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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68화 (168/651)

제168화: 부전이승(不戰而勝)

헬기는 천천히 허공을 선회하더니 포도 운반 트럭들이 오가는 비포장 도로에 내려앉았다.

문이 열리고 권총수와 오민철이 내리자 헬기는 다시 허공으로 솟구쳐 사라졌다.

두 사람은 길가에 시동을 건 채 기다리고 있던 ‘부쉬매스터 PMV(영국 보병 전투차량)로 다가갔다.

낯익은 사내가 씨익 웃는다.

모리스였다.

“잘 다녀왔나?”

권총수는 모리스의 인사에 빙긋 웃으며 악수를 했다.

“옷!”

대기하고 있던 호간이 권총수에게 수목지형 패턴의 MTP군복 한 벌을 주었다.

권총수는 한국에서부터 입고 왔던 옷을 그 자리에서 벗어버리고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오우!”

지켜보던 모리스와 호간이 놀란다.

백년의 내공으로 단련된 건장한 근육질 체구에 탄성을 지른 것이다.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군복으로 환복하고 난 뒤 PMV에 올랐다.

승무원 1명과 보병 9명을 태우고 시속 100킬로 이상을 달리는 PMV가 포도밭을 출발했다.

뒷좌석에는 모리스 호간, 그리고 오민철과 권총수가 앉았는데 가운데 작전지도를 펼쳐 놓고 있었다.

지도에는 아브하를 중심으로 붉은 원이 그려져 있고 동서북 방향에서 검은 색 화살표들이 있었다.

붉은 동그라미는 반군들이 장악한 아브하이고, 화살표는 사우디 정규군이 공격하는 모습이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권총수가 모리스를 보았다.

모리스가 빙긋 웃었다.

“골 아파. 시민들을 인질로 잡으려 하고 있어.”

권총수는 움찔했다.

순간적으로 이라크 모술이 떠오른 것이다.

코너에 몰린 IS는 모술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미군과 외인부대의 공격에 대응했다.

물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어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불가피할 경우 일지라도 군인이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면 비난을 받고 때로는 군법회의에 회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용병 입장은 전혀 다르다.

저항군이 아닌 민간인을 쏘면 백퍼센트 사법처리를 피하지 못한다.

물론 회사경영자 역시 법정에 서며 민간인 살상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용병들이 적지 않다.

용병의 살인은 기업이 이익을 위해 민간인을 죽이는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30여분 달리던 PMV가 멈췄다.

검문소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PMV는 다시 움직였고 5분여가 흐르자 완전히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내리자 콘크리트로 된 2층 건물이 있고 오른쪽으로 ‘작전상황실’이라고 쓰인 팻말이 있다.

화살표를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전투기를 주기해 놓은 반원 형태(이글루)의 벙커가 보였고 입구에 군인 둘이 M4를 들고 서 있었다.

“캡틴!”

20미터는 될 것 같은 커다란 대추야자나무 숲속에서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고 있는 KAS용병들이다.

에반의 말에 의하면 현재 이곳 아브하에 모인 용병들은 일백여명 가까이 된다.

권총수가 이끄는 리야드 팀과 쿠데타로 인해 지방에서 올라온 병력, 그리고 인근 이라크와 레바논 근무자들이 주축이 된 해외 팀이다.

해외 팀은 남쪽에서 사우디특전여단과 합동작전을 펴고 있다.

권총수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고 곧장 벙커로 들어갔다.

벙커에는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무전을 응대하는 통신병들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울린다.

홍해와 예멘의 국경을 커버하는 제 6사단장 알하얌 소장이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시오.”

탁!

둘은 손을 맞잡고 곧장 탁자에 앉았다.

“시작하지!”

새로 임명된 사단 작전참모인 중령 샤하브가 벽에 걸린 커다란 작전지도를 놓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차분한 어조로 권총수를 보며 병력과 장비 상황, 작전부대 지휘관들의 성향까지 말했다.

