디다르마(Bodhidharma)이며 한자로는 보리달마(菩提達磨)로 표현되지. 인도 남쪽 향지국 셋째 왕자였어.”

“석가모니도 무슨 왕자 아니었냐?”

오민철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래, 그 역시 왕자출신이지.”

“달마대사도 왕자 석가모니도 왕자, 어떻게 금수저들이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되지?”

오민철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비렌드라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오늘 날 소림의 무공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인도의 무공인 셈이지.”

“달마역근세수경이 인도무공?”

“달마가 인도 사람이니까.”

비렌드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빙긋 웃고 말았다.

“얘기 계속 해봐요.”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가의 자세 중 호흡(呼吸)과 동작(動作)을 완벽하게 하나로 일치시킨 춤이 있어.”

“춤?”

권총수 눈이 가늘어졌다.

“캡틴 머리에 뭔가 떠오른 모양이군?”

비렌드라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권총수 정도면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라는 암시였는데 잠시 기다려 준다.

권총수는 호흡과 흐름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반복하더니 한순간 눈이 커졌다.

“사류무(似柳舞).”

권총수는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사류무는 춤이다.

인도요가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아쉬브탕카’가 만든 것으로 모두 여덟 단계의 과정이 있다.

오늘날엔 춤이라 부르지만 뿌리는 인도밀교의 무공 생사원영(生死圓影)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경호팀들을 살해한 칼이 생사원영?”

오민철이 눈을 반짝 거렸다.

“생사원영은 인도밀교 최고의 검법이야. 나도 얘기만 들었지 구경도 못해봤어.”

포탈라궁 출신 비렌드라의 표정이 어두워 졌다.

밀교는 포탈라궁에서 뻗어나간 불문(佛門)이다.

세상의 모든 문파는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분파로 나눠졌는데 포탈라궁 역시 그런 변화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중 생사원영은 포탈라궁이 자랑하는 최고의 검법이었다.

소림의 달마삼검에 비교되는 진산절학인 것이다.

그런데 진산절기가 종가(宗家)에 있지 않고 파생된 계파의 수중으로 떨어진 것이다.

아쉬브탕카의 선조중 한 명인 ‘미할타’였다.

그는 포탈라궁을 이끌어갈 대제자였지만 여색을 밝혔고 결국 파문을 당했다.

무공을 더 이상 연성할 수 없도록 기경팔맥을 파괴하자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당시 포탈라궁주였단 달라이라마는 그를 측은히 여겨 파문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그는 은(恩)을 원수로 갚았다.

생사원영의 검급을 훔쳐 나온 것이다.

비급이 사라졌다고 하여 그 무공이 당장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문제는 시간과 세월이 흐르다 보면 조금씩 원래의 동작에서 변형이 되는데 이때 이를 잡아주는 것이 바로 검급이다.

비급이 있으면 그걸 토대로 다시 바르게 잡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계속 변형되고 뒤틀려 끝내는 이상한 형태로 변해버리는 것이 무공의 원서(原書)가 있고 없고 차이다.

어쨌든, 사류무를 통해 경호원들을 살해한 칼에 대한 단서가 조금이나마 드러난 셈이다.

비행기는 천천히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비행기는 이집트 카이로 공항을 떠난 에미레이트 항공이었다.

사람들이 트랩을 밟고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두 사람이 눈에 보인다.

다.

권총수와 오민철이었다.

“키햐. 내가 인도를 올 줄이야.”

“왜? 인도 오면 안돼?”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내가 뱅골 호랑이를 좋아하거든. 남들은 시베리아 호랑이 운운하지만 난 아니야. 오로지 뱅골이야.”

“야생의 뱅골 호랑이 보려면 보호구역으로 가야 할 걸.”

“그렇다고 구경 가자는 건 아니고.”

“나중에 구경 한 번 가지 뭐!”

“정말?”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권총수 뒤를 졸졸 따르며 떠들기 시작했다.

“뱅골 호랑이는 말이야.”

오민철의 뱅골 호랑이에 대한 지식은 풍성했다.

평균 몸무게가 200킬로가 넘고, 후려치는 앞발의 파워가 1톤의 위력이고. 지구상 호랑이중에는 성질이 가장 사납고, 사자처럼 집단 사냥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공항을 빠져나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있는 바짝 마른 인도인이었다.

인도에서 있는 동안 통역과 길 안내를 할 가이드 우달파였다.

차량과 통역 모든 건 KAS에서 준비해 주었다.

“권총수요!”

“오민철!”

우달파는 빙긋 웃으며 악수를 했다.

일행은 랜드로버에 올랐고 차는 곧장 출발했다.

“몇 시간 정도 소요됩니까?”

조수석에 탄 권총수가 물었다.

핸들을 잡은 우달파는 빙긋 웃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장담은 못합니다. 넉넉잡아 사흘, 상황이 좋으면 하루 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피곤한 길이란 말입니까?”

우달파는 룸미러를 통해 오민철을 보았다.

“그래도 차가 좋기 때문에 그 정도입니다. 일반 승용차라면 족히 일주일은 걸릴 것입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다.

인도라는 나라가 워낙 크기도 하지만 뉴델리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과 남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차나 도로 사정이 썩 좋지 못했다.

권총수가 찾아 가는 곳은 그곳이었다.

강호에서는 대설산으로 불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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