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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61화 (161/651)

제161화: 골목 암살자(1)

오랜 비행 끝에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입국 수속을 무사히 마친 권총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한 여자의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

마중 나온 사람들 틈에 섞여 누군가를 찾는 듯 부지런히 두리번거리는 오십 초반의 여자였다.

핸드폰을 꺼내 다시 한 번 사진과 실물을 확인하고 다가갔다.

권총수가 정면으로 다가오자 여인도 멈칫했다.

“혹시?”

“권총수입니다.”

“아, 네 오셨군요.”

“가시죠!”

권총수는 여인과 나란히 청사를 걸어 나갔다.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까?”

여인은 채명천의 아내 김비숙이다.

채명천은 그날 홍대 앞에서 마낙춘의 칼을 맞고 119에 실려갔는데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이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면서 가족들이 하루라도 빨리 산소 호흡기를 떼도록 의견을 하나로 모으라고 했다.

중환자실 입원비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의사의 그런 태도였다.

의사가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호흡기를 뗄 것을 종용하는 행동이 가족들 눈에는 이상한 것이다.

얘기를 전해들은 권총수는 짚이는 바가 있었다.

병원으로 택시 한 대가 들어왔다.

택시가 멈추고 앞뒤 문이 동시에 열렸는데 권총수와 채명천의 아내 김비숙이었다.

두 사람은 곧장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6층 중환자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들이 무겁다.

환자들이거나 아니면 가족들일 터이다.

권총수는 흘긋 옆에 서 있는 김비숙을 바라보았다.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있었는데 죽어가는 남편을 둔 여인의 근심이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사장님은 살아날 것입니다.’

김비숙은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귓속으로 권총수의 전음이 파고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자기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한 듯 했다.

쨍!

엘리베이터가 6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 상당수가 내렸다.

아마 중환자실 환자 가족들인 모양이었다.

김비숙은 조금 긴장한 듯 보였는데 조금전 전음 때문일 것이다.

저벅저벅!

중환자실 복도는 사람 한 명 볼 수 없었다.

‘가족 대기실’이라고 쓰인 문을 열고 들어가자 20여개의 좌석이 놓인 조그만 휴게실이 있었다.

권총수는 자리를 잡고 앉은 김비숙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저기, 지금은 면회시간이 아닌데요.”

“그것 주시죠.”

김비숙은 들고 있던 쇼핑백을 건네주었는데 남편 채명천이 입을 옷이었다.

김비숙은 권총수가 준비해 오라는 말에 깊은 생각 없이 챙겨왔었다.

스윽!

권총수는 쇼핑백을 들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중환자실에는 세 명의 간호사가 있었다.

한 명은 컴퓨터를 만지고 있었고 두 명은 십여 명의 중환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팟!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만지던 간호사부터 제압했다.

파팟!

마혈과 아혈이 동시에 제압된 것이다.

슈슉!

이어 환자들을 살피고 있는 두 간호사 역시 그대로 석상이 되어 버렸다.

권총수는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누워있는 중환자들의 명단을 살핀 후 한 침대 앞에 섰다.

‘채명천’

권총수는 잠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누워 있는 채명천을 바라보다 마스크를 떼어냈다.

촤악!

이어 환자복 상의를 벗기고 12곳의 혈도를 짚었다.

타타타탁!

이어 침대 위로 올라간 권총수는 채명천 옆에 결가부좌하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극양의 내공이 양손에 채워지면서 손바닥으로 채명천의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추궁과혈이다.

몸속에 막히거나 상처 입은 기경팔맥을 내가진기를 이용해 타통시키는 상승의 내가치료법이다.

파파팍!

보이지 않을 만큼 몸을 자극하는 손의 속도가 빨랐다.

권총수의 이마에 가느다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는데 추궁과혈을 시전하면 내공소모가 극심해지기 때문이었다.

20여분 가까이 흘렀다.

창백하던 채명천의 안색이 불그스레해졌고 권총수의 손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커억!