권총수는 샤하브의 설명을 듣기만 할 뿐 일체 질문을 하지 않았다.

10여분이 넘도록 침묵하는 권총수가 신경 쓰인 듯 알하얌 소장이 흘긋 바라보았다.

“이상입니다.”

샤하브의 전황(戰況) 브리핑이 끝났다.

결론은 한 마디로 아직 반군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헬기와 전투기를 출격시키려고 했지만 국방부에서 공중 공격은 절대 안 된다는 명령이 내려왔다.

이제 막 들어선 새 정부인데 반군을 진압한다는 목표아래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기라도 하면 국제 여론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이쪽의 약점을 반군들은 적절히 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전쟁에서 항공기를 이용한 공격이 없다는 전제가 깔리면 굉장히 어려운 전투가 된다.

적은 머리 위를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지상병력에만 집중하면 된다.

“으음!”

이런 전쟁은 난생처음이다.

언제 적의 전투기가 날아와 한바탕 쏟아놓을지 모른다는 위기와 불안감은 모든 병사들에게 큰 공포로 작용한다.

그런데 하늘이 깨끗하게 되면 마치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으로 무자비하게 이쪽에 맞설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이쪽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가능성이 컸다.

충분한 장비를 활용하지 못한 전투이니 당연히 반군들 보다 불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전참모님!”

권총수는 작전참모 샤하브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으로 간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 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반군을 궤멸시키는데 말입니다?”

샤하브는 이마를 찌푸렸다.

잠시 시선을 내려 깔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글쎄,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전투기를 이용한 폭격이 불가한 작전이기 때문입니까?”

“한국에 장기라는 게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장기 얘기에 권총수 눈이 커졌다.

장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이가 유병칠이다.

둘은 유난히 장기를 자주 두었는데 단 한번도 유병칠을 이기지 못했다.

“있죠.”

“그곳에서 가장 중요한 화력이 무엇입니까?”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차(車)와 포(砲)입니다.”

“두 개 중 한 개를 뺀 다면 상대를 이길 확률은 어느 정도 되는지요?”

“맞수라면 지겠다는 뜻이고, 한 수 아래 또는 두 수 아래 사람과 둘 때 차 포 중 한 개를 떼죠.”

“우린 그보다 더합니다. 차는 물론이고 포도 한 개만 갖고 반군과 맞서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화력은 압도적이지만 전투기 공격은 물론 포병의 포격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어이없는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죠.”

권총수는 꽤 적절한 비유라고 보았다.

압도적인 화력을 갖고서도 그걸 제대로 써먹을 수 없는 매우 제한된 장비만 갖고 싸워야 한다.

권총수는 이마를 찌푸렸다.

한동안 작전 지도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전략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브하 시내를 완전 봉쇄하여 저들에게 어떤 탄약이나 보급품도 지원되지 않도록 만드는 장기전이죠.”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방법이란 말이군?”

“하지만 저들이 시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먹고 자는 것에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굶어죽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들어오는 곡물차량까지 막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시민들도 같이 죽겠죠. 두 번째는 핀셋 작전입니다.”

“핀셋작전이라면?”

알하얌 소장의 눈이 빛난다.

“적의 항복을 받아 낼 수 있는 만큼의 무게있는 적장을 사살하거나 체포하는 것입니다. 특정인물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죠.”

알하얌의 빛나던 눈이 잠긴다.

핀셋으로 콕 집어내듯 정해진 표적을 잡아내는 전략이나 전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지루한 전쟁이 끝을 보이지 않을 때, 양쪽의 승부가 팽팽하여 강한 타격을 주고자 할 때 시도한다.

적의 중심 화력이나 지휘관을 노리는 두 가지 작전으로 전개되는데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가 아니면 감히 꿈도 꿀 수 없다.

알하얌의 눈이 다시 생기를 보인다.

KAS용병들이 하나 같이 SAS출신들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이었다.

