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봉황(1)
구기터널을 들어가기 직전에 작은 카페 하나가 있다.
이북 오도청 방향으로 올라갔다가 주택들이 몰려 있는 왼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 나왔다.
간판도 워낙 작고 소나무로 가려 있어서 단골이 아니면 카페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택시 한 대가 멈추고 권총수가 내렸다.
“햐아, 이런 곳에 카페가 있었네.”
‘007’
이란 작은 나무 간판이 걸려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내는 제법 넓었고 등산객으로 보이는 남녀 다섯 명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권총수는 창가에 앉아 있는 사내가 윤태섭이라는 걸 알고 다가갔다.
“실례 합니다.”
권총수가 자리에 앉자 윤태섭이 고개를 돌렸다.
“대통령을 만나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최소한의 인사치례 따위도 없이 그냥 밀고 들어온다.
“그냥 이런 저런.”
권총수는 웃음을 지었다.
윤태섭은 식은 커피를 한 번에 마셔 버렸다.
“좋습니다. 오늘 내로 시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전화 기다려 주십시오.”
윤태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날 밤 9시가 조금 못되어 승용차 한 대가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다.
조수석에서 내린 비서가 재빨리 뒷문을 열어 주었고 권총수가 내렸다.
권총수는 비서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올라 본관으로 들어갔는데 저만치 윤태섭이 서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오.”
윤태섭은 권총수를 2층으로 데려갔다.
쭈욱 뻗은 양탄자 깔린 복도를 걸어 봉황 문양이 새겨진 문 앞에서 멈췄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윤태섭이 20여초 정도 지나 다시 나왔다.
“들어오시죠.”
권총수는 윤태섭의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한 남자가 등을 돌린 채 캄캄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모셔왔습니다.”
남자가 돌아섰다.
텔레비전에 자주 나타나던 인물, 대통령이다.
권총수는 가볍게 목례를 했는데 대통령 권철태는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더니 의자를 권했다.
“앉으세요.”
권총수는 의자에 앉았고 대통령은 오른쪽 맨 상석에 자리를 잡는다.
“오설지 아들이라고?”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왜 웃는가?”
“그냥 웃음이 나옵니다.”
“담배 피우나?”
그러면서 서랍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는데 레종블루다.
권총수는 권하는 담배를 사양했다.
“저에게도 담배 있습니다.”
권총수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말보로 레드를 꺼내 한 개비 물었다.
딸칵!
권총수의 막힘없는 행동에 권철태의 이마가 살짝 찡그러졌다.
자신이 애연가이기 때문에 청와대 방문자들에게 자주 담배를 권한다.
권한다고 피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대통령 앞이라는 분위기에 짓눌려 거의가 사양하는데 권총수는 망설임이 없다.
“날 왜 만나려는가? 유전자 검사라도 하여 내 아들임을 증명 받아 보겠다는 건가?”
권철태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는데 차갑다.
대통령 권철태 집안은 재벌가다.
바로 위 형님과 동생이 국내 재벌기업 서열 20위 안에 들어가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돈을 노리는 것이냐는 질문이다.
“밑에서 보고서가 올라왔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봤네. 용병이라더군?”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올해 내 연봉이 백만 달러가 넘는데 얼마 전 보너스로 또 다시 백만 달러가 입금됐더군요. 어느 회사에서는 저에게 백지 수표까지 내밀었습니다”
흠칫!
권철태가 놀랐다.
권총수가 자신의 수입을 말하는 건 한 가지 이유인데 날 당신들과 같은 부류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도 돈은 있다.
“그럼 왜 만나려고 했나?”
“오설지씨는 왜 죽였습니까?”
권철태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오해 마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여자에게 어떤 모정을 느끼는 건 절대 아니니까.”
복수 따위는 절대 아니라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눈싸움을 하듯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일어나는가?”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화악!
권철태의 눈이 커졌다.
사우디 사태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보고를 받았다.
“자네?”
“대통령님 머릿속에는 온통 28조라는 돈 밖에 없겠죠.”
권철태의 표정이 굳으며 관자놀이가 꿈틀 하는 것이 어금니를 문 모양이다.
대놓고 모욕이다.
모든 걸 정치적으로만 해결하려는 당신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기대한 내가 바보인 것 같다는 의미였다.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기업을 먼저 생각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따라 왜 이렇게 28조란 말이 창피하고 낯이 뜨겁게 들리는가.
천민자본주의라며 한국 부자들의 책임없는 행동을 비아냥대던 어느 외신기자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에게서 그런 천박한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
“왜 만나려고 했는지 물었습니까? 대통령께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죽인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지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돌아간다는 건 날 충분이 봤다는 뜻인가?”
“예!”
권총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그래 자네 눈에 난 어떤 사람인가?”
권총수는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는데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문을 열고 나갔다.
탁!
문이 닫히고 권총수는 사라졌다.
“음!”
권철태는 신음을 흘렸다.
권총수는 더 말할 것 없다는 듯 문을 나섰다. 평가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음!”
목적을 위해 수시로 생각을 바꾸고 노선을 틀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방향전환을 하다보니 팔색조라는 별명을 얻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자리라는 것이 기묘했다.
시류에 영합하고 변절자라는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절대 오를 수 없는 곳이다.
정치는 결코 꿋꿋하게 자신의 이념과 노선을 견지하며 나아가면 병신 된다.
후후훅!