한 순간 누워 있던 채명천이 검붉은 핏덩이를 토해냈다.

뚝!

권총수의 동작이 멈췄다.

슥!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서 침대를 내려왔다.

흘긋!

세 간호사들은 여전히 석상이 되어 있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수혈까지 제압되어 모두 자고 있다.

채명천의 호흡이 굵어졌다.

처음 산소호홉기를 뗐을 당시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은 호흡이었다.

“으음!”

급기야 채명천이 신음을 흘렸다.

의식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장님!”

권총수는 내공을 실어 불렀다.

움찔!

온 몸을 자극하는 내공실린 음성에 채명천의 눈자위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권총수는 깊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굳게 잠겨 있던 채명천이 두 눈을 천천히 뜨고 있었다.

시력의 초점이 잡히지 않는 듯 한참을 깜빡거리더니 권총수를 발견하고 소스라쳤다.

“사장님!”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괜찮습니까?”

채명천은 침대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굳어 있는 간호사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권총수는 쇼핑백을 내밀었다.

“갈아 입을 옷입니다.”

눈치 빠른 채명천이다.

뭔가 자신에게 경이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군소리 않고 옷을 갈아입었다.

“나가시죠!”

권총수는 채명천을 먼저 내보내고 간호사들의 제압된 혈도를 풀어주었다.

깨어난 간호사들은 아무런 기억을 못하는 듯 각자 할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사라진 채명천을 보며 소스라쳤다.

“언니!”

채명천의 벗겨진 환자복을 들고 소릴 질렀다.

원무과 직원의 눈이 커졌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야 할 채명천이 바로 앞에 있고 아내 김비숙이 카드로 병원비 계산을 하고 있다.

꿀꺽!

꼬올깍!

원무과 직원들 모두가 경악의 시선을 던지며 마른침을 삼킨다.

“바빠요. 빨리 계산해 주세요.”

그때 원무과장이란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으면서 채명천을 보았는데 아마 중환자실 간호사 전화임이 분명해 보였다

“김 간호사 당황하지 마세요. 채명천 환자 여기 있어요. 지금 퇴원비 계산중입니다. 그래요.”

전화를 내린 원무과장은 책상위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누른다.

“교수님 원무과 송과장입니다. 중환자실 채명천 환자 지금 퇴원합니다.”

“죽었습니까?”

“그게 아니라.”

원무과장은 아내와 같이 퇴원 수속을 한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요?”

담장 주치의인 자신도 모르는 일이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고마워요!”

계산이 끝나고 기다리고 싶은 맘 없다는 듯 부부는 나란히 병원을 걸어 나갔다.

“잠깐만!”

원무과 직원들 몇이 달려 나와 담당 주치의도 만나고 몇 가지 조사를 더 할 것을 요구했지만 일 없다는 듯 부부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석 달 가까이 누워 있었는데 불고기를 곧장 먹어도 되느냐는 듯 김비숙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드셔도 됩니다. 배불리 먹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습니다.”

현대의학과 강호의 내상치료법은 다르다.

추궁과혈로 인해 채명천의 몸은 굉장히 강해졌고 모든 장기는 다치기 이전보다 튼튼해졌다.

채명천은 상추에 불갈비를 잔뜩 올려 입에 밀어 넣었다.

“여보 천천히 먹어.”

김비숙은 불안한 표정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이상이 없고 소주까지 들어갔지만 지금막 퇴원한 환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자 권총수를 주시했다.

권총수가 전쟁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용병이란 얘긴 전해 들었다.

하지만 국내 정상급 의료기관에서도 3개월 동안 식물인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남편을 마술사처럼 데리고 나온 일은 여전히 비몽사몽이다.

꿈은 절대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받으시오!”

권총수는 봉투를 내밀었다.

“잔금입니다.”

채명천은 멈칫했다. 자신을 살려주기까지 했는데 잔금을 받아야 하나 망설이는 것이다.

그 맘을 안다는 듯 권총수가 덧붙였다.

