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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69화 (169/651)

제169화: 부전이승(不戰而勝)2

방안의 공기가 무겁다.

세 사람은 잔뜩 인상을 쓴 채 적의 속셈을 짐작해 보기위해 노력했지만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했다.

“우리가 먼저 움직여 보는 게 어떻겠나?”

자페르 준장이 입을 열었다.

“젠장, 도대체 왜 공격을 않는 거야.”

자페르 준장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무척 고민스러울 겁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를 앞서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외치며 들어선 정부인데 반군 때려잡자고 수많은 시민들 목숨을 앗아가 버리면 국제사회는 물론 국내 여론까지 좋게 돌아가지는 않을 테니.”

“그냥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6사단 전 작전참모 사이드 중령이 시선을 돌려 질문을 한 알무르드 대령을 보았다.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뭔가 선수를 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자페르 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전선을 대치하면서 서로가 공격을 못하는 해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전사 어딜 살펴봐도 이런 전쟁은 없었다.

‘길(吉)인가 흉(凶)인가’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이쪽에서 대응해야 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끌려갈 수밖에 없지만 불길한 기운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아무런 대책도 내지 못한 채 알무르드 대령과 사이드 중령이 순찰을 돌기 위해 차를 몰고 사라졌다.

혼자 남은 자페르 준장의 이마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

딸칵!

담배 한 개비를 물며 사진을 통해서만 봤던 권총수 얼굴을 떠올렸다.

외인부대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는 것 말고는 그에 대한 정보는 넉넉하지 못했다.

이번 쿠데타 역시 연출 기획 감독 모두 그의 솜씨라고 들었다.

베네수엘라 쿠데타까지 본다면 단순히 총만 잘 쏘는 용병이 아니라 군대의 전술과 정치전략에도 뛰어난 것이 분명했다.

팟!

갑자기 자페르 준장의 눈이 빛났다.

‘혹시’

별안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열 번 백 번을 생각해도 이렇게 총 한방 쏘지 않을 리는 없다.

자페르 준장은 울대가 흔들릴 만큼 마른침을 삼켰다.

‘숨 막히는 이 기다림이 설마’

연신 목이 마른다.

‘내가 마음을 바꿔 투항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느닷없이 떠올랐을 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할수록 정말로 자신을 배려해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보름동안을 총 한 발 쏘지 않을 리가 없다.

필시 리야드(수도이지만 여기서는 파흐드 왕세자가 이끄는 새 정부)에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선에서의 강공을 주문했을 것이다.

파흐드 왕세자가 아무리 민주주의를 중요시 한다고 해도 시기적으로 이 상황이 오래 가는 것이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끝나야 한다.

일 분 일 초라도 국제여론이 사우디 사태에 집중된다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밤이 찾아왔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무척 힘들다.

낮부터 이어진 고민, 그것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주위 상황을 분석해보고 여러 가지 가정을 대입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틀림없다.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투항할 것이면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알 살만 왕세자를 위해 한 목숨 내놓겠다는 순국의 각오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흘러가는 상황은 어떤가.

“음!”

자페르는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보름이 한계였다.

알하얌 소장이 권총수의 지시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고 하자 상부에서 도대체 뭣 하는 것이냐며 전화가 빗발쳤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전쟁 안 해?

시민 피해는 어느 정도 각오하라고 했잖아. 오늘 당장 공격해.

현지 작전사령관은 당신이야. KAS용병들은 예속 부대라고.

그뿐 아니었다.

휘하 참모들과 예하부대 지휘관들까지 분노했다.

아무리 쿠데타의 주역이라고 하지만 자기가 뭔데 우리 군을 쥐락펴락 하느냐는 것이었다.

KAS용병들은 그들대로 불평을 쏟아냈다.

권총수의 능력과 활약을 인정은 하지만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아무리 군대가 아니라지만 최소한의 질서라는 것이 있다.

너무 잘난 체 한다.

오만불손하다.

외인부대 좀 나온 것이 무슨 위대한 일이라도 되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결국 오민철이 터뜨렸다.

