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73화 (173/651)

제173화: 새로운 손님(1)

전화기속으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긴장하는 모양이다.

“물어 보십시오.”

목소리가 부드럽다.

“칼에 맞으면 모두가 비명을 지릅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마낙춘은 당황한 듯 한동안 말이 없다.

“급히 알아볼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맞는 부위에 따라 다르죠. 치명적인 급소를 파고들면 비명은 낼 수가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주저앉습니다.”

“움직이는 사람을 상대로 급소에 칼을 넣을 수 있습니까?”

“사장님도 차암, 불가능 합니다. 물론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죠. 하지만 저보다 실력이 좋은 자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급소라는 것이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고, 더욱이 옷에 가려 있는 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봐야죠.”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권총수는 전화를 끊었다.

오민철이 궁금해 하자 통화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결론은 가능하다는 것 아냐.”

“중요한 건 칼을 맞은 사람이 어떤 상태냐에 있었느냐 아니겠어. 빠른 움직임이었느냐 그 자리에 서 있었느냐?”

“전자라면?”

“무서운 일이지. 강호의 무사급이라고 봐야 돼.”

때마침 다가온 기내 서비스에 권총수는 콜라 한 잔을 부탁했다.

오민철은 콜라를 받아 마시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는데 표정이 굳어 있었다.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권총수에게는 소림사의 무공이 있다.

권총수에게 소림의 무공이 있다면 이 세상 어딘가 누군가에도 또 다른 강호의 무공이 있지 말란 법은 없다.

권총수 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권총수는 역시 그 점에 신경쓰는 것이 분명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왔다.

이집트에는 지사가 없고, 사우디의 에반이 중동의 모든 KAS용병들을 관리한다.

그때 두 명의 백인이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다가섰다.

권총수는 두 백인을 훑어보고 빙긋 웃었다.

“오도이 팀장님?”

누구냐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보자 왼쪽 사내가 오른쪽 사내를 가리켰다.

오른쪽 사내가 꾸벅한다.

“내가 오도이입니다.”

몰나르 왕자 경호팀장이다.

SAS에서 실전 경험도 풍부하고 용병으로도 5년째인 베테랑이다.

KAS에서의 근무 평점을 보면 모든 면에서 A를 기록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레바논 총리 경호였다.

2년 반 동안 세 건의 저격 사건이 있었고 이스라엘 전투기의 오폭으로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던 레바논 총리를 완벽하게 지켜낸 것이다.

그 점이 높이 평가되어 몰나르 왕자 경호팀장으로 선발되었는데 이번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이군’

올해 서른아홉으로 미혼이며 권총수의 질문 말고는 일체 말이 없었다.

“여기란 말입니까?”

공항화장실에서 좌측으로 20여 미터 떨어진 곳이다.

화물을 운반하는 카트가 가득 쌓여 있었고 구석진 곳에서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배낭을 내려놓고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사내들 뒤쪽으로 편의점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많았다.

“라면을 사기 위해.”

오도이는 제대로 말을 끝맺지 못했다.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러 선생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어린 학생 같은 모습에 권총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덩치는 황소만한 사내가 지나칠 만큼 숫기가 없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사나운 SAS를 제대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권총수는 천장에 설치된 CCTV를 살폈다.

‘2개’

주변으로는 조그만 편의점이 있고 머지않은 곳에 화장실이 있다.

공항청사치고는 의외로 붐비는 편은 아니었다.

티켓 창구나 화물접수창구와 떨어져 있으며 앉아 비행시간을 기다리는 의자도 없다.

동쪽 활주로가 보이는 곳에 큰 규모의 편의점이 있고 여기 말고 화장실은 세 곳이 더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항처럼 사람 많은 곳에서 납치를 시도한다면 여기보다 더 적절한 장소를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한 번 CCTV를 보았다.

다른 공간은 멀리 설치된 카메라에도 찍힐 위험이 있지만 이곳은 오직 화장실 바깥쪽에 설치된 것과 편의점 입구에 걸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2개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누가 골랐는지 장소하나는 절묘하다’

테러의 성패는 장소다.

