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탈출(1)
지금도 기억이 훤하다.
민국당 정책위의장 선거에 한참 공을 들이고 있을 때였다.
비로소 여의도에 들어와 본격적인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정책위의장은 신임 대표가 지명하기도 하지만 당시 민국당은 현역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되었다.
그런 만큼 정책위의장에 올라서면 당내 영향력도 커지고 이른바 권철태계라는 계파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정책위의장, 그리고 당대표가 꿈이다.
이어 그 기세를 몰아 북악산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구중궁궐에 똬리를 트는 것이다.
그렇게 권철태의 정치적 야심이 용암처럼 끓어오를 때 오설지의 임신 소식은 날벼락이었다.
몇 번 낙태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성탄 이브에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서울은 밤새 시끄러웠다.
그리고 성탄절 아침에 한 가지 충격적인 소식들 듣게 된다.
‘배우 오설지 교통사고로 사망’
성별과 노소를 불문하고 뜨거운 지지와 인기를 얻고 있는 여배우의 사망소식은 2,000년 전 사람을 위해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아기 예수의 탄생소식을 묻어 버렸다.
권철태는 연희동 자신의 사랑채에서 인사차 찾아온 계파 의원들과 녹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년 5월에 당 대표 선거가 있다.
대표에 오르기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의장님!”
진동하는 핸드폰을 받았는데 윤태섭이었다.
“현장에서 즉사 했음이 확인 됐습니다.”
권철태는 뭔가를 물어보려다 주위 눈들을 의식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
“아이는 어찌됐나? 뱃속의 아이 말이야?”
“그렇잖아도 부검의를 만났는데 임신의 징후는 없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 내 두 눈으로 불러온 배를 분명히 봤는데, 설마?”
“왜 그러십니까?”
“설마 아이를 낳았단 말인가. 가만 출산 날짜가 1월이라고 했는데 조산을? 그 아이 고향이 벌교라고 했지.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절대 안돼.”
“예 의장님!”
권철태는 전화를 끊고 정원의 나뭇가지에 하얗게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 * *
권총수는 오랜만에 보육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항상 웃으며 자신을 맞이해주던 원장수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작년에 선종했다고 했다.
권총수는 한쪽 벽에 걸린 원장수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60환갑 때 찍은 사진이다.
물론 그 자리에 자신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해 나가기 직전이었다.
“총수야.”
원장수녀가 세상에 첫발을 내 딛는 권총수를 향해 웃었다.
“예수님께서 널 항상 지켜주실 것이다. 세상은 참고 또 참고, 알겠니?”
권총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대답하기가 싫었다.
권총수는 보육원을 나와 홍제천 길을 따라 걸었다.
윤태섭은 오늘까지 대통령과 면담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개천을 따라 올라가던 권총수는 멀리 북한산 아래 우뚝 솟은 흰색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블루 호텔이다.
보육원 시절 블루 호텔에서 근무하던 아는 형이 있었다.
그는 소매치기 전과 3범이었는데 마음을 잡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위해 숙박업계에 뛰어 든 것이다.
고등학생인 자신에게 담배도 가르쳐 주고, 청소년에게 팔수 없는 담배를 대신 사다 주기도 했다.
“왜 벌써 오냐?”
이미 결혼하여 중학생 아들까지 둔 지배인 민기철이 다가왔다.
“작년에 돌아가셨다는데.”
“원장 수녀님이 돌아가셨다고?”
민기철은 보육원 출신은 아니지만 가톨릭 영세를 받았다.
성당을 다녀본 사람들은 원장 수녀의 됨됨이를 알고 있다.
민기철은 안타까운 표정을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냉담을 하고 있긴 하지만 자상하고 부드러운 분이었다.
권총수는 키를 받아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묵고 있는 객실은 맨 꼭대기 층인 7층이다.
쨍!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권총수는 복도를 따라 707호실을 향해 걸어갔다.
멈칫!
객실 문으로 다가가던 권총수는 멈칫했다.
권총수는 객실 문 위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없다.
방을 나가기 전 문 위쪽 틈에 끼워 놓은 자주색 실 조각이 보이지 않았다.