권총수 험담을 하는 건 절대 용서 할 수 없다는 것이 오민철의 소신이다.

“핸더슨 너 죽고 싶어?”

오민철의 시선이 껌을 씹고 있는 흑인사내를 향했다.

코만도 출신이다.

그와 같이 어울리는 패거리가 6명인데 모두가 코만도 출신들이다.

핸더슨은 그들의 우두머리 격이었다.

용병세계에도 크고 작은 팀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현상은 내로라하는 특수부대 출신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대규모 국제전 보다는 소규모 국지전이 잦은 현대전에서 일백, 이백 명보다는 열 명 스무 명 정도가 급히 필요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이들이야 말로 최적의 용병들이다.

이들 역시 이번 사우디 구데타로 급히 수혈된 용병들이었다.

“흐흐흐!”

핸더슨이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190센티미터의 키에 90킬로그램의 거구가 오민철을 내려다본다.

“배가본드 나왔다구.”

배가본드는 부랑아나 떠돌이를 가리킨다.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로 들어오면서 낭만적인 단어로 바뀌었지만 실체는 그렇다.

외인부대를 여기저기 떠돌이들을 긁어모아 만든 부랑아 단체라고 야유할 때 사용하는 단어였다.

오민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핸더슨의 패거리들이 위협을 하겠다는 듯 하나둘 모여 들었다.

“뭔 일인데?”

다가온 나카야마가 상황을 눈치 채고 재빨리 외인부대 동기들을 불렀다.

순식간에 외인부대 출신들이 모였는데 대번에 눈에 살기를 띄운다.

“아무도 끼어들지 마.”

오민철이 거추장스럽다는 듯 점퍼를 벗어 뒤에 있는 나카야마에게 던졌다.

“죽여 버려. 핸더슨 저 자식 처음부터 싸가지가 없었어.”

나카야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진 놈은 이긴 놈 부하가 되는 것?”

“콜!”

핸더슨의 비아냥거리는 제안에 오민철이 단박에 수락하며 물었다.

“저 뒤에 있는 놈들도 같이 내 바짓가랑이 아래로 들어오는 거야?”

“물론이지!”

“너희들이 대답해. 너희들 입으로.”

오민철은 말뚝을 박겠다는 듯 패거리들을 향해 소리쳤다.

“콜!”

“오케이!”

패거리들이 낄낄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죽!

오민철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지닌 내공은 30년 정도 된다.

그만 배우겠다고 했던 건 권총수의 잔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운기조식은 멈추지 않는다.

주먹은 더 세졌고 발길질은 강해졌다.

위험에 대처하는 신체 반응은 빨라졌고 상대 움직임을 보는 눈은 더 정확해졌다.

슈슉!

핸더슨이 가볍게 잽을 뻗는다.

팔이 길어 순간적으로 얼굴로 바람이 스친다.

슈슉!

펄쩍펄쩍 뛰면서 잽을 뻗는 것이 마치 복서 같았으나 오민철은 빙긋 웃었다.

그냥 보면 안다.

복싱을 조금 배운 것 같긴 하지만 그저 그렇다.

오민철은 자세를 낮추고 잽을 몇 번 피하다 팟! 순간적으로 뛰어들며 몸을 돌렸다.

홱!

뒷차기 동작이다.

높지도 않은 오른쪽 발은 정확히 핸더슨의 복부를 찍었다.

크억!

복부를 맞아 상체를 웅크린 핸더슨을 향해 다시 한 바퀴 회전을 했는데 이번에는 몸 돌려차기다.

회전이 빠르고 강력하여 발에 실린 힘은 엄청나다.

거기다 30년 내공이 실린 발이 핸더슨의 턱을 찍었다.

쿠웅!

누군가가 전봇대 하나가 쓰러진 것 같았다고 했다.

꼿꼿하게 넘어간 핸더슨은 움직이지 않았다.

기절한 것이다.

“핸더슨!”

사내들이 우르르 달려가자 오민철이 버럭 소릴 질렀다.

“동작 그만!”

핸더슨 패거리들 모두가 돌아봤는데 처음과는 전혀 다른 눈빛들이다.

