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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60화 (160/651)

제160화: 사막의 기연(2)

잠시 눈을 감고 사부의 목소리를 떠올리던 권총수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목소리라도 들었다.

화악!

눈을 뜬 권총수가 깜짝 놀랐다.

상당한 높이의 협곡인데 맞은편 절벽에 글씨가 나타났다.

‘잘하고 있느니라. 네가 마신 건 공청석유이니라 아직 효능의 절반밖에 소화 하지 못했다. 부지런히 대력금강심법을 수련하며 매우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니라’

의지언현(意之言現)

생각이나 뜻을 상대에게 전하는 최상의 수법으로 우화등선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이다.

의지언현을 이용해 말을 전한다는 건 공공선사는 지금쯤 우화등선하여 선계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선계에 있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도 되었다.

휘익!

몸이 떠올랐다.

불과 몇 시간 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가볍다.

50여 미터 되는 높이의 70도 이상의 경사진 언덕을 단번에 올라갔다.

사막이다.

온통 보이는 것은 없다.

불빛 하나 없다는 건 민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자리를 관찰하는 가 싶더니 몸을 날린다.

우웃!

불영보를 펼쳤는데 현란했다.

내공이 충천하다 보니 발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신법 수준의 속도가 나왔다.

촤아아!

이번에는 금강부동신법을 전개했다.

슈우우우!

권총수의 몸이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권총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십 여명의 무장 군인이 병원을 지키면서 수색에 나섰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도착한 KAS용병들 역시 중환자실을 중심으로 뭔가의 흔적을 찾기 위해 눈에 힘을 주었다.

“없어!”

하나둘 흩어져 권총수에 대한 단서를 찾던 팀원들이 몰려들었다.

“CCTV에도 찍히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벌떡!

오민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원무과를 찾아가 다시 한 번 중환자실 CCTV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직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컴퓨터를 조정하더니 중환자실 화면을 보여 주었다.

모두 일곱 명이 누워 있는데 맨 끝에 침대가 권총수다.

팔랑!

근무중이던 간호사가 상의 가운을 갈아입기 위해 훌렁 돌려 휘감을 때 오민철이 화면을 정지 시켰다.

바라보던 직원의 눈도 커졌다.

간호사의 상의가 스치듯 돌아가며 6,7번 침대를 막았는데 불과 1초도 되지 않았다.

다시 화면을 돌리고 난 오민철과 직원의 눈이 커졌다.

6번 침대의 환자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권총수가 누워 있던 7번은 텅 비어 있었다.

오민철은 다시 돌렸다.

간호사의 가운이 화면을 가린 시간을 초시계로 쟀는데 0.99초였다.

예상대로 1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권총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납치를 했다거나 죽여 시신을 가져갔다면 어떤 과학적 장비를 사용한다고 해도 0.99초에 꺼지듯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에반에게 보고가 되었고 팀원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권총수는 특별한 사람이다.

그는 절대 과학으로 입증 할 수 없는 능력을 지녔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권총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아무튼 누군가에게 끌려가 죽었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상상에서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잡기 시작했다.

사흘 째 밤이 깊었다.

하루 종일 모든 눈과 귀를 알자지라 방송에 집중했다.

누군가 권총수를 끌고 갔다면 알자지라를 통해 어떤 요구를 해온다거나 어떤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수한 언론사 어디에서도 권총수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KAS 지사 건물은 이번에도 5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는데 앞서 건물과 다르게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내외부에 있었다.

요즘 건물은 방음 방한 방열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 건축되지만 화포를 이용한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

하지만 철근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부어 지은 건물은 방음 방열 방한에 약하지만 총포에 강하다는 점을 적극 살려 선택했다.

“누구냐?”

답답한 마음에 건물 앞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오민철의 고개가 돌아갔다.

초소 근무자로부터 차가운 외침이 들렸기 때문이다.

지금 초소근무자는 세르게이다.

세르게이가 헛것을 보고 누구냐고 말할 허접한 용병이 아니다.

휙!

권총을 뽑아든 오민철은 주차되어 있는 랜드로버 뒤로 몸을 숨기고 어둠속 초소를 살폈다.

“총수!”

그때 세르게이가 외쳐 말했다.

“캡틴! 오오! 캡틴!”

후다다닥!

오민철은 권총을 손에 쥐고 달려갔다.

초소 앞에는 정말로 권총수가 서 있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꿈이 되는 건 아니겠지.”

“아이 쓰!”

오민철이 갑자기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형 울어?”

“시끄러!”

오민철은 돌아서서 눈물을 닦았다.

빌어먹을.

요즘 따라 이상하게 눈물이 많아졌다.

용병에게 눈물이 많아지면 은퇴가 가까워 왔다는 의미라고 들었다.

이삼 일만 더 기다렸다가 권총수가 계속 나타나지 않으면 돈이고 뭐고 모두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리라고 마음먹었다.

권총수는 이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와락!

오민철은 권총수를 힘껏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나 좀 살자.”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그만 애 좀 태우라는 뜻이다.

* * *

권총수는 공항에 있었다.

에반은 권총수의 한국행을 막지 않았다.

아직 안정되지 않은 사우디 정국이기에 반드시 자리를 지켜야 하지만 잠시 휴식을 배려하는 차원이었다.

“언제 올 거야?”

오민철도 따라 나서려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핑계를 댔지만 거절당했다.

“온 가족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지 그랬어.”

권총수가 히죽 웃었다.

“그렇잖아도 아버지 한 사람으로서는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 아버지가 같이 죽었다고 할 걸.”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고 커피숍으로 걸어갔다.

“차 한 잔 하자.”