“어쨌든 날 위해 일하다 다치셨고, 나 또한 채 사장님으로 인해 모든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잘 끝난거죠.”

채명천이 웃으며 봉투를 받았다.

“10만 달러 담았습니다.”

우욱!

고기를 씹던 채명천이 입속의 상추쌈을 토하고 말았다.

10만 달러면 1억이 훌쩍 넘는다.

받을 잔금은 이천 만원이다

약속한 금액의 다섯 배가 넘는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일을 완성시켜준 것에 대한 보너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벌써 일어나십니까?”

“오랜만에 마주 앉았으니 못 다한 얘기도 나누시고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 주시고.”

붙잡는 부부의 손을 뿌리치고 권총수는 한식집을 걸어 나왔다.

식당을 걸어 나온 권총수는 길가에서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라이트를 켜고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건물 꼭대기에 설치된 전광판에서는 EPL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의 동정을 소개했는데 오늘도 1골 2도움을 주며 팀 승리에 결정적인 공훈을 세웠다는 기사였다.

퍼어억!

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직진차량이 좌회전 하는 택시를 들이 받았다.

권총수는 담뱃불을 끄고 빈 택시를 세웠다.

“서초동 갑시다.”

택시에 오른 권총수는 의자 뒤로 등을 붙이며 눈을 감았다.

권총수는 며칠 전 있었던 불가사의한 경험을 떠올리고 있었다.

RPG를 막는다는 건 무모했다.

그렇다고 건물에 정통으로 충돌하면 엄청난 희생자가 생길 것이므로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 삶이 여기까지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가까스로 막는데 성공했다.

현대 의술로서는 생존 할 수 없는 큰 부상이었다.

일반인들 같았으면 현장에서 즉사 했겠지만 그나마 강호무사로 강력한 내공이 꺼져가는 온 몸의 기능을 오랫동안 붙잡아 두었다.

그리고 얼굴 없는 공공선사의 인도아래 공청석유라는 희대의 치료제를 마신 것이다.

판타지에서나 나오는 그런 환상적인 경험에 한동안 어리둥절하기까지 했지만 분명한 건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내공은 정확한 수위를 계산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공청석유가 가진 효능의 절반밖에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도 예전과는 전혀 달라진 몸이었다.

조심스럽게 백 년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추정했다.

“도착했습니다. 손님!”

권총수는 눈을 뜨고 밖을 보았다.

오른쪽으로 ‘어군’이라는 간판이 있고 주차장은 만차였다.

택시에서 내린 권총수는 주차장 크기를 보며 놀라워했는데 족히 300평 정도는 되어 보였다.

땅이 아닌 금으로 깔아 놨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비싼 땅 값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처음부터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선물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고 그럴 정도의 크기였겠지만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만큼 기업이라 할 정도로 키워 낸 건 주인의 역량이리라.

그건 주인에게 상당한 경영능력이 있다고 봐야 할 일이었다.

스르르!

출입구로 들어서자 자동문이 열린다.

정장을 한 남자가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 이시죠?”

“혼자요.”

“아 그러십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사내의 왼쪽 가슴에 흰색의 명찰이 달렸는데 지배인 ‘최환술’이라고 쓰여 있었다.

참치 집 어군은 전통 한옥에 약간의 편리성을 가미한 서구식 인테리어로 단정하면서도 우아함이 있었다.

드르륵!

한참 안쪽 통로로 걸어가더니 방문을 열었는데 방 가운데 소나무 향이 풍기는 갈색의 4인용 탁자가 놓여 있었다.

권총수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지배인이 직접 따라 들어섰다.

“저희 가게 처음 오시죠?”

지배인이 빙긋 웃었다.

“맞습니다. 참치도 오늘 처음 먹는 것입니다.”

“그러십니까? 그럼 단골로 모시기 위해서라도 잘 대접해 드려야겠군요.”

“2인분 주시죠.”

“알겠습니다.”

지배인이 물러나고 권총수는 혼자 남았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뚝!

계속 화면을 내리다 한 사람의 이름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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