그건 분명한 두려움이었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신기다.

“꿇어 새끼들아. 무릎 꿇으라고. 플랍 원 원스 키니스.”

주춤 거리던 사내들이 무릎을 꿇었다.

“잘 들어 너흰 앞으로 내 부하들이야. 최소한 내 앞에서는 조심해. 죽여 버릴 테니까.”

오민철의 눈에서 냉기가 풍긴다.

“뭣들 해. 저 새끼 의료반으로 데려가.”

사내들이 기절한 핸더슨을 커다란 들것에 담아 옮겼다.

“와우!”

“부라보. 역시 민철.”

나카야마와 외인부대 출신들이 박수를 쳤다.

“우리 캡틴한테 불만 있는 놈들은 모두 나와 모가지를 돌려 버리겠어.”

나카야마가 소리쳤다.

“민철, 오늘 아주 좋아.”

“쪽바리 주둥이 닥쳐 콱 그냥.”

오민철이 주먹을 쥐자 나카야마가 자라목을 했다.

저녁을 먹은 권총수는 야외 휴게소를 향해 걸어갔다.

휴게소는 벙커 좌측으로 1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어 공중에서 관찰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 놨다.

권총수는 식후 담배를 피우며 유난히 붉은 꽃을 바라보았다.

사막 장미였다.

한국 장미와는 가지도 꽃의 크기도 달랐고 향기는 굉장했다.

허리를 숙여 몇 번 향기를 맡은 권총수는 다리를 꼬고 앉아 하나둘 나타나는 사막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후우!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새로 6사단 작전참모가 된 샤하브 중령이었다.

“정문에 누가 찾아왔다는군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전운이 감도는 군부대로 누가 찾아왔을까.

면회 올 사람도 없다.

“누구죠?”

“지역 사람 같다는군. 이름이 ‘마툭’이라고.”

“마툭!”

권총수는 이마를 찌푸렸다.

오랫동안 중동에서 생활을 했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무슨 용건이냐고 정문경비병이 물었지만 본인을 만나기 전에는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네. 혹시 몰라 온몸을 수색했지만 폭탄조끼 같은 것 발견되지 않았네.”

마툭!

마툭!

권총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권총수는 담뱃불을 바닥에 비벼 끄고 일어났다.

“나가는 것보다 마톡이란 자를 이리로 불러들이는 것이 좋지 않겠나?”

불안한 모양이다.

“괜찮습니다.”

권총수는 조용히 사잇길을 걸어 눈앞에서 사라졌다.

경비병들은 만약을 대비해 마툭이라는 사내를 초소 안으로 들이지 않고 밖에 세워 놓았다.

M-ATV(전투차량, 미국 특수차량 회사 오시코시에서 제작한 험비와 비슷한 성능)한 대가 다가와 멈추며 권총수가 내렸다.

두 명의 경비병이 왼손에 총을 들고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낡은 평상복을 걸친 서른 초반 가량의 사내였다.

“마툭?”

“총수?”

“그렇소. 내가 권총수요.”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권총수는 덤덤한 표정이다.

“어딨소?”

권총수 눈이 빛났는데 뭔가 감을 잡은 듯 앞에 섰다.

“갑시다.”

“역시 그렇군요.”

“뭐가 그렇다는 것이오?”

권총수가 물었다.

마툭은 한쪽에서 지켜보는 정문 경비병들을 흘깃 보았다.

“날 심부름 보낸 사람이 그랬소. 그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누구냐 꼬치꼬치 묻는다면 그냥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면 데리고 오라?”

권총수도 웃고 경비병들도 웃었다.

“가시죠. 마툭.”

“잠깐!”

권총수가 마툭과 돌아서려는데 선임인 듯한 경비병이 불러 세웠다.

“부대 밖으로 나갈 땐 반드시 병력을 지원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면 기동타격태가 도착할 것입니다.”

“아니오. 걱정할 것 없소.”

권총수는 마툭이 끌고 온 피아트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경비병이 급하게 초소 벽에 걸린 전화기로 권총수의 외출을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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