대상이 어디를 지나느냐 어디에 머무느냐, 장소에 따라 공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마중을 나온 팀장 오도이와 윌슨 말고 두 명의 사내가 더 나타났다.

사망한 4명과 부상을 입고 치료중인 두 명을 제외한 토모리와 고메즈였다.

토모리는 186센티의 신장에 80킬로를 가진 건장한 체격이었는데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썼다.

특이하게도 영국과 끝없이 독립전쟁을 치루고 있는 북아일랜드 출신이다.

국방부에서 그의 입대를 불편해 했지만 딱히 막을 수 있는 법령이 없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봤지만 사고는커녕 모든 작전에 가장 앞장서서 대영제국의 군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당연히 전역하자마자 KAS의 스카웃 손길이 뻗칠 수밖에 없었다.

고메즈는 멕시코 출신 이민 2세다.

키는 작아도 유머가 좋고 팀에서 항상 분위기를 잡는 역할을 자처했다.

토모리와 고메즈, 그리고 오도이 팀장 윌슨이 현장검증에 참여했다.

네 명 모두 사망한 경호원 역할이다.

그들이 죽었던 자리에서 쓰러진 각도와 자세를 그대로 보여줄 셈인 것이다.

“시작합시다.”

권총수의 지시에 네 사람은 바닥으로 쓰러졌는데 각자 자세가 다르다.

큰 대자로 뻗은 사람이 있는 반면, 모로 누워 잔득 웅크리기도 하고, 목에서 흐르는 피를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으로 틀어막고 있는 사람, 복부를 감싸고 엎어진 사람도 있었다.

화장실과 편의점을 오가는 사람들이 영화 찍는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천천히 쓰러진 용병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오민철은 팔짱을 낀 채 권총수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한 명 한 명 상처 난 부위(각자 칼 맞은 부분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음)를 살폈다.

어떤 용병은 허리를 숙여 상처를 확인했고, 어떤 이는 직접 손가락으로 상처 부위를 만져 보기도 했다.

네 명 모두를 두세 번씩 살피고 난 권총수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좋은 단서라도 발견됐냐?”

오민철이 넌지시 물었다.

권총수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콧날을 쓰다듬었다.

“이거야 원.”

“왜? 문제 있어?”

“놀라운데, 한 방이야.”

“한 방이라니? 설마 한 번에 네 명을 죽였단 말은 아니겠지.”

“단 칼에 모두 죽였어.”

화악!

오민철의 눈만 커진 것이 아니었다.

권총수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네 용병들도 소스라쳤다.

목격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누가 휘두른 칼에 당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단칼에 넷을 죽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한 명?”

팀장이었던 오도이 눈이 커졌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둥근 원을 그리며 일거에 네 명의 급소를 정확하게 갈랐습니다.”

“어떻게?”

“놀라운 일입니다. 펜싱의 고수이고 일본의 여러 실전검파의 종사(宗師)라고 해도 불가능 할 겁니다.”

오민철은 권총수의 말을 믿었다.

권총수는 결코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더불어 그는 강호의 절정고수이다.

보는 눈이 자신들과 다르다.

‘동그라미(圓).’

칼은 둥근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돌았고 공격권 안에 있는 네 명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공공선사는 강호에는 많은 검파가 있다고 했다.

어떤 검파는 한 가지 초식만을 가지고 수백 년을 내려온다고도 했다.

그런 검파의 초식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나 말고 누가 또 강호의 무공을 배웠단 말인데.’

권총수는 돌아섰다.

“철수들 하시죠.”

권총수는 팀원들과 같이 청사를 벗어났다.

워낙 굵직한 사건이다 보니 이집트 국가보안국(경찰청)에서도 섣불리 범인에 대한 작은 발표도 꺼렸다.

그만큼 신중해진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아우성이다.

국가보안국 정문 앞에 진을 치고 조금만 이상한 사람을 발견하면 카메라부터 누르고 본다.

“막아, 막아!”

한 대의 승용차가 들어서자 기자들이 앞을 막았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무장경찰들이 제지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기자들은 굳게 닫힌 승용차 뒷문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도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까?”

