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골목 암살자(2)
마낙춘.
숙!
번호를 꾸욱 눌렀다.
신호가 가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저녁시간에 쓸데없는 스팸이 걸려올 확률은 낮다고 볼 때 낯선 번호에 잠시 기억을 훑고 있을 것이다.
혹시 아는 번호인데 과거 내가 지워버리지는 않은 건가?
어쩌면 가장 먼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불편한 사람을 생각하고, 그중 한 명에게서 걸려온 건 아닐까?
끊고 다시 번호를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곧바로 받는다.
“여보세요.”
“여기 19호실입니다. 맨 끝 방 같던데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누구시죠?”
“참치 먹기 위해 찾아온 손님입니다. 그럼 기다리죠.”
권총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손님이 찾는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으면서 한편으로는 명령조인 말투에 불편함이 스멀스멀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지배인을 불러 19호실에 있는 손님에 대해 물을 것이다.
몇 살쯤 되어 보이더냐, 키는 크더냐, 얼굴 생김새는, 복장은, 말씨는 어디 지역이더냐 등등 말이다.
권총수는 생각할수록 재밌다는 생각을 하며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며 여자 종업원이 카트를 밀고 나타났다.
실려 있는 참치 회를 비롯해 여러 반찬을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올려놓고 등을 돌려 나갔다.
잠시 상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젓가락을 들어 참치 한 점을 그냥 입에 넣었다.
‘캡틴 참치 먹어봤나? 냉동 참치 말고 갓 잡은 참치 말이야?’
나카야마가 물었다.
‘참치하면 쓰가루 해협, 오오마 어부들이 외줄낚시로 잡은 혼마구로(참 다랑어)가 최고지. 11월에서 2월까지 잡히는 참 다랑어는 단연 제일이야’
나카야마의 참치에 대한 지식은 풍부했다.
그곳에서 잡히는 참치는 워낙 고가에 거래가 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맛도 볼 수 없다고 했다.
‘참치는 그냥 먹는 게 제일 좋아. 심심하다면 간장을 약간 묻혀 먹는 거야. 물론 기호에 따라 먹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제대로 맛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먹지.’
이번에는 장을 슬쩍 찍어 입에 넣었다.
그냥 먹고 장에 찍어 먹기를 몇 차례 반복하던 권총수는 후자를 택했다.
장맛이 첨가된 참치가 식감이 좋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정장의 마낙춘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들어선다.
“저를 찾으셨죠?”
“어서 오십시오.”
권총수가 앉을 것을 권했다.
주르륵!
마낙춘이 앉는걸 보며 권총수는 종업원에게 주문했던 사이다를 컵에 채웠다.
꿀꺽!
크게 한 모금 마신 권총수는 젓가락으로 참치 한 점을 장에 찍어 입속에 넣었다.
“누군데 날 이렇게 불렀습니까?”
마낙춘의 눈이 가늘어진다.
권총수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보는데 가끔씩 미간이 찌푸려졌다 펴지길 반복했다.
도무지 상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다는 눈빛이다.
“봐준 것입니까? 아니면 실수 한 것입니까?”
“뭘 말입니까?”
“채명천씨에게 칼을 놨는데 그가 죽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내가 알기로 사장님의 칼 솜씨는 당대제일이라고 들었습니다.”
히죽!
마낙춘이 미소를 지었다.
“경찰은 아닐 테고?”
“오동칠의 덤프트럭에 장난을 친 것이 사장님이라면서요?”
툭!
책상위에 있는 벨을 눌렀다.
그러자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처음 권총수를 안내했던 지배인이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최지배인, 이방 근처에 누구도 얼씬 못하게 하게.”
“예 사장님!”
탁!
문이 닫히고 지배인이 사라지자 마낙춘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뭐하는 놈이냐?”
스윽!
품에서 날이 시퍼렇게 선 회칼을 방바닥에 놓았다.
그건 여기서 시신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마낙춘이 피식 웃는데,
슥!
갑자기 방바닥에 놓여 있던 회칼이 저 혼자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허!”
마낙춘이 소스라쳤다.
스으으!
떠오른 칼이 느릿하게 권총수 앞으로 날아갔다.
탁!
칼을 쥔 권총수가 예리한 칼날을 살폈다.
“사람들은 소림에 검법이 없다고들 합니다. 대가람으로서 살생의 표본이 되는 칼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불가의 법에 충실하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소림에도 남이 모르는 검법이 있습니다.”