두 사람은 공항 커피숍에 나란히 앉았다.

오민철은 상점에서 작은 얼음 조각 몇 개를 사오더니 커피 잔에 넣었다.

아이스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것이었다.

“너도 넣을래?”

손에 얼음 두 조각을 듣고 오케이 하면 금방 넣을 듯 손을 뻗었다.

“마음대로 해!”

쏙!

커피 속으로 얼음 두 조각이 들어갔고 떠올랐다.

“어떡할 건데?”

오민철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정색했다.

권총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푸 두 번 연속 커피를 마시더니 한숨 쉬듯 말했다.

“글쎄, 거 참 묘한데. 나도 나이가 먹나봐. 어머니란 사람이 안쓰러운 감정이 드는 걸 보니.”

“어느 책에서 봤는데 인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돌아가고 싶어한데. 마음도 몸도, 근본으로 돌아가면서 부모를 생각하고 고향을 살피는 거지.”

“내 나이가 몇인데 벌써 그럴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예전과 감정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전쟁터에서 산다는 것 때문일까.

죽는다는 것에 유난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심지어 내가 죽으면 울어 줄 사람 한 명은 있는지 주위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머니란 사람의 죽음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채명천이 추적하고 있는 사건에 관심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더욱이 자신의 아이를 낳아준 여잔데 말이야.”

권총수가 고개를 저었다.

“정치인들은 우리와 똑같대.”

“하하. 우리가 그렇게 더럽다는 건가?”

권총수가 눈을 빛내며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들은 하루하루를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고 들었어.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피식!

오민철의 말을 들은 권총수는 실소를 지었다.

육중한 대한항공여객기가 활주로를 이륙했다.

권총수는 멀어지는 사막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다.

문제는 그 관계가 정상적인가 아니면 비정상적인가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무척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는데 가장 대표적인 부류가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모든 걸 이용하고 속여야할 대상으로 판단하고 바라본다.

독일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 ‘비커’는 20대에서 70대까지 10만 명을 대상으로 한 가지 조사를 벌였다.

인간에게 어떤 욕망이 가장 우선하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양심적 행동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조사다.

당연한 결과일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돈을 갖고 싶어 했다.

돈은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돈 외에 10만 명중 무려 32프로인 삼만 여명이 권력욕이 가장 강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다 보니 강한 욕망은 결국 강한 부도덕으로 통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렇게 해서라도 군림하고 싶어 한다.

오래전 외인부대 시절 읽었던 ‘권력의 중독’이라는 책에서 읽은 한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권철태야 말로 가장 대표적인 권력 중독자이다.

“손님! 뭘 드릴까요?”

기내서비스가 다가왔다.

“맥주 하나 주세요.”

권총수는 목을 좌우로 움직였다.

알부페이궁 공격 때 입은 외상이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처음으로 마음 놓고 맥주 한 컵을 단번에 비워 버렸다.

권총수의 갑작스런 한국 방문을 두고 팀원들은 쑥덕거리고 있었다.

대부분 권총수가 혼자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정말 몰라?”

나카야마가 오민철에게 물었다.

캡틴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이니 공통의 관심사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나카야마의 지론이었다.

“모른다니까?”

오민철은 고개를 저었다.

권총수의 가족사가 너무 비참했다.

“여자 문제는 아니지?”

나카야마가 눈을 빛냈다.

“여자? 우리 캡틴이 여자 사귈 만큼 부지런한 사람은 못될 걸.”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를 사귈 만큼 나긋나긋한 남자는 아니었다.

똑똑!

그때 3층 휴게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들어오세요!”

얼른 나타나지 않자 오민철이 버럭 소릴 질렀다.

삐걱!

슬며시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점점 문이 크게 열리며 나타난 사람은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이철병 서기관이었다.

“누구십니까?”

오민철이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차린 듯 다가오며 물었다.

“전 대사관에 근무하는 서기관 이철병이라고 합니다.”

“한국대사관에서 무슨 일로?”

이철병은 자신을 바라보는 용병들을 훑어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권총수씨 뵐 수 없을까요?”

“캡틴?”

권총수를 찾는다는 말에 팀원들 모두가 눈에 날을 세웠다.

“뭣 때문에 찾는 거요?”

세르게이가 다가오자 이철병은 멈칫했다.

쳐다보는 눈빛에서 금방이라도 예리한 비수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사실은!”

이철병은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시선은 오민철에게 고정했는데 그가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빨리 이해할 것이라고 믿었다.

얘기를 듣고 난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렸다.

자신들은 정치에 대해 모른다.

그런데 지금 이철병은 정치적 얘기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우디는 자국에서 건설 중인 외국기업들의 모든 공사를 일시 중단 시켰다.

그건 선택적 차별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즉 자신들의 쿠데타를 지지하는 나라의 기업은 공사 진행을 막지 않겠지만 비판하거나 지지하지 않으면 그 나라 기업은 철수를 시키겠다는 뜻이다.

한국 정부는 아직 어떤 공식 논평도 내놓고 있지 않았다.

“난 모르겠고 총수는 볼일이 있어 잠깐 외출했습니다.”

권총수의 행방을 제대로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언제 돌아옵니까?”

“그건 우리도 모르죠. 극비 작전 중이니까?”

아쉬운 듯 잠시 망설이던 이철병이 명함을 꺼냈다.

“돌아오시면 제가 다녀갔다면서 이것 좀 전해 주시죠.”

“그러죠.”

오민철은 명함을 스윽 살피고 윗주머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이철병은 오민철에게 넙죽 절을 하고 재빨리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누군가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고 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진정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철병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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