“뭔가 숨기고 있는 것 아닙니까?”

결국 기자들이 길을 터줄 생각을 하지 않자 뒷유리가 아주 약간 열리고 뚱뚱한 체구의 사내 얼굴이 보였다.

알샤크란 국가보안국장이다.

그는 좁은 문틈으로 한 마디 툭 던지듯 뱉었다.

‘주목하고 있는 테러 단체가 있지만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다’

슥!

곧장 문이 닫혔고 기자들을 헤치며 승용차는 안으로 사라졌다.

라디오에서는 한참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온통 몰나르 왕자 납치에 관한 소식들이다.

이집트 국가 보안국장은 적지 않은 정보를 갖고 있지만 피해자의 신변 안전을 위해 아직 얘기 할 수 없는 단계라고 짤막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허나마나 한 개소리. 할 말이 없으니까 괜히 뭔가 있는 척 하는 거야.”

승용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뉴스를 들으며 오민철이 코웃음을 쳤다.

“진짜 알고 있었다면 사우디 정부에 귀띔이 갔을 것이고 왕세자 쪽에서 우리에게 납치범들에 대한 정보를 보냈지. 안 그래?”

권총수는 공항을 출발해서 지금까지 한마디도 없었다.

토토톡!

오민철은 답답한 듯 자꾸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모든 채널이 이번 사건에 대해 보도를 하고 있었지만 작전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싱거운 자식들.”

조수석에 앉은 권총수가 말보로 레드를 피워 물었다.

후우우!

열린 창문 밖으로 담배연기를 한 숨 쉬듯 내뱉는다.

세계 어느 나라든 공항은 살벌할 만큼 경비가 삼엄하다.

더욱이 이집트는 이슬람권에서는 나름 치안이 괜찮기로 소문난 국가이다.

그렇다고 공항에서 전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다.

2017년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시아 콸라룸푸 국제공항에서 화학테러로 숨졌다.

은밀하지도 않고 벌건 대낮에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자행되었지만 아직까지 범인이나 배후는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모스크바 공항에서도 자살폭탄테러가 벌어져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두 사건의 공통점은 상대를 죽였다는 것이다.

죽이는 것과 납치사건의 난이도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죽이는 건 단순히 목숨을 끊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조롭고 간단한 반면 납치는 사람을 기절시켜 데리고 가든 산채로 끌고 가든 주위 이목을 끈다.

납치가 훨씬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목격자도 없고, CCTV에도 찍히지 않았다.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메리어트 호텔 10층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권총수와 오민철이다.

권총수가 1010호로 들어갔고, 오민철은 바로 옆방인 1011호를 잡았다.

호텔방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커텐을 열고 주변을 살폈다.

군인은 작전에 임할 때 항상 퇴로를 준비한다.

작전을 성공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하게 빠져 나오는 것이야 말로 능력이다.

‘누구든 공격은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가지고 들어간 내 목숨을 온전히 갖고 나오느냐가 능력이다’

외인 7중대장 튀랑대위의 지론이었다.

작전본부가 마련되기 전까지 호텔 생활을 해야 했다.

근처 다른 건물들을 살피고 있을 때 핸드폰이 걸려왔는데 나카야마였다.

“어디야 형?”

“지금 왔어.”

모두 세 팀으로 나뉘어 있다.

임시 작전사령부는 이곳 메리어트 호텔이며 사령관은 권총수이다.

예하부대로는 나카야마를 포함한 외인부대 출신들이 묵고 있는 소네스타 호텔, 그리고 몰나르 왕자를 경호한 팀이 사용 중인 소피롬 호텔이다.

한곳에 모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몰려 있다가는 자칫 한 방에 날아간다.

보이지 않는 적은 지금쯤 KAS용병들이 카이로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은밀하게 살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 이미 뒤를 밟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경기는 초반이 어렵다.

그래서 초반 실점을 막기 위해 감독은 온갖 전략을 세운다.

권총수 역시 실점하지 않기 위해 고심 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