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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67화 (167/651)

제167화: 봉황(2)

사용하는 총이 갖고 있는 특유의 비린내.

화약 냄새다.

하지만 주위에 관광객들이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 둘, 셋, 넷, 선미에 한 명까지 모두 다섯’

사내들은 정장에 다운 점퍼를 걸쳤다.

오른쪽 선미에서 얘길 나누던 한 사내가 천천히 뱃전으로 다가왔다. 사내는 손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빈손이다.

파팟!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왼쪽 뱃머리 쪽에서도 한 명이 걸어왔는데 역시 빈손이다.

칼도 총도 없다.

권총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양쪽에서 벼락같이 덮치면서 자신을 강물로 빠뜨려 버릴 계산이 분명했다.

영하의 날씨에 강물에 빠진다는 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갈 듯 다가온 좌우 사내가 벼락처럼 달려든다.

확!

좌우에서 권총수를 잡아 단번에 한강물로 던지려는 것이었다.

스윽!

권총수는 뒤로 한걸음 물러 빠졌고 두 사내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뱃전에 부딪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재빨리 돌아섰다.

슈슉!

빳빳하게 선 양손이 돌아선 두 사내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푸우욱!

소림이 자랑하는 연환금룡수(蓮環金龍手)를 찌르기(刺法)수법으로 변형한 것이다.

두 사내는 짧은 신음을 흘리며 한강물로 풍덩 빠졌다.

빙글!

벼락처럼 오른쪽으로 돌아선 권총수는 우장을 뻗었다.

권총을 뽑으려는 선미의 사내를 향해 무형의 경기가 뻗어나가 강하게 후려쳤다.

뻐억!

사내는 가슴에 일장을 맞고 강물로 날아가 버렸다.

푸슉! 푸슉!

총은 마지막 수단이다.

최후의 상황에 처할 때만 사용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가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다.

사내는 권총을 쏘며 달려왔다.

부우웅!

권총수 몸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총을 쏘며 달려든 사내의 얼굴을 구둣발로 찍었다.

퍽!

소림의 나한단금각(羅漢斷金脚)이다.

얼굴에 정면으로 구둣발에 찍힌 사내는 뒤로 벌렁 나동그라졌다.

땅으로 내려선 권총수는 일어나는 사내의 면상을 재차 찍었다.

빡!

사내의 머리가 유람선의 딱딱한 바닥에 축 늘어졌다.

추위를 피해 선실에 있던 승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권총수는 선미에 서 있는 사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대통령께서 날 죽이라고 한 모양이군요?”

사내는 주춤 한 걸음 물러났다가 싸울 자세를 갖추었다.

슈욱!

그러더니 오른 주먹을 뻗었다.

권총수도 피하지 않고 오른 주먹을 뻗었다.

빠아악!

주먹은 사내가 빨랐지만 때린 건 권총수였다.

사내는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우욱!

뻐어억!

웅크린 사내의 얼굴을 축구하듯 힘차게 걷어찼다.

사내는 벌러덩 뒤로 나자빠졌는데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해보자는 거요? 싸움은 피하는 성미가 아니어서 말이오.”

상대는 윤태섭이었다.

“직원들은 어찌됐는가?”

“한 명은 살아 있는 것 같고 나머지는 모두 죽은 것 같소.”

권총수는 꿈틀거리는 선미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죽어?”

윤태섭은 금방이라도 전화기 밖으로 뛰쳐나올 듯 놀랐다.

“전장에 군인을 보내놓고 살아 돌아오길 바랐습니까?”

권총수가 낮게 으르렁 거렸다.

“권총수씨 내말 좀 들어보시오. 진정하시고.”

툭!

권총수는 전화를 끊었다.

마낙춘은 커피를 놓고 혼자 앉아 있었다.

카페의 손님은 자기 혼자뿐이다.

손님이 없자 카페 주인은 일찍 문을 닫으려는 듯 마낙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삐이걱!