마낙춘이 이마를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소림은 뭐고 검법은 뭔가.
“달마삼검이죠. 창안한 달마대사도 그 위력에 대해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고 할 만큼 잔인하고 강렬합니다. 또한 초식이 워낙 폭발적이어서 평범한 검은 견디지 못합니다. 이런 생선 살 따위나 썰어내는 칼은 더욱.”
뚝!
권총수의 손에 들린 칼이 부러졌다.
쥔 손에 힘을 주자 손잡이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
두 동강 난 칼날이 떨어지며 상위에 꽂혔고 부러진 손잡이는 손에 들려 있었다.
“오동칠 잘 알죠?”
파아악!
마낙춘은 바로 앞에 있는 접시 한 개를 주워 던졌다.
탁!
그러나 접시는 어느 새 권총수 오른손에 잡혔다.
취익!
그리고 다시 접시를 던지려는 마낙춘을 향해 날아갔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마낙춘의 오른쪽 무릎에 접시가 틀어박혔다.
“컥”
꽈당!
마낙춘은 무릎을 굽히며 주저앉았다.
권총수는 술 대신 잔에 따라진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며 웃었다.
고통이 심한 듯 마낙춘은 어금니를 덜덜 떨었다.
“오동칠씨를 죽였죠?”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개소리.”
“민정수석 윤태섭의 지시를 받고 말입니다? 그 댓가로 여기에 회집 터를 잡지 않았습니까?”
“으윽, 당신 누구 사주를 받고 이러는지 몰라도 크게 실수하는 거야.”
슥!
권총수는 참치 회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윤태섭씨에게 전화 좀 걸어주시죠. 내가 지금 보잔다고.”
윤태섭이 민정수석임을 알고 있다면 그 자리가 어떤 위치인지 모를 리 없다.
청와대는 이 땅 최고의 권부이고 민정수석은 그 안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자리이다.
헌법적 서열에는 들어가지 못해도 실제적 힘은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절대무적의 위치이다.
그런데 친구를 찾듯이 전화 한 통 걸어 달라고 한다.
"맛있군요."
다시 회를 한 점 입에 넣더니 쥐고 있던 젓가락을 던졌다.
휙!
푸우욱!
고통을 참지 못해 접시가 박힌 오른쪽 다리를 바닥에 펴고 있었는데 다시 젓가락 두 개가 파고들었다.
“으허헉!”
젓가락은 오금까지 뚫고 나와버렸다.
권총수는 이번에는 탁자에 꽂힌 부러진 칼날을 주워들었다.
그건 당장 전화하지 않으면 칼을 쑤셔 박아주겠다는 뜻이다.
마낙춘은 핸드폰을 꺼내 덜덜 거리는 손으로 번호 한 개를 길게 눌렀다.
“접니다. 지금 저희 가게로 잠깐 오셔야 겠는데요.”
움찔하는 것을 보면 윤태섭이 버럭 소릴 지르는 듯 했다.
권총수 귀에는 윤태섭의 불호령 치는 소리가 들렸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감히 민정수석인 날 오라 가라고 해. 이런 미친놈을 봤나’
하면 씩씩댔다.
“꼭 오셔야 한다고 얘기해요.”
“꼭 오셔야 한답니다.”
잠시 윤태섭 쪽이 조용하다.
어느 기자가 말하길 정치인들 눈치는 신에 버금간다고 했다.
윤태섭은 이쪽에 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다.
천하의 칼잡이 마낙춘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받고 있다는 사실 또한.
검정색 승용차 한 대가 어군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사내 셋이 내리더니 주위를 스윽 훑어보았다.
“전화해봐!”
2대8 가르마 선을 분명하게 만든 우두머리 양필종이 부하직원인 박성판에게 지시했다.
가죽자켓을 걸친 박성판이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지금도 가게에 계십니까?”
잠시 듣고 있던 박성판이 핸드폰을 내렸다.
“병원이라는데요.”
병원이라는 말에 양필종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데리고 간거야?”
“자신의 차로 갔다고 합니다. 지배인이 운전했다는군요.”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또 다른 양필종의 부하인 야구 모자의 사내 표장철이 이마를 찌푸렸다.
“어디로 가죠?”
양필종이 얼른 대답을 못하자 박성판이 다시 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사장님을 다치게 한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병원으로 같이 왔습니다.”