객실 창문의 커텐에서 한 올 뽑아 나가면서 문설주와 문 사이에 끼워 놓은 것이다.
바닥을 내려다보던 권총수는 허리를 구부렸다.
끼워 놓았던 자주색 커텐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부비트랩이다.
부비트랩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설치된다.
사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인계철선으로 설치하는 건 가장 초보적이고 단순한 수법이다.
‘부비트랩은 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스니아 사태에서 부비트랩에 오른쪽 팔을 잃은 네이비 씰7팀 소대장 닉 대위가 한 말이었다.
그는 잠시 볼일이 있어 외박을 나왔다.
미국에 있는 아내 생일 선물을 보내기 위해 우체국을 들렸는데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손잡이가 폭발해 버렸다.
그 우체국 직원 중 한 명이 유고 연방의 지원을 받은 세르비아계 사람이었고 가족들과 친구들 생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선물을 보내는 닉 대위의 패턴을 읽은 뒤 손잡이에 압력식 부비트랩을 설치 한 것이다.
닉 대위처럼 요주의 인물은 전역 후에도 죽음이 따라다닌다는 말을 남겼는데 지금 권총수가 그러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오거나 낯선 곳을 갈 때면 신경이 서릿발처럼 곤두선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안전한 곳이라고 해도 자신의 위치는 결코 방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텔레반과 IS가 자신의 목에 내건 상금은 아직도 유효하고, 베네수엘라 쿠데타에 이어 이번 사우디 사태 역시 자신이 주도해 성공시킨 작전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적은 전 지구적으로 깔려있다.
한국의 무슬림도 급속하게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는데 그들 중 철저한 율법준수, 반(反)외세, 특히 반기독교, 반서양 문명을 외치는 위험주의자들이 있지 말란 법은 없었다.
잠시 실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고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민기철이 전화를 받는다.
“형, 혹시 내방 청소했어. 청소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 말라는 청소를 우리가 왜 하냐. 청소하지 말라고 하면 우린 더 좋은데.”
“진짜야.”
“왜 그러는데?”
권총수는 전화를 끊었다.
복도 창문이 열렸고 바람이 들어왔다.
객실 문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바람에 날아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객실에는 아무도 없다.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오감(五感)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느릿하게 객실 곳곳을 훑었는데 모두 아침에 자신이 놓고 간 그대로 제자리에 있었다.
그제야 권총수는 긴장을 풀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누구도 건들지 않았는데 자신만의 표식이 가끔은 사라지거나 훼손 될 때가 있었다.
그건 자연이 만들어낸 현상이므로 어떻게 해볼 도리는 없다.
따릉!
객실 전화가 울렸다.
슥!
권총수는 민기철이겠다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엄청난 굉음이 객실을 울렸고 권총수의 몸은 파편이 되어 날아갔다.
창문은 산산조각이 되었고 객실의 침대와 탁자, 56인치 텔레비전과 냉장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구석에 놓아둔 대형 달항아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화르륵!
천장의 전등이 터지면서 발생한 불길이 객실 전체로 옮겨 붙었다.
와당탕!
문을 열고 들어선 민기철과 호텔 직원들이 소스라쳤다.
“총수야. 총수야.”
민기철은 시뻘겋게 타오른 불길을 보며 외쳤다.
“뭣들 해. 소화기로 불 꺼.”
호텔 직원들이 복도에 비치된 소화기를 가지고 달려와 진화에 나섰지만 워낙 강한 불길은 수그러들 줄 몰랐다.
멀리서 소방차가 달려오는지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객실 손님들이 복도를 내달렸다.
“총수야!”
민기철은 소리만 지를 뿐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119구급차 한 대가 호텔을 빠져나가 맹렬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라지는 구급차를 바라보며 민기철은 중얼거렸다.
“죽지 마라. 임마!”
권총수는 시커먼 그을음을 뒤집어 쓴 채 목욕탕에서 발견되었다.
권총수를 옮기던 구급대 요원의 말을 빌리면 맥도 있고 심장도 뛴다고 했다.
두 가지가 모두 움직인다고 하여 사는 건 아니다.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있었다면 매우 위험한 몸 상태일 가능성이 높았다.
“지배인 민기철 씨 되십니까?”