문 열리는 소리에 마낙춘의 고개가 들려졌다.

권총수였다.

마낙춘은 긴장했다.

갑작스럽게 보자고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그런 눈으로 볼 건 없소.”

권총수가 USB를 내민다.

“그 안에 권철태를 끌어내릴 수 있는 자료가 들어있소.”

권총수는 화가 나있다.

자신의 무릎에 칼을 박고 젓가락을 검처럼 휘둘러 부상을 입혔을 때도 지금처럼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필시 권철태와 거친 충돌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하긴 대통령 자리가 어떤 곳인데 쉽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겠는가.

인정하는 순간 도덕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탄핵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사장님도 각오를 다지셔야 할 겁니다.”

마낙춘의 눈자위가 떨렸다.

각오를 다져야 한다는 건 USB속에 권철태와 윤태섭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자신의 범죄도 세상에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였다.

쭈욱!

식은 커피를 마신다.

30년 전 사건이니 공소시효 만료로 법적 처벌은 피한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가 되면 잘나가는 참치 식당은 접어야 하고 주위 지인들은 살인자인 자신을 예전처럼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권철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막을 내린다.

권총수가 말하는 의미였다.

“음!”

마낙춘은 눈을 감았다.

결단의 시간이 왔고 이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양심선언을 하느냐, 아니면 모든 걸 계속 감추고 살아가느냐.

양심선언을 하면 지금의 모든 것은 빼앗길 것이다.

어느 누가 살인자의 가게에 와서 식사를 할 것인가.

어떤 친구가 자신을 부드럽게 맞이해 줄 것인가.

그건 또 하나의 도덕적 사형선고다.

내가 어떻게 쌓아 올렸는데 그럴 수는 없다고 하면 권총수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권총수는 자신을 여러 형태로 생매장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고, 능력을 지녔다.

지이잉!

마낙춘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보더니 눈이 커졌다.

“윤태섭 민정수석입니다.”

“받아 보세요.”

권총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여보세요. 예.”

한마디 대답을 하더니 재빨리 핸드폰을 막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권총수씨와 연락 되느냐고 묻습니다.”

“된다고 하시오.”

“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드리죠.”

전화를 끊은 마낙춘이 침을 삼켰는데 눈이 빛난다.

“당신을 급히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준비하고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대통령?”

“안되겠다 싶은 모양인데요.”

권총수는 손에 들고 있던 USB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터널을 빠져나온 차량들이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터널 진입 직전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있다.

작은 공터가 있고 근처 산동네를 다니는 마을버스가 야간 차고지로 사용하는 듯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어둠속 곳곳에 눈을 번득이며 사방을 살피는 경호원들 눈이 매섭다.

“미안하네.”

조그만 벤치에 권총수와 권철태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진심으로 사과하지.”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과 받고자 한 일이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어떤 남자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일 수 있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권력에 눈이 뒤집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눈이 뒤집히다 보니 여자의 목숨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건강 하십시오.”

권총수는 허리를 구부려 인사하고 걸어갔다.

자신을 태우고 왔던 마낙춘의 차에 올랐고 떠났다.

부우웅!

차는 북악터널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혼자 남은 권철태는 꼼짝하지 않았다.

이마를 약간 찌푸리고 있었는데 조금은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도대체!’

권총수는 청와대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대통령께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죽인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지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정말이라고 믿지 않았다.

아무리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살해된 어머니의 죽음에 가만있을 자식은 없다.

또한 권씨 가문은 돈이 많다.

분명히 계산을 갖고 접근했다고 확신했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권력에 눈이 뒤집히면 사람 목숨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에 미련 없이 돌아섰다.

“헛헛!”

허무하다.

어둡다는 것이 지금처럼 다행인 적은 없었다.

대낮이었다면 지금 자신의 낯빛은 붉다 못해 부끄러움으로 시뻘겋게 타올랐을 것이다.

