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골목 암살자(3)
식당을 나오는데 채명천이 차영수가 강남경찰서장으로 부임했다고 말해 주었다.
차영수는 채명천과 한때 같이 일했던 경찰관이다.
차영수 근황을 말해 준건 마낙춘의 가게가 강남에 있기 때문에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도움을 받으라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윤태섭이 고분고분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채명천이 건네준 전화번호를 이용해 차영수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권총수의 설명에 차영수는 망설이지 않고 어떻게 도우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권총수는 병원 가까이 강력계 형사들을 대기시켜 달라고 했으며 지금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양필종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도망치는 것 말고는 지금으로서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
청와대 경호원들이 경찰을 사칭하고 민간인을 연행해 가려 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발칵 뒤집힐 것이다.
척척!
어느 새 눈치를 챈 듯 강력계 형사들 셋이 문 앞을 가로막아 버렸다.
양필종은 굳은 표정으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빙긋 웃는다.
“신분증 좀 봅시다.”
강력 3팀장 박범수가 양필종을 향해 말했다.
양필종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연락을 받은 윤태섭의 얼굴이 굳었다.
차라리 사색이라고 해도 좋았다.
자신이 보낸 청와대 경호원 셋이 경찰을 사칭하다 강남경찰서 강력팀에 체포된 것이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이라는 신분증을 보여주었으나 경찰은 물러나지 않고 셋을 전원 연행해 가버렸다.
차분해야 한다.
냉정해야 한다.
대통령의 꾀주머니로 불릴 만큼 순발력 좋고 빠져나갈 구멍을 잘 찾아내는 자신의 머리지만 오늘 따라 앞이 캄캄하다.
막아야 한다.
당장 언론부터 틀어막아야 한다.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신문사 편집국장과 통화를 시도했다.
“오오! 수석님께서 어쩐 일로.”
어디서 술이나 한 잔 하는지 거나한 목소리다.
‘싸가지 없는 자식.’
권력이 레임덕에 오면 가장 먼저 언론이 돌아서기 시작한다.
“부탁 하나 합시다.”
“뭡니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뭘까요. 우리 수석님이 전화를 주셨으니 당연히 명을 따라야지요.”
농담 반, 비아냥 반이다.
탁!
끊어 버렸다.
아무래도 사실을 알려주면 얼씨구나 하고 더 빨리 보도해 버릴 것 같았다.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고 액정에 조설일보 김우진이라는 이름이 찍혔다.
조금전 통화한 편집국장이다.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다.
“무슨 일이오?”
“왜 또 이러십니까? 말씀하십시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뭡니까?”
“아닙니다.”
전화를 다시 끊었다.
‘빌어먹을’
지금쯤 온 사방으로 전화를 걸어 청와대 발 무슨 사건 있는지 훑을 것이다.
다시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상대는 강남 경철서장이었다.
하지만 신호가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일부러 피하는 것일까?
만약 일부러 피한다면 무슨 이유에서일까.
청와대에서 한 번도 그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민국당 대표시절은 물론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차영수와 조금의 감정도 얽힐 일은 없다.
차영수라는 사람이 강남경찰서장이라는 것도 조금 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전화를 피하는 걸까.
여러번 걸었으니 스팸이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다시 핸드폰을 들고 평소 관계를 유지해온 언론사 간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확실히 전화를 받는 기자들의 태도가 옛날과 다르다.
불과 반 년 전만 해도 번호만 누르면 통화가 되었는데 지금은 거의 받지를 않았다.
새삼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떠올랐다.
‘호로새끼들’
윤태섭은 끓어오르는 화를 눌러 참으며 번호 하나를 눌렀다.
마지막 팻감이다.
“수석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경찰청장이다.
“청장님까지 전화를 안 받으면 어쩌나 했습니다.”
“무슨 얘기죠?”
윤태섭은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경찰청장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 하겠습니다.”
“고맙소!”
진심으로 우러난 인사였다.
그러나 다음 날 윤태섭은 소스라치고 말았다.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새벽 5시였다.
전화를 해온 사람은 당직비서관 서문술이었다.
“수석님 큰일 났습니다. 터졌습니다.”
“뭐가 터져요?”
“청와대 경호실 직원들이 권총으로 무장하고 경찰을 사칭했다는 기사입니다.”
“어디야? 어느 신문이냐고?”
“조설일보, 중간일보, 동양일보, 세상일보, 한민족 등 거의 빠지지 않고 전부 실렸습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윤태섭은 재빨리 자신의 서재로 달려가 컴퓨터를 켰다.
뇌이버 화면이 나오면서 각 언론사 조간신문 타이틀 기사들이 들어왔다.
‘청와대 경호실 기강 해이’
‘경찰관이 되고 싶은 경호원’
‘권력누수는 경호실에서’
‘경호실 경찰실.’
온갖 비아냥과 조롱이 담겼다.
단순한 비판과 지적을 위한 기사라기보다는 지는 권력을 사정없이 짓밟고 있었다.
다른 플랫폼도 빠지지 않고 경호실 직원의 경찰사칭 내용이 메인 기사로 올려져있다.
“으음!”
윤태섭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똑똑!
노크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잠옷 차림의 아내가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아까부터 계속 비서실장님 전화예요.”
“별일 아니야.”
전화를 건네받으며 문을 닫았다.
“예 실장님! 알겠습니다.”
전화통화는 간단했다.
당장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한마디 툭 던지며 끊었다.
곧장 양복을 입고 넥타이는 손에 거머쥔 채 집을 나섰다.
아내는 염려스런 시선으로 걸어가는 윤태섭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후우!”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온다.
정치인의 아내는 남편일이 잘되어도 한숨이고, 잘되지 못해도 한숨이다.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권력무상이 보였다.
태양이 서산으로 떨어지고 있다.