검정색 다운 점퍼를 걸친 서른 후반 가량의 사내가 물었다.
누구냐는 듯 위아래를 훑어보자 사내가 말했다.
“종로경찰서 소문석 경장입니다.”
“아, 예!”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폭발 당시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냥 터졌어요.”
민기철은 호텔 옆 벤치에 풀썩 주저앉았다.
“가스폭발일리는 없고.”
민기철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중얼거렸다.
‘예수님, 씨발 우리 총수 꼭 살려주십시오’
몇 년 만인지 모른다.
민기철은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윤태섭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주로 듣기만 할 뿐 입은 열지 않았다.
거의가 콧소리로 응응 하는 정도였는데 의자에 앉았다가 실내를 거닐기를 반복하는 것이 조금은 초조해 보였다.
“확인해 보고 다시 전화해.”
윤태섭은 핸드폰을 내렸다.
“권총수.”
의자에 앉으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정말 어이가 없는 놈이군. 감히 날 뭘로 보고.”
그때 책상 위 전화기가 울렸다.
“민정수석실입니다.”
“외교부장관입니다. 대통령님 지금 어디 계시죠?”
“왜요?”
“윤수석 왜요라뇨. 장관이 대통령을 심심해서 찾겠어요.”
외교부장관이 버럭 짜증을 냈다.
“장관님.”
“대통령님 어디 계시냐구요? 지금 급해요. 사우디 정부에서 한국 기업들에게 철수 지시가 내려졌다구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 증말 오늘따라 윤수석 왜 이래요. 대통령님에게 당장 보고해야 한다니까요.”
“대통령님께서는 지금 대표님과 말씀중입니다.”
“청와대 내에 계신다는 얘기군요. 당장 제가 찾아뵙겠다고 전해 주세요.”
“지금은 곤란합니다.”
“지금 국내 정치 따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니까. 멍청한 친구야.”
외교부장관의 목소리가 송곳처럼 찔렀다.
한 대의 승용차가 청와대 정문에 멈췄다.
경비중이던 경찰들이 통과를 시켰고 승용차는 경내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반백의 단발머리를 한 외교부장관 박세경이었다.
청와대 비서관 한 명이 마중을 나왔다.
“장관님!”
“대통령님은요?”
“수석실에서 통제하고 계십니다.”
“한심한.”
차가운 욕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간 외교장관 앞에 윤태섭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어디계신가요?”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모르는 극비 회동입니다. 원래는 1시간이었는데 조금 길어지고 있습니다.”
손목시계를 본다.
“외교부장관이 급히 만나기를 청한다고 귀띔이라도 해주세요.”
“지금 정국이 어떤 상황인지 아시면서 이러십니까.”
여야는 개헌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문제는 개헌에는 의견일치를 이루었지만 방식에는 여야 모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24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8조 가까운 돈이 날아가게 생겼단 말입니다. 수석님.”
28조라는 말에 윤태섭이 안색이 변했다.
“우리 기업들이 애써 수주한 사우디 28조 공사가 날아간다니까요. 이래도 대통령에게 연락 할 수 없나요.”
“기다려 보시죠.”
걸어가는 윤태섭을 보며 외교부장관 박세경은 차갑게 중얼 거렸다.
“나라 경제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정권 재창출에만 눈이 먼 정치꾼들 같으니.”
박세경은 투덜거리며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다.
여름은 덥고 겨울도 따듯한걸 보면 기상 이변이 분명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파리 기후협약을 좀 더 강화하자고 했지만 미국부터 발을 빼 버렸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자신의 세대야 큰 일은 없겠지만 후대는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환경보호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인들 역시 환경법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윤태섭이다.
“대통령님께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네?”
전혀 예상 못한 반응이었기 때문에 박세경은 눈을 크게 떴다.
“곧 끝날 모양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죠.”
“진짜에요.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죠. 우리 돈 28조가 날아가게 생겼다고 했는데도?”
“중요한 얘긴가 봅니다.”
“제대로 전달하긴 한 거 맞아요?”
“장관님!”
“내가 직접 가겠어요.”
박세경이 걸어가려 하자 윤태섭이 막아섰다.
“어딜 가는 거요?"
윤태섭의 눈이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