자신의 진면목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권총수는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고 듣고 싶어 했을 뿐 어떤 계산이나 속셈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은 그게 아니었다.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권총수는 세상에는 당신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떠난 것이다.

“권총수라고 했던가.”

자신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권총수까지 끼어 셋을 나란히 세워본다.

“핫핫핫! 하하하하!”

경호원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렸다.

대통령이 저토록 실성한 듯 웃는 건 처음 본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대통령의 웃음소리는 처절했고 비참하며, 통곡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 * *

리야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입국장을 벗어나자마자 오민철과 에반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됐다는 것입니까?”

“가방 이리 줘.”

오민철이 권총수의 어깨에 매달린 가방을 자신이 들었다.

“커피 하지. 헬기 타려면 한 시간 반 정도 기다려야 하니까.”

세 사람은 청사안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오민철이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갔고 에반과 권총수는 마주 앉았다.

“도망친 알 살만의 측근 중 우리에게 체포되고 남은 마지막 한명 있잖나. 제22보병여단장 자페르 준장이 기어이 일을 저질렀네. 아브하에서 반란을 일으켰어. 지금 아브하 시내가 그의 손에 있네.”

촥!

에반은 지도 한 장을 폈다.

권총수는 홍해와 예멘의 국경 근처에 있는 아브하를 바라보았다.

“아브하의 치안이 그에게 넘어갔지.”

“병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연대 규모이네. 근처에 있는 6사단 병력으로 파악됐네.”

“어떻게 수도 리야드 근처 22보병여단장이 800킬로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사고를 칠 수가 있죠.”

“예멘과 국경을 놓고 대치중인 6사단장 알하얌의 작전참모 사이드가 들고 일어나 버린 거야. 우리 편이 안 되겠다 싶으면 과감히 제거해버려야 하는데 알하얌 장군이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이 실수였어. 그 사이 자페르와 연락이 되버린거지. 사이드 중령은 왕립육군사관학교 선배인 6사단 102연대장 알말루드까지 데리고 자페르 밑으로 들어가 버렸네.”

“혁명은 십 분이라고 했는데.”

권총수가 이마를 찡그렸다.

혁명은 십 분이라는 말은 미군의 공습으로 죽은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 카다피가 했던 말이다.

육군대위시절 카다피는 쿠데타를 준비할 때 주위 군인들에게 참여할 건지 말건지에 대한 선택의 시간을 십 분 이상 주지 않았다.

의견을 물어 십 분 안에 대답이 없으면 근처에 잠복시켜 놓은 군인들로 하여금 제거토록 했다.

“팀은 어디 있습니까?”

“이미 출발했지.”

그때 오민철이 커피를 가져왔다.

권총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는데 잔뜩 이마를 찡그렸다.

쿠데타는 가슴으로 하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오로지 계산과 이해만을 따져야 하는데 파흐드 왕세자는 지나치게 가슴의 정치를 하려들었다.

쿠데타는 치는게 우선되어야지 용서를 앞세우면 위험해진다.

이런 날을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만 반군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아브하 공항은 폐쇄됐다.

반군의 통제에 들어간 것이다.

공항은 물론 외부로 빠져나가는 모든 도로가 마비되어 누구도 들어가거나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외신은 아브하 사태를 신속하게 보도하면서 자칫 사우디아라비아가 내전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해발 고도 2,200미터에 위치한 아브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른 지역과 달리 연평균 17도로 매우 서늘한 지역이다.

많은 농산물이 생산되는데 그중에서 홍해에서 불어오는 적당한 해풍과 여름이면 30도를 전후한 햇빛에 이 지역 포도의 당도는 무려 25브릭스에 육박하여 굉장한 인기다.

헤자즈산 서쪽 기슭으로 푸른 포도밭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미 수확이 끝난 포도밭은 앙상했는데 초저녁 무렵 한 대의 헬기가 포도밭 상공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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