태양은 지는 것도 화려한데 어찌 인간의 뒷모습은 측은하다 못해 처절할까.
아내는 다시 긴 한숨을 쉬며 현관문을 닫았다.
권총수가 짜놓은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상대를 너무 간단히 봤다.
어떤 역습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계산하지 않았다.
자신을 상대로 공갈 협박하여 돈이나 몇 푼 뜯어내려는 전형적인 정치브로커 정도로 보았다.
정치인들처럼 흠결이 많은 부류도 없다.
벗기면 벗길수록 검은 그림자가 켜켜이 쌓여 있는 존재가 정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분명한 증거를 쥐고 협박하면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권총수 또한 그런 인물로 보았는데 그게 아니다.
“권총수가 누군지도 모른단 말인가?”
비서실장 김원계가 물었다.
“그게!”
“어허 이사람 자네답지 않게.”
치밀한 윤태섭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고 불이 환하게 켜진 도로도 함부로 달리지 않고 좌우를 살피는 조심스런 성격이다.
그런 그가 누군가 청와대 민정수석의 목에 칼을 겨누며 오는데 자세한 조사도 없이 대충 처리하려고 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아무리 간덩이가 부은 자들이 많은 세상이라고 해도 그렇지 청와대 민정수석을 상대로 이런 일을 꾸밀 정도면 단순한 놈이 아니라는 것쯤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맞는 말이다.
윤태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허점투성이며 자신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젠장!’
여기서 후회는 전혀 의미가 없다.
현 시점에서는 앞만 봐야 한다.
“제가 그를 만나보겠습니다.”
“그게 가장 좋을 것 같군.”
윤태섭은 강남경찰서장의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보며 전화를 걸었다.
어제 밤에는 그토록 걸어도 소식이 없던 인간이 지금은 두 번 신호가 떨어지자 받는다.
이놈도 한통속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며 입을 열었다.
권총수는 벽시계를 보았는데 7시30분이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차영수 강남경찰서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윤태섭 민정수석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태섭이 만나자고 한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해장국집에는 아침 조기축구를 마친 회원들 20여명이 시끌벅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기를 한 모양인 듯 한쪽은 심판이 엉터리였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매우 아름다운 심판이었다고 옹호했다.
권총수는 콩나물 해장국에 고춧가루를 듬뿍 뿌린 후 밥을 넣고 말았다.
후루룩!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해장국을 소리 내며 먹기 시작했다.
반면 맞은편의 윤태섭은 먹는 둥 마는 둥 깨지락거렸다.
밥알이 아니라 자갈 씹는 기분일 것이다.
윤태섭은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권총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원하는 것이 뭡니까? 돈입니까?”
권총수가 깍두기를 입 안 가득 밀어 넣으며 반문했다.
“대통령의 꾀주머니라던데?”
그만큼 영리하고 판세를 읽는 눈이 정확한 분께서 내가 돈이나 노리는 인간으로 보이느냐는 의미였다.
윤태섭 역시 권총수를 아무리 살펴봐도 돈에 목숨 거는 정치 브로커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 집 콩나물 해장국 맛있군요.”
정말로 맛있는지 쩝쩝 소리를 내며 배부르게 먹는다.
“조금 전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었는데 얘기하면 들어주겠습니까?”
“말해보세요.”
권총수는 어느 새 콩나물 해장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뚝배기 째 들고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비운 권총수는 컵에 물을 따라 입을 헹궜다.
탁!
권총수는 빈 물 컵을 내리며 윤태섭을 똑바로 보았다.
“대통령을 만나 할 얘기가 좀 있습니다.”
흠칫!
윤태섭의 표정이 가볍게 굳었다.
대통령이 일반 국민을 만나지 못할 일은 없다.
청와대가 개방까지 되었고 운 좋으면 지나가는 대통령을 만나 사진도 한 컷 찍을 수 있다.
문제는 권총수는 그런 형태의 만남이 아닌 따로 시간을 내 달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스케줄은 국가 시간표다.
국가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도 없는 국민 한 사람을 불쑥 바쁜 스케줄 안에 끼워 넣는다는 건 불가능을 넘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 되는 겁니까?”
“이보세요.”
권총수가 말을 자른다.
“오동칠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을 테고.”
윤태섭의 표정이 납덩이처럼 굳었다.
오동칠은 자신이 삶에서 가장 크게 지워지지 않는 어둠이었다.
“어떻게?”
목소리가 떨린다.
“마 사장님이 그러더군요. 오동칠이란 분이 내 어머니라는 사람을 죽였다고.”
화아악!
윤태섭이 눈이 곧 찢어질 듯 커졌다.
돌아가던 카메라가 멈춰 버린 듯 한동안 그 상태로 꼼짝하지 않았다.
그걸 보는 권총수는 지그시 웃음을 지었다.
“뭘 그렇게 놀라시고, 누구라더라.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데.”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사장님, 죽은 여자 이름이 뭐라고 했죠? 아, 알겠습니다.”
권총수는 어느 정도 표정을 관리하고 있는 윤태섭에게 말했다.
“오설지라고 오래전 꽤 잘나갔던 여배우라네요.”
덜덜덜!
탁자 모서리를 쥐고 있는 윤태섭의 손이 기타줄 처럼 떨고 있었다.
후춧가루와 소금, 고추장 따위의 양념을 담아 놓은 그릇들이 따라 움직이면서 시끄럽자 몇몇 손님이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윤태섭은 그제야 한 가지를 떠올렸다.
권총수.
권씨다.
물론 세상의 권씨는 부지기수로 많다.
그러나 지금은 우연일수 없다.
오설지라는 이름 석 자를 내 뱉을 수 있는 권씨는 청와대에 있는 사람과 행방을 모르는 그녀의 아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