갑자기 불덩이 하나가 생겨났다.
온몸을 태울 듯 뜨겁게 솟구치는 불덩이는 분노였다.
똥도 밟고, 일부러 하수구에 빠지기도 했으며, 토착왜구라는 모욕적인 대중의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오늘처럼 면전에서 평가할 가치조차 없다는 수모는 정치 인생 40년 사상 처음이었다.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다.
여긴 청와대이다.
대통령을 경호하다 생긴 총기사고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있고, 그의 입이 언제 열릴 줄 모른다.
외국과 달리 대한민국은 청와대에서 물러났다고 하여 정치에서 손을 떼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막후에서 조종을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통령이라는 직함 앞에 전(前)자가 붙긴 하지만 여전히 청와대에서 파견된 경호원들이 에워싸며 문턱이 닳도록 현역 정치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한국 대통령의 임기를 10년이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5년, 퇴임해서 5년간은 막강하다는 뜻이었다.
현직 대통령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탁!
인터폰을 눌렀다.
“날세. 아주 위험한 아이야.”
“대통령님.”
상대의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끌려가는 화투판에서는 절대 돈을 따지 못하네.”
그의 입이 언제까지 닫혀 있는 다고 믿을 수 없다.
40년 정치를 하며 느낀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인간의 입은 반드시 열린 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입을 믿는 순간 정치인생은 끝난다.
정치인에게는 적과 아군 말고는 없다.
배에서 내리게 하거나 아니면 같이 타고 가는 두 부류중 하나만이 존재 하는 것이다.
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군도 아닌 애매모호한 사람은 무조건 적이다.
적을 보는 눈을 강화시킬수록 정치 생명은 안전해진다.
한국 정부뿐만이 아니라 사우디에 진출해 있는 나라들 중 상당수 국가들이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유일하게 한국만 퇴출을 당했다면 현 정부의 무능이 증명되는 것이지만 프랑스, 영국 같은 강대국들도 새로 들어선 사우디 정부와 적지 않은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자국 기업들이 사우디에서 발을 빼야 했다.
‘영국과 프랑스 기업들도 아무소리 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판이다’
한국 정부의 외교가 무능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그 논리는 통했다.
물론 언론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사우디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에반이 권총수에게 언제 올 것이냐고 묻는다.
“무슨 일입니까?”
“으흠!”
에반은 고민스럽다는 듯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 어떤 특별한 사건이 발생한 건 없네. 단지 자네가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군.”
그 산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것과 호랑이가 잠시 다른 산에 볼일을 보러 갔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호랑이 다음으로 강력한 맹수들에게는 그 산을 빼앗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는 것이다.
“이곳 일도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스톤스 생각일 것이다.
사우디 지사장이라고 해도 에반이 독단적으로 자신에게 오라가라 하는 전화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
스톤스가 언제 오느냐고 물었을 것이고, 에반이 알아보겠다면 전화를 한 것이다.
스톤스가 자신의 동선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건 그 만큼 파흐드 왕세자로부터 받은 댓가가 크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50억 달러 설이 나돌고, 런던증시에서는 100억 달러를 보장했다는 말도 있었다.
사우디에 다시 어떤 사태가 발생하면 그 많은 돈은 휴지조각이 된다.
아람코의 주식이나, 석유 채굴권 등의 유가증권으로 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파흐드 왕세자의 권력이 단단해지는 것인데 그 곁에는 반드시 권총수가 있어야 했다.
“리야드, 한 사람입니다.”
내일 오후 비행기로 출국 시간을 잡았다.
권총수는 한강 유람선 위에 있었다.
겨울이지만 강이 얼지 않는 관계로 유람선은 계속 운행되고 있었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승객은 30여명이 채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대부분 배 안에 있었으며 밖에 있는 사람은 권총수와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전부였다.
뱃전에 우두커니 서서 강가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불현듯 강만 클 뿐 주변 경치는 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또 봐도 시멘트로 만든 아파트와 건물뿐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고수부지에서 공을 찼는데 마땅히 쉴 만한 그늘 하나가 없었다.
그때 든 생각이 고수부지를 처음 만들었을 때 조림을 잘했다면 굉장히 볼만 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총수는 구경하는 듯 주위를 휘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제발 오지마라’
시선은 구경을 하고 있었지만 몸의 다른 감각들은 주위 공기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표를 끊고 배에 오르는 시간부터 살기를 감지했다.
한강 유람선에서 살기가 꿈틀댄다는 건 청와대 쪽에서 사람을 보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없다.
피식!
입 꼬리를 말리며 실소를 지었다.
‘이런걸 보고 자승자박이라고 한다던가.’
복수를 하려고 권철태를 만난 건 아니다.
자신이 복수를 할 이유도 없고, 더욱 중요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어떤 감정이 있어야 원한 운운할 텐데 전혀 티끌만한 감정도 없다.
살인자가 한 나라를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거창한 대의와 명분 따위에 집착한 것도 아니다.
그냥 한 번 보고 싶었다.
야망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는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영화나 소설 속 인물은 전부 가공되었다.
가공되지 않은 사람의 실제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분명한 생각을 지닌, 그럭저럭 괜찮은 남자일 줄 알았다.
사기꾼과 사업가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했는데 너무 평범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얼마나 멍청했으면 그런 사람에게 하나 뿐인 목숨을 빼앗긴 오설지가 측은했다.
‘오지 말라니까’
살기가 점점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