박성판이 전화를 내리고 말했다.
“병원에 같이 있다고 합니다.”
“같이!”
양필종은 박성판을 바라보았는데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분명한 설명은 없었지만 윤태섭의 말은 마낙춘이 누군가에게 잡힌 것 같다고 했다.
‘가서 그놈이 누군지 잡아와’
머리를 굴리고 고개를 부지런히 갸웃거려도 돌아가는 판을 모르겠다.
“일단 병원으로 가자!”
세 사람은 다시 차에 올라 주차장을 떠났다.
조수석에 앉은 양필종은 가만 눈을 감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마낙춘은 한때 최고의 칼잡이였다.
칼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무등산 골짜기 한 곳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노인으로부터 수박도라는 걸 배워 맨손으로도 당할 자가 거의 없다고 들었다.
흔히 말하는 천하무적은 없으니 당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다쳤으면 경찰을 부르든지 해야 하는데 근처 파출소와 112에는 신고 들어온 것이 전혀 없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무얼 의미하는가.
조폭들은 죽든 살든 자신들끼리 싸움에는 절대 경찰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즉 상대가 같은 조폭 출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낙춘은 그 바닥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가장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은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잡을 때는 굴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 정석이다.
10여분 정도 달려가자 멀리 병원이 보인다.
마낙춘은 태어나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위협용으로 놔둔 회칼을 마술사처럼 공중으로 끌어올린 것도, 쇠로된 칼을 두 토막으로 부러뜨린 일도, 접시와 젓가락을 날려 오른쪽 무릎에 12주의 진단이 나오도록 한 것까지.
백보를 양보해서라도 이해 할 수 있다.
한바탕 꿈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수술을 끝내고 들어온 병실에 앉아 차를 마시는 저 행동은 도무지 이해불가다.
누군가에게 진단 12주의 중상을 입혔으면 경찰을 피해서라도 일단 도망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병원까지 따라와 자신의 수술 경과까지 담당의사에게 차분히 듣고 자신이 간병을 하겠다면서 지배인을 돌려보냈다.
돌아가는 지배인에게 경찰에 신고하면 가만 안두겠다는 흔한 위협도 하지 않았다.
꿀꺽!
누굴까.
그때 문소리가 열리며 양필종과 두 부하가 들어섰다.
특실이다.
한쪽 탁자에 앉아 종이컵 커피를 마시던 권총수는 세 사람을 흘긋 보며 커피를 내렸다.
“양 계장님!”
누워 있던 마낙춘이 아는 체를 했다.
양필종만 마낙춘에게 다가갔고 박성판과 표장철은 감시하듯 커피를 마시고 있는 권총수를 주시했다.
“어떻게 된 일이오?”
"그게, 그러니까..."
양필종은 이런 저런 질문을 쏟아 냈지만 마낙춘은 그다지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양필종의 눈썹이 모아졌다.
마낙춘은 이른바 족보가 있는 건달이다.
그런 인물이 입술을 바짝 태우며 권총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양필종이 몸을 돌렸다.
“당신이 마 사장님을 이렇게 만들었소?”
“맞아요.”
권총수의 주저 없는 대답에 오히려 양필종이 당황했다.
“경찰이오?”
권총수는 이미 윤태섭이 보낸 청와대 경호실 직원들이라는 걸 짐작했다.
경찰이냐고 묻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필종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경찰이라고 대답을 해 버렸다.
“그렇소. 경찰입니다.”
“경찰이라고 했습니까?”
“경찰이라니까.”
양필종이 목소리를 높였다.
톡!
권총수가 핸드폰을 터치 했다.
경찰이오?
그렇소. 경찰입니다.
경찰이라고 했습니까?
경찰이라니까 하는 말까지 그대로 녹음되어 흘러나왔다.
권총수는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경찰이죠. 여긴 병원입니다. 누군가 경찰을 사칭하며 날 잡아가려고 하는 군요. 빨리 좀 와주시죠.”
양필종은 소스라쳤다.
이런 상황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일은 금세 경찰들이 병실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1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병실 문이 열리며 일단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양필종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는 기분이 들었다.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경찰입니다.”
사내들은 모두 다섯이었는데 일제히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물었다.
“강남경찰서 강력계 제3팀장 박범수입니다. 실례지만 소속이 어디십니까?”
양필종은 대답하지 못했다. 병실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