‘Who Dares Wins(과감한 자가 승리한다)’

소령 때 영국 SAS로 위탁 교육을 받기위해 떠난 적이 있었다.

부대 정문을 들어서는데 부대마크 아래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쓰여 있던 글씨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 권총수가 말하는 핀셋작전에 가장 특화된 사내들 아닌가.

“마지막 세 번째는 뭐요?”

“기다리는 것이죠.”

“뭘 기다린단 말입니까?”

작전참모 샤하브가 눈을 빛냈다.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휴전이 길어지고 있다.

금방이라도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듯한 전장에 갑자기 찾아오는 평화에 양쪽 모두 궁금해 하면서도 더욱 긴장했다.

반군은 반군대로, 정부군은 정부군대로 숨 막히는 침묵의 대결을 이어갔다.

아브하의 공기는 달아올랐다.

폭풍전야.

거센 바람일수록 찾아오는 고요는 길고 무겁다.

양쪽의 첩보전은 필사적이다.

특히 적들은 민간인에게 군복을 입혀 가짜로 부대이동을 전개하기도 했고, 빈총을 주고 이쪽 경계초소를 공격하도록 했다.

다행히 경계근무자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사격을 하지 않았는데 하마터면 엄청난 유혈사태로 번질 뻔했다.

치열한 지모싸움은 계속되었다.

헌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권총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어떤 계획이 있어 이렇게 시간을 끄는지 최소한 팀원들에게는 귀띔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민철은 알고 있지?”

가까운 두 사람이니 가르쳐 줬을 것이라고 생각한 오해 가득한 질문이었다.

“너희들은 캡틴을 그렇게 겪어 보고서도 모르냐? 걔가 공 사 구분도 못할 친구냐고? 한심한.”

다른 팀원들의 오해는 이해한다.

하지만 외인부대에서부터 같이 손 발을 맞춰온 팀원들의 의심에 오민철은 버럭 했다.

“하긴!”

나카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권총수는 자신들 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결코 분별력 없는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지휘관은 최대한 작전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외인부대의 기본 수칙이었다.

일찍 발설할수록 적에게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름이 흘렀다

차라리 죽든 살든 한바탕 붙어 버리자고 아우성들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보름동안 초 긴장상태에서 보낸다는 건 그야말로 피가 바짝바짝 마를 일이었다.

“음!”

전 22보병여단장이었던 자페르 준장은 아카시아나무 아래 서 있었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은 아브하 시내에 있는 평범한 단독주택인데 이곳을 선택한 것은 여느집과 달리 지하실이 잘 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실은 공중공격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매우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투기 공격은 없겠지만 최악의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딸칵!

담배를 물고 뜨겁게 올라오는 태양을 바라보며 연기를 내 뿜는다.

열린 대문으로 일반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고 차에서 일반인 복장을 한 콧수염의 사내가 내렸다.

얼마 전까지 6사단 작전참모를 지냈던 사이드 중령이다.

“어떤가?”

사이드 중령은 모든 채널을 동원해 6사단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아직도 별 뚜렷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또 다시 도요타 지프 한 대가 들어오고 머리가 벗겨진 일반인이 내렸다.

전 6사단 102연대장이었단 알말루드 대령이다.

그 역시도 별다른 소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병력 중 일부를 일반인으로 위장하여 적정탐지를 하고 있지만 그들도 주목할 만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도무지 무슨 속셈인지.”

아브하란 도시를 배수의 진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먼저 공격을 할 수는 없다.

외부에서 호응하는 반군이 발생하지 않는 한 지금은 철저히 지키는데 집중해야 한다.

적이 함부로 전투기를 띄우지 못한 것도 시민들을 인질로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갇혀 지낼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수단을 이용해 과거 군 동료였거나 선후배들에게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통신 감청이 되고 있고 자신들 연락을 받은 군인들이 숙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으음!”

이 침묵이 두렵다.

도무지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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